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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닷컴에서)
시인 이은상은 통영의 앞바다를
“결결이 일어나는 파도/
파도 소리만 들리는 여기/
귀로 듣다 못해 앞가슴 열어젖히고/
부딪혀 보는 바다”
라고 읊었다.
물굽이마다 섬들이 드나들면 물새들이 세차게 비상한다.
포구마다 붉게 피는 동백꽃과 기암괴석이 섬 그림자를 아름답게 수놓는다.
통영 바다는 시(詩)이며, 음악이며, 한 폭의 그림이다.
그곳에 가면 진한 사람 내음이 있다
백석은 ‘통영’이라는 시에서
“바람 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
이라며 통영의 활기찬 삶을 부러워했다.
통영항의 새벽은 삶의 활기가 가득하다.
충무김밥을 싸들고 여객선 터미널로 들어서는 연인들.
팔딱이는 생선을 부리는 어부들.
활어를 사기 위해 장바구니를 들고 달려온 주부들.
억센 경상도 사투리에 흥정 소리는 높아만 가고 수조 속에서 막 건져낸 물고기들의 숨통을 끊느라
피범벅이 된 시퍼런 칼날들은 연신 찬물 바가지 세례를 받는다.
햇살이 포구를 밀어내면 시끌벅적하던 새벽의 항구는 조용히 아침을 깨운다.
고요의 적막이 흐르고 사람들은 하나둘 일상으로 돌아간다.
시장 상인들은 늦은 아침을 들면서도 연신 손님 눈치를 살피기에 바쁘다.
붉은 ‘다라이’마다 뽈래기, 배드라치, 도다리가 숨이 힘겨운지 연신 주둥이를 밖으로 내밀고 있다.
사람들은 홀린 듯이 항구를 찾는다.
어떤 이는 땅 끝에서 수평선까지의 가시적 공간에서 감상하거나 추억 한 자락을 엮는다.
어떤 이는 헤어진 연인과의 가슴 시린 아픔을 꺼내어 바다에 적시고,
또 어떤 이는 희망과 사랑을 한 움큼씩을 안고 돌아간다.
청마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의 고향
통영만큼 이름난 문화예술인을 많이 배출한 고장은 없을 것이다.
시인 유치환∙김상옥∙김춘수, 소설가 박경리∙김용익, 극작가 유치진,
음악가 윤이상, 화가 김형로∙전혁림 등
우리의 문화예술계에서 내로라하는 작가들을 수없이 배출한 곳이 바로 통영이다.
통영시향토역사관 김일룡 관장은 통영에서 문화예술인이 많은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먼저 지역적으로 통영은 임진왜란 이후 군영도시로 발전하면서 독특한 문화를 가지게 됐으며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경치가 사람들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역사적 내력으로 김 관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풍부한 해산물을 기반으로 한 부자들이 많았던 통영 사람들은 일제시대 자식들을
당시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이는 도쿄로 유학을 보냈다.
이곳에서 문학이나 예술을 공부한 이들은 조국으로 돌아와 시대상을 비관하며
동료 문화예술인들과 어울리게 됐고, 통영은 자연스럽게 이들의 집합소가 됐다.”
시인 허만하의 <청마풍경>을 보면 청마 유치환은 “자각 없고 방향 없는 생활 가운데서도
한 시인으로 잡아 키워준 것은 부지불식중에서라도 또 하나 고향의 맑고 고운
자연의 풍기가 아니었던가”라고 말해
아름다운 다도해가 자신의 시성(詩性)을 키운 자양분이었음을 밝혔다.
지금 청마의 흔적은 통영우체국과 청마거리, 청마문학관에 남아 있다.
이 중에서 우체국은 바로 그 유명한 ‘행복’이란 시와 청마의 순애보가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청마는 1947년 딸 하나를 낳고 홀로 돼 통영여중 교사로 부임한 시조시인 정운 이영도에게
첫눈에 반해 그 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연애편지를 보낸다.
우체국 건너편 이층집에는 정운이 살고 있었다.
60세 되던 1967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청마가 20여 년간 보낸 연서는 5000여 통.
20년 동안 편지를 보관해 두었던 정운은 후에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는 시집을 출간한다.
