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노안초 학생독립운동 납월매
‘이름 없는 별들’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영웅들을 기리는 찬사이다. 이 이름 없는 별들인 나주노안초등학교 학생들을 기리는 ‘학생독립운동 기념비’가 노안초등학교 교정에도 우뚝 서 있다. ‘우리 선배들의 나라와 겨레를 위하는 애국정신이 투철(透徹)하였음을 후배들에게 길이 남기고자 이 사실을 여기 새겨 남기노라.’는 그 기념비의 마지막 구절이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0월 30일 오후 5시경, 광주를 출발 나주역에 도착한 통학열차에서 내려 개찰구를 나가는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 박기옥, 이광춘 등의 댕기머리를 일인 중학생들이 잡아당기며 희롱하면서 촉발하였다. 이에 박기옥의 사촌 동생 박준채가 항의했고, 일인 학생들의 ‘조선인 주제에(센징노쿠세니)’라는 말에 분노가 폭발하였다. 곧 일인 학생 50여 명과 한국인 학생 30여 명이 충돌하였으니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시작이다.
이어 11월 3일 광주의 여러 학교와 시민들이 시위에 나섰고 일본 경찰은 광주고보학생 300여 명, 광주농업학교 학생 100여 명을 체포하고 시위에 참여한 학교 문을 닫은 뒤 이 일을 신문에 싣지도 못하게 했다.
이때 지금의 초등학교에서도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으니 바로 ‘노안공립보통학교’이다. 노안공립보통학교는 1924년 4월 1일에 개교한 4년제 학교로 학업을 마치면 나주보통학교로 진학하여 5, 6학년을 다녔다. 그렇게 노안공립보통학교 3회 졸업생 정찬교와 4회 졸업생 정찬주는 나주보통학교 5학년, 6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1929년 11월 23일이다. 정찬교와 정찬주는 나주농업보습학교 유찬옥과 함께 노안공립보통학교에 다니는 후배 홍달식을 만났다. 광주의 학생독립만세운동 이야기와 이와 관련한 문서를 건네며 노안에서도 독립만세를 부르자고 했다.
노안공립보통학교 4학년이고 반장인 홍달식은 먼저 4학년 학우들을 규합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계획을 세우고 태극기를 만들며 기회를 엿보았다.
마침내 12월 2일 월요일 아침이다. 운동장에서 조회를 마치고 선생님들이 잠시 교무실로 갔을 때였다. 홍달식은 품 안에 감추었던 태극기를 꺼내 들었다.
“대한독립만세!”
목청껏 독립만세를 외치며 전교생을 이끌고 교문을 향해 나아갔다.
“대한독립만세!”
학생들도 모두 태극기를 흔들며 홍달식의 뒤를 따라 우렁찬 함성으로 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사태는 곧 진압되었다. 일인 교사들이 뛰쳐나와 교문을 막았고 학교 가까이에 있던 주재소의 일경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앞장서서 학생들을 이끌던 홍달식은 교장관사로 연행되었다가 주재소로 끌려가 9일 동안 고초를 겪었고 지역 유지들의 석방 운동으로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이마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열 살 안팎의 어린 학생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우렁차게 외치던 그 노안초등학교 교정의 납월매가 한겨울 눈보라에 꽃을 피웠다.
납월은 섣달의 다른 이름이다. 섣달은 ‘설이 드는 달’이니 오래전 음력 12월이 한 해의 첫 달인 때가 있어서이다. 오늘 우리의 삶은 선열이 흘린 피와 땀의 결과이니 우리 역시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열이 되어야 하겠다. 하얀 눈송이를 이고 있는 노안초등학교의 향기로운 납매화를 우러르니 태극기를 흔들며 내닫던 이름 없는 별들이 보이고 함성이 가슴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