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분의 영웅들*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며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일까?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가 많이 있겠지만 필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배고픔, 추위,질병, 전쟁(외적의 침입), 문맹(文盲) 등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반만년 우리나라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엄청난 고난과 역경으로부터 겨레를 구원한 다섯 분의 위대했던 영웅들이 있다. 우리는 오늘 이분들의 역정을 뒤돌아봄으로써 이 풍요의 시대에 역사적 교훈을 찾고자 한다. 다섯 분의 위대한 영웅들은 다음과 같다.
1. 추위에서 백성을 구출한 문익점(고려말)
우리말에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는 말로 "춥고 배고프다"와 편한 신세를 이르는 말로 "등 따습고 배부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역사를 살펴보면 수천 년 동안 우리 겨레는 추위에 떨며 살 수밖에 없었다. 비단이나 호피虎皮등으로 추위에 크게 노출되지 않고 살았지만, 대다수의 백성들은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한겨울에도 삼베옷이나 중간에 닭털이나 억새꽃을 넣어서 보온하는 정도로 그 어려움은 형언할 길이 없었다. 그런 백성들의 고충을 해결했던 해결사 한 분이 계셨으니 바로 고려 말에 나타난 문익점 선생이시다. 문익점 선생은 고위 관료여서 자기 자신과 가족은 그리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백성들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묵화 씨를 중국에서 가져와 재배에 성공하여, 백성들이 솜이불을 덮게 하고 무명옷을 입게 하였다. 또한 재배 기술과 목면 제조 기술의 발전, 종자 개량 등에도 성공하여 백성들을 추위에서 해방시켰다. 문익점 선생은 백성들이 더 이상 겨울에 춥지 않게 하려고 목화씨를 붓두껍에 숨겨 들여오는 결행을 함으로써 역사에 길이 남는 인물이 되었다. 문익점 선생이 위대한 이유이다.
2. 백성을 문맹에서 구출한 세종대왕
동물에게는 먹이만 주면 되기 때문에 사육한다고 하고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교육을 통하여 정상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양육된다고 한다. 유대인 세계에서는 스승은 부모 이상으로 존경을 받는다. 우리 역사상 임금 중 최고는 바로 세종대왕이라는데 이설異設이 없다. 또한 그분의 가장 빛나는 업적이 바로 한글 창제이다. 한글은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유산임에도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한글은 14개의 자음과 10개 모음으로 구성되어있으며 무려 8,800여 개의 소리와 문자를 기록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어는 300여 개, 중국어는 400여 개에 불과하다. 유네스코는 1989년 세종대왕상을 준비하여 세계 문맹률 퇴치에 공로가 큰 사람들에게 수여하고 있으니 이로써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과 한글의 우수성이 충분히 입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창제 당시에 이러한 한글 창제에 대한 반대 여론도 심각할 정도로 만만치 않았다. 바로 기득권층의 한글 창제 반대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중국의 글인 한자를 제쳐놓고 우리의 글을 만든다는 것은 명나라에 대한 事大에 어긋난다는 주장이었고 또 하나는 서민들이 글을 깨치면 글을 아는 양반들의 기득권이 무너진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예나 지금이나 지혜롭지 못한 지식인들의 폐해는 보통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3. 질병으로부터 민족을 구출한 허준 선생
허준은 타고난 명의이다. 자기의 의술을 동의보감이라는 필생의 역작에 담아서 이를 후대에 전하였기에 그의 공로는 단순히 대단하다는 말로는 절대 부족하다. 동의보감은 우리나라 한방 발전에 획기적인 영향을 끼쳤고 일본과 중국에서도 간행될 만큼 높이 평가되고 있다.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번역 출판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조선의 편작이요 창공이라 극찬하였고 중국에서도 천하의 보물이라고 칭송하였다.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구출하기 위한 강한 사명감으로 생의 마지막 시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 25권에 이르는 전대미문의 대작을 완성하였다. 이 동의보감은 현재 국보 319호로 지정되어 있고 유네스코 세계 기록 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있다. 허준은 선조의 사망에 따른 유배지에서 동의보감을 집대성하였고, 정약용은 정조의 사망 이후 천주교를 믿었다는 죄로(신유사옥) 18년간 강진으로 유배되었을 때 실학(목민심서·흠흠신서. 경세유포등)을 집대성하는 기회로 활용하였다. 이처럼 위기란 위험을 잘 극복하면 기회가 된다는 이중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4. 외적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
우리나라 역사상 외적의 침입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가장 오랜 기간, 그것도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있었던 대표적인 전쟁인 임진왜란 전쟁은 임진왜란시 워낙 나약했고 도망가기 바빴던 선조와 국가적 위기 상황을 제대로 간언과 대작을 세우지도 못했고 당파의 이익에만 몰두하였던 신하들과 그리고 제대로 훈련된 군대가 없었던 위기 상황에서 당시 동아시아 최강의 군대인 왜군을 맞이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여 국가적 위기를 극복해 내셨던 분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시다.
