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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원래 [사회 평론] 1991년 6월호에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한 내용 중 한국 관련 부분의 서두들 삭제한 것이다. 이 글은 "자유민주주의의 성격과 한계"라는 제목으로 한국정치연구회 사상분과 편저/손호철 감수, [현대민주주의론] 제1권, 창작과 비평사, 1992년에도 실려 있다.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1. 고전적 자유주의 - 자유민주주의의 본원적 형태
2.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적 측면들
3. 자유민주주의를 둘러싼 문제들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는 그 지향하는 내용과 역사적 뿌리에서 서로 구분되는 '자유주의'(liberalism)와 '민주주의'(democracy)라는 두 개의 정치 이념이 자본주의 사회의 특정 발전 단계에서 결합함으로써 성립된 정치 이념이다. 그리고 정치체제로서의 자유민주주의는 가장 일반적으로는 다른 계급들에 대한 부르주아계급의 정치적 지배를 '민주적 방식'으로 관철하는 정치형태로 규정될 수 있다.
'자유주의'는 원래 자기 자신의 힘으로 경제적 부를 쌓은 신흥 부르주아적 계급이 그들을 봉건적 속박으로부터 해방하는 과정에서 대변한 '반봉건부르주아해방이념'으로서, '계몽'(Enlightenment, Aufklarung)에 의해 정신적으로 준비되고 '부르주아시민혁명'에 의해 정치적으로 완성된 신흥부르주아계급의 세계 편성 원리다. 이처럼 반봉건 투쟁 과정에서 형성·발전된 '고전적' 자유주의 이념은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출현한) 부르주아적 자신들이 (역사적으로) 쟁취한 사회·경제적 권리를 '천부의 인권', 즉 그들의 권리를 초역사적 정당성과 규범성을 지닌 '인간'의 '자연권'으로 선포하고 국가권력 질서를 이 천부의 인권을 보장하기에 적합하도록 개편하려 한 정치 이념이다. 이에 따라 이들 부르주아계급은 국가와 사회 구성원간의 관계를, 이러한 천부의 인권을 지닌 부르주아적 개인들과 이들 모두의 일반 이익을 보장하는 국가간의 관계로서 정립하려고 했다. 이때 '신'으로부터 보장받았고 '이성의 법정'이 명하는 '정언명령'으로서의 천부의 인권 내지 신성불가침한 인간의 자연권이라고 그들이 주장한 부르주아적 권리의 핵심은 그들 계급의 존립 근거가 되는 '사유재산권'과, 이 사유재산권을 기초로 하여 성립되는 '시장경제' 질서 속에서 부르주아적 개인들의 '영리 추구의 자유'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부르주아적 개인들의 사유재산권과 이들 사적 개인들이 맺는 시장경제 체제를 '자유'의 기본 조건으로 내세운다.
나아가 자유주의에 의하면, 국가란 이들 부르주아적 개인들의 일반 이익을 보장하는 정치체제이어야 하므로, 그들이 모두 재산을 지닌 부르주아적 개인이라는 점에서 이들 부르주아들은 당연히 정치적으로 자유로우며, 그들의 종교·직업·출신성분 등에 관계없이 법 앞에서 모두 평등하다. 그리고 '법치국가'란 이러한 부르주아적 권리를 국가도 침범할 수 없는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호하는 국가 체제로서, 오직 이러한 부르주아적 개인들의 대표 기구가 합법적으로 위임하는 바에 따라 국가 행위가 이루어질 때 이 국가 행위는 '법치국가성'을 지니게 된다. 또한 재산을 지닌 부르주아 개인들의 권리를 국가가 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권력은 분립되어야 하고, 이를 통해 부르주아 개인들의 대표 기구인 '의회'가 국가권력 집행 기구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하며, '사법권'은 부르주아적 권리에 대한 사회 내부의 침범은 물론 국가 집행 권력에 의한 침해도 제재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이 점에서 자유주의는 재산을 지닌 부르주아적 개인들, 즉 근대적 의미의 유산자들의 정치 이념이며, 이러한 '소유적 개인들'(C. B. Macpherson의 용어) 모두의 자유 공화국을 옹호하는 정치 이념이다.
