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직그림이 올라온 곳 :
https://www.youtube.com/watch?v=hpU-sqrKNN4
☞ 옮긴이(잉걸)의 말 :
나는 열아홉 해 전(서기 2004년), 한 누리그물(‘인터넷’을 일컫는, 순수한 배달말 낱말. “누리[‘세계’]를 [하나로] 옭아매는 그물”이라는 뜻이다) 신문에 올라온 교수의 글을 읽고, 소년 시절(서기 1990년대 초/중반)에는 ‘도적떼’/‘악당’으로만 여겼던 ‘황건적(黃巾賊)’이 사실은 창칼을 들고 일어날 까닭이 충분한 시대를 살았던 농민군이었고, 정말로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장각 삼형제나 [나중에 ‘황건적’이 되는] 태평도(太平道) 신자들이 아니라 착취와 억압과 부정부패로 후한(동한)을 망친 귀족과 호족들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2~30대를 거치면서(그러니까, 어른이 되고 나서) 높은 실업률이나 보통 사람/가난한 사람에게만 많이 부과되는 직접세나 툭하면 올라가는 물가나 사실상 깎이거나 제자리인 월급이나 툭하면 부정되기 일쑤인 노동 3권이나 신자유주의가 부추긴 양극화나 정규직/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이나 재벌의 탈세/정치 개입이나 한국의 농촌/농업이 입는 타격을 보며,
그 모든 일을 겪고 사는 오늘날의 평범한 한국인들(노동자이거나, 여름지기[‘농민’]거나, 실업자인 사람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후한(동한) 시대에 지방 호족이나 중앙 귀족들이나 황제의 외척(外戚. 외가 쪽, 그러니까 어머니 쪽 친척) 때문에 몰락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빌어먹는 떠돌이나 예농(隸農. 대귀족에 흡수된 여름지기들. 노예나 농노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다)이 된 후한 백성들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고,
전자가 현실에 불만을 품고 분노하듯이, 후자가 결국 ‘황건적’이 되어 들고 일어난 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움직그림은, 그런 내 이해와 풀이조차도 ‘수준 낮은 것’임을 일깨워주었으며, 그들이 단순히 ‘배가 고파서’ 들고 일어난 ‘반란군’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썩고 모순투성이인 세상을 통째로 바꾸려고 했던 혁명군이었고, 종교(도교의 한 갈래인 태평도)뿐 아니라 도교 이전에도 제하(諸夏 : 수도 북경[北京])를 비롯한 옛 동아시아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던 철학인 음양오행설까지 참고했던 꽤 수준 높은 조직이었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일, 그러니까 장각 삼 형제와 태평도 신자들이 병장기를 들고 일어난 일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 오늘날의 제하(諸夏) 정부는 ‘황건기의(黃巾起義)’. 그러니까 ‘노란(黃) 두건(巾)을 쓴 사람들이 일으킨(起) 의거(義 : 올바른 일)’로 부르고, 김운회 동양대 교수는 서기 2004년에 “황건 농민전쟁하면 너무 계급투쟁이라는 면이 부각되니까” ‘황건 농민운동’으로 부르자고 제안했으나,
태평도 신자들은 나중에는 약탈과 방화를 서슴지 않게 되었으니, 그들이 ‘100% 옳은 일을 한 사람’이라고 보기는 힘들고, 태평도 신자들 가운데 여름지기(‘농민’을 일컫는, 순수한 배달말 낱말)만 있었던 것도 아니니(그리고 그들은 공놀이나 달리기 같은 ‘운동’을 하러 나간 것이 아니니), 이 두 이름은 올바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럼 어떤 이름을 써야 하는가? 다행히 선학(先學 : 학문상 선배)이 제안하신 올바르고 좋은 이름이 있다.
