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 :
1809(순조 9)~1830(순조 30). 조선의 추존왕(追尊王).
조선 제23대 순조의 세자이며 헌종의 아버지이다. 이름은 영(昊). 자는 덕인(德寅), 호는 경헌(敬軒). 어머니는
순원왕후 김씨(純元王后金氏)로 조순(祖淳)의 딸이다. 1812년(순조 12)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며, 1819년 영돈령부사 조만영(趙萬永)의 딸과 가례(嘉禮)를 올려 1827년 헌종을 얻었다. 같은 해 부왕인 순조의 명령으로 대리청정(代理聽政)을 하면서 왕실과 인척관계를 맺지 않은 인물을 중심으로 현재(賢才)를 널리 등용하여 권력의 새로운 기반을 조성하고 왕권강화에 노력했다. 대리청정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죽었다. 이후 왕실의 두 외척인 김조순과 조만영 가문의 정권투쟁이 심화되어 왕실의 약화를 가져왔다. 헌종이 즉위한 뒤 익종으로 추존되었다. 묘호(廟號)는 문호(文祜)이며 능은 양주에 있는 수릉(綏陵)이다. 시호는 효명(孝明)이다.
효명세자가 왕세자로 책봉되때즘 전후하여 홍경래란이 있었고, 이 홍경래난은 조선후기의 경제성장과 교육기회의 확대는 물론 공노비가 해방되어 신분변동의 시초가 되었다. 이는 몰락한 양반의 사상과 서민지주층의 재력이 결합된 대규모 난으로 조선후기의 민란에 영향을 미쳤으며, 지배체제를 허물어가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다.
이처럼 신분제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세도정치를 타파해야 하는 때에 대리청정의 명을 받은 효명세자는 국가최대권력기관인 비변사를 장악하고, 효명세자의 처가인 풍양조씨를 안동김씨의 견제세력으로 등용하게 된다.
효명세자의 부인은 신정왕후 조씨 풍양조씨 조만영의 딸로 대원군및 고종의 등극에 결정적인 역활을 한 사람으로 1808년~1890년까지 생존하였으며, 능은 구리에 있죠. 이름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익종은 세도정치를 끝내고 왕권강화로 나아가려 하였으나, 붕당정치의 폐해로 독살되었다는 설이 있을만큼 당시의 안동김씨에게는 크나큰 정적이 되었다. 그는 풍양조씨를 끌어들여 세도정치를 견제하려 하였으나, 오히려
세도정치를 심화시키는 일을 하고 말았다.
효명세자가 좀더 오래살아 정조처럼 개혁정치를 좀더 펼쳤다면, 그의 아비 순조도 좀더 오래살았을 것이고, 조선이 세도정치 60년으로 망조의 길에 들어서지는 않게 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