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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적 관점에서 본 능력대결에 대한 소고
하민기 교수
1. 서론
능력대결(Power Encounter), 능력전도(Power Evangelism), 혹은 “표적과 기사들”(Sign and Wonders) 또는 영분별도(靈分別圖, Spiritual Mapping) 등 하나님의 현존하는 통치와 이에 따른 영적 능력의 현실성에 대한 강조는 미국의 경우 80년대 초부터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교회성장 운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McGavran)은 “표적과 기사들”이 1980년대의 세계 교회의 현저한 현상이 될 것으로 믿었다.
"1980년대는 점차적으로 교회성장 운동의 지도자들에 의해서 성장의 영적인 역동성에 최고의 우선권이 주어질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러한 영역 중 두 가지가 특히 두드러질 것으로 보여지는데 그 중 하나는 교회 성장에 있어서 초자연적인 표적과 기사들의 역할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에 있어서 기도의 역할입니다. "
본 소고는 능력대결, “표적과 기사들”, 및 영분별도와 교회성장 운동의 관계를 개혁주의적인 선교의 원리에 입각하여 개괄적으로 조망하고 재평가하는데 주안점을 두려한다. 이러한 목적은 아래에서 제기하는 세 가지 질문에 기초하여 논의가 전개되어 질 것이다.
1. 능력대결은 어떠한 배경을 통해서 일어나게 되었는가?
2. 사도행전에 근거해 볼 때 “표적과 기사들”은 교회를 성장케 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요인들이었는가?
3. 능력 대결에 기초한 교회 성장의 신학은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균형잡인 신학인가?
본 논고는 세 부분으로 대별되어 진다.
첫 부분은 능력 대결이 나타난 일반적인 배경 및 선교 신학적인 배경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 운동에 대한 망원경 식으로 조망을 하는 것이다.
둘째 부분은 교회성장 운동에 있어서 “표적과 기사들”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 운동의 개괄적인 조망을 위해 이 문제와 관련된 문헌들을 섭렵하므로 본 주제의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려 한다.
세 번째 부분은 “표적과 기사들”의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사도행전의 관점과 개혁주의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평가하는 것이다.
II. 능력 대결이 강조되기 시작한 배경
현세대에 들어와서 기독교 신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사역을 능력대결로 보고 이것을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사역으로 이해할 뿐 아니라 이러한 주님의 본을 쫓으려는 일련의 움직임들이 있어왔다. 특히 70년대의 오순절주의자들이나 은사운동을 주장하는 자들은 이러한 면들을 강조해 왔는데 그들은 전도와 선교 현장에 있어서 악한 영들을 쫓아내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확신을 가지고 불렀다. 1970년부터 지금까지 복음주의적인 목회자들과 신학자들, 상담가들과 교사들에 의해 이 주제에 관한 글들이 수없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특히 풀러신학교의 영향으로 선교학은 주로 사회과학적인 접근으로 치우쳐 왔는데 이것은 현대 선교학의 아버지인 맥가브란 박사를 중심으로 한 교회성장학의 출현과도 관련이 있다.
맥가브란 박사는 선교학을 사회과학적인 방법을 통해서 형성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는데, 이 때문에 초자연적인 부흥, 영성 또는 영적 능력과 같은 면들을 도외시할 위험이 상존(常存)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죤 윔버(John Wimber)와 같은 인물에 의해 주도된 새로운 운동이 일어났다. 풀러신학교의 피터와그너(C. Peter Wagner)는 이를 가리켜 “성령의 제 3의 물결”이라고 지칭했는데(오순절 운동을 제 1의 물결, 은사운동을 제 2의 물결로 보고), 윔버는 가르치기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예배할 때 치유 사역을 위한 적절한 상황이 주어지기만 하면, 성령께서 오셔서 주권적으로 각 개인에게 은사를 부여하시고, 다양한 방법으로 신자 상호간에 사역토록 하신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사역은 영분별과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능력대결, 영적전투 또는 영분별도와 관련한 다양한 책들과, 논문들이 발표되었고 이러한 영향으로 약 십 수년 전에 풀러신학교에서 “표적과 기사들”(Signs and Wonders)이란 주제로 강좌가 개설된 것은 이와 같은 배경이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이 강좌는 피터 와그너에 의해 소개되었고, 죤 윔버와 같은 이가 중심적인 역할을 했는데 단기간에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강좌가 되었고, 그 이후 많은 신학교들이 능력대결이라는 과목을 공식적인 과목의 하나로 채택하게 된 것이다.
