지 네 집 구두가계에서 꼼쳐 온 것임은 두 말 할 나위 없다.
연신, 구두와 나와 그 녀석을 번갈아 보며 예쁜 송곳니를 드러내던 단발머리가 까르르 새벽이슬 위로 웃음을 뿌린다.
기또구두!
그녀와 떠나는 여행을 위해 진열대에 걸려있는 단 하나의 기또구두를 과감히 들고 온 그 녀석은 구두속에 전 날 매상일듯한 9천5백20원의 돈도 넣어 두었나보다.
"으응~, 걱정마. 윈도우 유리창 깨놓구 왔어. 우리 꼰대는 도둑 맞은 줄 아실꺼야."
"얌마, 뭔 대단한 여행이라고 새벽잠도 많은 놈이......."
"라희씨,잘 다녀와요! 포쿠션 너 발 조심하고..나 간다! 울 꼰대 깨시기 전에 가서 자는 척 해야지...!"
새벽 안개 속으로 뛰어가는 그 녀석은 우스꽝스럽게 엉덩이를 삐쭉이며 그녀와 나를 다시 한번 웃게 만든다.
그녀와의 여행은 일년전 부터 계획된 것이었다.
부러진 다리속으로 염증이 퍼져 골수염 치료중인 내병실에서 그녀가 제안을 하였던 것이다.
"걱정마...다시 온전히 걸을 수 있을꺼야...그 때 우리 동백정 여행가자!"
"잠도 자고 오는 거냐..?(음흉~~)"
"그땐 니 맘때루야..."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오늘이다.
난 고등학교를 4년 다녔다.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싶어서였다.
학교를 네 군데 옮겨 다니며 마쳤다.
여기 저기의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즉결재판이나,경찰서나 파출소에 자주 견학 갔었다.
민주주의 시민으로 법의 공정함 여부를 알기 위해서 였다.
그래,그래~~~! 구라다.
당신들 추측하는 것이 사실이다.
학생주임 선생에게 붙잡히지 않으려고 3층 옥상에서 뛰다 다리가 작살나던 2년전,
둘 다 고 2때 만났다.
그래서 그녀가 대학 신입생때 나는 고3이였다.
그 때의 일이다.
그 녀는 대학생임에도 나를 만날때는 줄무늬가 있는 하얀 세라복(동복은 검은색)교복을 입고 나왔다.
나를 쪽팔리지 않게하기 위해서였고 세라복에 생머리 단발이 정말 잘 어울리는 여자아이였다.
내가 대학들어가는날 까지는 파머를 하지 않겠단다.
그녀는 왕영은 스타일 얼굴이지만 훨씬 더 예뻤다.
코 아래 점 하나는 어떤 양반하고 반대 쪽 이다.
점도 어느 쪽 이냐에 수준 차이가 난다. 으거거~~퍼억 싹싹!
기또구두를 신으면 신데렐라 유리구두 부럽지 않았지.
스케치님이 생각하는 쌍방울 달린 구두는 촌놈중에 젤 촌스런놈들이 신던거고.
정말좋은놈이 갖다 준 거는 민짜 카키색 기또구두였지.
한마디로 혼방가는 거였어.
또 같은 기또구두라해도 덕성양화점거를 제일로 쳤지.
정말좋은놈!
인생에 있어서 한번쯤은 휘도는 고난을 만난다.
그러나 그것은 바다로 가기 위한 탁류(濁流)이리라.
탁류란 세정(洗淨)을 위한 몸부림이므로...
채만식의 탁류란 소설의 배경이된 금강의 하류를 우린 건넜다.
지금은 금강하구뚝이 막아져 자동차로 가지만...
그 때는 군산에서 장항은 배를 타고 건넜다.
지금은 유람선으로 바뀐 여객선은 우리지역 아베크족들의 특구였다.
그 이유는.....
낭만이고 뭐고랄게 없다.
배가 끊기면 장항이나 서천등에서 자야한다.
여자들이 먼저 비인이나 동백정, 대천등을 데이트 코스로 원하는 이유를
지금도 이해 하지못한다.
형록형이 지금도 서천을 자주 가는 것은 그당시 그 일원에 정착해 놓은 귀인과 후궁들을 위함을 아느니 그 누구냐!(구라아님!)
그녀는 동백정을 원했다.
배 안이 사람들의 열기로 후끈한데도 그녀는 "아이 춰!"하며 손을 내 점퍼 호주머니로 집어 넣는다.
