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책꾸러미
힘들 때 위로를 주는 그림책
윤영희 행신능곡지회
그림책은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활동하면서 그림책은 어른들에게도 많은 공감과 위로를 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긴 글보다 짧은 시가 우리의 마음에 울림을 줄 때가 있는 것처럼 그림책도 짧은 글과 그림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지금 내가 소개할 책들은 삶에 지치고 힘들 때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주는 책들이다. 세상을 살면서 늘 행복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크든 작든 여러 시련을 겪으면서 살아간다. 역경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찾아오고 우리는 그 역경에 부딪혀 절망에 빠질지도 모른다. 정말 힘든 일이 찾아왔을 때, 삶에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 그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이 책들을 통해 얻었으면 좋겠다. 힘든 사람들이 원하는 위로는 어쩌면 큰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떠한 고난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새로운 희망이 생길 거라고 믿는다. 지금 마음이 힘든 사람이 있다면 이 책들을 건네고 싶다.
《가드를 올리고》 고정순 글, 그림|만만한책방|2017 속표지에 두 줄의 긴 링을 떨리는 주먹으로 움켜잡는 권투 선수의 모습이 보인다. 이 책은 실제의 권투 장면을 보여주듯 빨간 주먹과 검은 주먹이 사투를 벌인다. 목탄으로 거칠게 그려진 싸움 장면만 나올 뿐 관객은 아무도 없다. 빨간 주먹과 검은 주먹의 싸움은 점점 더 치열해진다. 보는 나도 숨 가쁘게 느껴진다. 빨간 주먹은 제대로 된 공격 한번 하지 못하고 계속되는 검은 주먹의 공격에 쓰러진다. 이제 방어조차 힘들어 보인다. 빨간 주먹이 이대로 주저앉아 버릴까 조바심이 난다. 힘겹게 뻗은 주먹조차 빗나가 버린 순간, 빨간 주먹은 다시 일어나 가드를 올린다. 산에서 바람이 분다. 이 바람은 희망의 바람일까 아니면 또 다른 시련일까? 이젠 희망에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빨간 주먹은 더 이상 검은 주먹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빨간 주먹은 또 다시 몸을 일으켜 가드를 올린다. 우리 삶의 여정도 권투 시합과 같다. 생각처럼 쉽지 않고 좁은 길, 큰 바위, 웅덩이를 넘어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또 길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수없이 맞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권투 선수의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위로를 받는다. 우리가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한 번 더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빨간 주먹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계속 가드를 올린다. 공격을 한다기보다는 강한 주먹에 맞서 막아낼 뿐이다. 이기려 하기보다는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 책은 ‘얼마나 쓰러졌는가’보다 ‘어떻게 일어섰는가’가 더 의미 있는 그림책이다. 그래서 힘든 사람들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희망을 준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는 빨간 주먹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했었다. 내심 이기길 바랐다. 하지만 다시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힘든 일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영원한 실패도 없는 거라고, 무너지지 않는다면 언젠가 꿈을 이룰 거라는 희망을 품게 해 준다. 우리의 삶에는 계속 바람이 불 것이고, 어떤 힘든 순간에도 자신만의 가드를 올릴 준비가 되어 있다면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것이다.