III. 교회성장 운동에 있어서 표적과 기사들
우리는 “표적과 기사들” 혹은 능력 대결, 또는 영분별도와 같은 개념이 더 이상 오순절주의자들과 은사운동주의의 전유물로만 사용되고 있지 않음을 주목해야한다. 이론과 실제에 있어서 표적과 기사들에 대한 강조는 다양한 교파와 교단 내에서 사용되어지고 있다. 능력대결이란 용어가 처음 사용되어 진 것은 A.R. Tippett이었지만, 능력대결이란 주제는 복음주의 진영, 특히 선교학 분야에서 주된 관심사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는 풀러신학교의 피터 와그너와 챨스 크래프트(Charles Kraft), 시카고에 위치한 트리니티 신학교의 전 교수였던 티모티 와너(Timothy Warner), 탈봇 신학교의 닐 앤더슨(Neil Anderson)과 아놀드 클린튼(Arnold Clinton), 콜롬비아 신학교의 필립 스타인(Philip Steyne)와 같은 분들은 모두 이 주제에 관한 저작들을 수권씩 출간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전 WEC(Worldwide Evangelization for Christ)의 선교훈련원인 MOC(Missionary Orientation Course)의 원장이었던 데이빗 버넷(David Burnett)이 능력대결과 내적 치유사역에 관하여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전하고 있다.
피터 와그너와 디모티 와너과 같은 선교학자들은 능력대결의 개념을 알랜 티펫(Alan R. Tippett)이 1971년 발간한 People Movement in Southern Polynesia란 책에서 제시한 이론적 준거 틀에 기초하여 정의를 내리고 있다. 와그너는 능력대결을 “특정한 종족 집단 내에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악령들과, 능력과 거짓된 신들 보다 더욱 능력이 있으시고, 예배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며, 두려워할 분이심을 가시적이고 실제적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이라고 간략하게 정의를 내린다. 이와는 달리 그는 능력대결을 보다 포괄적으로 다시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린다.
"능력대결은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엡1:19)을 나타 내는 것으로 십자가 상에서 완성된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령의 사역에 기초하여 (행1:8), 하나님의 자녀들을 공격하고 불신자들을 통치하려는 사탄과 귀신들의
공격에 대항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며 믿는 자 들을 굳게 세우기 위한 것이다. "
와그너가 “표적과 기사들”이란 용어를 선호한다면, 디모티 와너는 신자들과 악의 세력간의 갈등과 투쟁을 포함하는 영적전투(Spiritual Warfare)란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들은 3가지 유형(類型)의 능력대결로 상술되어지고 분류되어 지는데, 이러한 정의는 Christiaan de wet에 의해서 함축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첫 번째 유형은 개인적이고 사적(私的)인 상황하에서 새로운 신자들이 회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병이 낫게 되든지, 악한 영의 결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경우이다.
두 번째 유형은 일련의 새로 믿은 신자들, 예컨데 핵가족이라든지 대가족들이 능력대결을 체험하는 것인데 자발적이고 의식적으로 그들이 새로이 발견한 믿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영들과 능력과 귀신의 세력에 대항하는 경우이다.
이와는 달리, 세 번째 유형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도전하는 것으로 공적인 자리에서 상당수의 불신자들이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목격하게 되는 경우이다. de wet에 따르면 이러한 경우는 기독교 선교사들이 어떠한 종족 집단의 우두머리 혹은 초자연적인 영적인 일의 전문가 예컨데 무당과 점술가들에 의해 도전을 받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정령숭배가 만연된 사회에서 일어나는 영적전투가 이러한 유형의 범주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능력대결의 본질과 목표를 주시해 보아야 한다. 능력대결의 주된 초점은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사람들을 자유케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종종 능력대결은 관중들의 관심을 유발시키기 위해 오용(誤用)되어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기 보다 사람들의 인기를 끄는 데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표적과 기사들”에 대한 가르침의 가장 대중적인 옹호자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빈야드 교회를 시무했던 죤 윔버일 것이다. 그와 케빈 스프링거(Kevin Springer)는 그들의 입장을 Power Evangelism(1986), Power Healing(1987)과 Power Points (1991) 등의 책에서 잘 요약하고 있다. 그들의 사상를 몇 문장으로 요약하긴 어렵지만, 주된 논지는 (1)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셨고, 그 나라의 도래를 “표적과 기사들”로 나타내셨으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말씀의 선포와 능력의 시현(示顯)을 통해서 나타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2) 이러한 표적과 기사들은 신약 시대에 매일 매일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었으므로 오늘 우리에게도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3)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 성장은 전반적으로 기적이 일상화된 상황 속에 일어났고, 사도행전에 표적과 기사들은 14차례나 말씀의 선포와 관련이 되고 있고, 그 결과로 교회가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20차례 이상 교회성장은 제자들에 의해 행해진 표적과 기사들의 결과라는 것이다.
