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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이 꽃을 바라보면서도 하나님의 솜씨를 찬양하며 감동하는 아내의 회갑기념으로 평소 좋아하는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일거다득의 효과를 얻기 위하여 선택한 “서유럽 10개국 완전 일주16일 여행계획”을 FAX로 접수하였을 때, 많은 국가 그것도 장기간, 장거리 운행에 어려움이 없지 않을 듯 하여 염려스럽기도 하였다. 암스테르담을 경유 런던 히드로공항에 도착하였을 때, 대테러작전을 위한 군견들의 휴대품 검색과 엄격한 입국절차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호텔로 향하는 연도는 휘황찬란한 서울거리와 달리 조용하고 시골스러우리 만큼 약한 룩스의 가로등이 초라히 깜박거렸다. 5대양 6대주에 영국의 국기가 항시 펄럭인다는 대영제국-식민지 개척에 나선나라다 세계민주주의의 산실인 국회의사당과 빅멘, 영국 최고의 고딕양식건물이요 다이애나비 장례식 때 TV방영으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웨스트민스터 사원”,템즈강변의 타워브릿지,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시청건물,그리고 엘리자베스Ⅱ세 여왕이 살고있는 버킹검 궁전을 둘러 보았다. 세계 3대박물관중의 하나인 대영박물관에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보물-. 고대 이집트의 Rosetta stone(기원전 196년경 이집트의 법령과 왕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돌에 새긴 비문으로 상형문자 해독의 열쇠가 되었다.),고대 앗시리아의 人頭牛像과 사자상 등- 은 역시 식민지에서 수집해 온 것들이지만 돌려줄 기색은 없는 듯하다. 영국은 컴퓨터를 처음으로 만든나라다, 1863년에 지하철을 처음으로 개통한 나라요, golf를 처음 시작한 나라,미국의 하버드 보다 100년전에 옥스퍼드, 캠브리지 대학을 설립, 철저한 예의범절 교육을 시키고, 여성의 참정권을 최초로 부여한 나라다, 그야말로 현대의 모든 것을 기초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제국시대의 잔재라 할 수 있는 왕실에대한 존경심, 과시적인 궁전 근위병들의 임무교대행사,그리고 무언가 다른 유럽국가에 비하여 활력을 잃은 듯한 시민들의 표정에서 영국은 조상덕에 명맥을 유지할 뿐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나라라는 느낌을 갖게 된 것은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여 깨닫게 되었다.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세계 3대 박물관인 루브르 박물관! 여기에 소장된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모나리자 진품”을 감상하기 위하여 매일 엄청난 관광객이 몰려오고 있으며 이 그림은 보험료 만도 20억불이 넘는다고 한다. ,나폴레옹의 개선문, 슬픈 역사의 콩코드 광장(Place de la concord:루이 16세와 마리앙투아네트 등 1천여명이 처형된 곳),아름다운 가로수와 낭만을 대표하는 상제리제 거리, 프랑스의 상징인 에펠탑 전망대 (1889년 만국박람회장에 세워진 약 300m의 탑으로 텔레비전 송신탑으로도 사용)그리고 야간 만선 유람선에 탑승하여 세느강을 흘러가자 환상적인 에펠탑 조명이 펼쳐지는 모습과 강상의 교량(세느강에 34개의 교량이 있음)을 통과할 때마다 탄성을 지르며 시민들과 화답하던 모습은 지금도 가슴을 설레게 한다. 무엇보다 유람선내에서 세계 5개국 언어중 한국어로 안내 방송되고 있어 우리의 국력이 이정도 컷구나 생각할 때 참으로 감격스러웠고, 이를 추진한 분의 노고에 감사하고 싶었다. 역시, 문화 예술의 위력이 모든 건축물과 사회전체에 잠재하고 있는 듯한 프랑스는 장차 무한한 가능성을 예견케 하였다. 