예쁘게 굴곡진 동백 60리 산양일주도로
250개의 유·무인도를 품에 안은 통영.
그 많은 섬들 중에서 가장 큰 섬이 미륵도이다.
이 섬을 한 바퀴 도는 약 24㎞ 일주도로를 가리켜 통영 사람들은 ‘동백로’
또는 ‘꿈길 드라이브 60리’라고 부른다.
도로 곳곳에 나뭇잎 사이로 작은 포구가 고개를 내밀었다가 금방 사라진다.
핏빛처럼 지천을 적신다는 동백나무가 길 양옆에서 줄지어 반긴다.
출발 지점에는 1932년에 준공된 해저터널이 있다.
총 길이는 461m, 높이 3.5m, 넓이 5m로 둑막이공사를 한 뒤 해저면을 다지고
철근 콘크리트 공사를 했다.
일제가 임진왜란 때 이 지점에서 자기네 조상들이 수없이 죽어간 그 유해를
한국 사람들이 밟고 다니게 해서는 안 된다 하여 만들었다는 설이 있지만
항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하다.
이곳 주변이 통영운하인데 이 운하 역시 1927년 5월에 착공하여 1932년 12월까지
장장 5년 반에 걸쳐 만들어졌다.
총연장 1420m, 폭 55m, 수심 3m로 끊임없이 크고 작은 배들이 왕래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저녁에 충무교에서 통영대교 쪽을 바라보면 금빛 비늘을 드리우며
노을이 바다 속으로 서서히 빠져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일주도로는 달아공원 부근 5㎞ 구간이 백미. 점점이 흩뿌려진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넘으면 섬들이 돛배처럼 가득한 다도해가 열리고, 다시 한 고개를 넘으면
아늑한 만에 들어찬 양식장들이 보인다.
섬과 섬이 겹쳐지며 만들어내는 풍광에 숨이 막힌다.
‘달아’(達牙)는 이곳 생김이 상아(象牙)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달아’(達牙)공원에서 바라본 석양
세병관, 충렬사, 제승당 등 곳곳이 이충무공 유적지
이충무공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세병관(洗兵館)은 삼도수군통제영으로 쓰였던 건물로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현존하는 조선시대 건축물 가운데 바닥 면적이 가장 넓다.
국보 제305호. 세병관이라는 이름은 중국 당나라 시인 두자미(杜子美)의 글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온 말로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이다.
출입문 역시 거둘 지(止)에 창 과(戈), 창을 거둔다는 지과문(止戈門)임에 알 수 있듯이
다시는 전쟁을 겪지 않게 해 달라는 조상들의 바람이 새겨져 있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원하는 뜻이 담긴 세병관)
충렬사(忠烈祠)는 이충무공의 위훈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경내에는 이충무공의 위패를 모신 정침(正寢)을 비롯하여 내삼문, 중문, 외삼문, 정문, 홍살문 등
5개의 문이 있으며 중문 안에는 향사 때 제수를 준비하는 동재와 서재, 외삼문 안에는 사무를 관장하는
숭무당과 서당인 경충재가, 외삼문 좌우에는 충렬묘비를 비롯한
6동의 비각이, 외삼문 밖에는 강한루와 전시관 등이 있다.
제승당(制勝堂)은 임진왜란 때 이충무공이 막료 장수들과 작전회의를 하던
한산도 운주당 옛터에 지었다.
아직도 이 충무공의 뜨거운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오고 푸른 대밭이 보이는 죽도에서는
임진왜란 때 사용됐던 화살들이 수없이 날아오는 듯하다.
죽도를 지나 제승당이 보이면 임진왜란 때 많은 적을 무찌르고 갑옷을 잠깐 벗고
피 묻은 칼을 씻었다는 해갑도(解甲島)가 가까이 있다.
섬 정수리에는 무성한 해송 숲이 우거져 있고,
이른 봄부터 소나무 가지마다 백로 및 왜가리들이 백목련 꽃봉오리처럼 앉아 있다.
비진도, 욕지도, 소매물도 등 다도해를 품었다
비진도는 통영항에서 배를 타고 약 30분을 들어가면 나타나는 비경의 섬이다.
