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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오씨 대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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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댁 손자 글방 스크랩 우재 묘사(愚齋 墓祀)
오대댁손자 추천 0 조회 229 07.11.28 21:19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시제(時祭)와 묘제(墓祭)

 

보통 시제(時祭) 또는 시사(時祀)를 지낸다고 하지만

실은 묘사(墓祀) 또는 묘제(墓祭)를 드리는 것이다.

 

시제(時祭)는 사시제(四時祭)라고도 하는데 원래 중국에서

음력 2,5,8,11월에 고조부 이하 조상을 함께 모시던 합동제사다.

시제(時祭) 지내는 장소는 사당 또는 사당이 없을 경우 정침의 대청

곧 집에서 지내니 산소에서 지내는 묘제(墓祭) 와는 성격이 다르다.

 

(옛날 집집마다 사당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다.

사당이 있다면 상당한 집안이다. 사당이 없을 경우는 감실(龕室)을 둔다.)

 

묘사(墓祀) 또는 묘제(墓祭)

 

우리나라 예법이 대부분 유교에 기초하여 중국에서 들어 왔지만

그대로 된 것은 아니고 우리 전통 또한 가미되었다.

 

기제사(忌祭祀)는 고조부(高祖父)까지 드리는데, 드리지 않는 5대조부터

그 윗대는 음력 10월에 산소에 찾아가 제사 지내는 것이 우리 식 관습이니

이 때문에 묘제(墓祭)와 시제(時祭) 용어가 혼용된 것 같다.

 

묘사(墓祀) 지내는 장소는 당연히 그 조상의 묘소다. 산소를 잃어버렸거나

갈 수 없을 경우 연고지에 제단을 설치하여 제사를 지내기도 하니

다음 편에 올릴 함오 6()로 안동 임하에 처음 낙남(落南)하신

()공의 설단(設壇)이 바로 그런 경우다.

 

 

묘사(墓祀)와 집에서 지내는 제사가 다른 점

 

산소에서 드리는 제사는 집에서 지내는 제사와 몇 가지가 다르다.

조상 무덤에 직접 제사하니 신주(神主)나 지방(紙榜)을 쓰지 않는다.

 

또한 신에게 식사를 권유하는 유식(侑食)을 하지 않는다.

유식(侑食)이란 술을 잔에 더 따라 가득 채우는 첨작(添酌)

숭늉을 올리는 진다(進茶) 등인데 묘사(墓祀)에는 하지 않는다.

 

묘사에는 지신(地神)에 대한 제사 (后土祭)가 따로 있는데

이번에는 산신축(山神祝)을 읽는 것으로 두 제사를 합친 것 같다.

 

 

우재공 묘사 (愚齋墓祀)

 

올해 2007년 우재공 묘사(墓祀)는 지난 11 24일 토요일 오전

청기 죽골(注洞)에 있는 공의 산소에서 있었다. 필자의 먼저 글 우재 산소

에서 적은 대로 같은 묘역과 또 약간 떨어져 모두 5, 배위(配位)까지

합하여 모두 열 분에게 차례로 제를 올렸다.

 

 

진설(陳設)

 

제사는 제물(祭物)을 상 위에 차려 놓는 진설(陳設)부터 시작한다.

 

 

사진 : 우재 묘사 때 진설

 

진설에 관하여 어동육서(魚東肉西), 두동미서(頭東尾西), 서반동갱(西飯東羹)

등등 원칙을 이야기하나 별 중요치 않고 집집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필자 집안은 조율시이(棗栗枾梨)의 순서로 과일을 놓으나

홍동백서(紅東白西)라고 붉은 과일은 동쪽,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 집도 있다.

 

제사에서 좌우(左右)란 말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좌우(左右)

조상님 편에서 보는 것이 원칙으로 후손 쪽에서는 그 반대가 된다.

그러다 보면 헷갈려 쌈 나기 일쑤다. 성균관 홈페이지를 보니

좌우(左右)란 말은 쓰지 않고 동서(東西)를 쓰기로 했단다.

