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현명한 청년의 무지
<1>
“하나님은 없어요. 하나님이 있다면 어떻게 저에게 이럴 수가 있겠어요.”
낙태수술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현명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보였다. 나는 아직 학생 신분인 현명이가 임신을 하고 또 낙태수술을 하였다는 사실을 부끄러워 할 것 같아 염려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괜한 걱정이었다. 오히려 현명이는 그런 일을 하였다는 것을 마치 성인인증이라도 받은 것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현명이와 낡은 학생식당을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한 ‘느티나무 카페’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하얀 목련이 미세한 신음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던 봄날이었다. 하나님은 없다는 현명이의 당찬 말에 나는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나현명은 창원에 있는 대학의 생물학과를 다니다가 복제동물에 관심이 생겨 우리 학과로 편입해왔다. 대학원에 가서 형질전환 복제동물에 관한 연구를 하여 난치병 환자들의 치료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이유였다.
편입학시험 면접장에서 만난 나현명의 첫인상은 매우 당찬 여학생이었다. 단정한 단발머리에 까만 뿔테안경 너머로 빛나던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현명이의 눈은 ‘나를 안 뽑으면 당신이 손해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논리 있게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답변을 하던 현명이는 확실히 다른 응시자들과 차별되었다. 물론 나는 당연히 현명이에게 가장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그저 인간들이 생각과 상상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고 믿어요.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인간이 신을 만든 것이 맞지,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잖아요?”
아메리카노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현명이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동물발생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현명이에게 생명과학을 공부하려면 생명의 창조주인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현명이는 대부분의 생명과학자들이 그러하듯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 하나님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나 포세이돈과 같이 인간들이 만들어 낸 허구의 존재에 불과했다.
나는 그렇게 똑똑한 현명이가 현대 과학으로 인해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된 것이 안타까웠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명이에게 하나님의 존재가 믿어지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다. 청년의 시기에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으면 삶의 목적과 가치관이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에 따르면 인간은 우주의 빅뱅이후 오랜 시간 속에서 우연히 태어난 존재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연히 태어난 인간은 그렇지 않은 인간에 비해 삶의 의미나 가치도 한없이 낮아지게 된다. 그래서인지 과학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요즘 청년들은 살아생전 하고 싶은 것을 다 해야 된다는 사고방식에 포로가 되어 있는 것 같다. 그 결과 자신의 성도 예전에 비해 비교적 자유스럽게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요즘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는 남녀학생들이 비싼 방세를 아낀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동거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래서 자취를 하는 여학생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알고 있었지만, 실제 내 주변에 있는 여학생이 임신과 낙태를 했다는 소식은 충격이었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것은 그런 것을 교수 앞에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야기하는 현명이의 태도였다. 물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연기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조차 내게는 문화충격이었다.
그것은 확실히 문화충격이었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논리의 비약은 현명이가 자신이 겪은 임신과 낙태의 아픔을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있다면 자기 같은 사람을 그렇게 아프게 만들 수 없다는 말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딱히 할 말을 잃고 있던 나는 현명이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그 눈빛에는 평소 생명의 창조주인 하나님을 믿으라고 강권하던 나를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승리의 쾌감이 들어있었다.
<2>
정말 현명이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없는 것일까? 그래서 이 세상은 공평하지 않기 때문에 착한 사람들이 나쁜 일을 당하기도 하고, 반대로 나쁜 사람이 잘 되기도 하는 것일까? 하나님이 없으니까 아무 죄 없는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다가 단체로 바다에 빠져 죽은 것일까? 수많은 청년들이 취직을 못해 난리인 반면 어떤 사람은 부모를 잘 만나 어린 나이에 대기업 임원이 되는 불공평한 세상이 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분명히 하나님은 존재하시고 공평하시다. 문제는 그런 하나님의 존재가 인간의 지혜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믿어지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철학책 제1장에 보면 하나님(신)에 대해 이렇게 정리되어 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타자에 의해 정의되지만 신은 타자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 세상의 모든 타자를 정의해 주는 궁극적인 존재다.’ 이 명제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자신의 창조주인 하나님을 정의할 수 없다는 의미다.
보통 사람들은 신의 존재에 대해 세 가지의 반응을 보인다. 신은 있다(유신론), 신은 없다(무신론), 그리고 신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불가지론)는 반응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유신론자든지 무신론자든지, 아니 심지어 불가지론자들이라 할지라도 모두 신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신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일본의 저명한 물리학자 츠즈키 타쿠지는 유신론자는 아니었지만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책을 썼다. 그는 또 4차원의 세계를 설명하는 <4차원의 세계>라는 책에서 신의 존재를 물리학적으로 증명하였다. 훗날 츠즈키 타쿠지는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것처럼 우주의 신비로 인해 시간여행이 가능함을 증명한 <시간의 패러독스>를 저술하였다. 소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기적’의 현상이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함을 보여준 것이다.