그런데 재산을 지닌 부르주아적 개인들의 자유 공화국을 지향하는 정치 이념인 자유주의는, 부르주아계급이 봉건제에 대항하는 투쟁 속에서 역시 봉건제로부터 해방되기를 갈구한 수많은 대중들을 그들의 지지 세력 내지 동맹 세력으로 끌어들이는 데에 성공했다. 자유주의는 부르주아지와 직접 생산 대중의 계급 분화가 아직 본격적으로 진척되지 않은 상태에서 봉건적 신분 차별과 특권의 폐기 및 모든 인간들에 대한 자유·평등을 약속함으로써 봉건제적 굴레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고, 또 이를 통해 부르주아계급으로 상승하기를 원한 모든 사람들의 희구와 원망을 대변했다. 이 점에서 부르주아시민혁명은 '민중 혁명' 내지 '인민 혁명'의 성격을 아울러 지녔던 것으로 '부르주아계급이 주도하는 반봉건 민중 혁명' 내지 '민중 혁명의 형태를 지닌 부르주아 시민 혁명'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반봉건 투쟁 속에서 사회적 진보의 이념을 대변한 부르주아계급이 그러나 혁명을 통해 수립하려고 한 정치 질서란 유산자들의 자유 공화국이었지만, 그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이 점에서 자유주의가 선포한 모든 인간들의 자유와 평등, 모든 시민의 일반 이익의 구현 및 사회 전체의 해방이란 애초부터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이익에 종속되는 명백한 한계를 지닌 것이었다. 이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고전적 자유주의에서 의미하는 바의 인간적 자격을 갖춘 '인간', 즉 이성적 윤리 의식과 정치적 책임 의식을 지닌 '인격적' 인간이란 경제적으로 독립적인 재산 소유자들과 재산을 지님으로써 교양과 학식을 쌓은 덕망 있는 인사들이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비자립적인 임금노동자와 같은 무산자들은 시장 관계에서는 형식적으로는 유산자들과 대등하며 근대적인 부르주아적 생산에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이므로 비록 '비인간' 그 자체는 아니지만, 그러나 이성적 윤리 의식과 정치적 책임 의식을 결여한 '비인격적 인간' 내지 '이등 시민' 또는 '수동적 시민' 등으로 취급된다. 이에 따라 초기 자유주의 헌법에서는 국가에 세금을 낼 수 있는 유산자와 교양과 학식을 쌓은 덕망 있는 인사들만을, 공공 업무를 처리함에 요구되는 자기 판단 능력과 사회 전체의 이익에 합당한 정치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로 간주하고 엄격하게 이들 유산자들에게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부여했다.
둘째, 자유주의 이론은 시민의 모든 기본권 중 사유재산권을 최고의 권리로 내세우며, 다른 권리들은 이 사유재산권에서 파생되는 권리로 파악한다. 그리고 근대 시민사회에서 사유재산권은 '자본주의적 사유재산권'을 핵심으로 하여 성립되기 때문에 이 사유재산권은 생산 과정에 임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와 잉여가치의 수치를 자본의 정당한 권리로서 옹호한다. 그런데 자유주의 이론은 원래 사유재산권이 '자신의 노동'에 입각해 이루어졌다는 이유를 들어 그 신성불가침성을 옹호했다. 그러나 '타인의 노동'에 기초를 둔 자본주의적 사유재산권을 자유주의자 자신들과 더 이상 '자신의 노동'에 의거한 것으로 정당화 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자, 자유주의자들은 이전의 논거를 폐기하고 '생산의 3대 요소론' ― 자본, 토지, 노동은 동일하게 생산에 기여하는 요소로서 소득 분배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 자유의 불가피한 전제로서의 시장경제, 생산력 발전과 경제 효율성에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우수성 등을 내세워 타인 노동의 처분권, 자본에 의한 잉여가치의 수취 및 자본축적의 권리를 자본의 신성한 권리로 정당화한다. 나아가 초기 자유주의적 법률은 자본가와 개별 노동자들 간에 이루어지는 노동력의 판매와 구매를 자유롭고 대등한 법적 주체들간의 '계약 관계'로서 정당화하고, 노동자들의 단결이나 파업 등은 이러한 자유롭고 대등한, 자기 행위에 법적 책임을 지는 사법적 주체들 간의 계약 관계를 파괴하는 범법 행위로 규정함으로써 생산 과정에서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와 수탈을 무제한적으로 옹호했다.