《나는, 비둘기》 고정순 글, 그림|만만한책방|2022 하늘을 자유롭게 날던 비둘기 한 마리는 어느 날 전구에 날개가 걸려 한쪽 날개를 다친다. 더 이상 날 수 없는 비둘기는 먹이를 빨리 찾을 수 없어서 부지런히 걸었다. 그래서 구석구석 벌레가 많은 곳도 음식 찌꺼기가 많은 곳도 잘 찾을 수 있었다. 음식 찌꺼기를 많이 찾은 날엔 눈먼 늙은 쥐에게도 나눠 주었다. 자신도 먹이를 찾기 힘든 상황에서 비둘기는 눈이 보이지 않는 쥐 아저씨를 위해 먹이를 챙겨 주었다. 비둘기는 쥐 아저씨에게 날개를 다쳐서 못 날지만 꼭 다시 날고 싶다는 소원을 이야기하였고 앞을 보지 못 하는 쥐 아저씨는 비둘기가 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었다. 하지만 세상은 비둘기에게 위협적이고 냉혹했다. 먹이를 찾아다니던 비둘기는 날카로운 유리 조각에 한쪽 발목마저 잃었고 바람에 날아온 비닐봉지까지 목에 감겨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비둘기가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순간, 바람이 불자 비닐봉지가 동그랗게 부풀었다. 비둘기는 이것이 쥐 아저씨가 말한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날개’라고 생각했다. 하늘을 날고 싶은 비둘기는 남은 한 발로 계단 오르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높은 건물의 계단 끝까지 올라 남은 한 발로 힘껏 뛰어 날았다. 날개가 꺾이고 다리가 부러져도 비둘기는 비둘기였고, 날아오르는 비둘기였다. 계속되는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비둘기는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이런 일들이 닥치면 원망과 슬픔을 표현할 것 같은데 비둘기는 아프다고 소리치거나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유리 조각에 발목을 잃고 한쪽 발로 콩콩 걸을 때도 비둘기 모습은 이상하게도 절망적이지도 슬픔에 차 있지도 않았다. 그냥 자신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나에게 역경이 찾아와 겉모습이 변하고 삶이 불편해지더라도 내가 나인 것이 변하지 않듯이 비둘기는 그냥 비둘기인 것이다. 비둘기는 어떠한 고난이 찾아와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마침내 처음 하늘을 날았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삶의 고통에서 나를 찾는 길은 쉽지 않다. 고통에 빠졌을 때 나를 응원해 주는 이가 옆에 있다면 정말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래서 비둘기에게 희망을 기도해 준 쥐 아저씨의 존재가 크게 느껴졌다. 누군가를 위해 진심어린 기도를 해 주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끼리 서로 돕는 것을 보여주는 이 책은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다. 쥐 아저씨 같은 사람이 많다면 세상은 희망적이고 따뜻해질 것이다. 우리에게 힘든 일이 닥쳐도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끝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살면서 나를 잃어버리는 것보다 슬픈 일은 없다. 우리의 삶도 비둘기의 삶처럼 위태롭고 불완전하다. 하지만 나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성실하게 내가 가야 할 길을 간다면 비둘기처럼 언젠가는 날아오를 것이다.
《빨간 나무》 숀 탠 글, 그림|김경연 옮김|풀빛|2019 이 책은 표지부터 예사롭지 않다. 책 제목도 빨간색이 아닌 청록색으로 ‘빨간 나무’라고 썼다. 표지 그림 위쪽엔 아이를 태운 종이배가 그려져 있다. 연보랏빛 강물 위에 위태롭게 떠 있는 종이배 안에는 배 끝에 몸을 의지한 채 눈을 감은 여자아이가 있다. 강물에는 종이배의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는 배와 아이 모습을 투영하면서 얼굴 쪽으로 빨간 단풍잎을 겹쳐 그렸다. 강물에 떠 있는 힘없는 종이배의 모습에서 아이의 험난한 여정이 느껴진다. 들판 한가운데 눈을 감은 아이가 위태로운 의자 위에 올라가 커다란 확성기를 잡고 외치지만 아이의 외침은 아무도 듣지 못한 채 말 부스러기가 되어 땅으로 흩어진다. 아이의 하루는 시작되지만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검은 눈물을 흘리는 커다란 물고기, 시커먼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 그리고 헬멧을 쓰고 물이 차 있는 유리병 안에 앉아 있는 아이의 모습은 정말 어둡고 우울하고 절망적이다. 세상은 아무도 아이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 ‘때로는 자신도 모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라는 글과 고개를 숙인 아이의 얼굴에서 슬픔이 느껴진다. 절망의 끝에 선 아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기 위해 용기를 낸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아이는 두렵지만 자신이 보지 못했던 자신의 뒷모습을 그려보며 스스로를 들여다본다. 마침내 자신의 참모습을 찾은 아이의 방 안에는 밝고 빛나는 ‘빨간 나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가 바라던 참모습은 바로 빨간 나무였다. 아이 방에 있는 빨간 나무를 보면서 표지에 있었던 그림자에 그려진 빨간 단풍잎을 다시 보았다. 아이는 어두운 터널 속에 있었지만 그 내면엔 항상 희망의 불씨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끝없는 절망 속에서 아이가 나올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땐 어둠에 가려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희망은 그림책 곳곳에 있었는데 아이들 눈에 잘 보이는 단풍잎도, 검은 먹구름 속 파란 하늘도 보지 못했다. 