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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17구간(차갓재-황장산-폐맥이재-벌재-문복대-저수령)
산행일시 : 2009년 3 월 7~8일(무박산행)
산행코스 : 차갓재-황장산-폐맥이재-벌재-문복대-저수령
참석인원 : 32명
도상거리 : 12.8 Km (실제거리: 14.0Km예상)
산행시간 : 7-30분 (0220분-0950분 식사시간 포함)
날씨 : 야간-차갑고 싸늘했으나 시계는 좋음
주간-따스하며 맑음
특징 : 1.백두대간 남한구간 중 중간지점이 있는 곳(차갓재)
2.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가 백여 년 동안 국경을 접하며 싸움을 벌였던 요충지.
3.암릉(황장산-폐맥이재)과 육산(벌재-저수령구간)을 함께 즐길 수 있음
4.황장산의 황장목(黃腸木:질 좋은 소나무의 일종으로 전혀 뒤틀림이나 갈라짐이 없어
임금의 관이나 대궐을 만드는데 이용됨)과도한 벌목으로 지금은 정상 암릉 부근의
몇 그루만 남았다 함.
조선 숙종 때는 벌목과 개간을 금지하는 봉산(封山)으로 관리를 파견해 감시를 했으며
당시에 세워진 봉산표지석은 지방문화제 227호로 지금도 남아 있음.
5.황정산(黃庭山),작성산(鵲城山),황장봉산(黃腸封山)표기되어있으나 정확한 이름은
황장산이라 부르고 있다.
금번도 무박산행으로 변함없이 부산일보 앞에서 2230시 출발이다.
이젠 한 식구가 된지 오래인 광안대교, 백사장부부, 유철목부부, 금우님부부, 백현아님, 윤상두,
선비님이 반갑게 맞아준다.
최종 출발지 구포를 떠날 땐 고경운님, 야마꼬, 정철호님이 안보여 아쉬움이 인다.
무박산행으로 어렵다는 정정혜님이 깜짝 참석하여 반가운 마음이다.
비교적 짧은 산행구간이지만 벌재에서의 입산통제로 부득이 시간을 맞추기 위해 무박의 어려움을
감내하며 산행기점인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 안생마을 도착이다.(0215분)
싸늘하게 느껴지는 추위는 이내 몸을 움츠려들게 한다.
인원파악과 함께 "백두대간“”사랑합니다“ 우렁찬 구령과 함께 출발이다
0220분 산행시작
회장님의 배려 깊은 안내로 초입지점인 안생달 다리를 건넌다.
놀랜 개들의 짖어대는 소리가 고요한 적막을 깨트려 놓는다.
분간조차 할 수없는 어둠속에 렌텬의 불빛은 길게 이어지며 잘도 나아간다.
벌목한 나무재로 마치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한 푹신한 쿠션이 여간 감미롭다.
짙은 구름 속에 가려진 뿌연한 달그림자는 보름이 가까워졌다는 느낌뿐 형체를 알 수 없다.
800여 미터의 진입로를 20여분을 올라서니 드디어 백두대간 길에 접어든다.
0244 차갓재 도착
백두대간 중간지점을 알리는 표지석과 좌우로 백두대장군, 지리여장군 장승이 보인다.
어느 사이 벌써 중간지점에 도달했다니 감회가 새롭다.
몇몇 산님들이 땀에 밴 겉옷을 배낭 속에 챙기며 중간지점 의미에 무척 고무된 듯 반기는
모습들이다.
서서히 가파른 오름길을 어둠속에 헤쳐 가다보니 우측멀리 동네불빛이 아롱거리며 초입지점을
알려 주고 있다.
0259 작은 차갓재 도착
이정목이 서있지만 어둠속에 주위 배경은 전혀 알 수가 없다.
길 잃지 않으려고 그저 앞사람 발자국만 따라가다 보니 작은 차갓재를 지나고 곧바로
헬기장을 지난다. (0300시)
어디가 어딘지 전혀 알 수조차 없는 채 .낙엽송 길, 된비알지대, 암릉 길들을 지나치며 가끔씩
느껴지는 낭떠러지 구간들이 어둠에 감춰져있어 여간 아쉽게 느껴진다.