포도산지로 유명한 디종을 경유하여 스위스 루째른으로 이동,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다리 카펠교, 설경을 배경으로 한 빙하의 호수위에 고고하게 떠다니는 백조의 자태, 그리고 젊은 연인들이 천혜의 자연을 만끽하며 어우러져 낭만을 즐기는 모습에서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연상케 하였으며 평지에서 산정상에 이르기까지 한치의 땅도 방치하지 않고 잘 관리하는 스위스국민의 단결력과 나라사랑의 정신은 본받을 만 하였다. 유럽여행에서 화장실 사용시 입장료(20~50센트)를 지불하고, 생수를 구입하는 것이 가장 불편한 일이었으나 스위스는 어느 곳에서 물을 마셔도 물맛 좋고, 인심 좋고 ,깨끗하여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아침 일찍 HOTEL을 나와 케이블카로 알프스 영봉중의 하나인 “하이디” 정상 설산에 도착하여 바라보는 융프라우(JUNG FRAU) 설경과 까마득히 내려다 보이는 마을정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라! 이 강산에 살고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5일째 되는 날, 나라 전체가 문화 유적이라 할 정도로 영욕의 역사가 한데 어우러져 있으며 우리 민족과 성품이 비슷하다고 하는 이탈리아 패션의 도시 밀라노에 도착하였다. 집시도 많고, 마피아단이 엄존하며, 날치기 도둑이 극성이라 는 안내자의 경고에 긴장감이 감돌았으나 이곳에 일주일은 머물러야 하기에 아침인사-“봉죠루노”,저녁인사-“보낫제라” 감사인사-“그라쩨”,헤어질 때 인사-“차오,차오”를 외우며 웃음 꽃을 피웠다.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어 제일 먼저 함락시켰다는 “스포르체스크 성”(1368년 봉건 영주가 2중벽으로 건축한 난공불락의 성), 세계에서 제일 큰 성당 (1)베드로 성당,(2)바울 성당,(3)퀼른 성당에 이어 네 번째로 큰 밀라노 두우모 성당의 위용을 바라보며 과연 역사의 땅으로 진입했구나 하는 실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날씨도 화창한 4월 16일 다시 남부로 이동하여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프랑스 영- 니스해변에 도착하였을 때 수많은 인파들이 해변가 모래사장에서 벌거벗은 알몸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은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하였다. 인구 4만 정도의 작은나라, 자동차 경주와 도박,그리고 영화배우 글레이스 켈리 왕비로 유명한 모나코 역시 지중해 연안을 따라서 이어지는 비취색의 바다에 수없이 떠있는 하얀요트들, 그리고 경사면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별장들로 관광객이 그치지 않으며, 국방과 치안은 이탈리아에 의존하는 실정이었으나 부동산 값은 타지역에 비하여 3배이상 높다고 한다. 세계 7대불가사사의 중 하나인 밀라노 “피사의사탑”은 800년 된 8층 탑으로 1층을 지을때기우러지기 시작하였고 망원경을 만들어 우주를 관찰하고 지동설을 주창한 피사 출신 갈릴레오 갈릴레이 (Galileo Galilei:1564~1642)가 이 탑에서 낙하 실험을 함으로 “무거운 물체가 먼저 떨어진다”는 “아인슈타인의 논리”를 뒤집었고, 후에 이를 체계화 하여 뉴톤이 만유인력의 법칙(뉴톤의 법칙)을 주창하였다 한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인 이탈리아 1인 GNP:25,000$, 지하경제를 고려하면 30,000$ 정도로서 사회주의 시스템을 갗춘 나라다. 그러나 남북간 지역간 소득 불균형이 극심할 뿐 아니라 소득 48% 세금을 회피하기 위하여 국민의 75%가 탈세하고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선진국과 후진국의 양면이 공존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반도는 한때 독일, 프랑스, 에스파냐등 인접국가의 각축장이었으나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치하의 사르데냐 왕국이 이탈리아 중심세력으로서 주변열강의 대립을 교묘히 이용,1861년 교황이 지배하던 로마를 제외하고 대체로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다. 