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가 주는 행복
잠언 3:13~18
오늘 본문 말씀은 지혜의 찬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3절에 ‘복이 있나니’라는 히브리어 ‘아쉬레이’라는 단어는 ‘행복하여라’라는 뜻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장은 축하와 노래로 시작하는 단락입니다. 원문대로 번역하면 13절 말씀은
“행복하여라, 지혜를 얻은 사람과 명철을 얻는 사람이여!”
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지혜를 얻는 것이 행복의 길이라고 잠언 저자가 선포하고 있습니다. 행복을 얻으려고 아담의 후예들은 수많은 것들을 추구합니다. 돈, 명예, 권력, 종교, 문화, 예술, 음식, 춤, 노래, 영화, 일과 성공을 위하여 전력 추구하는 것, 수많은 것들을 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완전한 행복, 진정한 행복,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하였습니다.
무기여 안녕, 노인과 바다 등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던 미국의 작가 헤밍웨이는 ‘내 삶은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구처럼 공허하다’라는 말을 남기고 권총 자살했습니다. 수많은 남성의 연인으로 사랑을 받았던 마를린 몬로도 약물중독으로 사망했습니다. 유명한 팝송 가수 휘트니 휴스톤도 최근 약물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의 모든 찬사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그들이 왜 그렇게 불면의 밤을 보내며 괴로워하면서 약물에 의지하고 자살해야만 했을까요? 세상적인 찬사와 부와 명예가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잠깐 마음의 만족을 주는 마약과 같이, 결국 더 큰 목마름과 공허감을 안겨주는 속임수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지혜와 명철을 얻는 데 달려 있습니다. 그러면 지혜와 명철은 무엇입니까? 또 다른 성경의 지혜 찬가가 기록된 욥기 28장에 이렇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지혜는) 순금으로도 바꿀 수 없고 은을 달아도 그 값을 당하지 못하리니 오빌의 금이나 귀한 청옥수나 남보석으로도 그 값을 당하지 못하겠고 황금이나 수정이라도 비교할 수 없고 정금 장식품으로도 바꿀 수 없으며 진주와 벽옥으로도 비길 수 없나니 지혜의 값은 산호보다 귀하구나 ....그런즉 지혜는 어디서 오며 명철이 머무르는 곳은 어디인고...하나님이 그 길을 아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
그렇습니다.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입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출발점이며 귀결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곧 지혜 그 자체입니다. 여기서부터 온갖 참된 지혜가 풍성히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모든 지혜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에서 떠나게 되면, 나무 원가지에서 꺾여진 곁가지처럼 곧 말라 시들어버립니다.
왜 지혜와 명철을 얻으면 행복합니까? 14절과 15절에서 그것의 풍성함을 노래하기를,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지혜의 탁월성과 지혜가 주는 이득의 특출함은 다른 어떤 것과 비교가 불가합니다. 그 이익은 세상의 어떤 은금 보화보다 낫고 가장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낫습니다. 참 지혜, 곧 진정한 신앙의 가치와 열매가 이처럼 소중함을 기억하십시오.
그 이득에 대하여 16절 이하에서 다음 몇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장수입니다.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라고 했습니다. 지혜를 얻은 자는 이 땅에서 장수합니다. 실제로 독실한 신앙인들의 수명이 일반인들보다 더 낫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부귀입니다.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부는 물질적 부요함입니다. 귀는 곧 명예와 존경과 아름다운 이름을 얻는 것을 가리킵니다.
셋째로, 인생의 즐거움입니다.
17절에,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를 얻으면 인생을 아름답게 봅니다. 인생을 슬프게 보거나 비관적으로 보거나 두려움 가운데 보내거나 부정적이고 불확실하게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선함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해주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어줄 줄 알기에 환난의 때에도 낙심치 않습니다. 궁극적인 승리를 알기에 그는 고난 중에도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입술은 긍정적이며 원망 불평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은 고난과 시련과 풍파도 있지만 늘 즐겁게 살아갑니다. 지혜는 인생 길을 선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기분 좋게 볼 수 있도록 해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후에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마음을 갖게 해줍니다. 하나님을 인하여 그렇게 볼 수 있는 은혜를 얻습니다.
넷째로, 평강입니다.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평강은 ‘샬롬’이라는 단어입니다. 샬롬은 단지 마음의 내적 평안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가족 공동체, 교제 공동체와 사회 나라 간의 화목과 친교와 평강과 번성함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지혜자에게 그 본인과 그가 속한 공동체에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번성함과 평안함과 화목함의 은총을 넘치게 부어주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영생을 얻습니다.