오를수록 차가운 날씨는 손이 시려오며 추위가 느껴져 다시 겉옷을 내 입는다.
포근해진 날씨로 춘추장비로 바꿔 준비(아이젠, 겨울장갑, 방한모자. 내피, 미 지참)한 자신을
자책해본다.
0335-45 묏등바위(직벽구간)
2개의 로프가 길게 늘어져 있는 약 15m 직벽에 가까운 암벽구간이다.
제일 난코스로 얼어있는 로프를 유격훈련 하듯 1사람씩 사력을 다하여 올라가야만 되기에
많은 위험이 따르며 노대장님과 보조대장의 도움으로 여성분들을 우선하여 선별하여 올라선다.
일찍 도착했었지만 마지막 순번으로 10여분을 대기하다보니 손 시림과 추위는 배가되며 한기가
느껴진다.
하장수님의 배려로 비닐장갑을 장갑 속에 끼어본다. 한결 나아진 느낌이다.
직벽을 올라서니 까다로운 암릉길이 계속된다.
바닥은 잔설로 얼어있어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위험스럽기 그지없다.
몇 분후, 로프에 의지하며 바위 옆으로 통과하는 구간은 느슨한 로프로 중심잡기조차 어려워
정말 위험스럽기도 하고 낭떠러지위에 2단으로 턱진 암벽을 오를 땐 긴장의 연속이다.
주간이었다면 공포를 느낄지도 몰랐겠지만 칠 흙 같은 어둠은 조심스러움만 안겨줄 뿐이다.
초긴장 속에 어렵게 올라서서 잠깐 살려본 주위는 비록 어두움뿐이었지만 깎아지는 절벽위에
서있는 자신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주간이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풍광이 전개될 것인가!
어둠속에 가려진 눈앞의 전경이 많은 아쉬움으로 가슴속깊이 각인된다.
갑작스레 꼭 이렇게 야간산행을 해야 되는가? 하는 아쉬움이 인다.
0400 황장산 ( 1077미터) 도착
정상석이 반긴다.
주간만 되었다면, 백두대간 690Km 중 무려 110Km가 문경구간에 형성되어있다는 아름다운
모습을 바로 이곳에서 맘껏 즐길 수 있었을 텐데.....
황장산-감투봉-황산재
직벽구간 에서부터 제일 후미가 되어 2명대장님(김동섭외 1명)과 함께 동행이다.
이미 선두그룹, 중간그룹은 불빛조차 보이지 않은지 오래다.
행여 놓일세라 김동섭대장님 뒤만 한참 따라가는데 잠깐사이에 안 보인다.
굴곡부분에 불빛도 안보여 잘 나있는 길만 따라 갔는데 급경사내리막이다.
50여 미터를 따라 간다고 급하게 내려가는데 어쩐지 예감이 이상하다.
길은 선명한데 김대장님은 보이지 않고 불러도 응답이 없다.
“아차! 큰일이다, 알바구나! ”싶은 생각으로 갑자기 두려움과 공포감이 엄습해온다.
황급히 가쁜 숨을 몰아쉬며 되돌아 나온 짧은 순간이 정말 길게만 느껴진다.
올라서니 김대장님이 걱정되어 기다리고 있다.
정말 고맙고 반갑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느껴본다.
알고 보니 분기점으로 양편으로 길이 잘 나있어 정말 야간산행의 주의를 절감하게 한다.
야간산행 시 호루라기 지참은 필수적임을 알려 드리고 싶다.
3분여 지나니 큰 바위가 앞을 가리는 갈림길에서 방향을 잃게 한다.
후미에서 앞서 간 산행대장(이름?)이 우측아랫길(안생달 가는길)에서 올라오고 있다(알바 추정?)
다시 3인이 합류하며 무선교신으로 노대장님에게 확인 후 큰 바위 넘어 직진이다.
(후에 확인해보니 감투봉으로 0425분 추정됨)
급경사 내리막구간을 어둠속에 보조를 맞추며 함께 행동일치를 했건만 스틱이 바위틈에 끼면서
뒹구는 위험순간을 겪으면서 더더욱 조심스러워진다. (니키제품 스틱 휘어짐)
5분여 후, 로프가 설치된 급경사 내리막구간에서 모두가 시끌시끌한 소리와 함께 우왕좌왕이다.
