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내가 활동하고 있는 도서관에 학교폭력으로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고등학생이 왔다. 학교에서 어떤 학생이 스프레이에 불을 붙인 사건이 있었는데 목격을 하고도 방임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았다. 본인은 아무 생각없이 화장실에서 나오던 중이었는데 그리 되었다며 억울해 하기도 했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지만 사는 곳은 경기도로 좀 거리가 있었다. 학생은 봉사활동으로 우리 도서관에서 출판 년도가 오래된 책을 골라서 표시하는 임무를 주로 수행했다. 지루해 보이지만 의외로 신경이 쓰이는 작업이다.
점심시간이 한시간인데 구지 밖에 나가지 않고 도서관 에서 김밥을 먹으면서 있겠다고 한다. 덕분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DAW라는 프로그램으로 친구와 함께 힙합 프로듀싱도 한단다. 음악 플랫폼인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린 곡을 들려주는데 실력이 제법이다. 좋아하는 건 음악이지만 직업계 고등학교에서 전기를 전공하고 있는데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어디서 무엇을 해도 먹고살 수 있기에 선택했단다. 비록 사회봉사명령을 수행중이지만 생각이 성숙하고 부모님들도 아이를 믿어주고 적극 응원하고 있는 듯 하다. 학교 안에서 학업 성취도도 꽤 높은 편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요즘 아이들, 요즘 학교 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요즘엔 담배를 피냐고 물어보는 게 아니라 담배를 안피냐고 물어봐야 해요. 그만큼 많아요.”
요즘 아이들 흡연율이 매우 높은데 전자딤배를 이용해서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는거란다. 미성년자가 신분증을 위조하는 방법까지 알려줬는데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손애서 달콤한 냄새가 나면 10중 8, 9 전담(전지담배)이라고. 흥미로워진 나는마치 인터뷰라도 하는 양 노트북을 열어 질문을 이어간다.
“왜 그렇게 담배피는 애들이 늘어난 것 같아?”
“세보일라고 그러는 거예요. 약한 모습 보이면 찐따로 낙인돼 괴롭힘 당해요.“
이후 질문과 답을 오가며 나눈 이야기는 꽤 충격적이었다. 일단, 학생은 학폭이 무용지물이라고 한다. 학폭 신고를 하면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와 그 주변의 아이들이 집단적으로 인스타 DM 폭탄을 보낸다. 그 뿐 아니라 신고한 아이가 얼마나 찌질한지를 알리며, 가해자로 지목된 것은 억울한 일임을 호소한다. 절차에 따라 처벌을 받더라도 이후 더욱 교묘하고 집요하게 괴롭힌다고 한다. 차라리 안하고 만다고. 톰브라운 같은 고가의 의류를 입고 여학생들이 진하게 화장을 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었다. 여학생들은 일단 예쁘면 아무도 무시하거나 건드리지 않는단다. 나는 입이 벌어지고 눈이 동그래졌다.
“그래서, 그렇게 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뭐라고 생각해?”
“일단, 학교에서 애들은 각자 하고 싶은 걱이 있지만 그건 일부 선택된 아이들만 가능해요.”
이 아이의 말로는 좌절을 경험한 아이들은 의욕이 꺽이고 무기력해진다고 한다. 교실에서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는 선생도 고생하고 있으니 들어는 준다는 정도라고 덧붙였다. 학생들은 어차피 이해도 못하고 엎어져 자느라 고생하는데 집에 가서도 공부하라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폭발 될 수 밖에 없다고.
중학교 3학년 때는 1학년 아이가 자꾸 시비를 걸어 폭력사태로 번질 수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1학년 아이의 새아버지가 전에도 만만해보이는 학생에게 시비를 걸어 애가 맞고 오면 합의금을 뜯어낸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이 사회봉사 학생의 아버지가 전직 경찰이어서 딱 걸린 것이다. 웹드라미나 웹툰에서 그리는 장면들이 과장된 게 아니란다.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들에 슬픈 마음이 들었다. 무시당하지 않으려 쎄보이기 위해 얼마나 힘들까. 실제로 무시딩하고 괴롭힘 당하는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요즘 아이들이 돈에 집착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돈이 있어야 하는 이유도 이것으로 설명되었다.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비씬 옷을 입고 치장을 하고 과시를 해야 했던게다. 씁쓸하고 안쓰럽다. 학교는 교육의 공간이 아닌 정글이었다. 사회봉사명령 받은 아이들도 한 명 한 명 만나면 착하지 않은 애들이 없는데 말이다.
지금과 같은 학교가 필요한가?
서로 비교하고 무시히고 방어하느라 병드느니 차라리 학교 밖에서 배우는 게 낫겠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집단으로 묶어 그 안에서 우열을 가리는 교육 시스템의 종말을 목격하는 듯 하다.
봉사를 수행하는 중간에 학교에서 처벌대상이 아니라는 판결의 연락을 받았다. 그럼에도 학생은 하루 더 남은 사회봉사명령을 끝까지 수행하고 돌아갔다. 어차피 학교 가면 바로 전학 신청 할거라면서.
첫댓글 MBC 다큐 [교실이데아]에서 학생들에게 학교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답니다.
함께 하는 광장? 거래하는 시장? 사활을 건 전장?
한국 고등학생 80%가 전쟁터라고 했다고 하네요.. ㅠㅠ
https://youtu.be/S96ccIqQqFc?si=-xLWmp09YQEz4r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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