이 위대한 영웅은 선조의 끊임없는 의심과 견제, 부하 장수인 원균의 지속적인 음해와 시기 등으로 세 번의 파직과 두 번의 백의종군 그리고 옥살이까지 감내하였다. 그리고 어디 하나 원조받을 곳이 없는 암울한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고 23전 23승의 신화를 이룩하였으니 세계 해전사상 전무후무한 불멸의 전설로 남아있다. 그래서 일부 역사학자들은 난세에 이순신 같은 영웅이 태어난 그것이 아니고 하늘이 조선을 불쌍하게 여겨 이순신 같은 불세출의 영웅을 미리 준비하였다가 때에 맞추어 내려보낸 그것이라고 주장한다. 임진왜란 때 등장한 거북선은 나대용 장군의 임진왜란 작품이다.
5. 배고픔을 탈피한 박정희 대통령.
필자도 소령 전역 이후 박정희에 대한 위대한 업적을 깨닫게 되었고 예편 후 안보 분야를 집중 연구한 후부터 비로소 박정희)위대한 영도자로 존경하게 되었다. 필자의 대통령 평가항목 5대 요소는 위기관리 능력, 정치력, 경제발전 성과, 인재 등용 및 도덕성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배고픔보다 더 서글픈 고통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식량 과잉 시대이니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1960년대만 하여도 배고픔은 단국 조선이래 1960년대까지 이어온 우리 겨레의 가장 큰 고난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반만년 역사적 과제를 해결해 주신 분이 있으니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서양의 산업화는 평균 200년이 걸려 완성되었고 일본은 100년이 소요되었으나 우리나라는 불과 약 30년 만에 (1960~1990) 이뤄낸 전무후무한 업적이다. 영국산업혁명 (1760~1840) 기간 평균경제 성장률은 3~4%이었으나 박정희 재임 기간 평균 경제 성장률은 10%대였다. 미국 키신저 전 국무장관도 20세기 진정한 혁명가는 오직 박정희 대통령뿐이었다고 회고했고 중요한 것은 경제가 발전되어야 민주주의도 성공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따라서 박정희 대통령은 재임 중 개발 독재를 선택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분이 이룩한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발전은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는 객관적 사실이다.
링컨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보다 백배 더 독재를 했다. 신문사 300개의 문을 닫았고 주의회 의원을 재판도 안 하고 연금을 시키기도 하였다. 대법원장을 불러서 "당신 까불면 감옥에 넣어 버리겠다!"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나라가 남북으로 갈리고 전쟁이 날 것 같으니까 링컨조차도 그런 극단의 처방을 하였다. 미국 사람들은 사람의 업적을 평가할 때 '시대성'을 감안한 역사적 평가를 하는데, 대한민국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배제하고 오늘날의 잣대로 역사를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당시 시대적인 상황을 무시하고 오늘날의 잣대로 600년 전 이성계를 평가하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반역자가 된다. 열한 명 부인을 두었던 세종대왕은 바람둥이로 매도될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의 잣대로 과거를 평가하면 영웅은 단 한 명도 없고 어떤 영웅도 문제점 투성이 보통 사람으로 전락한다.
상기 다섯 분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영웅이요 그 시대가 만들어낸 주인공들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위 다섯 분 영웅의 뛰어난 업적으로 풍요롭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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