처음에는 토리노, 뒤에 피렌체로 옮겼다가,1870년 로마점령에 이어 1871년 로마로 수도를 옮긴다. 통일 이후 역대 정부중 임기를 제대로 만료한 것은 단 1회 뿐으로 정치적 후진성을 면치 못하여 오늘날 EU국가중에서 못사는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는 지중해성 기후로 연평균 15℃ 정도의 온화한 기후, 천혜의 자연조건, 풍부한 대리석과, 포도,올리브, 오랜지등의 농산물, 그리고 인류 역사상 많은 위업을 남긴 조상들-갈릴레오 갈릴레이,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단테,고갱,반고흐,세잔느,소피마르소(영화배우),모니카벨루치(모델),프란체스코 마르티니(회화,조각,공학도)-등이 있었기에 그 후손들이 풍요의 열매를 따먹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조상들의 천재적인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의 혼이 결합하여 일궈낸 이탈리아 브랜드의 특성은 유행을 리드?패션감각과 실용성이 겸비되어 GUCCI, PRADA, ZEGNA, 아르마니,자동차 등 명품들을 탄생시켰고 할리우드 스타와 유명인사들의 인기가 줄지 않고 있다 한다. 로마 바티칸 박물관 을 감상하기 위하여 매일 15~20만의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으며, 로마교황의 일거수 일투족은 카톨릭계 뿐 아니라 세계정치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세계최대의 베드로성당에 소장된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의 “최후의 심판”은 7년간 그렸고, “천지창조”는 4년 5개월 동안 천정에 매달려 그린 명작으로 그 가치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다. 약속의 트레비 분수, 베네치아 광장, 포로로마노,그리고 “로마의 휴일”의 주 무대였던 스페인 광장을 관광후, 폐허된 모습으로 보존되고 있는 콜로세움(5~8만명 관람가능)을 바라보며 절대권력 앞에서 맹수들에게 찢기고 순교하던 기독교도들의 원혼의 소리가 들리는 듯 숙연해지기도 하였으나 콘스탄티누스 (Constantinus) 大帝의 기독교 공인(AD313년)으로 이나라가 반전하여 축복의 땅으로 변화된 것이라 생각하였다. “폼페이 최후의 날”- 아테네의 명문출신 美靑年 글라우쿠스와 그의 연인 이오네가 베수비오화산 대분화의 날 장님인 노예 니디아의 도움으로 바다로 피난한다는 이야기-정도로 기억하던 이탈리아 반도 남부지방 나폴리에서 남서쪽으로 20여km 떨어진 폼페이(Pompeii), 도시는 BC 4~AD1세기경, 선사시대의 용암에 의해 형성된 돌출부에 건설되었다. AD 62년 1차지진으로 큰 타격을 입었으나,완전 회복되지 못한 채 AD 79년 8월 24일, 2차로 베수비오화산의 격렬한 폭발에 의해 도시 전체가 2~3m의 화산력과 화산재로 덮였고, 격류와 함께 떠밀려온 진흙용암 더미가 20여m 두께로 도시를 휩쓸어 시민 2만 5천여명중 2만여명이 매몰된 처절한 비극의 현장이다. 그후에도 여덟차례나 화산이 폭발하였다 한다. 장구한 세월동안 잊혀진 땅에 1748년부터 샤를르 왕명으로 발굴이 시작되었으나 중단되었고, 1754년 또다시 재개하다가, 1755년 나폴리를 여행했던 독일인 고고학자 “요한 빙겔만”에의해 매몰된 폼페이를 발굴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회색죽에 채색하여 대리석으로 겉치장한 효과의 폼페이 제1건축양식으로부터 제4양식에 이르기까지 환상적인 분수와 청동대리석, 조각들이 있는 아름다운 정원, 훌륭한 그림들, 우아 한 가구, 아트리움- 열주식 저택,정교한 모자이크 바닥장식, 납관으로 연결한 상수도 및 배수 시설, 현대적인 우마차도 및 인도시설,5000여명이 관람할 수 있는 원형경기장 등은 18세기를 풍미하던 세계적인 건축, 미술, 도예, 심지어는 가구 제조업까지 폼페이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하며, 10년 안에 발굴이 끝나면 로마제국의 문화와 헬레니즘 문화의 눈부신 유산이 더 많이 공개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럼, 폼페이는 왜 이같은 비극을 맞게 되었을까? 