자연스레 그녀의 손은 내 손 안에서 꼼지락 거린다.
배 안의 남녀들은 모두 우리와 같은 자세를 하고있다.
여자들은 바닷바람에 약한 모양이다.
추워하는 여자를 위해 등쪽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진찰하는 넘도 보인다.
"좀 만 쌔잌, 옷을 위로 확 올리고 진찰하면 어디가 덧 나!"
물론 속으로만 생각했다.
장항에 도착하자 아침밥을 못 먹은 우린 시장해 있었다.
막걸리를 파는 허름한 집.
비빔국수,순대국밥 막걸리 한 주전자를 둘이 나눴다.
"포쿠션아, 너 나하고 약속할게 하나있어."
"머신디."
"너 언제든 내가 비빔국수 먹고 싶다고 하면 사조야되..! 응..?"
"니미랄, 뭔 대단한 이야긴 줄 알았네.."(물론 속으로만)
"의사 선생님이 앞으루 매운 거 먹지 말래..."
"야, 뭔 예기여~~! 병원은 내가 일년동안 입원했었는디....의사 선생님이라니..?"
그녀의 세라복 주름 치마에 뚝하고 눈물이 떨어진다.
"라운드(round),인테스티날(intestinal),훅(hook) 웜(worm)의 복합형이래..!"
고등학교 졸업을 앞 둔 나에게 이 의학용어는 생소했지만 큰 병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녀의 심각한 병.
회충과 십이지 장충(intestinal worm & hook worm)은 일월회와 비슷한 점이있다.(화내지말고 끝까지...!)
회충은 군집 생활을 하며 십이지 장충은 잠이 없고 갈고리로 한번 꽂으면
몸을 자르는 한이 있어도 놓치지 않는다.
한마디로 때거리 정신과 스토커 정신이 있다.
주인과 바다는 끝없이 먹을 것을 제공한다.
동백
동백의 숲까지 나는 간다
저 붉은 것,
피를 토하며 매달리는 간절한 고통같은 것
어떤 격렬한 열망이 이 겨울 꽃을 피우게 하는지
내 욕망의 그늘에도 동백이 숨어 피고 지고 있겠지
지는 것들이 길 위에 누워 꽃길을 만드는구나
동백의 숲에서는 꽃의 무상함도 다만 일별 해야 했으나
견디지 못한 몸의 무게로 무너져 내린 동백을 보는 일이란
곤두박질한 주검의 속살을 기웃거리는 일 같아서
두 눈은 동백너머 푸른 바다 더듬이를 곤두세운다
옛날은 이렇게도 끈질기구나
동백을 보러갔던 건
거기 내 안의 동백을 부리고자 했던 것
동백의 숲을 되짚어 나오네
부리지 못한 동백꽃송이 내 진창의 바닥에 떨어지네
무수한 칼날을 들어 동백의 가지를 치고 또 친들
나를 아예 죽고 죽이지 않은들
저 동백 다시 피어나지 않겠는가
동백의 숲을 되짚어 나오네
버리지 못한 동백꽃송이 내 진창의 바닥에 피어나네
시.박남준
장항의 선술집에서 비빔국수와 막걸리로 요기한 우리는 비인행 버스에 올라탔다.
서해안을 좌로 두고 춘장대를 거쳐 비인에 도착한 그녀와 나는 비인에서 무창포 까지 걸어 가기로 했다.
서해안은 사리 썰물에 걸으면 모래사장이나 갯벌을 따라 웬만한 거리는 이동할 수 있다.
해안을 따라 목발을 짚고 가는 나, 새우깡과(맛동산 이던가?) 소주를 양손에 들고 가는 그녀.
찔룩 거리며 가는 내가 눈짓을 하면 소주 한모금과 새우깡을 입에 넣어 주었다.
그녀는 내 말을 항시 기다린다.
내 말 속 슬픔은 외면해 버리고
내 말 속 기쁨 보이면
환하게
내 말을 웃음에 담는다.
나는 항시 그녀의 표정을 기다린다.
그녀가 슬퍼할 때는 바다를 바라보고
그녀가 웃을 때는
새처럼
그녀의 웃음을 포근히 안는다.
(그무렵 만든 시인데 고 3의 시로는 지금 쌩각해도 깔끔하다...아녀..?....벌쭘~~)
동백정에 다다를 때는 뉘엿이 해가 수평선에 지고 있었다.