셋째, '자유'와 '평등'은 ― '형제애'와 더불어 ― 부르주아계급이 인민 대중을 반봉건 투쟁으로 끌어들여 자신을 사회의 명실상부한 지배계급으로 등장할 수 있게 한 구호였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관계가 발전하면서 자유주의가 말하는 자유란 인민 대중에게는 그들이 경제적으로 유산계급에게 종속되고 빈곤한 배고픔의 자유, 실업의 자유에 불과한 반면, (사회적) 평등은 그러한 자유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로 인식되었다. 이에 대해 자유주의자들이 주창하는 바의 평등이란 다수 대중을 소수 자본가에게 더욱 예속시켜 나간 법(사법) 앞에서의 평등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적 평등을 요구하는 대중의 운동이 커져 가자 '평등' 속에서 그들의 특권을 위태롭게 하는 최대의 위협을 발견하게 된다. 이에 자유주의자들은 이제 자유와 평등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고, 사회적 평등은 개인의 자유를 희생시킴으로써만 가능할 뿐이며, 자유는 평등에 우선하는 최고의 가치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때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란 재산 증식과 영업 활동의 자유를 핵심으로 하는 여러 부르주아적 자유들 ―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 학문의 자유, 언론·출판·집회의 자유 등 ― 즉 부르주아들이 자신들이 누리는 기득권을 유지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상·이념들을 자유로이 개진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이 점에서 그들이 옹호하는 '자유'(liberty)란 부르주아적 개인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사상을 표현하는 자유에 대한 외부의 간섭을 배제한다는 주관주의적인 소유적 개인들의 '의지적' 자유다.
'고전적 자유주의 국가'는 초기 자본주의가 자유경쟁 자본주의로 발전해 간 시기에 성립한 정치체제로서 아직 자본과 임노동을 중심으로 한 계급 갈등이 본격화하기 이전에 성립하여, 한편으로는 사회의 봉건적 관계를 해체하는 진보적 약탈을 수행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유산자 계급의 자유로운 발전과 자본에 의한 노동의 지배를 무제한으로 보장한 순수한 의미의 전형적인 부르주아독재 체제로 발전해갔다. 이 고전적 자유주의 체제는 그 뒤에 정착된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자유주의는 그 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노동자와 자본가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적 대립이 격화함에 따라 점차 많은 변형을 겪지만 유산자 계급의 정치 이념으로서, 그리고 자본주의적 재산권과 자본축적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치 이념으로서 계속 기능한다. 그 후 자본주의의 발전 속에서 사유재산권은 국가에 의해 제한되기도 하지만, 이러한 제한은 격화하는 계급적 대립에 직면해 그러한 제한을 통해 사유재산권을 보호하려는 목적을 지닌 것이었다. 이와 같이 자유주의는 부르주아계급의 사유재산권을 보호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자본의 자기 증식 운동과 자본주의적 소유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어디에서나 파시즘과 같은 부르주아지의 공개적 억압 체제에서 그 피난처를 구할 가능성을 아울러 지니 것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근대 부르주아사회의 출현과 더불어 형성된 자유주의와는 달리, 그 기원이 고대 그리스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전통을 지닌 정치 이념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의미한 바의 민주주의는 정권 창출의 '민주적 절차' 등에 관한 것이 아닌 군주정이나 폭군정 또는 귀족정이나 과두정과 대립하는 의미의 정치체제, 즉 '다수 피지배 대중의 권력' 내지 '다수 인민에 의한 지배'를 의미했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적 전통에 따라 민주주의를 이해하면, 시민들의 '형식적인' 정치적 평등이 입각하여 '민주적 절차'에 따라 귀족들이나 부자들이 집권할지라도 그 정체(政體)는 여전히 귀족정 내지 과두정인 반면, 설령 폭력적 방식으로 집권하거나 또는 독재적 방식으로 통치할지라도 그 정권이 다수 피지배 대중의 정권이라면 여전히 민주정이다.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노예, 여성 등을 배제하고 시민권을 지닌 폴리스민에게만 적용되는 제한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의 역사 속에서 민주주의는 그리스에서 의미한 바의 '다수 피지배 대중의 권력' 내지 '다수 인민에 의한 지배'라는 개념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면서 소수 지배계급에 대항하여 싸우는 피지배 대중의 정치·사회적 해방 이념, 나아가 피지배 대중을 정치적 지배계급으로 끌어올리는 정치 이념으로 발전하다. 이 점에서 오늘날에도 수많은 대중들이 '민주주의'를 외칠 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민주주의를 피지배 다수 대중의 정치·사회적 해방, 다수 대중에 의한 국가권력의 장악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이러한 역사적 전통과 전적으로 일치한다. 또한 부르주아민주주의와는 구분되는 '민중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등의 개념이 나타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사정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점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서로 결정적으로 대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처음부터 지니고 있었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는 사유재산권의 보호를 요구하는 부르주아계급의 이익을 옹호하지만, 민주주의는 사적 소유권 역시 다수 대중의 이익 실현에 방해가 된다면 그들의 정치적 결정에 따라 폐기될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실제로 부르주아지가 명실상부한 사회의 정치·경제적 지배계급으로 등장한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들을 '민주주의자'라고 부른 사람들은 자유주의자들이 아니라 바로 부르주아지의 무제한적 권리를 최소한 제한할 것을 요구한 소부르주아지의 정치·이념적 대변자들이거나, 아니면 자본주의적 계급 질서를 전면적으로 변혁하고자 한 사회주의자들이었다. 이에 상응해 자유주의자들에게 민주주의란 혐오의 대상, 사유재산의 신성함을 부정하는 이념, 법과 도덕 자체를 깨뜨리고자 선동하는 이념, 다수 우민들의 폭정을 옹호하는 이념, 반역의 사상과 동일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근대 세계에서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지의 전일적 지배에 대항하는 피지배 대중들의 정치적 해방 이념으로 나타났다. 이리하여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대립하는 속에서 자유주의는 더 이상 사회적 진보를 대변하지 못하고 수구의 이념으로 변했다. 피지배 대중, 특히 노동자계급이 이제 사회적 진보의 진정한 담당자로 등장하고, 부르주아지는 사회적 진보를 막으려는 수구 세력이 되었다. 이러한 대립 속에서 사회의 민주적 개혁이 조금이라도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더 이상 부르주아지가 자발적으로 주도하여 이룬 것이 아니고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한 피지배 대중의 광범한 압력과 투쟁에 의해 전취한 것, 즉 이러한 압력과 투쟁을 통해 부르주아지에게서 강제로 획득한 것이다.