목욕문화와 카페가 발전하고, 창녀들의 방마다 새겨진 성행위 벽화, 그리고 황금만능의 배금주의 사상이 창궐하여 하나님이 바벨탑처럼 무너뜨리고 버린 땅이 아닐까? 이렇게 나름데로 결론 내리며 “나같은 죄인 폼페이에 왔으나 노하지 않으신 하나님께 감사 & 감사”하며 후대에 귀감이 될 만한 값지고 보람된 여생을 살기로 다짐해보기도 하였다. 지중해 연안 도로를 따라 아름다운 쏘랜토-오페라가수 까루소의 별장이 버티고 있는 곳-를 관망하고, 쾌속선으로 로마 초대교황 아우구스투스의 별장이 있고, 다이애나비의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카프리 섬에 도착하여 나홀로 리프트를 타고 카푸리섬 정상까지 왕복하는 동안 파노라마 처럼 펼쳐지는 기암 절벽과 산정상에 갑자기 밀려온 운무,깨끗하고 맑은 지중해 물결은 휴양지로서 손색이 없는 절경이었다. 세계 3대미항중의 하나인 나폴리로 이동하여 산타루치아 항구를 관광후 로마로 귀환하였다. 벌써 집떠난지 열흘인데,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역사의 현장탐방으로 시간가는 줄도 잊었나 보다. 과거 神中心에서 人間中心社會로, 군주체제에서 새로운 상공업세력이 대두되어 “르네상스”의 발상지가 되었던 피렌체“ ,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내려다 보는 피렌체는 붉은 지붕으로 뒤덮인 꽃밭의 도시와 같았고, 꽃의 성모마리아 성당이란 약칭으로 유명한 피렌체 두우모 성당(상공세력이 돈을 대고 라파엘로, 레오나르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이 참여 흙,백,적,록색의 대리석으로 170년간 공사),그리고 박물관이나 성당 외에도 노상에 즐비한 각종건축물과 조각품 모두가 유서깊은 유물에 속한다 하며, 천연염색가공기술 세계 제1의 도시로 알려진 피렌체를 떠나. 이탈리아 관광의 하이라이트인 해상도시이자 물의도시- 베니스(Venice)로 이동하였다. 이탈리아 본토로부터 약 4km 동쪽 아드리아해의 끝에 위치하고 있는 VENEZIA(이탈리아로:베네치아) 인구가 약 30만 정도이다. 바다의 석호 위에 지주를 박아 건설한 120개 정도의 작은 섬과 150개의 운하로 연결되어 있는 이 해상 항구도시는 9~15C에 지중해의 상권을 장악했던 동서문물의 합류지점으로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도시로서 18세기말 나폴레옹이 점령할 때까지 1000년간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번영발전해 왔고,“아드리아해의 여왕”으로 불리우며 화려한 시대를 풍미했던 곳이다. 근대에 이르러 육지와 철도다리가 세워지고 1932년에는 자동차 다리가 건설되면서 본토와의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되었다 한다. 유람선으로 40여분만에 이낭만의 도시로 진입한 우리 일행들은 관광객이 붐비는 산마르코광장에서 현지 가이드의 익살스런 안내와 무라노 유리공장의 절묘한 유리세공 현장을 답사한 후 베니스의 명물 곤돌라를 탑승, 운하를 체험하였고, 고속택시(고속정)로 갈아타고 운하곳곳을 누비며 유럽최고의 건축물 산마르코성당, 두칼레 궁전과 감옥으로 연결된 한숨의 다리, 세계의 저명한 문화예술계의 거장들 -마리린 먼로가 살았던 저택, 단테의 집,반고흐가 살았던 집, 부라함스가 거처했던 빌딩-과 아카데미아 미술관 그리고 각종영화의 세트장이었던 아름다운 물의 도시 “이탈리아 관광, 미술, 건축예술의 보고”를 감상하면서 그들 조상들에게 감탄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오스트리아 산악도시 인스부르크로 이동할 때 차창으로 펼쳐지는 대자연은 우리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눈덮인 높은 산과 중턱에 울창한 수목이 병풍처럼 둘러싸였고, 푸르른 초원위에 노오란 민들레가 꽃밭을 이루어 곱게 물든 대지 사이로 젖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 빙하가 흘러내려 이룬 맑은 호수위에 떠다니는 하얀 보-트들, 그리고 전통양식의 가옥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은 절경중의 절경이었다.