가을 동백이야 정취는 없지만, 그래도 제법 어우러진 단풍사이에서 우리는 첫 입맞춤을 하였다.
그녀의 입에서는 항시 파래 냄새가 난다.(지금도 파래 김을 먹을 때는 항시 그녀 생각이 난다.)
우리는 다시 무창포로 향하였다.
무창포는 겨울바다가 유명하고 그 당시 숙박시설이 잘되어 있어서 사계절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했다.
“동백 숲이 있어서 동백정이고 물이 갈라 진다해서 무창포지 아마...”
“피이~ 지금 막 지어낸 말이지 그치?”
“아니야 진짜야... 동백정의 절경을 무창포가 보고 싶어서 몸을 찢어서라도 볼려고 일년에 한번씩 바닷물이 갈라지는 거랴..”
즉흥적으로 지어낸 말이 절묘하게 먹히는 때가 있는 법
“와 많이 아네.. 대학 걱정 않해도 되건네, 우리 후배 홧팅! 쿄 쿄 쿄~~”
내 등을 톡톡치며 그녀가 입술을 뾰쭉하게 하고 대견함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할 때, 나는 다시 그녀의 입술을 내 입안에 넣었다.
그녀의 잔뜩 오므려 움찔거리던 입술이 나를 서서히 그리고 편하게 받아주자 내 입안에는 온통 파래 내음이 퍼졌다.
그녀가 완전히 내게 몸을 기대는 순간 어정쩡 목발에 지탱하며 키스를 하던 나와 그녀는 중심을 잃었다.
"안돼~~!!"
약간의 내리막에 잘팍히 바닷물이 담겨있는 웅덩이로 두 사람은 철푸덕 빠져버렸다.
넘어진 순간의 자세가 얼마나 가관이였는지 누구랄것도 없이 서로의 모습을 손가락질 하며 포복절도를 하였다.
"조 조..크크~ 까고 키키크흑 자빠졌네가 흐흐흑~ 아니고 케케케 크크키힉~ 키스하다 자빠 크크 자빠~허허업 자빠 졌냐? 크크큭흑 크크크크 허허어크~~~"
온통 갯벌물로 뒤범벅된 내가 입속의 모래와 갯벌을 뱉어 가며 숨넘어가는 웃음으로 말하자 크녀는 웅덩이 물을 철부덕 거리며 그만 웃기라는 몸짓을 하며 숨을 쉬지 못한다.
카키색 기또 구두는 뻘과 모래 범벅이고 몰골은 거지 이몽룡 꼴이라 여관 주인이 못내 마지못한 표정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바닷물에 젖은 돈이지만 배로 얹혀주니까 곧바로 태도가 바뀐다.
우리는 여관집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준 옷으로 갈아 입고 또 한번의 웃음을 참지 못한다.
교대하며 목욕탕에서 옷을 갈아 입을때 열려진 문틈으로 내 벗은몸을 훔쳐보았다고 훗날 그녀가 약올리듯 말했지만, 나도 사실 그때 그녀의 알몸을 훔쳐 보았었다.
여관 아주머니가 내 준 몸빼바지와 무슨 수산협 인가 글자가 박힌 빨간 티에 털쉐타를 걸친 그녀 보다는 새마을복 위아래의 내 모습이 현지인과 닥상 이였다.
식당이 딸린 여관이였기에 여관 아저씨와 함께 밥을 먹으며 우리는 또 한번의 박장대소를 하였다.
"그 옷은 디게 자랑시런 옷이여~~내가 박대통령 각하 헌티 새마을 훈장도 받았씽게루우.."
"써글노메 웬수가 훈장만 받으먼 뭐혀...엠빙헐 노무 웬수가 그 옷입고 가막소도 갔쟎여~~"
"아주머니, 아저씨가 새마을운동 하시다 감옥에 가셨나요?"
행주로 그릇을 닦던 아주머니가 행주를 싸납게 물받이 쪽으로 던지며 언성이 높아진다.
"지랄은 무신 새마을 운동...새마을 회장입네 허다가 이장네 각시허고 깨 홀딱 벗고 굴바위에서 들켜서 콩밥 먹은 저 등신이지 지랄은 무신 지랄이랴.."
어두워진 무창포 모래사장은 커다란 무대이다.
좌우의 해안 초소에서 비추는 헤치라이트는 나이트클럽의 롱핀 조명이 되고 가을 하늘 넓게 그리고 촘촘히 밖힌 별들은 무드 조명이며, 바다물의 유황 포말은 실루엣 조명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백사장에서 부르스를 추었다. 텐트촌에서 들려오는 노래는 딕페밀리의 흰구름 먹구름, 사월과 오월의 화, 윤항기의 별이 빛나는 밤에등.....