내항이 있는 안섬과 외항이 있는 바깥섬으로 나눠져 있는데 안섬과 바깥섬은
해수욕장으로 이어져 8자 모양을 꼭 빼닮은 특이한 형상을 지니고 있다.
동·서쪽으로 각각 바다가 있는데 서쪽은 백사장, 동쪽은 자갈밭으로 되어 있다.
욕지도는 통영항에서 뱃길로 32㎞ 떨어져 있다. 욕지(欲知)는 ‘알고자 한다’는 뜻인데
주변의 세존도, 연화도와 함께 불교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화엄경의 ‘약인욕료지(若人欲了知)에서 따 온 말이라 한다.
푸른 숲이 어우러진 기암절벽과 갯바위, 점점이 떠 있는 새끼섬들,
그리고 티 없이 파란 바다가 마치 지중해의 작은 섬을 연상하게 한다. 섬 중심에 우뚝 서 있는
해발 382m의 천왕산은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울창하고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다.
통영항에서 뱃길로 약 1시간 40분, 동남쪽에 위치한 매물도(每勿島)는 대매물도와 소매물도,
썰물 때면 소매물도와 뭍으로 이어지는 등대섬으로 이뤄졌다.
눈이 시리도록 짙푸른 바다 위에 우뚝 솟은 기암절벽, 비단처럼 부드럽게 섬을 휘감는 해무(海霧),
깎아지른 해벽을 배경으로 외로이 서 있는 하얀 등대. 파도가 부딪치며 뿜어대는 물보라와 하얀 포말.
‘한려수도의 보물’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미인도'라고도 불리는 비진도
옛날 진시황제의 사신 서복이 장생불사할 불로초를 구하러 왔다가
서시과차(徐市過此)란 글을 썼다는 글씽이굴을 비롯하여
전설 얽힌 촛대바위, 남매바위, 병풍바위, 용바위, 거북바위 등
억겁을 두고 풍우에 시달리고 파도에 할퀴어 오만가지 모양을 한 기암괴석이 많다.
미륵산은 높이 461m로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다.
그러나 울창한 수림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갖가지 바위굴, 고찰이 산재해 있다.
이곳에 서면 통영 앞바다가 왜 ‘다도해’인지 알 수 있다.
섬과 섬이 겹치면서 누군가 물수제비를 뜬 듯 바다에 점점이 흩뿌려져 있다.
섬 너머 섬, 또 섬이다. 섬들 뒤에 붉은 해가 하늘을 붉히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하늘로 솟구친다.
이전에는 걸어서 정상까지 올랐지만 국내 최장(1975m)의 케이블카가 생기면서 쉽게 오를 수 있다.
케이블카로 상부정류장에 도착하면 약 400m 길이의 산책데크가 미륵산 정상까지 설치되어 있다.
청명한 날에는 일본 대마도, 지리산 천왕봉, 여수 돌산도까지 보일 정도로 탁월한 전망을 자랑한다.
정상 주위에는 진달래, 동백꽃, 팔손이나무, 단풍, 벚꽃 등이 관광객을 유혹한다.
미륵산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에 올라 바라본 풍경.
정상에서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미래사와 용화사로 내려갈 수 있다.
미래사는 햇볕이 잘 들고 빽빽하게 들어찬 편백나무 숲 사이에 고즈넉하게 들어앉아 있다.
구산, 효봉, 석두 등 세 분의 큰 스님을 모신 사리탑이 있다.
효봉 스님은 판사 출신으로 한 피고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뒤
밤새 고뇌하다 법복을 벗어던지고 출가했다고 한다.
용화사는 본래 정수사였는데 폭풍과 화재로 소실되는 등 재난이 끊이지 않다가
380년 전 벽담 선사가 폐허가 된 절을 다시 짓고 용화사로 이름을 바꿨다.
여수항과 통영의 강구안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여수항은 돌산대교에서 육지로 들어가면서 보는 밤 풍경이 아름답고,
강구안은 해 있을 때 풍경이 아름답다.
통영의 바다는 오래 전부터 마음에 그렇게 남았고,
통영의 또 다른 바닷가 산책로를 걷는 이번 통영 여행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통영에 가면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이 강구안이다.
