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중동 이야기] 고대 오리엔트 국가의 흥망 -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
40여 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한 솔로몬은 기원전 926년 숨졌다. 그의 죽음과 함께 통일 이스라엘 왕국은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 유대 왕국으로 분열됐다. “북쪽은 유프라테스에서 남쪽은 아까바”에 이르는 방대한 영토를 자랑한 통일왕국은 겨우 67년 만에 사라졌다. 이스라엘은 통일된 독립왕국을 제대로 형성하지도 못하 ㄴ채 막을 내리게 되었다.
다윗 왕의 친족 세습을 거부하며 남유대국에서 이탈한 북이스라엘 왕국은 그 후 19명의 왕 중 8명이 암살되고, 9명이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는 등 불안한 여정을 걸어왔다. 주변국에 영토를 빼앗겨 기원전 721년에 북이스라엘 왕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북이스라엘 왕국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버린 나라는 아시리아였다. 이 무렵 급속도로 힘을 키운 아시리아의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재위 기원전 745-727)는 끊임없이 북이스라엘 왕국을 공략했다. 북이스라엘은 수도 사마리아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항전했으나, 3년여에 걸친 아시리아의 공격에 결국 함락되고 말았다.
북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킨 아시리아는 어떤 나라인가. 아시리아는 티그리스 강 상류, 메소포타미아 북망 아수르를 중심으로 세워진 셈족국가다. 기원전 13세기 무렵 한때 북메소포타미아 일대에서 번성했으나 이후 쇠퇴해 기원전 10세기 무렵에는 북방의 우라르투(아르메니아계), 동쪽으로는 엘람(지금의 이란 북서부), 남쪽으로는 아람인 국가들에 포위된 소국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아시리아는 우수한 철제 무기와 보병 전차, 훈련된 상비군 등 군사력을 키워 아슈르나시르팔 2세 이후 시리아와 팔레스타인까지 수차례 원정하며 동, 북방 영토를 개척했고,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 때는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본격적으로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는 조공에 만족하지 않고 주변 국가들을 아시리아 본토에 편입시키는 정책을 펼쳤다.
이 정책은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로부터 왕위를 이어받은 샬마네세르 5세(재위 기원전 726-722), 그 다음 즉위한 사르곤 2세(제위 기원전. 722-705) 때까지 계속됐다. 샬마네세르 5세는 사마리아를 제외한 북이스라엘 왕국 전역을 점령했고, 사르곤 2세는 사마리아를 함락시켜 북이스라엘과 사마리아를 아시리아 제국으로 편입시켰다. 사르곤 2세는 곧이어 이스라엘 주민 수만 명을 추방하고 그 대신 다른 민족을 이스라엘에 정착시켰다.
아시리아는 사르곤 2세 이후 4대(90년)에 걸쳐 사르곤 왕조로 불렸다. 사르곤 왕조는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의 오리엔트 일대를 지배하는 제국을 건설했으며, 특히 사르곤 2세로부터 왕위를 계승한 센나케리브(재위 기원전 704-681) 때는 이집트 전역을 지배하는 대국이 됐다. 하지만 이후 아시리아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이집트 경영에 몰두한 나머지 주변국 메디아, 스키타이, 칼데아인들의 잦은 침략을 받고 기원전 612년, 아시리아는 맥없이 멸망한다.
아시리아를 대신해 등장한 나라가 바로 신바빌로니아다. 아모리계 유목민으로 바빌로니아 남부에 정착한 칼데아인은 점차 세력을 확장했고, 나보폴라스르(제위 기원전 625-605)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신바빌로니아 부흥기로 접어들었다. 과거, 같은 바빌론을 수도로 세운 함무라비 왕(재위 기원전 1792-1750) 시대에 세상을 풍미했던 고대 바빌로니아 왕조와 구별되며, 일반적으로 신바빌로니아로 불린다. 신바빌로니아는 네부카드네자르 2세(성서명 느부갓네살, 재위 기원전 605-562) 때 전성기를 맞았고, 유다 왕국은 이 무렵 멸망한다. 신바빌로니아가 지배한 도시 우르는 앞서 언급한 ‘칼데아의 우리’를 뜻한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따르면 아브라함과 그의 아버지 데라가 가나안 땅을 찾아 출발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