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와 “황금지붕” 등 간단한 시내관광후 여장을 푼 SPORTKLAUSE HOTEL 주변에는 스키장과 썰매장,테니스장, 탁구장 등이 준비되어 있었고 호텔앞 널다란 경작지에는 가축의 인분을 뿌려 냄새가 났으나 어릴적 유기농법으로 농사하던 고향의 정취를 회상케 하였고 조석으로 식사를 서브하던 여인들의 친절하고 해맑은 모습에서 이웃같은 친근감을 느끼게 하였다. 시계와 정밀기계 산업의 발달로 1인 GNP 35,000$정도의 부를 누리며 잘 살고있는 나라,음악의 거장 모차르트가 태어난 아름다운 나라 그러나 이땅 오스트리아 딘치에서 독제자 히틀러가 탄생하였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로맨틱 가도의 마지막 기착지인 독일의 퓌센 “루트비히 Ⅱ세”의 비극이 담긴 “노이슈반스타인 성 즉 ” 백조의 성“은 바그너 음악에 심취한 왕이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 이 성을 짖는데 혈세를 탕진하게 되었고, 1896년 완공후 왕이 집무한지 102일만에 성난 백성들의 돌에 맞아 죽었으며, 바그너는 빈으로 도망하였으나 2차대전후 히틀러의 도움으로 민족음악가로 각광받게 되었다 한다. 산정상에 198m 높이로 우뚝 솟은 성과 건너편 산으로 연결한“ 마린부르크”다리에서 내려다 보는 심산유곡의 절경을 즐기기 위하여 도보로 또는 마차 탑승으로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오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를 어찌 해석해야 할지? 로텐부르크로 이동하며 고뇌에 빠져보기도 하였다. 450여년 전 신구교 30년 전쟁을 치른 로텐부르크 성곽은 일본인,미국인,중국인, 내국인등 기부자의 성금으로 잘 보존 관리되고 있었으며 아무리 둘러보아도 한국인의 이름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네카강변에 위치한 인구 14만의 대학도시 하이델베르그에 도착하여 네카강 다리중 가장 오래된 “옛다리”라 불리는 “카를 테어도어 다리”를 바라보며 하이델베르그 고성(13세기초 건축)에 비치된 세계에서 제일 큰 술통과 갖가지 형태의 약병이 진열된 약병박물관을 볼 수 있었다. “젊은 벨르테르의 슬픔”으로 유명한 괴테의 출생지인 이곳에서는 의학분야 대학이 유명하며 비스마르크(1815~1898)시대의 교육법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어 초등학교 4학년 때 진로를 결정하고, 대학진학자의 학위취득은 8~10년이 소요된다 한다. 과거 독일 분데스리가 구단에서 차범근 선수가 활동했고 자전거 도로가 잘 발달된 인구 65만의 프랑크푸르트는 1951년 이곳 암마인에서 사회주의 인터네셔날 강령- 히틀러와 스타린 독제-에 대항하는 민주사회주의 강령을 선언한 곳으로 베르린 동쪽 9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 시청사와 뢰머광장을 관람하고 아름다운 “로렐라이 언덕”에 올라 머리빚는 여인상이 있는 마인강을 내려다보며 추억의 사진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강안 좌우로 발달된 육로, 수로, 열차수송로, 급경사를 개간하여 잘 경작하고 있는 독일인들의 근면성, 그리고 빈틈없는 관리 능력이 라인강의 기적도 이루고 통일의 성업도 달성하게 된 것이리라. 스페인의 국기가 태권도로 되었는데 독일에서도 태권도로 인하여 한국의 입김이 세어졌다 하니 옛적 광부나 간호사로 진출하여 그곳에 정착한 동포들에게 자긍심을 느끼게할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1인 GNP 61500$ 세계 제1의 국가 룩셈부르크, 이나라는 유럽의 영국,프랑스,이탈리아,네델란드,벨기에와 같이 6,25한국전쟁에 전투병 44명을 보내주었고 이중 7명이 전사하고 22명이 부상당한 혈맹국가이기도 하다. 