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용산리와 황간사이에는 노근리가 있는데 미군들이 동네 사람들을 이곳 다리 밑에 모아놓고 사살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있습니다.아마 그중에 공산주의자들이 있었나 봅니다.
70년대에 우리군인들이 월남에 파병했을 때 우리국군들도 어느 동네에서 베트공을 잡으려 했으나 누가 베트공인지를 몰라 동네를 아주 사라지게 만들기도 하였다는데 전쟁이란게 그런가 봅니다.
그날 밤 미군들은 환자들을 GMC트럭에 싣고 어두운 밤길을 비포장도로를 달리는데 차가 마구 튀어오르자 환자들은 당가에서 튕겨져나와 이리저리 굴러 다니며 마리를 부딧쳐 비명을 지르는데 나도 머구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그러자 운전사가 차를 좀 천천히 몹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경북 김천입니다.
시내는 깜깜하고 길에는 군인들과 차량들만 가득합니다.
우리가 간 곳은 김천 도립병원인데 병원에 불빛 한 점이 없이 깜깜합니다.
한참있으니까 의사 한 명가 간호사 한 명이 와서 환자들을 병실로 옮깁니다.
간호사가 하얀 쌀밥에다가 고깃국을 끓여와서 나 보고 먹으라고 하는데, 나는 내 팔이 너무 아파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밥은 쳐다보기도 싫습니다. 간호사가 다시 밥을 가지고 갑니다.
내 머리에는 여러개의 혹이 나아 있었는데 아직도 아픕니다.
곧 새벽이 오자 한국 군인들이 우리들을 트럭에 싣고 기차역으로 갑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대구역입니다.
여기에서도 한국 군인들이 트럭에 우리를 싣고 가는데 길거리에는 하얀옷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합니다.남한의 피난민들이 다 대구로 모인것 같이 어디에나 인산인해 입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대구 도립병원입니다.
나는 어린 소년이기에 조그만 병실로 옮겨졌는데 그곳에는 아주 작은 나무 침대가 4개가 있고 나까지 4명의 어린아이들이 누워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다 보호자들이 있는데 나의 형들은 황간에서 헤여졌던 것입니다.
그날이 1950년 7월 25일 입니다.
대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더운 곳이라고 배웠는데 정말로 얼마나 더운지 땀이 줄줄 흐릅니다.
병실에는 창문이 하나 있는데 바람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창밖에는 은행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은행알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나는 혹시 어머니가 살아서 나를 찾아돌아올지 모른다는 환상에 젖어 하루 종일 문만 바라보며 어머니가 들어오지 않을까 기다리며 칭얼댑니다.
경상도 사람들의 목소리가 큰것을 나는 알고 있는데 밖의 복도에서는 하루종일 크게 지껄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발자국 소리와 함께 아주 시끄럽게 들려옵니다.
그리고 시체 썩는 송장 냄새가 너무 많이 나서 나는 마구 우웩 우웩 하며 토했습니다.
이때는 의사가 부족하고, 간호사도 부족하고, 의약품도 부족하여 3일에 한 번씩 치료를 한다고 합니다.
(계속)
첫댓글 너무 흥미진진하여 다음편이 기다려 지네요.
수고하셨습니다.'형광등등'님!
어서오세요 베드로 문님 감사합니다.
아마 6.25 전쟁 이야기를 많이 경험했으면서도 저처럼 리얼하게 쓰는 자가 없나봐요 하하하
@형광등등 옳소!
@베드로 문(Peter Moon) 손 아프시겠어요 하하하
@형광등등 ㄲ ㄲ ㄲ
Happy!(행복합니다.)
노근리 사건은 피난민들 사이에 간첩이 끼어들어 일어난 사건임이 그곳 주민의 증언으로 판명 되었습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금명님
삭제된 댓글 입니다.
어서오세요 사랑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