이렇게 희망은 우리 가까이에 있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외롭고 힘겨운 삶일지라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빨간 나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방황했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가장 믿었던 친구가 갑자기 나에게 등을 돌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아 외로웠던 그때 나는 많이 아팠고 집에는 큰 사고가 있었다. 힘든 일은 원래 한꺼번에 오는 것 같다. 그때 세상은 온통 암흑이었고 벽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난 길을 잃었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만약 그 시절 이 책을 읽었다면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았을 것 같다. 세상에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세상과 단절된 느낌일 거다. 세상과 소통하려면 유리병 속에 갇혀 있는 나를 세상 밖으로 꺼내야 한다.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보지 못하는 진정한 나를 바라볼 용기,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두렵지만 나를 정면으로 바라볼 때 나는 유리병 속에서 나올 수 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면 무대 위에 선 주인공처럼 말을 멈추고 고개를 숙이게 된다. 세상을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휩쓸려 길을 잃고 방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사납게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도, 끝날 것 같지 않은 고통 속에서도 희망은 어딘가에 존재한다. 나를 잃지 않는다면 결국 커다란 빨간 나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조랑말과 나》 홍그림 글, 그림|이야기꽃|2016 이 책은 표지부터 귀엽다. 하늘색 바탕에 조랑말과 아이가 미소를 짓고 있다. 조랑말과 아이의 얼굴은 어딘가 모르게 닮아 보인다. 아이는 조랑말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녀석이 나타나 조랑말에게 ‘빵!’ 하고 총을 쏜다. 조랑말은 산산조각이 나고 아이는 놀란다. 그러다가 이내 “나는 포기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며 조랑말을 꿰맨다. 식은땀을 흘리며 조각난 조랑말을 챙기는 아이의 뒷모습이 왠지 안쓰러워 보인다. 하지만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꿰맨 조랑말과 웃으며 다시 여행을 떠난다. 이 모습을 지켜본 이상한 녀석은 황당한 표정이다. 그러나 그 후에도 외계인, 커다란 악어, 해골 유령 등 이상한 녀석들이 계속 나타나 조랑말을 망가뜨린다. 그때마다 아이는 망가진 조랑말을 이어서 꿰매고 붕대로 칭칭 감고 다시 여행을 떠난다. 마지막에 해골 유령을 만났을 땐 아이 얼굴에 반창고가 붙어 있다. 상처를 밖으로 드러내려면 용기가 필요하듯이 양손을 허리에 놓은 아이의 모습이 그 전보다 당당해 보인다. 아이는 조랑말이 부서지고 망가져 네발로 걸을 수 없게 되었어도 조랑말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덕분에 마지막엔 조랑말이 두 발로 서서 아이 앞에 앞장서서 걷는다. 짧은 문장에 귀여운 그림들 그리고 선명한 색감이 어린아이들한테 잘 맞는 그림책이면서 어른들한테도 많은 공감과 위로를 주는 신기한 책이다. 조랑말이 이상한 녀석들을 만나 망가지는 상황이 반복될수록 조랑말은 찢기고 부러지고 너덜너덜해지지만 아이는 점점 더 차분해진다. 처음 조랑말이 망가졌을 땐 아이가 많이 놀란 표정이었는데 공격이 반복될수록 아이는 덤덤한 표정으로 힘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을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힘든 일이 생기고 또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상처받을 수도 있다. 우리의 삶이 평탄하지만은 않듯이 언제 이상한 녀석이 우리 앞에 나타날지 모른다. 다만 이상한 녀석이 찾아와 내가 상처받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상처를 꿰매고 일어난다면 이 책에 나오는 조랑말처럼 두 발로 당당히 서서 앞장설 것이다. 나는 계속되는 시련 속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여행을 떠나는 아이의 모습에 역설적으로 아이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신경이 쓰였다. 작가는 일부러 조각난 조랑말을 챙길 때 아이의 뒷모습을 보여 준 것이 아닐까, 아이의 앞모습은 어떤 표정일까 궁금해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상한 녀석들은 왜 조랑말만 망가뜨리는 걸까라는 의문이 생겼는데 생각해 보니 결국 조랑말과 아이는 하나였던 것 같다. 조랑말은 읽는 사람에 따라 이루고자 하는 꿈일 수도 또 자신이 지켜주고 싶은 소중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 조랑말은 아이의 마음처럼 보였다. 우리의 마음은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상처받기도 하고 슬픈 일이 생기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기도 하다. 하지만 주인공 아이처럼 상처를 꿰매고 붕대로 감싸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아요.”라는 말이 반복될수록 마치 주문에 걸린 것처럼 나도 무슨 일이 생겨도 포기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