수도 룩셈부르크 남쪽의 기차역과 북쪽의 구시가를 연결하는 루스벨트 대로 건너편에 헌법광장이 있는데 페트루세 계곡과 아돌프 다리 등 경관이 아름답다. 이곳 중앙에는 전쟁에서 죽은자들을 기리는 황금의 여신상이 있고 Gelle Fra 라는 기념비를 볼 수 있었다. 노트르담 대성당(노트르담은 프랑스어로 “성모”라는 뜻이며 프랑스에도 있음),아돌프다리등의 외관을 살펴보고.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로 이동하여 유네스코 지정 보존지역인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랑팔라스”광장과 나폴레옹 군대가 지날 때 2층에서 오줌을 쌌다는 소년 오줌싸게 동상”을 관광하고 내일의 복귀를 위하여 시 중심에 위치한 기차역 광장의 HOTEL에 일찍 여장을 풀었다. 벨기에 출신 운전기사(움베르토 얀 씨)의 기막힌 운전솜씨와 서비스정신 그리고 잘 관리하는 고급벤츠버스의 안락함 등으로 인기 만점이었으나 다른 곳보다 열악한 벨기에 호텔이 그동안의 좋은 이미지를 손상시키고 말았다. 브뤼셀에서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동하는 고속도로 좌우에도 어김없이 푸르른 밀밭과 노란 유채꽃이 우리의 마음을 아름답게 채색해 주는 듯 하였다. 네델란드는 1588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여 3대째 여왕이 통치하며 현재 Beatrix 여왕이 25년째 즉위하고 있다. 여왕은 자전거를 타고 시장을 볼 정도로 검소하고 일반 국민과 같이 소박한 사생활로 스캔들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다이아몬드와 풍차, 튤립,그리고 물의나라답게 운하의 도시를 갖고 있으며 1인 국민소득 35,000$이 넘는 부유한 나라다. 암스테르담의 중심인 “담 광장”,암스테르담 왕궁, 그리고 네델란드의 상징인 풍차마을-잔세스칸스-에 서 풍차와 나막신 제조공장을 관람하는 엄청난 관광객들을 뒤로한 채 일정계획을 마치고 암스테르담공항으로 향하였다. 서유럽 모든나라 도시마다 300~800여년 된 아름답고 우아한 건축물과 유물들이 현대건물과 조화되어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빛이나고, 한결같이 잘 살고 있는 그 비결이 어디 있을까? 무엇보다 전쟁을 치르면서도 끝까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그문화를 지속적으로 보존하고 있기에 축복의땅으로 변화된 것이 아니겠는가? 유럽 여러나라가 후손들에게 복지국가를 물려주었듯이 우리도 거시적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새로운 가치기준으로 국가와 사회를 정의사회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인적자원이 풍부한 우리는 어린이, 젊은이 그리고 기업가들에게 유럽여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가의 이모 저모를 보고 느끼게 하는 국가적 차원의 프로그램이 개발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았다 시의적절하고 돋보이는 설명으로 우리의 실력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해 준 가이드 정현박사(만물박사라 칭하고 싶은) 에게 감사하고, 아무 사고없이 16일간 기막힌 날씨로 행복만점의 여행을 즐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 감사 & 감사한다. 감 사 합 니 다!!!!!!!!!!!!!!!!!!!!!!!!! |
첫댓글 재문님의 서유럽 기행문 잘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그저 감동이내요! 그리고 사실감있게 내가 여행하는 거마냥 좋은 기행문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