반짝이는 바다 아늑한 항구도 예쁘고 항구를 품고 있는 산기슭 마을은 동화 같다.
그곳 언덕에 벽화 마을로 알려진 ‘동피랑’이 있고 항구 앞 중앙시장은 생기 넘치는 삶의 골목이다.
강구안 항구에 떠 있는 거북선 모형 앞 충무김밥 거리에서 충무김밥으로 허기를 달래고
걷기여행 출발지점인 도남동 마리나리조트까지 택시를 탔다.
마리나스포츠센터 건물 앞을 지나면 바다다. 돛을 단 작은 배들이 한가롭게 떠다니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바닷가 산책로가 시작된다.
걷기 여행의 출발지점이자 도착지점인 이곳이 도남동이고 반환지점이 산양읍에 있으니
이 길 이름을 ‘도남~산양 바닷가 산책로’라고 이름 지었다.
(이 길은 원래 ‘수륙~일운 해안도로’ 또는 ‘삼칭이 해안로’ 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바닷가 산책로
돛단배 떠다니는 바다가 평온하고 한가롭게 보인다. 바다 바로 옆에 길이 있다.
길이 시작 되는 그곳에 첫 발자국을 내딛으면 ‘통영’이라는 여행지 안에서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분주하고 들뜬 여행지에서 느끼는 차분한 산책.
고즈넉한 바닷가 마음 편한 산책길
갯바위에 나무가 자랐다. 그 앞 바다에 유람선이 떠간다.
햇볕 내려앉은 바다가 반짝이고 갈매기 몇 마리 그 위로 날아다닌다.
그윽한 바다가 수채화처럼 마음에 그려진다. 산굽이 돌아가는 굽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아주 작은 모래사장이 보인다. 그 앞에 의자가 놓인 쉼터가 있고 쉼터 위로 계단이 있다.
계단으로 올라가서 길과 바다를 한 눈에 넣고 바라본다.
길은 산기슭을 따라 구불거리며 이어지다가 저 앞 산모퉁이를 돌아서면서 보이지 않는다.
길로 내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산모퉁이를 돌아 조금만 더 가면 통영 공설해수욕장이 나온다.
이 길에 있는 유일한 해수욕장이다.
아주 작은 해수욕장에서 열댓 명의 젊은이들이 ‘꺄르륵’거리며 웃고 떠든다.
조용한 바다가 들썩거린다. 해수욕장 앞에 예쁜 숙박시설이 있다. 길은 계속 바다를 왼쪽에 두고 이어진다.
해수욕장을 지나 조금 더 가니 간단한 먹을거리와 자전거를 빌려주는 가게가 나왔다.
저 앞에 바다로 뻗어 나온 낮은 다리가 보인다.
등대낚시공원이다.
바다로 뻗어 나간 다리로 걸어가면 그곳에 좌대가 있고 낚시를 할 수 있다.
(유료) 시간이 지나서인지 다리로 가는 입구 문이 잠겼고 사람도 없다.
날은 어두워지고 바다와 하늘에는 노을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산과 섬에 가려 해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주변 하늘과 바다가 노을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바닷가 바위 절벽, 다시 돌아가는 반환점
눈 앞에 우뚝 솟은 바위가 보인다. 기이하게 생긴 바위 위에는 나무가 몇 그루 자라고 있다.
그 바위를 지나면 거대한 절벽과 동굴이 있는 광장이 나온다. 이곳이 이번 걷기여행의 반환점이다.
광장에서 바라보는 바다에는 노을이 짙다. 해를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어둠에서 피어나는 노랗고 붉은 노을빛이 그윽하게 마음을 물들인다.
왔던 길을 되짚어 걷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지나왔던 기이하게 생긴 바위를 광장 쪽에서 바라보니 사람 얼굴 같기도 하고
아이를 업은 엄마의 형상을 닮은 것 같다.
돌아오는 길 해지는 바닷가에 물 새 한 마리 서서 꼼짝 않는다.
아까 지나왔던 통영 공설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작은 방파제 끝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다.
어둑어둑해지는 바다에 불빛이 물결 따라 흔들린다. 아까 첫 발자국 내디딘 그곳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