"어유~~새마을 회장님~~, 이러심 않되용~~앙탈앙탈~~"
그녀가 내 가슴을 검지 손톱으로 사각사각 긁어가며 코맹맹이 소리를 하며 쿠국 거린다.
"이장댁! 우리 사랑 변하들 말더라고잉~~사랑혀유~~"
웃느라 들석 거리는 그녀의 어깨를 더욱 세게 끌어 안자 그녀는 파득이는 새와 같았다.
이때 였다.
초소의 헤트라이트가 갑자기 우리 둘을 집중 조명한다.
초소에서 확성기 소리가 난다.
"얼러려~~! 서천 여관 아저씨 또 이러믄 워쪈대유~~아이갸~~이번으느 이장집 아줌마가 아닌게빈디~~"
우리는 기역자로 몸을 구부리고 웃음반, 집중되는 시선에 대한 쪽팔림 반으로 모래사장을 탈출하였다.
새마을복, 서천여관 아저씨, 이장댁, 아이갸, 이라믄 워쪈대유 등의 단어는 훗날에도 우리들의 웃음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되었다.
복장이란 그런것이다.
새마을 지도자와 그녀의 세라복은 나타내고 싶은것과 지키고 싶은 것의 차이이겠거니와 입음으로 그 마음이 나타나기도 하는것이 바로 옷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가끔 나의 겉 옷을 입고 싶어 했다.
"춥냐...날씨 춥지 않은디...."
"니 마음을 알고 싶어서야...헤헤~"
그래서 나는 그 옷만을 고집해서 입는 사람은 백프로 어떤 연유가 있음을 내 고정관념의 틀에 항시 판박이 처럼 간직하는 것이다 .
혈록이형이 점퍼를 즐겨 입는것은 어디든 담요 대신 깔려고 하는것이고.....
평은 형님이 점퍼를 즐겨 입는 것은 헬기 불시착시 항도 안내를 위함이거....
유영진이가 점퍼를 즐겨 입는 것은 개지랄 허는 것214@#$$%6 농담, 농담!!
가을이어서 한산했지만 모닥불 피우고 키타 두대로 기막힌 연주를 하고있는 무리를 발견하였다.
두 사람이 키타 연주를 하고 둘러 앉은 사람들이 노래를 따라하는 그곳.
나 어떻게해, 젊은 연인들, 썰물등 대학 가요제 노래와 튄플리오, 서유석, 이장희, 사월과 오월, 투 에이스등의 가수나 듀요들이 불렀던 가요들이 주로 불려졌다.
우리나라의 가요 변천사에 키보이스, 히씩스, 템페스트 , 신중현과 엽전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등의 미팔군 아류를 잇는 보컬이 소위 롹이나 한국적 트로트 롹을 정착 대중화를 꾀하던 때 였다.
자연 대학생의 청순함이 가미된 센드 페이블스나 활주로등의 대중매체에의 소개는 폭팔적일 수 밖에 없었다.
데모나 유신에 항거 하는 부류보다는 조금은 머리를 기르더라도, 조금은 퇴폐에 가깝더라도, 조금은 향락적 문화 이더라도 저항적 에너지를 분산할 곳을 노리는 당시 독재 위정자들의 의도도 있었으니까.
잠시후 작은키의 두 사람이 키타를 소나무 등걸에 세우려는 연주자에게 말을 건넨다.
"우리도 여기 놀러온 사람인데 키타 좀 쳐봐도 될까요?"
키타를 잡은 그들의 노래와 연주는 가히 레코드에서 나는 소리와 흡사했다.
코드진행에 분산형과 피킹으로 연주하던 전 사람들보다 쓰리핑거나 투핑거, 가끔 여운처럼 들어가는 하모닉스, 트레몰로와 비브라토, 햄머링의 공명을 주는 진중함!
싸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와 호세펠리치아노의 노래가 불리어지고 난 뒤, 그녀와 나는 쓰러질듯한 감동에 도취해 있었다.
그 둘은 바로 훗날 <삼포로 가는 길>을 부른 강은철 형과 지금은 건축사가 된 송희만 이였다.
나는 전 연주자 둘(충남대의 통키타 써클일원인 것만 기억됨)과 은철형과 희만형을 서천여관으로 막무가내 끌고 갔다.
