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ㆍ 1883년 6월에 영국인 넬슨 로바트(William Nelson Lovatt)는
묄렌도르프의 전보를 받고 초대 부산해관장으로 부임한다. 그는 부산
에서 조선 기관의 공식 직함을 가진 최초의 서양인이다. 다음 해인 1884
년 늦여름, 미국에 있던 부인과 딸이 태평양을 건너 일본 나가사키에서
미쓰비시 소속 증기선 쓰루가마루(敦賀丸)를 타고 부산에 왔다. 로바트
해관장 가족은 부산에 거주한 최초의 서양인 가정이었다. -
‘개항기 서양인이 본 부산’ 중에서
ㆍ 의료 선교사 앨런은 1884년 9월 중순 남승호(南陞號, 660톤급)로
중국 상하이에서 출발해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9월 17일 부산항에 도착
했다. (중략) 『앨런의 일기』에는 없지만, 그가 남승호에서 만난 것은 태풍
만이 아니었다. 한 명의 조선 청년과 만났다. 우리 근대사에서 보기 드문
업적을 이룬 기장 출신의 이하영(李夏榮)이란 인물이다. (중략) 양반도
과거급제자도 아닌 그가 영어 통역 능력 하나만으로 1886년에 외아문
주사가 되고, 고종의 통역관이 된다. 이 모든 것이 태풍 속 선상에서 만난
인연에서 시작되었다. - ‘선상의 우연한 만남’ 중에서
ㆍ 개항 이후 부산항의 현장감 넘치는 이야기로는 민건호의 『해은일록』이
있다. (중략) 설날에는 여러 곳에서 그에게 선물을 보냈다. 서구인은 주로
연하장과 양주·양담배·만년필·설탕 등을, 일본인은 과자·감귤을 보냈는데,
요즘 같으면 김영란법에 걸렸을지 모른다. 반면, 주변 지인들의 선물이
대부분 각련(刻煙)으로 흡연이 만연한 당시 생활상을 엿보게 한다. 이 밖에
쇠고기와 마른 수산물도 등장하는데, 그도 지인에게 쇠고기 정육을 선물
했다. 설날에 민건호는 동료들과 이웃에서 보낸 떡국을 먹으며 새해 아침
을 맞았고, 점심과 저녁은 지인들과 함께 “취하게 마시고 배불리 먹으면서
회포를 풀었다”고 썼다. - ‘1880년대 부산항의 설날’ 중에서
ㆍ 에피의 피아노도 낙동강을 이용해 경상감영(慶尙監營)의 중심 포구인
사문진까지 갔다. 그런데 문제는 나루터에서 거주지인 대구 종로까지
약 16㎞를 어떻게 옮기느냐였다. 경사지고 폭이 좁은 시골 고부랑길을
따라 무거운 피아노를 무사히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문진
나루터에 내린 피아노를 옮기려면 많은 인부와 운반 도구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때 짐꾼들이 가져온 운반 도구가 정말 기발했다. 사람의 주검을
옮기는 상여 막대기 7개였다. (중략) 피아노를 옮기기 위해 예전의 나무
상여 구조를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이 방법으로 목적지까지 사흘이 걸렸
고, 70명의 짐꾼이 동원됐다. - ‘상여로 옮긴 피아노’ 중에서
ㆍ 1907년, 경북 청송에 살던 12살 소년도 굶주림을 피해 무작정 찾아온
곳이 부산항이었다. (중략) 4년이 흐른 1911년, 그는 일본우선(日本郵船)
소속 화물선의 기관부 수습 선원으로 발탁되어, 꿈에 그리던 뱃사람이 되었
다. (중략) 그가 바로 부산 부둣가에서 잔뼈가 굵은 조남해(趙南海)였고,
본의 아...니게 해외로 송출된 우리나라 최초의 마도로스였다. -
‘바다의 미아, 조남해’ 중에서
ㆍ 여객선의 조리사나 안내원이 아닌, 일반 상선의 첫 여성 선원은 범양상선
펜야드호에 수습통신사로 승선한 함지수(23세)였다. 1986년 2월, 삼천포
화력발전소에 호주에서 온 석탄을 공급한 선박에 승선했는데, 그녀가 진정한
의미의 여성 마도로스 제1호가 아닐까ㆍ
우리나라 최초 여성 마도로스’ 중에서
ㆍ 그 당시 유행한 ‘마카오 신사의 8대 특징’이 있었다. 이에 따르면 정통
마카오 신사는 여덟 가지 외제 명품으로 치장해야 했다. 먼저 영국산 양복감
으로 맞춘 양복에, 역시 영국산 와이셔츠를 받쳐 입고, 발에는 이탈리아제
발리 구두, 손목에는 스위스제 롤렉스 시계, 허리에는 이탈리아제 악어가죽
벨트, 손에는 프랑스제 크리스티앙 디오르 또는 루이뷔통 가방, 머리에는
필그램 파나마모자를 슬쩍 걸친 다음, 마지막으로 샘소나이트 여행용 트렁크
를 끌어야 정통 마카오 신사였다.ㆍ- ‘부산항 마카오 신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