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 시장 외진 구석
두 눈 크게 뜨고 둘러보지 않으면
선뜻 나서지 않는 집
절름발이 탁지엔
비릿한 가난에 뼈 없는 닭발 같은
반쯤 취한 이들이 쓴 소주 한 병씩 들고
비척걸음으로 들어와 어제처럼
술추렴하는 집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가
비틀비틀 먼저 취해 있는 집
식당 유리문에
‘간처녑’을
‘간처념’이라 써 붙여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집
오히려 간처념이 썩 어울리는 집
가끔은 술꾼보다 일찍 취한 쥔이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가 되고
백난아의 찔레꽃이 되는 집
-김수열, ‘희정 식당’ 전문
김수열이 아무리 이 식당에 대해 시에서 열을 올려도, 희정 식당은 영화 ‘국제시장’의 ‘꽃분이네’ 가게같이 사람들이 몰려들지는 않을 것이다. 천 만이 넘는 이들이 이 영화를 봤지만, 김수열의 다섯 번째 시집 『빙의』(2015, 실천문학사)를 사서 읽을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거니까. 시집을 사서 읽는 이들은 많지 않으니까.
동문시장에서도 희정 식당은 이 시에서처럼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는 구석에 있다. 제주시 중앙로에서 동문시장 들어가는 좁은 시장 골목을 거쳐 큰길가 동보약국 옆으로 계속 되는 시장 골목을 지나, 생선 좌판들 조금 지나 닭 집이 있는 데서 매립된 곳 오른쪽으로 꺾어, 왼쪽만 있는 가게 서너 개 다음쯤에 있다. 그것도 좀 들어가 있다.
엊그제 동문 로터리 쪽으로 갔다가 구 동양극장 건물로 들어가, 포목점들 옆 내가 중학생 때부터 있었던 국수집에 가서 참 오랜만에 국수도 먹고, 시장 안으로 가다가 이 시가 생각 나 오랜만에 희정 식당 쪽으로 가 보았다. ‘오늘만 쉼니다’가 볼펜 같은 걸로 써 져 있고, 각종 메뉴가 종이에 하나씩 창에 볼펜으로 써 붙어 있었다. 예전에 혼자 가끔 가던 내 비밀의 장소를 김수열이 용케도 알아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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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동백꽃의 계절, 겨울도 가고 또 그렇게 세월도 가네..
편타.. 주인이 먼저 취해주니..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