"둘 다 어리게 보이는데 고등학생이예요?"
여관에 딸린 식당에서 소주에 해삼을 아주머니가 차려 주시는 등뒤로 은철형 고유의 예쁜 서울 말씨로 내게 물어왔다.
"아녜요~, 여기.."
털쉐터 주머니 속의 손지갑 속에서 얼른 그녀가 학생증을 꺼내 보여 주었다.
"어휴..발발이 의대생 이시 구먼유 킄큭!"
충남대 왼쪽놈이 후배라는듯 비아냥 거린다.
발발이란 신입생, 즉 일학년을 뜻하는 그 시대의 은어이다.
일학년은 아무나 따라 다닌다 해서 발발이,
이학년은 아무나 보고 짖는다 해서 스피츠,
삼학년은 아무나 물고 본다 해서 포인터
사학년은 한번 물면 놓치지 않는다 해서 불독.
뭐 이런 거다.
"아니 저는 발발이 의대생이 아니구여..."
그녀가 감고있는 왼팔 손등을 꽉 꼬집는다.
'고등학생인데여'를 목안에 다시 집어넣고,
"그냥 의대생 인데여..헤헤..."
술을 지금은 한모금도 하지 않지만 은철형과 나는 그날 굉장히 취했고 급속히 친해졌다.
해변에서 여관 아저씨로 오해 받은 이야기가 나오자 아주머니가 지긋이 웃으며 말한다.
"웬수 하나 땜시 여러 사람 인공 사는겨~~아마 김 순경이 밤에 보는 쌍안경으루 보고 불에 비치닝게 새마을 복 이구나 혔을껴~~ 지금껏 새마을 복을 입는 작자는 저 인간 밖에는 없으닝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희만이 형이 명동 쉘브르라는 라이브 맥주집을 이야기 했다.
"은철이허구 설라므네 나 하구 설라므네 쉘브르에서 노래 허거등...권태수, 남궁옥분, 양희은, 김세환, 전영록, 고영수, 허참, 임성훈 등등....어쩌구.."
그 당시 유명세를 타는 가수와 코미디언의 이름이 등장하자 나는 그 곳이 촌 놈에게는 궁궐과 같은 곳으로 생각 되어 졌다.
오비스케빈, 돌체다방, 청자 다방, 코러스 등의 장소도 귀동냥으로 듣긴 했었지만...
술을 몇 잔 하지 않은 은철형을 제외하곤 모두가 취해 있었다.
그녀는 술이 취하면 말이 더욱 더 귀여워진다.
"노....노 그로온데, 나 델꾸 갈꼬지~ 대학드로오 가미욘 마아리이야~`"
(너 그런데, 나 데리고 갈거지, 대학 들어가면..)
"어딜?"
"허엄! 수엘부르으으 마리이야! 서을 미영도옹~"
"뭐 지금 이라고 못 갈일 있냐..?"
"고등하악스웽하구눈 나 안가이 바부야!"
그런데 그게 빌미가 되었다.
충남대A: "얼러리여~ 그라므는 너는 고딩핵교 다니는 기여~~? 후 하하"
충남대B: "그라니께 누나허구 연애질 허는겨~~키키"
그들이 악의는 가지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내 마음에 내제되어 있었던 열등의식과 뭔지 모를것이 폭발 하였다.
목발을 휘드르며 그들을 공격했고 오른발에 제대로 딛을 힘이 아직 살아나 있지 않던 나는 두 녀석의 샌드백이 되었다.
싸움을 말리는 은철형의 목소리와 서천여관 아저씨의 다급한 목소리 그리고 그녀의 흐느낌을 느끼며 내의식이 멀어져갔다.
내가 깨어난 곳은 전북대학 병원이였고 군산 개정병원 응급실을 거쳐 이곳에 옮겨진지 육일 만에 의식을 회복한 것은 후에 알았다.
"아이고...병원이 지긋지긋 허도 않냐..? 대학시험이 얼마나 남았다고 술 먹고 얻어 터져 뇌수술을 받냐!"
어머니는 간호를 하며 스치듯 항시 말한다.
"글고 그 놈애 지지바는 뭐헌디 공부허는 놈을 꼬딕여서 이 난장을 만들어 놨다냐..쯔쯔"
다친지 일주일 넘어서 내가 입원한 사실을 안 내 친구,
정말 좋은놈 내 친구는 그 두 놈을 잡는다며 대전을 들랑거린 단다.