민주주의를 쟁취하려는 유럽 노동자계급의 운동은 최초에는 주로 단결권·단체교섭권·파업권을 요구하는 투쟁으로, 그 후에는 '보통 선거권'의 도입 및 정치적 활동의 자유를 요구하는 투쟁 등으로 발전했다. 특히 보통 선거권의 확립 및 노동자계급의 자유로운 정치활동의 보장은 그들에게도 그들이 국가권력에 참여하거나 국가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불가피한 전제로서 인식되었다. 반면 부르주아지는 보통 선거권 등이 확립되면 부르주아지의 권리, 특히 자본주의적 사유재산권과 생산 과정에서의 자본의 착취권이 제한되거나 박탈된 위험이 있었으므로 보통 선거권의 도입 등에 반대했다. 그러나 역사는 때로는 격렬하면서도 장기간에 걸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간의 계급 대립을 거치면서 점점 노동 3권을 보장하고 선거권을 확대하는 동시에 노동자계급에게 부르주아지와 동일한 정치적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자유주의자들은 최초에는 그들이 자유주의에 대립하는 것으로 배척한 민주주의가 자유주의를 정당화할 수 있는 적극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발견한다. 선거권의 확대 등을 통해 모든 국민들의 형식적인 정치적 평등이 확보되어 가자 자유주의자들은 차츰 자유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서 내세우게 되었고, 자유민주주의를 최선의 민주주의 체제, 인류의 이상에 합치하는 최상의 정치체제로서 주장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성립된 자유민주주의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지닌다.
첫째, 자유민주주의 역시 다른 모든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계급 민주주의'의 형태다. 이 자유민주주의는, 임노동 없이는 자본이 성립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지속되는 한 결코 지양될 수 없는 계급 갈등의 현실을 인정하고, 프롤레타리아트를 비롯한 피지배 대중의 운동이 체제 내에서 전개될 수 있는 조건을 부여해 줌으로써 부르주아적 사회질서의 유지와 자본축적에서 노동자계급의 협조와 동의를 획득하고자 하는, 임노동에 대한 자본의 헤게모니적 지배 체제 내지 부르주아계급지배의 민주적 형식, 즉 부르주아민주주의의 발전된 형태다(부르주아민주주의의 초기 형태인 고전적 자유주의에서는 '계급 내적' 민주주의는 존재했지만, 다른 계급들에 대해서는 비민주적인 계급 지배가 이루어졌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는 피지배 계급이 부르주아지와 형식적으로는 평등한 정치적 권리를 지니면서 그들의 경제·정치적 운동을 '합법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법·제도적 장치를 보장해 준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운동 등을 체제에서 배제하려 하기보다, 이 운동들을 체제 내에 흡수하고 통합하는 것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안정적 재생산을 도모하려고 한다.
따라서 이 자유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에 기반을 둔 정당이 ― 그 정당이 개량적이든 혁명적이든 ― 집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런데 집권한 이 정당이 자본주의적 소유 질서와 생산 과정에서 노사 협조를 지지하는 한, 자본가계급의 근본적인 계급적 이해는 침범 받지 않는다. 따라서 이 경우에도 국가 체제는 여전히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지배 체제로서의 기본 성격을 잃지 않는다. 나아가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적 생산을 인정하기 때문에 소득 재분배에만 주력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정당 ―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의 사회민주당과 같은 정당 ― 의 정책을 수용할 수 있는 충분한 물적 토대를 지니면, 그러한 정당의 집권은 대중적 불만의 폭발을 잠재움으로써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지배를 안정적으로 재구축하는 데에 오히려 많은 도움을 준다. 이러한 사정과 관련하여, 자본주의가 만들어 내는 구조적 불평등을 소위 '분배적 정의'의 실현을 통해 완화하려는 '적극적 자유주의론'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자유주의의 한 조류로서 나타났다(예를 들면 John Rawls, John Chapman이 대변하는 자유주의론). 이러한 '적극적 자유주의론'은 전후 선진국 국가 독점자본주의의 상대적인 안정적 성장기에 나온 이론으로,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수용된 '사회민주주의' 내지 '사회 민주주의적 자유주의'의 성격을 지닌다.