츠즈키 타쿠지의 설명에 따르면 저차원에 사는 존재는 고차원에 사는 존재를 이해하지 못한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1차원은 선이고 2차원은 선이 무한히 중첩된 면이다. 그리고 3차원은 면이 무한히 중첩된 공간이고 4차원은 공간이 무한히 중첩된 시공간이다. 따라서 1차원의 선위에 사는 존재는 그 차원을 뛰어넘은 2차원의 면에서 사는 존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1차원 존재는 선위에서 직진과 정지라는 두 가지 운동밖에 할 수 없다. 그런데 1차원 존재가 선을 따라 직진하다가 자신이 밀고 갈 수 없는 어떤 장애물을 만나면, 전진도 후진도 못하고 그냥 그 자리에 서서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선들이 중첩된 면에서 살고 있는 2차원 존재는 그런 1차원 존재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 물론 1차원 존재는 바로 옆에 있는 2차원 존재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서서 죽을 수밖에 없는 1차원 존재가 불쌍하여 2차원 존재가 1차원의 선위에 있는 장애물을 다른 선위로 밀어낸다면, 1차원 존재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선위에서 갑자기 장애물이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1차원 세계의 법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인 것이다.
같은 논리로 2차원 존재는 3차원 존재를 이해하지 못한다. 우물 안에서만 사는 개구리를 2차원이라고 하고, 우물 밖 세상에 사는 인간은 3차원이라고 가정해보자. 어느 날 인간이 우물 안의 개구리를 잡아 하루 종일 데리고 놀다가 다시 우물 속으로 넣어주었다. 그러면 분명 그 개구리는 우물 안 개구리들에게 “여러분, 이 우물 밖에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인간을 믿으십시오!”라고 외칠 것이다. 하지만 우물 밖에 나가 본 적이 없는 다른 개구리들은 그렇게 외치는 개구리를 마치 미친 개구리처럼 취급할 것이다.
츠즈키 타쿠지에 따르면 3차원 세계에 사는 인간은 4차원의 세계로 진입할 수 없다. 그래서 어느 날 4차원 존재인 신이 3차원 세상의 홍해를 둘로 가른다거나 죽은 자를 다시 살려내는 기적의 현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3차원의 과학법칙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날 차원이 다른 하나님과 만났던 사람이 “여러분, 이 세상 밖에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그 분을 믿으십시오!”라고 외치는 것을 보면, 마치 정상이 아닌 미친 사람으로 취급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만약 3차원에 사는 인간이 4차원의 존재인 하나님은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교만에 다름 아니라는 말이다. 우물 밖에 나가 본 적도, 또 나갈 수도 없는 인간이 어떻게 우물 밖에 하나님은 없다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현명은 하나님의 존재가 믿겨지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없다!”고 선언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선언은 자신의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삶을 소망이 전혀 없는 절망으로 이끌고 가기 때문이다.
<3>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현명처럼 과학에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과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관해 많은 것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학이 진리는 아니다. 과학적 사실은 언제나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과학적 사실로 인해 거짓으로 증명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설득력 있어 보이는 과학적 사실을 진리처럼 믿고, 말하고, 행동하면 자칫 교만해지거나 바보가 될 수 있다.
영화 ‘타이타닉’으로 유명해 진 타이타닉호는 당시 과학기술로는 최첨단 호화유람선이었다. 그래서 타이타닉호의 스미스선장은 출항에 앞서 기자회견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타이타닉호는 현존하는 과학기술의 총체다. 얼마나 튼튼한지 하나님조차 침몰시킬 수 없다!” 하지만 다 알다시피 타이타닉호는 출항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작은 빙산에 부딪쳐 침몰하고 말았다.