성균관 영감님들이 얼마나 골치 아팠으면 그랬겠는가?

 

제사에서 동서남북(東西南北)은 나침반 가지고 방위 재라는 뜻이 아니다.

제사는 남면(南面)이 원칙이니, 조상님이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본다고

가정하여 동서(東西)를 따진다. 대청이나 산소의 방위가 꼭 남향이 아니라도

제상을 바라 보는 후손 오른 편이 동, 왼 편을 서(西)로 가정하는 것이다.

 

 

강신(降神)과 참신(參神)

 

강신(降神)은 신()을 강림시키는 절차로 제사 지내는 주인이

집사가 따라주는 술잔을 받아 그릇에 담은 모사(茅沙-모래) 위에

씻어 내리는 동작이다.

 

참신(參神)은 제사에 참여한 사람 모두가 두 번 절하는 (一同再拜)

절차로 신()에게 문안인사를 드리는 의미가 있다.

 

강신(降神)이 먼저라는 주장도 있고 참신(參神)이 먼저라는 사람도 있다.

제사는 신령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강신(降神) 먼저가 맞을 것 같다.

그런데 묘사(墓祀)는 조상 산소에 대한 직접 제사라 지방이나 신주를

쓰지 않아 강신 보다 참신(參神)을 먼저 한다고 한다.

 

 

절 반 번과 읍()

 

우습지만 필자 동창들은 필자를 예법(禮法) 박사로 알고 뭘 자꾸 묻는다.

옛날 어른 들이 보시면 같잖다 할 것이나, 호랑이 없으면 토끼가 선생 노릇

하게 되어 있다.

 

친구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 절을 두 번 하느냐 두 번 반 하느냐다.

세상에 반 번 하는 절이 어디 있겠는가? 그럴 거면 아예 하지를 말지.

동창들은 좋다는 학교 나와서 사회 생활도 어느 조직이던 높이 올라갔고

나이도 어지간한데 이런 질문을 하니, 우리 종인(宗人) 중 젊은 축은 비슷한

의문 가질 것 같아 굳이 해설한다.

 

통상 반 번으로 알고 있는 절 곧 두 손을 맞잡아 앞으로 들어 올리고

허리를 앞으로 구부렸다가 몸을 펴면서 손을 내리는 동작은 읍()이다.

제사 지낼 때 절 두 번 (再拜)하면 소위 반 번 곧 읍()도 꼭 해야 한다.

 

 

재배(再拜)와 사배(四拜)

 

옛날 관습은 제사 때 남자는 절을 두 번 하고 여자는 네 번을 했다.

(절 반 번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 왜 그런 지는 잘 모르겠다.

남자는 절 두 번을 군주에게 바치고, 두 번을 조상에게 하는데, 여자는

군주를 섬기지 않으니 조상에게 네 번 한다 라는 설명을 들은 적 있다.

그러나 어색하다. 옛날 군주를 도저히 섬길 수 없는 신분이 있었는데

그럼 그 남자들은 절을 네 번 했느냐 하면 그건 아닌 듯 하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아직도 여자에게 절 네 번 시키는 집안이 있을 텐데

이제는 고쳐서 남녀 모두 두 번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헌작(獻酌)

 

강신(降神)과 참신(參神)을 하고 나면 신령에게 술잔을 올린다.

이를 헌작(獻酌)이라고 하는데 유교 예법에서는 잔을 세 번 만 드린다.

 

참사자 전원이 드리는 곳도 많은데 아마 불교의 영향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 유교 예법은 주자가례(朱子家禮)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기준으로 당파에 따라 소소한 것을 다를 수 있으나 큰 줄거리는 사대부

집안이라면 모두 같다.

 

동창 산우회에서 매년 정초에 시산제를 지낸다. 앞서 말한 대로

친구들 사이에서는 필자가 선생이라 순서를 짜야 했다.

시산제 따위가 옛날 예법에 있을 리 없어 유교 예법을 준용하였다.

그 때 잔을 세 번만 드리게 하려 했으나 다들 섭섭해 한다.