덕분에 중간그룹에 합류할 수 있는 혜택(?)을 가졌지만 길을 못 찾아 헤매는 중이다.
잠시 후 노대장님의 황장재도착이라는 무선교신을 들었지만 짧은 알바를 모두가 체험한듯하다.
앞으로 계속되는 무박산행을 위해서는 그룹별로 조를 이루며 행동을 함께하며 가능하면 서행으로
기다려주며 선두와 후미의 격차를 최소한 줄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목적지에 도착 후 똑 같이 출발한진데 왜? 서두르는지 마지막 후미에 서보면서 느낀 점이 많다.
0445분 황장재 도착
정상목이 서있건만 주위의 모습을 전혀 알 수조차 없다.
불과 몇 분 전까지도 함께한 님들 이었건만 황장재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다.
금우내외분과 김대장님과 4명만이 동행한다.
알바와 넘어졌던 두려움에 땅만 보며 걷노라니 주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계속된 암릉 구간을 오르내리며 갖가지 형태의 모형들과 전망대가 나타나곤 하지만 그럴수록
볼 수없는 아쉬움에 어둠이 원망스러워진다.
달이 있어 밝을 만도한데 짙은 구름이 온통 하늘을 뒤덮고 있는 모양이다.
얼어있는 바닥에 행여 앞사람 놓일세라 조금만 불빛이 멀어져도 긴장되는데 희미해진 렌턴마져
더욱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밧데리 교체로 지체하자 모두 기다렸다는 듯 반기며 교체한다.(김동섭, 금우님부부)
주위를 전혀 분간할 수는 없었지만 앞서가는 산님들의 불빛은 가도 가도 보이지 않고 계속된
암릉구간을 때론 완만하게 때론 가파르게 오르내림을 반복하다보니
어느 사이 암릉 길이 육산으로 바뀌며 오랜만에 부드러운 촉감으로 와 닿는다.
저 멀리 정면으로 희미하게 어둠이 벗겨지고 있다.
머잖아 동이 틀 모양이다.
아마도 나도 모르게 치마바위와 패맥이재를 지나쳤는가 보다.
0620분 928봉 도착
928봉에 올라서니 하장수님이 쉬고 있다.
얼마 전, 중간그룹이 내려갔다며 손쉽게 갈림길에서 안내해 준다.
이미 날은 밝아져 바로 아래로 벌재가 지척으로 보이며 멀리 소백산줄기가 우람하게 펼쳐진다.
우측으론 동로면의 마을이 훤히 보이며 뾰족하게 우뚝 솟은 봉우리가 무척 인상적이다.
지나왔던 황장산에서의 마루금이 너무나 아깝게만 느껴지며 더욱 멋있게 와 닿는다.
다시 돌아서 가고픈 충동은 못내 아쉬움으로 어둠이 원망스럽기 그지없다.
발목까지 쌓인 낙엽 길을 홀로 10여분 지나니 헬기장이다.(0635분)
이곳에서부터 급경사 내리막길은 온통 낙엽과 낙엽아래 얼음으로 조심스럽게 미끄러지듯이
내려서니 절개지의 철망너머 벌재 감시초소(입산금지 팻말과 벌금부과 공지)가 있다.
이곳을 지키는 초소근무자를 피하기 위해 무박산행으로 황장산의 장엄한 암릉을 못 보았다.
싶으니 은근히 울화가 치민다.
이곳의 급경사 하강 시 넘어지며 손가락 다친 사대부고팀 한분이 도중 탈락이다.
적은 부상으로 다행이지만 안전을 위해 스스로 조심을 다해야 할 것 같다.
0652분 33번 국도 통과
0657분-0700분 벌재 도착
도로 따라 우측으로 100여 미터 내려와도 되지만 국도를 가로질러 대간 길로 조그만 무명봉을
넘어서니 바로 벌재다.
백두대간을 알리는 대형 표지석과 쉼터가 함께 반긴다.
모두들 기념사진 촬영으로 오랜만에 휴식을 즐겨본다.
어지럽게 널려있는 백두대간 표시기 따라 목계단을 올라서자마자 “생태계 보호구역-출입금지-”
팻말이 우습깡스럽게 느껴진다.