이와 더불어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의 '과두제적 지배'라는, 자유주의자들 역시 부인하기 어려운 현상에 부딪혀, 이를 '참여 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를 확립함으로써 극복하려는 이론들이 또한 제기되었다(예를 들면 C. B. Macpherson). 이러한 '참여 민주주의론'은 자유민주주의자의 가장 좌파적인 견해를 대변한다. 그러나 이 이론은 국가와 융합된 독점자본의 금융적 과두지배라는, 자본주의 발전이 가져오는 필연적인 산출물을 정치적 민주주의의 단순한 확대·심화로 극복하려는 이상주의적 자유민주주의론 이라는 한계를 지닌 것이다. 이러한 조류와는 달리 자본주의의 구조적 경제 위기가 첨예화된 1970년대 후반부터는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 및 사회복지 정책 등을 기업 활동의 자유 및 개인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간주하는 '신(고전)자유주의론' 내지 '신보수주의론'이 현시기의 자유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조류로 형성되고 있다(예를 들면 F. Hayek, M. Friedman, I. Berlin, R. Nozick 등). 이러한 '신(고전)자유주의론'은 자본주의적 구조적 위기를 노동자계급과 제3세계 민중의 가중된 희생으로 해결하려는 제국주의 시기의 '가장 반동적인 자유주의론' 내지 '자유주의의 가장 타락한 형태'다.
그런데 사회 내부의 계급 갈등의 수준이 경제 불황에 처한 자본의 증식 운동을 심각하게 위협하거나(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이탈리아나 독일), 자본주의의 전면적 변혁을 지향하는 정당 세력의 대중운동의 고양 등에 힘입어 선거를 통해 집권하게 되면 (예를 들어 칠레에서의 아옌데 인민 연합 정부의 수립) 자유민주주의의 민주적 형식들은 더 이상 부르주아계급의 헤게모니적 지배를 보장해 주는 형식들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사태 전개는 일반적으로 사회 혁명의 전야가 되든지, 아니면 파시즘과 같은 부르주아계급의 비헤게모니적 억압 체제가 수립되는 과도기적 국면으로 나타난다. 자유민주주의의 정치적 형식들이 부르주아지의 계급 지배를 위태롭게 하는 속에서도 당시에 조성된 '계급들간의 힘의 형세'로 인해 부르주아계급이 그러한 정치적 형식들을 폐기할 수 없는 궁지에 몰리면, 자본주의의 안정적 재생산은 결정적으로 위태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부르주아계급의 헤게모니적 지배를 보장하지 못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적이라고 부를 수 없다.
둘째, 역사적으로 자유경쟁 자본주의에서 독점자본주의로 이행하는 시기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자유민주주의적 개혁이 이루어진 시기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자유경쟁 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로 완전히 이행되고 독점자본주의에 기초를 둔 제국주의가 세계의 경제·영토적 분할을 기초로 완료한 시기에 그 완성된 자태를 처음으로 드러내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성립된 '초기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그 후 제국주의간의 전쟁, 세계 대공황의 도래 및 계급 대립의 폭발 등으로 형해화(形骸化)하거나 또는 독일·이탈리아 등지에서는 파시즘 체제로 대체되었다. 이로 인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비로소 국가 독점자본주의에 기초를 둔 제국주의의 신식민적 지배 체제가 전세계적으로 수립된 것을 기초로 하여 선진국 국가 독점자본주의의 '정상적인' 국가 형태로서 정착하게 된다. 한편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권의 성립은 노동자계급이 강력한 사회적 힘으로 존재하는 선진국 자본주의에서 체제 개혁의 필요성을 긴박한 것으로 만듦으로써 선진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선진국 국가 독점자본주의의 정상적인 상부 구조 형태가 된 '후기 자유민주주의 체제'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이 후기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자본주의의 역사가 시작된 후 수백 년이 지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선진국 국가 독점자본주의의 정상적인 국가 형태로 정착한 사실은 한국에서의 자유민주주의의 문제를 파악함에도 커다란 중요성을 지닌다. 다시 말해 선진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출현하고 정착한 이러한 역사적 조건들을 도외시한 채 한국에서의 자유민주주의의 완성 가능성 등을 논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비역사적이고 관념적이다. 이 점은 후기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개량된 형태'인 사회민주주의 체제에 대해 논할 때에도 유의해야 할 점이다(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서로 구분되는 자본주의 국가의 두 형태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여러 형태들 중의 하나로 이해되어야 한다).
