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군서면(郡西面)
충청북도 옥천군의 서쪽에 있는 면.
동쪽으로 옥천읍, 서쪽·남쪽으로 대전광역시 대덕구(大德區)·금산군, 북쪽으로 군북면과 접한다.
충청남도와의 경계에는 식장산, 망경대(望景臺:597m)·망덕봉(望德峰:419m)·국사봉(國師峰:389m)을 잇는 산맥이, 동쪽 면계에는 서대산, 용봉(436m)·마성산(馬城山)·장룡산(壯龍山)을 연결하는 산맥이 각각 뻗어 있다. 그 두 산맥 중앙을 금강 수계인 서화천이 금산군 추부면으로부터 흘러와 면의 중앙을 관류하여 옥천천(沃川川)이 북류하여 하곡평야를 형성한다.
지명은 조선 후기의 고문헌과 고지도에서도 발견되는 면 지명으로 조선 시대 옥천 읍내의 서쪽에 위치하여 명명된 방위지명이다. 현재의 면은 조선 시대 옥천군 군서면(군서일소면 · 군서이소면(郡西二所面)) 지역이었다.
1908년 군서일소면(郡西一所面)이라 하여 9개리를 관할하다 다시 13개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군서면으로 바뀌면서 12개를 관할하였다. '신구대조'에는 군서일소면의 9개 리, 군서이소면의 13개 리, 군북면의 백석리와 전라북도 진산군 동이면(東二面)의 검동 일부를 통합해 군서면이라 명명하고 12개 리로 개편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1949년 성정리와 옥각리를 옥천읍에 넘겨 주면서 10개리를 관할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른다. 현재 동평리 · 금산리 · 사정리 · 상지리 · 은행리 · 사양리 · 상중리 등 10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면 소재지는 동평리이다.
조선 시대 면은 '여지도서'에 월서화리(越西化里) · 은행정리(銀杏亭里) · 사음동리(舍音洞里) 등 6개 리를 관할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각 동리마다 관문으로부터의 방향과 거리, 편호, 남녀 인구가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 '해동지도', '동여도', '1872년지방지도'에도 모두 표기자 변화 없이 군서면으로 기록되어 있다.
과수 재배가 성하고, 쌀·보리를 비롯한 주곡농업과 함께 특산물로 포도·딸기를 재배하고 있다. 면의 북부에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국도가 지나고, 금산군과 옥천읍을 연결하는 37번 국도가 남북으로 서화천과 평행하게 지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관광지로는 여름철 피서지인 장룡산자연휴양림과 금천계곡이 유명하다.
주요 문화재로는 동평리 성지(東坪里城址) 및 선사유적, 마성산성지(馬城山城址), 금산리 김씨효자정문(金山里金氏孝子旌門), 사정리 요지(沙亭里窯址), 김순구 순절비(金舜九殉節碑), 백제 성왕 사절지(百濟聖王死節址) 등이 있다.
2. 군서면(郡西面)
전라남도 영광군 중앙에 있는 면.
북쪽으로는 영광읍, 남쪽으로는 군남면(郡南面)·불갑면(佛甲面), 동쪽으로 묘량면(畝良面), 서쪽으로 백수읍과 접한다.
주로 해발고도 50m 이하의 구릉지로서 대부분의 야산이 개발되어 논과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과 보리이며, 풍부한 점토를 사용하여 붉은 벽돌을 많이 생산한다.
1911년 남죽면 · 관산면 · 서부면으로 분할되었다가,
-1914년 3개 면을 통합해 군서면으로 개칭하였다.
-1983년 녹사 · 학정 · 송림 · 신하 4개 리가 영광읍으로 편입되었다. 면 소재지인 마읍리를 비롯하여 보라리 · 가사리 · 남죽리 등 10개의 법정리가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군서면은 없고, '조선지형도'에서 군서면이 나타난다. 한편, 가사리(加沙里)는 '호구총수'에서 남죽면의 가사(加士)였다가 1912년 남죽면 가사리(加沙里)로 한자가 변했고, 1914년 군서면 가사리로 변한다. 원래 가사리는 가작골 또는 가장골로 불리기도 했는데 '가사'라는 말은 '가장자리' 마을이라는 뜻이다. 가장+골>가장골>가자골>가작골>가상골>가사골로 되어 소리나는대로 가사(加沙)라 한 것이다.