0725분 들목재도착(옛고개)
비교적 평탄한 흙길은 완만하게 이어지며 823봉을 넘어서니 들목재다.
삼각형의 표지에 낙동산악회에서 설치한 표지판이 이곳에서까지 반겨준다.
(낙동정맥글위 매직으로그어져있었지만 위도,경도 표기된 삼각형 표지판 천)
아침식사 (0725분-0740분)
추웠던 야간산행은 아침을 맞으면서 풀리기 시작하며 중간그룹 함께 모여
낙엽송위에서 아침식사를 나눈다.(석호, 만능, 이화. 백사장부인, 한미정, 황보, 정정혜,)
이두용님, 최광률님, 김영기님은 여전히 뜨거운 라면에 커피로 즐긴다.
마녀와 이강소님,선비님은 오늘따라 한 번도 볼 수 없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길은 별로 힘들지는 않지만 앞에 보이는
봉우리들이 지루하게 만든다.
멀리 소백산의 천문대가 보이며 사방으로 펼쳐진 높 낮은 봉우리들이 너울이 되어 밀려오며
소백산목장과 저수령휴게소가 목전에 와 닿는다.
봄기운 훈풍과 주변의 경관이 어느 사이 무박의 아쉬움을 씻어가 버린다.
0853분 문복대 (옥녀봉) 도착
종주지도엔 옥녀봉으로 표기된 곳이 바로 문복대다.(산행기 쓰려고 체크하다 알게 됨)
정상석이 바위위에 서있다.
사방이 확 트인 경관은 지나온 마루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가야할 소백산의 자태가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이화님이 옥녀봉을 찾아내라고 달달했던 기억을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어본다.
변강쇠(남자)가 옥녀를 끌어안아야지 옥녀(여자)가 옥녀봉 정상석을 끌어안고 있었으니
아아! 야릇할 지어다.^^
0930분 장구재 도착
배포된 개념도상 문봉재를 문복대로 착각하며 옥녀봉을 찾다보니 어느 사이 내리막길이
계속되며 죽령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충북과 경북의 도경계 능선길이다.
(주간에도 위치추정이 이러는데 야간이라면 아찔할 뻔?)
10여분 내려오니 택시회사 팻말과 트랩형구조물이 설치된 난간아래 비포장도로의 임도가
있는 장구재다.
낙서로 얼룩진 갈퀴어진 입석표지판이 장구재임을 알려준다.
임도를 건너 무명 봉우리에 올라서니 저수령 휴게소에 버스가 보인다.
봉우리 정상의 잘 다듬어진 묘 앞에서 홀로 여유를 가져보며 돌아온 오늘을 돌이켜본다.
잠시 후, 해맞이 제단석을 지나며 저수령 도착이다.
0955분 저수령 도착
옛날 산림이 우거져 사람들이 지날 때 머리를 낮추고 지났다고 해서 붙여진 저수령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를 이르는 곳이다.
후미로 도착했지만 모두가 반갑게 맞아준다.
막걸리와 오뎅 탕으로 오늘의 산행을 달레며 무사히 완주한 모든 횐님들에게 수고 많으셨다고
파이팅!!을 외쳐본다.
2009년 3 월 11 일
이 찬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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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시 맏행님의 섬세하고 맛깔스런 후기를 느껴봅니다. 누구나 느끼는 야간 산행의 어려움,전체적인 속도조절과 그룹별 팀웍이 절실하다고 생각됩니다. 이제는 뭔가 달라져야 느끼는데...(아래글에 금우님도 언급했듯이) 최대공약수를 접목시켜 전원 안전하게 하게 하는 뭔가를 고민해 봐야 시점이 아닌가 봅니다.
문복대가 '옥녀봉'이었네요. 수고 많으셨구요, 후기 글 많은 도움 얻고 가요~~^.^
아 그곳이 옥녀봉이었군요. 어쩐지 지도상에 옥녀봉이 1,077m라고 되어 있더라구요. 잠깐이라도 함께 후미에서 놀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멋진 산행기 고맙습니다.
캄캄한 대간길을 그렇게 걸었다니 산행기 다읽고 나니 긴 한숨이 나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