셋째, 자유민주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발전된 형태', 즉 '자유주의의 현대적 형태' 내지 '독점자본주의 단계의 자유주의의 실현 형태'로서 '자유민주주의의 본원적 형태'인 고전적 자유주의를 자기 성립의 존립 근거로서 지니고 있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역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 및 시장에서의 자본주의적 영리 활동의 자유를 국민의 가장 중요한 기본권으로 옹호한다. 이 점에서 자유민주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란, 그 추상적 표현 방식에도 불구하고, 모든 종류의 역사적·계급적 자유를 인정하는 어떤 초역사적·초계급적 자유도, 또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 등을 폐기할 수 있는 어떤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비(非)부르주아적인 계급적 자유도 아니며 바로 (독립자본주의적) 사적 소유 내지 사적 소유자들의 자유, 영리 활동의 자유라는 부르주아적인 계급적 자유를 핵심으로 하여 성립하는 자유다.
그러나 고전적 자유주의가 자유민주주의로 진화되면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사상·학문의 자유 등 부르주아지가 누리는 모든 권리는 부르주아지를 포함하는 모든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확대된다. 이로써 이러한 부르주아적 권리는 이제 모든 국민들이 향유할 수 있는 권리가 되었지만, 역으로 부르주아지가 이미 누려 오고 증대시킨 모든 기득권, 즉 자본주의적 사유재산권 등은 어떤 경우에도 부당하게 침해할 수 없는 부르주아지의 인권으로서 아울러 보장된다. 그렇기 때문에 최초에 실질적으로는 부르주아계급들만이 누린 부르주아적 권리가 이제 국민 모두가 누리는 국민의 기본권으로 되었지만 막대한 사회적 부를 독점하고 사회의 주요 이데올로기적 기구들을 장악하고 있는 (독점) 부르주아지가 누리는 자유의 양과 피지배 대중이 누리는 자유의 양은 결코 비교될 수 없다.
넷째, 자유민주주의는 '인민 주권'의 원리를 천명하며 '모든 국민의 형식적인 정치적 평등'을 보장하는 것을 통해 독점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지배를 민주적 방식으로 관철하는 정치적 형식이다. 이때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법적 규제'를 벗어나는 피지배 대중의 운동을 탄압하면서도 높은 생산력 수준과 (신)식민지적 초과이윤의 획득을 가능케 하는 '개량'을 기초로 해, 그리고 막강한 이데올로기적 기구들의 항상적인 작동을 통해 독점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지배를 '다수 인민의 정치적 의지'라는 형태로 관철한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다수 인민의 정치적 의지'라는 '형태' 속에서 '독점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지배'라는 '본질'을 관철하는 정치적 기제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의 '민주성'이란 직접적으로는 '인민 주권' 및 모든 국민의 정치적 평등의 형식적인 보장을 의미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독점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지배를 '다수 인민의 정치적 의지'로서 관철하는 정치적 형식이기 때문에, '다수 피지배 대중의 권력'이라는 본래적·고대 그리스적 의미의 민주주의가 '인민 주권' 및 '다수 인민의 정치적 의지'라는 형식으로 관철될 수 없는 특수한 계급적 힘의 형세 속에서는 자유민주주의는 독점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지배의 정상적인 형태로 작동하지 못한다.
다섯째,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기본적으로 '인민 주권'의 원리에 입각한 '대의 제적' 국가 형태 내지 '의회 제적' 국가 형태라는 '간접 민주제'로서 실현된다. 나아가 자유민주주의는, 모든 법은 국민의 대표 기구인 의회에서 제정되어야 하며, 이 법은 또한 모든 국민들의 권리로서 인정되는 바의 부르주아적 권리들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호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창한다. 이 점에서 단순히 제정된 법이라는 의미의 '실정법'(Gesetz)과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라는 의미의 '권리법'(Recht)은 구분되는데, 자유민주주의가 말하는 법이란 후자를 의미하는 권리법이다. 따라서 법이 의회의 통제를 벗어난 집행 권력에 의해 제정되거나, 제정된 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내용을 갖게 되면 이 법(Gesetz)은 '법'으로서 인정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실정법이 '권리법'을 침해하면 그것은 '불법적'이며, 그것이 '불법'인 이상 국민은 그 법에 복종해야 할 의무가 없다. 또 국가권력이 의회가 위임하는 바에 따라 집행되고 그 집행이 최소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닐 때 그 국가는 '법치국가'(Rechtsstaat)로서 인정된다. 이와 같이 '법치국가'란 국가가 단순히 실정법에 따라 통치한다는 의미와는 다른 것으로, 국가가 '법치국가'로서의 성격을 잃으면 자유민주주의는 이 국가에 대한 저항권을 인정한다. 그런데 '불법'과 '법치국가성'의 훼손에 대한 국민의 '불복종' 권리와 '저항권'의 인정은, 피지배 계급의 기본권 역시 국가에 의해 보호되어야 한다는 측면을 지니고 있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부르주아지의 권리가 국가에 의해 훼손되어서는 안된다는 측면을 아울러 지니고 있다.
