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린 만큼 거둔다
나는 1987년부터 6년간 전남교원연수원의 초창기 연구사였다. 저마다 이 직업을 택한 사연과 교육경력은 서로 달랐겠지만 우리는 모두 학생시절의 경험을 했고 교사로서 학생들과 꿈과 좌절을 나누었으며, ‘교사의 질은 곧 교육의 질’ 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연수원은 담양군 남면 지곡리. 무등산의 성령이 지키고, 스승의 길을 상기시키는 자연과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악령의 시기가 절세의 충절을 꺾은 김덕령(金德齡의 충장사(忠壯祠), 송강 정철(松江 鄭澈)의 성산별곡(星山別曲)의 산실인 식영정(息影亭)등 수많은 명승 유적지들, 성혼(成渾), 김인후(金麟厚)등 빼어난 스승들의 혼과 대화하며 새로운 교육의 길을 찾는 곳이다.
교육자들의 궁극의 목표는 학생들의 모범상(modeling)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각기 소질과 환경, 능력이 다른 모든 학생을 만족시킬 만능의 교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교사는 자기의 목표, 책임을 알고 최선으로 자기를 개발할 의무를 지닌다.
모범상은 첫째 언행이 일치하고, 책임달성을 위해 무실역행하는 것이다. 진실하고, 무조건 학생을 존중하고, 학생들과 함께 느끼고 생각하고 배우며, 학생들의 문제를 알고 함께 해결해가는 사람이다.
나는 본래 교사로서 모범상이 될 만한 소질과, 노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연수원에서는 나를 재촉하는 책임감과 나의 언행의 진실을 추적하는 동료들과 연수생들의 눈이 있었다. 직금도 우리들이 함께 남긴 추억, 흔적, 각종기록물들이 진한 감동으로 그때를 회상시킨다.
학습과 문제해결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사는 학생들이 요구하는 능력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우수교사의 개념에는 우수한 교수기술자와 인간적인 행동의 스승상이 있다. 우수교사는 학습과제에 통달하고 학생들의 욕구와 발달수준에 적합한 학습과제를 정확하고 가장 알기 쉬운 방법으로 조직하고 예술적으로 전달하는 교사이며, 학습 자료를 정비하고, 교실의 외적환경을 최적으로 정돈 조절할 수 있는 환경 구성 기술자일 것이다. 그러나 교육방법이나 기법보다도 진실한 교육력은 교사의 전인적인 인간적 매력에서 발산하는 총체적 인간형성 능력이다. 그것은 교사가 학생의 모방력을 촉진시키는 존경을 받고 건전한 인간관계를 조성하여 모든 학생이 긍정적 자아개념을 갖도록 자아지향학습을 촉진시키는 능력이다.
Combs에 의하면, 교사의 과업은 규정하고 강요하고 위압하고 구슬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과정을 만족시켜주는 것이다. 교사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촉진자, 격려자, 조력자, 동료 그리고 친구의 역할이다.
좋은 교사의 특성은, (1) 과목에 정통하고 (2) 학생과 동료의 감정에 민감하고 (3) 학생들은 배울 수 있다고 믿고 (4) 긍정적 자아개념을 갖고 (5) 모든 학생이 최선을 다하도록 돕는다는 것을 믿고 (6) 많은 지도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Robert F. Biehler, Psychology applied to teaching, 1978, pp. 571-572.)
다음은 특히 내가 관여하고 관심을 가졌던 교원연수원에 대한 추억이다.
분임토의
나에게 주어진 중앙교원연수원의 ‘분임토의 기법’ 연수는 참으로 행운이었다. 교사로서 학생들의 대화와 토론의 욕구가 얼마나 큰지를 실감해왔지만,지난날의 사정이 거의 그들의 욕구를 수용할만한 기회와 환경을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 교원들에게는 제도적으로 교무회의, 학급회의, 대의원회의, 학부형회의 등, 많은 참여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원들은 그런 회의들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수동적이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자기들의 수업과 학습경험에서 대화와 토론의 중요성과, 교사와 학생간, 학생들 상호간의 질의 응답과 개별학습확인의 방법을 체험하지 못했고, 지금의 교실에서도 일방적 주입, 암기식 수업은 여전하다는 평판이다. 교무회의나 다른 회의에서도 전달식이고 토론이나 의견교환은 거의 없다.
내가 처음으로 배웠던 '착상의 반짝 제안(brainstorming)방식은 연수에서 돌아온 직후 처음으로 일반직 직무연수에서 100여명을 10여명으로 분반, 5,6시간의 분임토의를 실시했다. 예상했던 대로 분임토의는 새로움, 능동성, 생명의 표출, 연수분위기의 일신이었다. 연수생들은 대화와 토론과정에서 반짝이는 눈을 가지고, 자기의 발견, 비위협적 감성훈련, 상호존중, 자유 평등의 민주의식, 지식교환, 집단문제의 선정과 원인규명, 문제해결방법들을 배웠다. 브레인스토밍은 각자가 자유롭고 신속 공정하게 아이디어를 내놓는 창조적 집단사고의 회의법으로 다수결의 민주적 절차에 의하여 주제를 선정하고 집단의 문제를 해결한다.
연수생들은 그들이 선정한 '공금의 최적사용,'직원간의 인간관계 개선방안'등의 주제의 선정과 문제해결 과정에서, 내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열띤 토론, 공평한 대화 기회, 번쩍이는 창의성, 자발적인 회의절차의 질서를 보았다.