섭섭한 것 보다 잔 올릴 때 봉투를 꺼내 돼지 주둥이에 꽂는 것이

수입의 큰 몫인데, 잔도 못 올리게 하고 돈만 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어쨌던 잔 세 번 드리는 각각이 초헌(初獻), 아헌(亞獻), 종헌(終獻)이다.

 

초헌(初獻)은 반드시 제사 주인 곧 직장자(直長子) 종손(宗孫)이 올린다.

 

아헌(亞獻)은 주부(主婦)-맏며느리가 올린다고 옛날 중국 예법에 적혀있다.

그것은 부부공제(夫婦共祭)-제사는 부부가 같이 받든다는 정신에서 나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자가 잔을 올리는 풍습이 낯 설어 주로 형제들이 했다.

 

또한 묘사(墓祀)에는 여자들이 산에 가지 않으니 더욱이 할 수 없다.

내외 법이 심한 우리 전통은 묘사뿐 아니라 초상 장사 때도 여자들은

산에 가지 않는다. 다만 삼우제(三虞祭)에 가족들만 갈 때 간다.

 

종헌(終獻)은 집안 연장자나 다른 친지가 해도 된다.

 

 

초헌(初獻)

 

초헌관(初獻官)은 당연히 우재공파 종손 병기(丙基)씨다 (함오 24()

삽시저는 집 제사는 헌작이 끝난 뒤 유식(侑食)때 하지만

묘사는 초헌 때 한다.

 

 

 

사진 : 초헌관 병기씨가 잔을 들고 집사가 옆에서 술을 따른다.

집사(執事)는 병기 씨 맏아들 곧 젊은 종손 정윤 씨다.(함오 25()

 

독축(讀祝)

 

주인이 첫 잔을 올리고 꿇어 앉으면 축관(祝官)이 주인 왼편에서

축문을 읽는데 이 부분이 제사의 절정이요 핵심이다.

 

 

 

사진: 축문을 읽는 축관(祝官)은 함오 24() 창락 씨다.

축문은 이 글 맨 끝에 올리겠다.

 

아헌(亞獻)

 

 

아헌관(亞獻官)-두 번째 잔을 올린 이는 역시 함오 24() 창준 씨다.

아헌과 종헌은 잔만 올릴 뿐 축()이 없다.

 

 

종헌(終獻)

 

 

종헌관(終獻官)은 이날 참사자 중 항렬이 제일 높은 함오 23() 예원 씨다.

 

 

 

사진 : 잔을 다 올린 뒤 부복(俯伏)한 일동

그 뒤 사신(辭神)-일동 두 번 절하여 신()을 보내고

철상(撤床)-상 위에 제물을 물리면 제사는 끝난다.

 

철상(撤床)도 하지 않고 상 위 제물을 그대로 집어 먹는 일을 본 적 있는데

본데 없는 짓이다. 음복에도 다 절차가 있다.

 

우재공 묘사를 마치고 이어서 이승(以升-13(), 삼걸(三傑, 14(),

경대(慶大,16() 공 묘사를 같은 식으로 지냈다. 제물은 각각 마련해야지

썼던 것 또 올리는 귀신 속이는 행동하면 안 된다. 이어 몇 몇은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 화산재 산소 곧 학표(學標 15() 공 산소에서 절을 올렸다.

 

 

사진: 삼걸(三傑, 14() 공 산소 앞에서 제사 지내는 장면

 

 

()

 

이날 축은 한문이었다. 축문(祝文)도 한글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필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글이란 서로 뜻을 통하자는 것인 데

참사자 대부분 모르고 심지어 망인(亡人)도 알아 듣지 못하는 말을

계속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옛날 분은 몰라도 요즈음 죽는 사람 중

한문 축()을 몇이나 이해할까?

 

또 앞으로 한문 축()을 지을 사람도 없을 것이다.

축문이란 서식 책에 있는 것 베낀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다 똑같은 것 같지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말들이 있어

자칫하면 숙부 제사에 할아버지 제사에 쓰는 축을 쓸 수도 있다.