여섯째, 독점자본주의 단계의 자본주의적 축적 과정에서 독점자본과 국가(경제)기구는 필연적으로 단일 메커니즘으로 융합하게 된다. 이에 따라 독점자본주의 단계에서는 국가가 수행해야 할 대내적·대외적인 '총독점자본가'로서의 기능은 갈수록 중요해지는데, 이 기능은 정당들과 정파들의 정치적 투쟁이 일어나는 '공식 무대'인 의회를 통해서는 결코 효율적으로 수행될 수 없다. 이에 따라 경제 운영에 대한 주요 정책들의 결정은 사실상 의회의 통제를 벗어난 국가 관료 기구의 권한으로 이전한다. 이와 아울러 독점자본주의 단계에서는 독점이윤을 추구하는 독점자본의 민중 전체에 대한 수탈이 강화됨으로써 독점자본가와,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 전체간의 모순이 확대·심화된다. 그런데 독점자본주의로 이행하기 전의 시기에는 정치투쟁이 주로 부르주아세력에 의해 독점된 국가와, 국가로부터 배제된 피지배 대중 간의 투쟁이라는 형태를 띠고 전개되었다. 그러나 정치투쟁이, 독점자본과 민중 전체의 모순이 확대·심화되고 생산 과정에서 훈련되어 거대한 조직적 힘으로 성장한 노동자계급의 민주적 욕구가 분출하는 독점자본주의 단계에서도 그와 같은 형태를 띠고 전개된다면, 국가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분노를 증폭시켜 자본주의가 일거에 폭파될 위험성이 현실화 될 수 있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수립은 노동자계급이 체제를 일거에 전복시킬 수 있는 힘을 잠재적으로 지니게 된 자본주의의 발전 단계에서 노동자계급의 운동이 혁명적 운동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기 위한 독점부르주아지의 반혁명적인 개량적 통합책의 성격을 지닌 것이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가 정착하면 노·자 대립은 일반적으로 '체제내적' 대립과 투쟁의 형태로 전개된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안정적으로 정착하면, 독점부르주아지는 체제 변혁적 노동운동의 도전에 대해서는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있지만, 이와 더불어 이제 그들은 국가 체제 외부에서가 아니라 그 '내부'에서 노동자계급과 직접 대립하게 되고, 또 타협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사태는 독점주르조아지의 요구가 바로 국가 내부에서 잠재적·현실적으로 위협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또한 상황에 따라서는 개량적 노동운동이 체제 변혁적 노동운동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한다. 이로 이해 독점부르주아국가가 아무리 민주적 형태를 취한다고 할지라도 피지배 대중을 체제에 통합시키는 기본 전제로서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확보하고 체제 유지를 위협하는 요소들의 성장을 억제하거나 무력화하기 위해서 '개량'과 '통합'을 도모하는 가운데에서도 국가의 '억압적 기능'을 더욱 고차적이고 세련된 형태로 강화하는 조치들이 취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이로 인해 자유민주주의적 개혁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합법성을 쟁취한 노동운동이 활성화되고 노동자계급에 기반을 둔 정치 세력의 의회 진출이 본격화하는 동시에 이 정치 세력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지면 질수록 의회의 탈권화, 국가 관료 기구로의 권한의 이전, 국가 관료 기구의 의회로부터의 자립화가 더욱더 진척되며, 법률에서의 유보적 조항 설치에 의한 국민 기본권의 사실상의 제한, 법치국가성을 실질적으로 폐기할 수 있는 비상조치 영역의 확대, 정보기관에 의한 국민 전체에 대한 감시 체제의 강화 등이 아울러 이루어진다. 이처럼 역사적 현실 속에서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결코 자유민주주의 이념이 상징하는 바의 이상적 형태로 실현될 수 없는 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정착은 동시에 자유민주주의의 내용을 실질적으로 훼손하는 억압적·권위주의적 요소들의 강화를 아울러 수반한다. 이처럼 역사적 현실 속에 정착된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자기 자신 속에 공개적으로 억압적인 독점주르조아정치체제로 이행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 억압적·권위적 자유민주주의 체제, 즉 그 속에 '파시즘적 요소'를 내재하면서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체제를 파시즘 체제로 전화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다(이 때문에 서유럽의 많은 학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의 국가 독점자본주의 국가를 '권위적 국가'로 부르기도 한다. 예를 들면 Y. Agnoli, 그리고 일부 학자들은 변화된 형태의 '파시즘 국가'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 견해는 서유럽에 정착한 자유민주주의제가 지닌 파시즘적 요소를 과대 평가하는 견해다).