사람이 두발로 걷듯이, 분임토의는 모두의 독창성과 자기표현의 자유와 평등은 상호발전의 필수조건이고 삶의 예술임을 분명히 가르쳐 주었다.
분임토의는 교감자격연수, 일반교원의 직무연수, 학습지도연수 등, 가능한 실시했으나 연수생들의 연수목적과 과정, 토의시간, 참여인원수에 따라 참여도와 효과는 달랐다. 분임토의 기법의 효율화와 확대실시는 경쟁 일변도의 현실교육을 전인의 인간교육으로 전환시키는 치유책이 될 것이다.
모의수업
우수교원의 평가는 수업력이 핵심이다. 교원들의 모든 연수에는 기본적인 하습이론과 수업기술이 강조되기 마련이다. 나는 ‘학급경영장학의 실제’에서 학급경영의 목표, 방법,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제시했고, ‘교수 학습지도의 이론과 실제’에서는 학습의 원리로 Peaget의 인지발달단계, 수업의 지각적 견해인 Rogers와 Combs의 인간주의적 교사의 특성, Skniner의 행동적 조건형성모형, Bruner의 수업의 인지적 견해 등을 소개했다.
하지만 1,2정 교사 자격연수 등 모든 수업실습과정에서는 연수생들의 모의수업이 연수의 으뜸과제였다. 나는 매년 중. 고별 교과서의 철저한 과제분석을 통한 1시간분의 대화와 본문의 실제수업과정을 교안으로 제시하고, 전연수생에게 모의수업을 시켰다. 방법은 각 반을 8개 분단으로 나누어, 각분단원 4,5명의 공동수업 안을 제출케 하고, 각기 10분정도의 연속수업을 진행시켰다. 그때의 연수와 수업태도는 진지하고 명랑했다. 초창기의 연수생들은 그 후에도 나에게 만남과 서신 등 진실한 우정과 호의를 베풀어 주었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사도각[師道閣]
연수원 뉴스 [사도각]은 2대 김수철(金壽哲)원장이 선도하여, 1990년 10월 20일에 창간, 격월로 발행한 연수원의 뉴스였다. 원장은 창간사에서 ' 교원자질향상에 직결되는 연수' 를 표방, 질 높은 연수프로그램의 개발, 교수요원들의 정선을 통하여 학생들의 '창조적 지성'을심을 것을 강조하고, <사도각>이 연수원과 학교현장과의 충실한 가교 역할을 기대하였다. [사도각]은 ‘이 고장 교육계로부터 깊은 관심과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창간호는 총 2000여부를 인쇄, 이 고장의 각급학교 및 원로교직자들에 배포, 좋은 반응과 격려를 받았다. 특히 삼락회원(三樂會員)들로부터 찬사의 편지가 많이 답지되기도 했다.
[사도각]의 편집은 연수실적 및 설문을 통한 결과 분석, 원장 치사, 오가신분들의 동향, 교수, 강사, 연수생 등의 각종간담회 실황, 교원연수 방법개선 연구사례 발표, 논설 및 연수소감, ‘주변 유적지순례 등이었다.
내가 특히 이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 소식지에 나의 글들이 있고, 제작과 인쇄과정에도 나의 노력이 상당히 스며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세우고 싶은 것은 세밀한 연수성과분석을 통해 연수성과, 문제점, 개선책을 제시하고 연수의 질과 책임감을 높였다는 것이다. 요사이 내가 제작 지도했던 [초등학교 특활영어 지도교사의 수업력을 높이기 위한 교원연수 프로그램의 개발]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그렇게 세밀한 연수과정과 결과분석에 정력을 쏟을 수 있었는지 스스로도 놀라웠다.
연수원의 수난
만물은 힘의 관계이다. 인간의 행동도 힘의 작용, 반작용이다. 많은 경우 ‘이는 이로’의 폭력으로 표현된다. 나는 연수생들의 ‘참교육’의 주장도 힘이 주 무기임을 경험했다. 주로 몇 해의 중등1급 정교사연수과정에서는 수난이 컸다. 강의 중에 느닷없이 부르는 합창, 10분의 토의 후에 교수강의를 듣겠다고 약속하고서, 전 강의시간을 무산시키는 집단행동, 연수중 ‘광주사태’의 녹화시청 등, 연수원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파행들이 일어났다. 자유를 강조했던 어떤 학생은 정해진 자기발표시간 3분을 어기고 10분을 넘기어 타인들의 발표시간을 빼앗기도 했다. 이런 행태는 연수원은 물론 교육청과 일반사회에도 물의를 주었고, 이 힘의 대결은 마침내 교육계의 큰 파동인 교직원의 대량 파면 사태에 까지 직간접으로 파급되었다고 여겨진다.
나는 젊은 교사들의 이런 행동을 이해하는 편이었지만, 특히 교육연수자들의 이런 표현 방법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간디(Gandhi)의 비폭력사상의 교육효과를 말하는 등, 교육자의 정도를 강조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일들은 불법과 비리가 삶의 무기로 사용되었던 교육계와 사회의 유산, 피할 수 없었던 역사적 수난이었고, 이에 대한 생명과 젊음의 항의였으며, 비온 후에 하늘이 맑아지고, 폭우 후에 성벽을 쌓듯, 개혁과 발전을 위한 진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