법성포(法聖浦)로 통하는 국도가 있고, 주위의 면으로 통하는 지방도가 있어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문화재로는 김시구비(金時九碑)가 있다.
3. 군서면(郡西面)
전라남도 영암군 중앙에 있는 면.
동쪽으로 영암읍, 남쪽으로 월출산과 학산면(鶴山面)과 강진군 성전면(城田面), 서쪽으로 서호면(西湖面)과 접하고, 북쪽으로 영산강을 사이에 두고 남해만(南海灣) 너머 도포면에 면한다.
이전에는 영암면 서쪽의 첫머리에 있다고 하여 서시면(西始面)으로 불렸으며, 성지천(省之川) 등 34개 마을을 관할하다가,
-1898년(광무 2)에 서종면(西終面)의 서호정(西湖亭) 등 19개 마을을 병합하여 영암군의 서쪽이 되므로 군서면이라 개칭하였다. 동구림(東鳩林) · 서구림(西鳩林) · 도갑(道岬) 등의 12개 법정리를 관할하였다.
-1973년 송평(송계, 평장, 신기, 신정)리를 영암읍에 넘겨주고 현재의 해창리 · 마산리 · 성양리 · 동호리 등 11개 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동리 지명은 대부분 1914년 합성되어 만들어졌다. 동구림리는 구림의 동쪽이 되므로 동구림리라 하였으며, 서구림리는 서종면 지역으로 율정(신흥동) · 서호정 · 북송정 · 남송정 · 국사암 마을로 구림의 서쪽이 되므로 서구림리라 하였다. 도갑리는 도갑사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양장리 또한, 시종면의 지역으로서 소금을 구웠으므로 염장 또는 양장이라 한 것이다. 성양리의 경우 성지천리 · 미남리 · 양지촌리 · 지남리 · 월암점리의 각 일부 지역을 합하여 성지와 양지촌의 이름을 따서 성양리라 하였다. 도장리는 도리촌 · 장사리 · 가내말을 합하여 도리와 장사의 이름을 따서 도장리라 하였다. 해창리는 원래 영암군의 서시면 지역으로서 해창(海倉)이 있었으므로 지명이 유래되었다.
남동부는 산지이며, 북서부 남해만 연안에 평지가 전개되고 북부에 넓은 간척지가 있다. 과거 해변이었으나 영산강 하굿둑 축조로 넓은 면적이 농토가 되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 등이며, 참깨 등 특용작물과 사과·감 등 과수 재배도 성하다. 월곡리에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전자제품·농산물 가공업체 등이 입주하고 있고, 산지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도갑리(道岬里)에는 축산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영암 방면의 지방도가 면내를 통과한다.
문화재로는 도갑사(道岬寺: 전남 문화재자료 79), 도갑사 해탈문(解脫門: 국보 50), 도갑사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 보물 89), 도갑사소장 동자상(보물 1134), 영암군서면의 느티나무(천연기념물 283), 영암구림리 토기요지(사적 338), 도갑사 도선수미비(道詵守眉碑: 전남 유형문화재 38), 도갑사 석조(石槽: 전남 유형문화재 150), 도갑사 5층석탑(전남 유형문화재 151), 도갑사 수미왕사비(守眉王師碑: 전남 유형문화재 152), 도갑사 도선국사진영(道詵國師眞影: 전남 유형문화재 176), 영암 월출산(전남 기념물 3), 왕인박사 유적(王仁博士遺蹟:전남 기념물 20)을 비롯해 도갑 산성지, 월곡리 지석묘군(月谷里支石墓群), 성성지(聖城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