이처럼 오만하기 쉬운 과학은 세상의 사물이 어떻게 작동하고 작용하는지 대체로 잘 설명하는 것 같지만 인간의 존재 이유는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 목적이나 방법에 대해서도 답을 하지 못한다. 무엇이 도덕적인가에 대한 대답은 더더욱 하지 못한다. 오늘날 교과서에 나오는 과학에 따르면 인간은 그저 우연히 생겨난 존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 과학의 주장대로 인간(생명)이 우연히 생겨난 존재라면 정말 큰일이다. 우연히 태어나서 돌연히 사라지는 존재라면 누구나 살아있는 동안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즐겨야하기 때문이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또 죽으면 그것으로 끝인데 살아있는 동안 무엇인들 못하랴. 자기만족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 힘들게 자기를 절제하여 도덕군자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힘들지만 보람이라는 자기만족이 있고, 타인이 자신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볼 것이라는 기대의 만족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우연히 태어났다 돌연히 죽는다는 생각처럼 치명적인 것은 없다. 삶의 의미가 없어져 우울해지기 쉽고,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이나 가치관도 모두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성경의 첫 부분에 기록된 바처럼 인간은 하나님이 사랑으로 사랑하기 위해 창조한 존재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가 살아야할 목적이 분명해지고, 이를 위한 도덕과 가치관이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성경은 시작부터 하나님이 우주만물의 창조자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속에 이런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 절망감만 남게 된다. 자신이 우연의 산물이라고 믿으면 삶의 의미가 없어지고, 누구나 이유 없는 인생의 게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대한민국의 많은 청년들이 이렇게 인생의 길을 잃고 헤매고 있으며 기쁨이 사라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바로 우연론이 이끄는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연론이 이끄는 세상은 한마디로 절망이다. 인생을 살아갈 아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인생의 우울한 결말을 애써 외면하고 살아가는 것은 차라리 죽음에 대한 모욕일 뿐이다. 우연론이 이끄는 세상에는 정해진 도덕이나 가치관도 있을 수 없다. 도덕이나 가치관의 절대적 기준(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각자의 기준으로 살아가면서 자기와 다른 기준과 끊임없는 충돌을 일으키며 살아간다. 또한 불변의 가치가 없으면 도덕적 강제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세상은 각종 범죄로 넘쳐나는 지옥이 된다.
따라서 현명이가 지옥의 세상에서 빠져나와 천국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은 간단한다. 자신이 우연히 일어난 빅뱅의 사건이후, 무한한 시간의 끝에서 우연히 생겨났다는 믿음을 버려야 한다. 그런 우연론은 창조주 하나님이 세상만물과 나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보다 더 강한 믿음이 요구된다. 진정으로 과학적 사고를 하는 지성인이라며 그런 믿음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빨리 깨닫는 것이 잃어버린 인생의 길을 찾는 첩경이다.
<4>
그러므로 나현명은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울었어야 했다. 임신과 낙태의 소식을 듣고 조심스런 마음으로 면담하는 교수 앞에서 그렇게 당당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설령 그것이 아무렇지 않게 보이기 위한 연극이었다 할지라도, 그런 연극조차 교만의 극치를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고로 그렇게 과학은 합리적인 지혜를 앞세워 사람을 교만하게 만드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과학은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만든다. 그래서 현대 과학을 제대로 공부하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진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걷고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과학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저 설화에 다름 아닌 것이 된다는 말이다. 사람은 중력을 거스를 수 없고 질량불변의 법칙은 어떤 경우에도 깨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현대 과학을 진짜 제대로 공부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지혜를 깨우치게 된다. 우주를 연구하는 NASA에서 근무하는 과학자들의 90% 이상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고 한다. 한때 NASA에서 근무했던 김영길 전 한동대 총장님도 처음에는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여겼지만,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면서 그것이 충분히 가능한 일임이 믿어졌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만드신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자기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전 1:21). 즉, 현대과학으로는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눈곱만큼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현대 과학을 믿고 따르는 것만큼 교만한 것도 없다.
요즘 우리나라 청년들이 나현명처럼 현대 과학을 앞세워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하나님이 있다면 나에게 이러실 수는 없다!’고 교만을 부리는 이유는 자기 멋대로 살고 싶다는 죄의 결과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 소리다. 혼전순결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미련하고 어리석게 보이기 때문에 자신의 성을 마음대로 자유롭게 즐기겠다는 말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는 바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을 말한다.
죄는 또 다른 죄를 낳고, 그 죄의 값은 사망이다. 현명이는 과학적이고 지혜롭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의 죄를 범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하나님을 모르는 우연론은 성의 자유를 허용하여 임신을 초래했고, 임신의 죄는 낙태의 죄를 낳았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한 생명이 죽었고, 현명이의 영혼도 죽었다. 그렇게 죽은 영혼이 하나님의 지혜를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교만의 눈빛을 반짝이며 나를 보았다. 안타깝지만 실로 소름끼치게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첫댓글 마음에 와 닿는 말씀입니다^^ 샬롬!!
아멘...
샬롬~!!
내게도 부활하신 주님이 믿어지는 믿음의 마음을 주심은 어쩜이온지....
하나님을 알게 하신 그것이 은혜이지요^^
정치꾼들의 무능과 부패로 힘들어지는 한국사회,우리 어린 자녀들이 희생이되는것같아 슬픈현실,현실이 어떻든 낙태는 분명 죄악이지.
샬롬!!
출근하여 맨 처음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뜻데로 되게 해 주시옵소서"
기도를 마치고 직원들과 조회하는 순간 모든 게 내 뜻데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현실이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