역사적 현실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이처럼 '불완전한 불구적 형태'로 구현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자본주의 국가가 노·자간의 계급적 적대에 기초를 두고 있는 국가라는 점에, 그리고 특수하게는 자유민주주의가 지배계급의 '반동적' 성격이 강화되고 노골화되는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에 이르러서야 강력한 힘으로 등장하는 노동자계급을 체제에 통합시키기 위해 수립되고 정착될 수 있는 정치체제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따라서 이러한 정치체제는 '양심적인' 자유민주주의자에게도 자유민주주의가 지향하는 바의 이념에 배치되는, '결함투성이'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비추어진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불완전한 불구의 자유민주주의제가 바로 '자유민주주의의 필연적인 역사적 관철 형태'임을,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자가 파악하는 바의 자유민주주주의체제의 그러한 결함들은 결코 자유민주주의에 의해 극복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란 부르주아시민혁명에 의해 수립된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지배 체제인 '고전적 자유주의의 발전된 형태'이며, 독점자본주의의 성립과 더불어 그 완성된 형태가 출현하여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선진국 국가 독점자본주의의 정상적인 정치적 상부 구조 형태로 정착한, 그러나 그 역사적 관철 형태가 억압적·권위적인 독점부르주아적 국가 체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점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그러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 종속적 국가 독점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코 독점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지배에 적합한 정치 체제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한국과 같은 종속적 국가 독점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독점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적 지배 체제인 자유민주주의도, 더욱 이 자유민주주의의 '개량된 형태'인 사회민주주의도 객관적으로 보아 실현되기 어렵다. 이 문제에 대해 상론하는 것은 본고의 범위를 벗어난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의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의 두 가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흔히 주장되는 것과는 달리 자유민주주의는 아무런 계급적 내용을 지니지 않거나, 또는 모든 계급적 내용을 포괄하는 '정치적 민주주의' 또는 '절차적 민주주의' 그 자체가 아니다. 왜냐하면 자유민주주의의 절차적 민주성이란 부르주아민주주의의 계급성을 관철하는 '형식'으로서 그 계급적 내용과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를 단순히 '정치적 민주주의' 또는 '절차적 민주주의'로 파악하는 것은 정치 현상의 '내용'과 '형식'을 통일적으로 파악해야 하는 과학적 인식 방법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자유민주주의에서 나타나는 특정한 정치적 형식들 내지 특정한 '부르주아민주주의적 형식들'은 민주주의를 쟁취하려는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피지배 대중의 투쟁에 의해 창출된 측면들을 아울러 지니고 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민주적 형식들은 노동자계급이 독점부르주아지에 대항하여 싸우는 과정에서 그들의 강력한 정치적 무기로써 기능 한다. 나아가 자유민주주의가 역사적 현실 속에서는 파시즘적 요소를 내장한 권위적·억압적 형태의 자유민주주의로 구현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선진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도 민주주의를 확대·심화하기 위한 투쟁 내지 일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노동자계급의 투쟁에서 매우 커다란 중요성을 지닌다. 이러한 투쟁은 그러나 그 자체로서는 부르주아민주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둘째,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피지배 대중의 투쟁에 의해 창출된 자유민주주의가 지닌 특정한 '부르주아민주주의적 형식들'은 민주주의를 쟁취하려는 그들의 투쟁이 가져온 중요한 역사적 전취물이다. 이 점에서 이러한 전취물들은 노동자계급과 인민 대중의 민주주의를 완성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그 토대가 되어야 할 소중한 역사적 유산이다. 그러나 그러한 민주적 형식들은, 그것이 바로 부르주아민주주의에 의해 '수용'된 정치적 형식이라는 계급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한 기초는 될 수 있지만, 민주주의의 초역사적·초계급적 형식으로서 절대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민주주의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내용이 확보되면서 동시에 '형식' 면에서도 부르주아민주주의의 민주적 형식들이 지닌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민주적 형식들이 부단히 탐구되고 창출되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