III. 능력 대결의 문제점 및 비평
1. 죤 윔버와 그를 옹호하는 자들은 그들의 논지가 신중하고 힘이 있다고 변론한다. 그러나 아직도 미해결된 문제들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나는 “표적과 기사들”과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 성장의 원리에 대한 본 논고와 관련하여 3가지 의문을 제기하려 한다.
첫째, 표적과 기사들이 교회 성장의 주된 비결이라는 것이 확실한가? 죤 윔버는 사도행전에서 14군데의 사례를 들면서 “표적과 기사들이 말씀의 선포와 병행하여 교회의 숫적인 성장을 가져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도행전 8장 6절과 12절을 연관 시켜볼 때, 사마리아인들이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쫓더라” 표현이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기적과 교회 성장의 관련성을 가진다고 보기 어렵고, 이러한 개념은 사도행전의 저자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라기 보다는 죤 윔버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예를들어, 사도행전 2장 1절에서 4절에 나타나는 ‘급하고 강한 바람’, ‘불의 혀’, ‘다른 방언’과 같은 것이 죤 윔버의 주장대로 2장 41절의 삼천명이 회심하게 되는 직접적인 동인(動因)으로 보기 어렵고, 3장 1절 이하에 나타나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고친 기적이 4장 4절의 남자의 수가 오천명이 되는 직접적인 결과로 보기 어렵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이러한 숫적인 성장이 베드로를 통해 전파된 말씀의 능력에 기인함을 강조하는 듯이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참된 복음전파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성령의 능력으로 회심과, 중생과, 교회성장을 가져오는 능력전도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표적과 기사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삷 가운데 매일 일어나는 일상적인 것이라는 죤 윔버의 주장이 확실한 사실인가? 그렇지 않다. 기적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기 보다 초자연적인 역사이다. 사도행전은 이러한 기적이 항상, 언제나 일어나는 것을 지지하고 있지 않다. 사도행전의 강조점은 기적이 대부분 사도들(행2:43, 5:12), 특히 사도 베드로와 바울에 의해 시행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스데반과 빌립도 표적과 기사를 행했고, 다른 사람들도 기적을 행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데반과 빌립은 사도들에 의해 안수 받은 몇몇 되지 않은 집사들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셋째, 오늘날 강조하고 있는 표적과 기사는 신약에서 기록되고 있는 것과 동일한 것이 확실한 사실인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중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시고, 물위로 걸으신 것을 통해 예수님은 자연계가 주님께 최종적이고 온전하게 순종하고 있음을 나타내 보이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미 도래했을 뿐 아니라(already), 아직도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음을(not yet) 공표(公表) 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기적이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동일하게 항상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베드로와 바울과 마찬가지로 기도하고 찬송하므로 감옥에 갇힌 자들이 하나님의 천사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출될 것을 기대할 수 없듯이, 거짓말하면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이 즉각적으로 벌을 받아 죽는다고 단정하여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치유 사역 혹은 능력대결 역시 오늘날 표적과 기사를 강조하는 제 3의 물결을 옹호하는 자들의 주장과는 거의 상이한 양태로 나타난다.
2. 능력 대결의 두 번째 큰 문제점은 성경 외적인 출처(Extra Biblical Resources)에서 발견된 자료들로 능력대결의 문제를 일반화, 교리화 하려는 경향이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 풀러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Charles Kraft의 책의 경우 현저하게 드러나는 현상인데, Kraft는 그의 책 Defeating Dark Angels (1992)에서 그리스도인들도 일반적으로 귀신에 들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대부분의 교회에서 평균적으로 교인들의 3분의 1 가량이 귀신들려 있다고 말한다(28). 그는 다양한 기능을 가진 귀신들의 이름을 나열하는데, 죽음의 귀신, 어둠의 귀신, 신경쇠약, 강간, 종교성, 동성애, 분노, 성도착과 같은 것이 귀신과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123-125). Kraft는 그의 책에서 “귀신들로부터 정보를 얻음”(Getting Information From Demons)(157-175)이란 장(章)에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고 초자연적인 세계의 정보를 얻기 위해 귀신을 인터뷰하므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Kraft의 방법론은 성경 외적인 자료-심지어는 귀신들로부터 마귀에 관한 자료를 얻을 수 있다는 엄청나게 위험한 발상에 근거하고 있다. 이것은 풀러신학교 세계선교대학원의 상당수의 교수들이 성경을 영감된 말씀으로는 믿지만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발상에서 추론되어진 자연스런 결과인 것이다. 한때 풀러신학교의 교수의 한사람이었던 헤럴드 린셀이 그의 책 성경에 관한 논쟁에서 지적한데로 이러한 흐름이 근자의 풀러신학교의 흐름을 대변하는 것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본 논자가 믿기로는 이러한 접근은 위험천만한 발상으로 성경을 기록된 하나님의 무오한 영감된 말씀으로 믿는 개혁주의자들에게는 용인할 수 없는 태도인 것이다.