그녀는 어머니 오시기 전시간과 가신후를 확인하고 병실을 방문 한다.
장항 병원에서 응급선을 타고 군산까지 은철형과 서천여관 아저씨와 충남대 A인지 B인지 하는 녀석이 동행했으며....
충남대 A인지 B인지 녀석은 전북대로 후송할 때까지 있었다는 사실도 그녀가 말해주었다.
"사실 니 잘못도 있었쟈나...그만 용서해 줘..그 사람들...성율씨가 사람들 대리고 충남대에서 살다시피 그 사람들 찾나봐...그 사람들 착한 사람들 이드라..."
그녀의 설득에 나는 그들을 용서 하기로 헀으며 나역시 모든것이 원만해 졌으니 그들을 용서 하자고 친구녀석에게 엄명및 설득을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나 이세상에서 증발해 버릴거라고 엄포를 놓자 완강하던 그 녀석도 수그러들었다.
"야이 쪼다야... 하루 자면서 라희씨하고 만리장성 쌓으라 혔드니...헐건 못허고...수박만 깨지고...어휴~~ 마바리 쌔끼~~!!"
"얌마, 그려도 키쓰는 혔어!!!"
퇴원후 라희는 나를 만나주지 않았다.
대학 합격후 보자 한다.
새마을복, 서천여관 아저씨, 이장댁, 아이갸, 이라믄 워쪈대유 등의 단어가 들어있는 편지가 두어번 왕래되기도 했지만 서천여관 문틈으로 내 목욕하는 모습을 보았노라며 고백했던것과, 미장원에서 파머를 했다는 것과, 요즘 대전엘 자주 간다는 내용들의 내용이 마음에 걸리며 기억된다.
물론 공부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는 편지 내용이 대부분 이였지만.
라희의 응원에 힘입어 열심히 공부했다.
대학에 합격했다.
부푸ㅡㄴ 마음을 가지고 라희에게 갔다.
어쩐일인지 라희는 나를 계속 피한다.
그러나 얼마 후 그녀가 택한 선택을 알게 되었다.
내가 뇌수술 받고 정신을 잃은 6일 동안 벌어진 일! 내가 정신을 잃고 있었던 것이 차라리 다행이였던 그 안에 그녀는 충남대A인지 B인지 녀석하구......
그 충남대 녀석의 이름 인적 지금 뭐 하는지 다 안다.
그러나 생각하기 싫어서 그냥 A인지 B인지라고 하는 것이다. 훌쩍훌쩍 ㅠㅠ
5년후
라희는 충남대 A인지 B인지의 아내가 되었다.
나의 정말 좋은 친구, 지금은 선생님이 되신 웃기는 놈은 오늘 저녁도 만난다.
모두가 변해도 소나무에 밖힌 옹이처럼, 변하지 않음으로 내 마음에 또아리를 틀고있는 영원함
!!
그건 바로 너 이다.
기계체조로 단련된 적당한 요철? 시커먼 거짓뿌렁, 기계체조 여자선수 전부 나바론이더라. 뭣이여? 25년전 어제 전주역 기차길 옆 코스모스???더 안 읽을겨! 벚꽃도 아직 안 피었는데 코스모스? 제길 그때 별명도 포쿠션이었댜?그때는 춘장대 거쳐 비인 갔었나? 아, 서천 비인말고 오스트리아 비인? 으잉? 그려도 이상한디!
첫댓글 흐미 심들었것다. 쓰니라고... 지금 축구하니께 나중에 찬찬히 더 봐야 쓰것다.
성님이나 전 기또 가죽구둔 못 신어요 ~~체중 가벼운 사람들 신는 신발이구 성님하고 전 통가죽이나 소가죽~~ㅋㅋㅋ
기계체조로 단련된 적당한 요철? 시커먼 거짓뿌렁, 기계체조 여자선수 전부 나바론이더라. 뭣이여? 25년전 어제 전주역 기차길 옆 코스모스???더 안 읽을겨! 벚꽃도 아직 안 피었는데 코스모스? 제길 그때 별명도 포쿠션이었댜?그때는 춘장대 거쳐 비인 갔었나? 아, 서천 비인말고 오스트리아 비인? 으잉? 그려도 이상한디!
우리집 가훈이 <따지지 말자>여요~~^^ 비인다음이 춘장댄가..? 3년전 가을에 썼던 글을 각색했구먼요...ㅋㅋ
아~~~낚시 가고 시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