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사기열전 38-오자서열전
네 분수를 알아라!
삶에 지친 사람들의 기분과 입맛을 돋구는 다양한 향신료가 넘쳐나는 곳,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옷감과 장신구들이 눈을 즐겁게 하는 진열대, 만남이 있고 흥정의 소리로 활기를 더하는 삶의현장, 아그라바 왕국의 시장 골목 풍경입니다.
재빠른 몸동작과 손동작(?)으로 자신의 필요를 구하며, 시장의 골목을 누비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처지와 환경에 안주하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여유를 지닌채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버려진 망루에 비밀 계단을 만들어 자신의 거쳐로 삼은 이 청년은 왕국의 전경이 들어오는 멋진 뷰를 가진 발코니의 소유자이기도 했습니다.
노쇠한 국왕은 자신의 뒤를 이을 후사가 없어 근심속에 살아갑니다. 왕에게는 야심차고, 총명한 외동딸이 있었지만 왕국의 법률에 여자는 술탄이 될 수 없었기에 고민합니다. 이제 그의 바람은 자신의 딸이 부유하고 강력한 왕국의 왕자와 결혼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왕국의 공주의 결혼상대자는 반드시 왕자여야 한다는 법률 때문이었습니다.
왕의 옆에는 좀도둑 출신의 야심으로 가득찬 악당 재상이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왕국을 차지할 마음을 갖고 군대를 자기편으로 만들고, 막대한 재물을 축적합니다. 시장거리에서 남의 동전을 훔치면 좀도둑이 되지만 나라를 훔치면 왕이 된다는 것이 그의 삶의 철학이었습니다.
노쇠한 왕의 재임기에 왕국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무리한 전쟁을 요구합니다. 전쟁이 얼마나 백성들의 삶을 고달프게 만들수 있는가하는 문제가 그의 계획에 장애물이 될 수 없었습니다.
더 큰 왕국 더 큰 부와 권력을 소유하기 위해 그는 마술램프의 강력한 힘을 갈망하는 악당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 처럼 그는 왕에게 이웃나라와의 전쟁을 요구합니다.
왕국의 장래와 백성들의 안위를 생각했던 왕은 재상에게 말합니다.
"Remember your place!"
최근 개봉하여 흥행가도를 달리던 월트디즈니의 '알라딘'의 처음 장면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자신의 자리와 역할의 범위를 벗어난 신하에게 강렬한 눈빛으로 말하는 왕의 말 "그대의 분수를 아시오!"라는 경고가 귀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사마천의 <오자서 열전>은 분량도 길고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 긴장과 통쾌함을 주는 내용으로 가득차있습니다. 사람들은 오자서를 '복수의 화신', '역경과 고통 속에서도 대의를 잊지 않은 대장부'로 묘사합니다. 간신의 모략으로 아버지와 형제를 잃고 오랜기간 나라밖을 떠돌며 온갖 고초를 겪지만 마침내 불의에 승리하는 오자서의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삶에는 무능하고 의심많은 왕들이 존재하며, 권모술수를 통해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는 간신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처지와 형편에 만족하던 좀도둑 청년 알라딘에게 운명처럼 한 여인이 다가옵니다. 그 여인이 궁중의 시녀나 평범한 백성이 아닌 왕국의 공주임을 알게되면서 알라딘은 자신의 처지와 형편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공주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왕자의 신분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 공주 역시 자신의 지위와 형평에 대한 일탈을 꿈꿉니다. 법률에 위배되지만 자신이 반드시 술탄이 되어 평화로운 왕국을 만들고, 그 안에 거주하는 백성들의 안위와 행복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열심히 공부하며 준비합니다.
신하의 신분으로 왕국을 차지하려던 악당 자파, 좀도둑의 신분으로 공주를 차지하려는 알라딘, 그리고 법이 금하는 여성 술탄의 자리를 꿈꾸는 자스민 공주....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망각하고 있는 주인공들입니다.
왕의 신분으로 격과 품위를 갖추어야 함에도 며느리가 될 여인의 미색을 보고 아내로 차지하는 초나라 평왕, 자신의 부와 권력을 위해 반인륜적 행위를 계획하고, 충신들을 모함하던 비무기, 아버지와의 의리를 뒤로 한채 도망하는 오자서....
이들 역시 모두 자신의 처지와 형편에 안주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대의 앞에서 자신의 지위와 처지에 대한 변화를 추구한 사람들의 결말과 역사적 평가는 상반된 형태로 나타납니다. 자신의 추구하는 바가 대의(大義, 정의)에 부합하는 가 하는 문제입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리를 망각한 자파나 비무기와 같은 이들은 끊임 없는 욕심의 노예로 구속됩니다. 평화와 안녕을 위해 술탄의 자리를 요구했던 자스민, 법의 약속을 거스릴 수 없어 찢어지는 아픔을 딛고 램프요정의 자유를 선택하는 알라딘은 새로운 세상을 얻게됩니다.
대의를 위해 자신의 자리와 의무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현실적 고통과 외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습니다. '장렬하게'..... (Speechless)
사마천은 오자서가 작은 의리에 연연하지 않고 큰 치욕을 위해 온갖 고초와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장렬한 대장부라고 평가합니다. 오자서가 왕실 후손을 데리고 함께 도망할 때 그들의 탈출을 도왔던 뱃사공이 있었습니다. 생명의 은인에게 보답으로 자신의 칼을 내놓는 오자서에게 "당신을 고발하면 그 칼의 값보다 훨씬 큰 돈을 받을 수 있소!"라며 묵묵히 노를 젓는 조연들도 있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평화와 자유가 보장되는 참 세상은 자신의 처지와 형편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교훈을 받습니다.
책상 앞 눈에 잘 띠는 곳에 '나를 향한' 그 음성을 적어붙였습니다.
"그대는 그대의 분수를 아는가?" (Remember your pl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