 

옛날 서당 훈장에게 무식한 사람 하나가 어머니 제사 축을 부탁했다.

지은 것을 들어 보니 아무리 몰라도 어머니 축이 아닌 것 같아 훈장에게

물었다. 혹시 잘못 된 것 아닙니까? 훈장은 바로 실수를 깨달았으나

인정하지 않고 네 어머니가 잘못 죽었지 내가 잘못 쓴 것이 아니다

라고 했다는 우스개가 있다.

 

인터넷에 한글 축문 예문이 많이 떠 있지만 대부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통 한문 축은 가락이 있다. 눈으로 읽는 산문(散文)이 아니라

소리 내어 읽는 운문(韻文)이라는 이야기다. 인터넷 예문은 모두 산문으로

되어 있어 읽는 맛이 전혀 없다. 이래서는 전통 한문 축을 대치할 수 없다.

한글로 바꾸되 가락을 넣을 수 있게 운문으로 해야 할 것이다.

 

단 지방을 한글로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지방은 그냥 글자를

적은 것이 아니라 신령을 대표하는 주술(呪術)적 성격이 있다. 한자는

출발이 갑골문(甲骨文)으로 원래 주술문자지만 한글은 그렇지 않다.

한글 지방을 쓰느니 차라리 사진을 쓰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이제 이날 우재공 묘사에 쓴 축문을 들여다 본다.

()은 병관씨가 (24-종손의 셋째 동생) 썼다.

 

 

 

대략적 뜻은 다음과 같다.

아 정해년 10월의 초하루는 신해(辛亥)일인바 15일 임술에 12대 손 병기는

감히 12대 조고(祖考-할아버지)와 조비((祖妣-할머니)에게 고합니다.

세월이 흐르고 바뀌어 서리가 내리는 때가 되니 사모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에 감히 맑은 술과 여러 음식을 갖추어 공손히 제향을 올리오니

흠향하소서

 

몇 구절을 더 살펴 본다.

유세차(維歲次)란 아 때는 바야흐로 정도다.

 

신해삭(辛亥朔)의 朔은 초하루 삭이다. 10월 초 하루의 간지가 신해(辛亥)

라는 뜻으로 아득한 옛날부터 축문이나 제문의 날짜표기 관행이다.

 

효손(孝孫); 효손 또는 효자는 직계 후손만 쓸 수 있고 방계 조상에 제사

드릴 때는 쓸 수 없다. 그 다음 줄 현() 보다 한 글자 낮추었으니

조상과 같은 높이에 쓸 수 없어 그런 것이다.

 

()는 남자 조상이고 ()는 여자 조상이니

조고(祖考)는 할아버지, 조비(祖妣)는 할머니다.

 

통정대부(通政大夫) : 12대조고 아래 통정대부가 나온다. 물론 우재공은

통정대부 증직(贈職)을 받았다. 그러나 이 어른은 숭정처사(崇禎處士)

한 분이다. 비석처럼 벼슬 적지 말고 숭정처사(崇禎處士) 라고 만 쓰는 것이

당시 숭정처사들 뜻에 더 맞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 부분 필자가 축문 작법을 잘 모르면서 생각나는 대로 해 보는 말이다.

 

기서유역(氣序流易): 세월이 흐르고 바뀐다.

근이청작서수(謹以淸酌庶羞): 삼가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음식으로

 

 

산신축 스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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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11.29 07:00

    첫댓글 많은 공부가되었습니다 축문의 필체 예사필체가 아니군요?훌륭하신 종친님들 반갑고 감사합니다 모두 뵙고싶은 님들입니다 ^-^수고많으셨구요 정말 대단하십니다,제물과 초화주 ?오의 시묘 후손들 자손만대 복받으실겁니다,

  • 07.12.03 06:14

    대단한 기록이고..상세하게 보았읍니다.. 언젠가는 종친들이 보고 많이 배우게 될것 입니다...종친들에게 교육자료로..언젠가는 사용될날이 올것 입니다...좋은기록이고..자료이네요...수고 많이 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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