18절에,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고 하였습니다. 생명나무는 에덴 동산 중앙에 있던 나무입니다. 새 예루살렘 생명수강가 좌우에 있는 나무입니다. 그것은 가장 영원한 행복과 만족과 생명을 가져다 주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영원한 생명의 근원을 가리킵니다. 즉 지혜는 참 생명나무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지혜를 얻은 자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13절부터 시작된 지혜의 찬가는 맨 처음 단어가 ‘행복하여라’로 시작하여 18절 맨 마지막 단어는 ‘복되도다’ 곧 ‘행복하여라’로 끝이 납니다. 지혜는 즐겁고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 참된 행복의 비결은 바로 지혜를 얻는 것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지혜를 얻으십시오. 지혜는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오늘 지혜 찬가 속에 나오는 단어를 살펴보면서 어떤 자세로 얻어야 하는가를 잠깐 생각해봅시다.
먼저, 지혜를 열심히 찾아야 합니다.
13절에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에서 ‘얻는다’는 단어는 ‘찾는다’는 뜻입니다. 열렬히 찾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지혜는 열렬히 부지런히 찾는 자가 발견합니다.
또한, 자기의 것을 팔아 지혜를 사야 합니다.
14절과 15절에 보면,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낫고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하신 진주 장사꾼의 비유 말씀이 연상됩니다. 천국은 마치 가장 값진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그것을 발견하니 돌아와 자기의 전 재산을 다 팔아 그것을 샀다고 했습니다. 지혜라는 가장 값진 진주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것들을 다 팔아서 바꿔야 합니다. 내게 귀한 것, 소중한 것, 의미 있는 것들을 내다 팔지 않으면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나의 삶에 버려야 할 것들, 끊어야 할 것들을 그냥 다 가지고 있는 채로 참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만약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담그면 결국 가죽부대도 터지고 포도주도 다 쏟아져 버리게 됩니다. 낡은 옷에 새 헝겊을 기우면 새 것이 낡은 옷을 잡아당겨서 결국 옷 전체를 못쓰게 됩니다. 두 가지를 공존할 수 없습니다. 지혜는 모든 것을 다 새롭게 바꿀 것을 요청합니다. 모든 것을 다 팔아서라도 지혜를 얻도록 하십시오. 어정쩡하게 내 것을 끌어안고서 내다 팔지 않으면 바꿀 수 없고 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또한 지혜를 강하게 붙들어야 합니다.
18절에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얻는다‘는 단어는 ’하자크‘라는 단어인데, 강하게 쥔다. 강력하게 붙든다는 뜻입니다. 지혜는 강하게 붙들어야지, 느슨하게 잡는 둥 마는 둥하면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참 지혜는 강한 의지와 근면함과 열정으로 붙드는 자만이 얻을 수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에 근면하십시오. 순종과 겸손의 손으로 꼭 붙드십시오. 반드시 지혜를 얻을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지혜를 견고하게 끝까지 붙들어야 합니다.
18절 하반절에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라고 했는데, 이 때 ‘지혜를 가지다’에서 ‘가지다’는 단어는 ‘따마크’라는 단어로서 견고히 붙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꼭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지속적으로 붙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혜를 잠깐 동안의 열정을 가지고 추구하고 중단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끝나면 안됩니다. 상황이 달라져도, 시간이 많이 흘러도, 여러 시련과 역경이 다가왔어도 변함없이 지혜를 붙들고 그 지혜를 따라 살아가야 지혜의 이득을 끝까지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지혜가 붙들어 지켜줄 것입니다. 그의 삶을 책임져주시고 약속된 풍요로운 이득을 베풀어줄 것입니다.
지혜 없는 삶은 공허합니다.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아도 내적으로 가난합니다. 영혼이 배고픕니다. 목마릅니다.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두려움과 불안에 싸여 삽니다. 그러나 지혜를 가진 자의 삶은 만족합니다. 행복합니다. 풍요롭습니다. 안전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지혜를 붙드는 사람이 됩시다. 지헤를 열렬히 찾고 모든 것을 다 팔아서라도 지혜를 삽시다. 무엇보다 지혜를 움켜쥐고 결코 놓아주지 맙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모든 계명을 즐거워하며 그에게 기도하며 범사에 그를 인정하며 모든 것을 맡기며 감사하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섬기며 즐거움으로 살아갑시다. 이 하늘 지혜를 얻어서 “진정 내 인생은 행복하고 아름답고 만족하다”라고 항상 고백할 수 있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주여, 행복의 비결이 바로 지혜를 얻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이 지혜를 발견했으니 이 지혜를 굳게 붙들고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옵소서. 날마다 더욱 성령으로 충만하여 이 지혜로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게 하셔서 지혜의 이익을 누리며 이를 간증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