김운회 교수가 ‘황건 농민운동’이라는 이름을 제안하기 여섯 해 전인 서기 1998년(이 해는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신청을 하고, 제2의 국치일인 ‘국가 부도의 날’을 맞이해 거의 모든 기업과 자산을 내놓은 지 한 해가 흐른 해이기도 하다. 이 해는 대량 해고/대량 실업/도산/파산/가정해체가 잇따른 해로도 기억된다) 윤내현 전(前) 단국대 교수가
열국시대(列國時代. 서기전 1세기 ~ 서기 5세기에 배달민족이 코리아[Corea] 반도와 ‘만주’와 연해주와 몽골초원 동부/동남부와 대마도와 왜[倭] 열도 서부인 규슈/시고쿠/혼슈 서부와 중부와 간토 지방에서 활동하던 시대)를 다룬 책인 『 한국 열국사 연구 』 ( ‘지식산업사’ 펴냄)에서
(비록 지나가는 투로 이야기하셨지만) '도둑 적(賊)'자를 쓴 ‘황건적(黃巾賊)’ 대신 ‘군대/군사’를 일컫는 군(軍)자를 쓴 ‘황건군(黃巾軍)’이라는 이름을, 그리고 ‘반란’을 줄인 ‘난’ 대신 ‘봉기’라는 이름을 쓰셨는데(그러니까, ‘황건적의 난’ 대신 ‘황건군의 봉기’라는 이름을 쓰셨는데), 나는 이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그래서 ‘황건적’ 대신 ‘황건군’이라는 이름을 쓰자는 윤 교수님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나아가 나는 ‘황건군의 봉기’ 말고도 쓸 수 있는 다른 이름으로 ‘태평도 혁명’이라는 이름도 제안하는데, 그렇게 말하는 까닭은 ‘혁명’이라는 말은 실패한 투쟁에도 붙일 수 있는 이름이기 때문이며(동학 혁명도 ‘반[反]봉건/반[反]외세’라는 목표를 이루는 데는 실패하였지만, ‘혁명’으로 불린다), 나아가 처음에는 환영을 받으며 시작하였지만, 나중에는 지도부나 뛰어든 사람들이 타락하여 잔인해진 일에도 붙일 수 있는 이름이기 때문이다(프랑스 혁명도 처음에는 계몽사상과 인권과 군주제/신분제도 타도를 내세우며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처형과 ‘반 혁명분자 색출’을 구실삼은 정적 솎아내기와 공포정치로 변질하고 말았으며, 결국 나중에는 나폴레옹 1세가 황제가 되는 일을 막지 못하고 사그라들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이 혁명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동학 신도들이 일으킨 혁명을 ‘동학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황건군의 믿음이었던 태평도를 바탕으로 일으킨 혁명은 ‘태평도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윤 전 교수님이 제안하신 ‘황건군’이나 ‘황건군의 봉기’를 ‘첫 번째 대안’으로 내놓고, 내가 만들어낸 말인 ‘태평도 혁명’을 ‘두 번째 대안’으로 내놓고자 한다.
부디 이 움직그림과 내가 덧붙인 < 옮긴이의 말 >이 제하(諸夏)의 갈마('역사[歷史]'를 일컫는, 순수한 배달말 낱말) – 나아가 동아시아의 갈마 – 를 나관중과 모종강의 『 삼국지연의 』 를 통해 이해하려고 하는 사관(이는 지배층 중심의 사관이고, 사회나 공동체나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 민중,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임을 부정하는 잘못된 사관이다)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빈다.
- 단기 4355년 음력 12월 18일에,
‘황건군을 올바로 이해하는 일은, 양국(“남북국”)시대 말기/후기신라 말기에 들고 일어난 신라의 농민군/성주/장군/“적고적(赤袴賊)”을 이해하는 데에 참고가 되지 않을까? 어쩌면 황건군은, “반봉건”이라는 점에서는 동학군과 성격이 비슷한 군대는 아니었을까[황건군은 다른 나라의 침략군과 맞서 싸울 필요는 없었으니, “반외세”는 내세우지 않았지만, 적어도 자기 나라의 썩어빠진 벼슬아치나 지배층과는 맞서 싸워야 했으니, 그 점만큼은 동학군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다]?’
하고 생각하는 잉걸이 올리다
첫댓글 알림 : 이 글이 소개한 움직그림을 보고 싶은 분은, https://www.youtube.com/watch?v=hpU-sqrKNN4 로 직접 들어가서 보시기 바란다. '청화수' 님이 이 움직그림을 유튜브 안에서만 재생할 수 있게 설정하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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