3. 레이너(Rainer)는 우리가 능력전도와 그것에 수반하는 교회성장 운동을 신중하게 취급해야 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레이너는 복음주의 진영 안에서 두가지 유형의 그룹을 소개한다. 한 그룹은 “표적과 기사”가 사도시대에 종식되었다고 믿는 집단이고, 또 다른 집단은 능력대결이 오늘날에도 역사적으로 신학적으로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 집단이 있다는 것이다. 레이너는 능력대결에 대한 그의 입장을 아래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확실히 능력전도의 모든 진영에서 극단적인 조짐이 발견되어 진다. 예수님께서 표적을 구하는 자들에게 경고하셨음(마12:38-39, 16:1-4, 막 8:11-12, 눅11:16,29, 23:8-9, 요4:48)을 주시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 기독교의 가장 큰 약
점은 초자연적인 현상에 관한 우리의 회의적인 태도이다. 하나님은 우리들 가운데 역사하시고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살아 계시는 하나님으로 보고, 인정하는 데에 실패하였다. 지성이 결여된 감상주의나 죽은 정통이 오늘날 신약성경의 입장을 따르려는 기독교의 유형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 두가지 유형 중 어떤 것도 오늘날 우리의 모델이 되어서는 더욱 안된다. "
4. 능력대결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능력의 개념에 대한 그릇된 오해에 놓여 있다. 능력은 곧 가시적으로 악의 세력을 이기는 것으로 한정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악의 세력을 가시적으로 이긴 예들은 구약의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서 바알 선지자들이 굴복되는 경우도 있고, 또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어 돼지에게 들어가게 해서 몰살케 하는 것을 통해서도 나타난 것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오직 말씀으로만 사람을 변화시키신 예가 허다하다. 사마리아 여인의 경우가 그랬고 니모데모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러한 사례 역시 귀신을 쫓아내고 악의 영을 굴복시키는 것 못지 않는 능력의 표현이다. 능력 대결을 잘못 강조하다 보면 이와 같이 말씀을 통해서 영혼들이 거듭나는 혹은 치유되는 내적인 변화에 대한 능력의 예들을 소홀하게 취급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가시적인 것만 정상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5. 능력대결의 또 다른 문제점 중 하나는 능력에 대한 강조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의 다양한 가치관 중에서 능력으로 대결하여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효과를 얻는 것만 귀하게 생각하고, 사랑과 겸손,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같은 성령의 열매를 무시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Neil Anderson은 그의 책 The Bondage Breaker (1990)에서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은 능력대결 (Power Encounter)이 아니라 진리 대결(Truth Encounter)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Charles Kraft 같은 이조차 그의 글 “Allegiance, Truth and Power Encounter in Christian Witness"(1991)에서 진리에 대한 혼합주의적인 경향을 피하기 위해 충성심의 대결(Allegiance Encounter)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들은 능력 대결의 다양한 면들 가운데 한 면만을 강조하는 듯이 보인다. 본 논자가 믿기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능력대결(Power Encounter)은 하나님의 진리를 직면케 하도록 인도되어야 하며(Truth Encounter), 진리를 받아들인 자들은 그 진리의 주인되신 주님께 대한 헌신으로 충성심을 나타내 보여야 하고(Allegiance Encounter), 그 결과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통해 격려와 도전을 받는 사랑의 대결(Love Encounter)로 귀결되어야 한다.
IV. 결 론
우리가 성경을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기준과 법칙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극단적인 태도와 자세를 배제해야한다. 우리는 기적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해서도 안되지만, 기적이 항상, 매일 일어난다고 주장해서는 더욱 안된다. 기적은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일상적인 것도 아니다. 그 보다도, 우리는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해서 일하실 뿐 아니라 초자연을 통해 일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그분에게 마음을 열어 놓아야 할 것이다. 성경이 기적적인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고, 성경의 하나님을 자기 백성을 위하여 기적을 행하셨고, 행하시는 분이시지만,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기적은 일상적으로, 언제나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능력대결, 영적 전투, 또는 영분별도와 같은 현시대의 선교현장의 조류에 민감한 주제들을 이해하고, 판단하고, 결정함에 있어서 우리의 준거 기준(frame of reference)은 다시금 영감되고 무오한 66권의 계시된 말씀에 기초해야 한다. 선교 현장의 상황(Context)이 성경의 본문(Text)를 결정할 수 없고, 성경의 본문과 문맥이 올바른 선교의 방향성과 선교 현장의 필요에 맞는 멧세지와 선교 신학을 결정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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