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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 성서연구 – 제21B강 역대상하 메시야왕국의대망-
(54) 그것도 순종이라고 (대하 11.13-17)
열지파의 반란으로 르호보암은 급박하게 예루살렘으로 도망쳐 왔습니다(1절). 젊은 신하들의 조언은 르호보암에게 독이 되었습니다. 르호보암은 뒤늦게 자신이 잘못 선택했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듣기 좋은 말들, 내 마음에 쏙드는 조언들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마음에 맞지 않더라도 충언을 듣고 경청할 줄 알아야 자기에게 유익이 됩니다. 예루살렘으로 쫓겨온 르호보암은 반역한 열 지파를 무력으로 진압하고자 시도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강경책을 택했습니다. 섬기는 왕, 들어주는 왕, 후대하고 기쁘게 해주는 왕이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요? 왕은 꼭 채찍으로 전갈채찍으로 통치해와 왕인 것일까요?
자존심이 상하여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몰랐던 르호보암은 18만 군사를 모았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한들, 되찾을 수도 없고 회복할 수도 없는 것을, 되찾고 회복했다 한들 내것이 될 수 없는 그들을 향해 움직이기 직전, 오히려 서로에게 가득 상채기와 고통만 입힐 저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 하나님은 선지자 스마야를 르호보암에게 보내셨습니다(2절). 그래서 말씀드렸지요? 하나님의 사람들은 기도한 후에는 물론이요, 기도하지 않고 욕심껏 나아가는 길 중에서도 귀를 열어두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사 들려주신 그 말씀에, 그간의 비용이 얼마가 들었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내 계획과 걸음을 멈출 수 있어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아니 애시당초 그 비용을 들여가매 내 기분대로 내 감정대로 내 혈기대로 내 욕심대로 내 계획을 실행하기 전, 하나님께 여쭙고 나아가야 우리는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진정한 신정 정치는 언제나 먼저 바실레우스, 참 왕이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일생동안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솔로몬도 물었고 심지어 사울도 물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일의 중차대함도 읽을 줄 몰랐고, 왕이 된 처음부터, 자신의 판단을 의지했습니다. 그것을 반대하는 이들을 버리고 지지하는 이들과만 함께 일했습니다. 그 결과가 오늘 보고 있는 남북이스라엘의 분열입니다. 그래요. 하나님께 물으면 형통하고, 하나님께 묻지 않으면 낭패를 당합니다. 언제나 우리의 감정과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시어 참변을 막고 바른 방향을 잡아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짧은 인생임에도 살다보면 예상과 다르게 주변이 흘러갈 때가 있습니다. 누구나 이런 상황 앞에 서면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르호보암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나라 중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만을 다스리게 되었고 나머지 열 지파는, 다른 왕자도 아니고, 여로보암이라는 저 신하 하나에게 넘어가 버렸습니다. 르호보암에게 이 상황이 얼마나 불편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말씀하실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번 정리하고 오늘 말씀 짧게 전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세상의 상식과 사고에 저항해야 합니다.
르호보암은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고 등지고 떠나버린 저 열 지파에 대해 전쟁으로 보복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를 보내셔서 형제와 싸우지 말고 돌아갈 것을 명하십니다. 이 세상은 철저하게 네 판단을 믿고 네 욕망을 위하여 살라고 말합니다. 요즘 더하지요? 한 번 뿐인 인생, 죽으면 똥될 몸뚱아리 하고 싶은 대로 살라고 말입니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짓밟고서라도, 싸우고 다투어서라도, 심지어 죽여서라도 그 시기하는 것을 얻으라고 유혹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관계가 깨진다고 할 지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으니 괜찮다고 그렇게 해야 나중에 후회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이 세상의 방식과 전혀 다릅니다. 우리에게 당장 손해가 되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는 하나님의 길을 걸어야 하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형제자매들을 섬기고 사랑하기 위해 내가 더 희생하고 손해를 보는 것이 때로는 하나님의 뜻일 수 있습니다. 아니 대부분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때 결정적인 순간에 르호보암이 잘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전쟁을 포기합니다. 인간적인 방법, 세상적인 방법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의 자존심, 복수심, 인간적인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굴복했던 것입니다.
르호보암은 직전까지도 백성의 요구를 거절하고 포학함을 선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늘 이 르호보암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당신의 뜻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살 수 있고 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르호보암에게만 입니까? 아뇨, 하나님은 미련한 어리석은 악한 우리에게도 동일한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의 허물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날마다 당신의 분명한 뜻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이제 더 고집스럽게 우리의 걸음을 내딛어 나가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상황을 거부하지 말고, 수용해야 합니다.
인생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죄를 짓는 중요한 이유는 욕심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갖고자 욕심을 낼 때,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거두어가시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붙들고 놓지 않으려 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멀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르호보암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두 지파만을 허락하셨음을 인정하고 두 지파, 남유다 왕국의 왕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길을 살아갑니다. 그는 여러 성읍들을 짓고 나라를 지키고 강성하게 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입니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남을 부러워하고, 내 처지에 대해 불평을 쏟곤 합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의 떡이 더 맛있어 보이고 커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불평이 생기면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을 소홀히 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라면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뜻에 굴복하는 사람들의 마땅한 태도입니다. 다섯달란트를 맡기셨든, 두 달란트를 맡기셨든, 내게 있던 다섯달란트 중에 네 달란트를 거두시고 달랑 한 달란트만 남기셨든, 우리는 그렇게 주신 것에 감사하며 그것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일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래요.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뜻, 당신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르호보암은 그렇게 자신에게 허락하신 두 지파를 위해 최선을 다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남 유다를 강성하게 해주시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그래요. 우리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면, 우선 이 세상의 방식을 쫓아 살고자 하는 우리의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하나님 자녀로서의 당당한 모습입니다. 당장은 손해를 입더라도 하나님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욕심 때문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들에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더 큰 복으로 강하게 하실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 더 확인해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4절을 다시 한번 함께 읽어볼까요?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와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돌아가고 여로보암을 치러 가던 길에서 되돌아왔더라”
하나님은 스마야를 보내셔서, 나라를 빼앗긴, 권세를 잃어버린, 두렵고 당황스럽고 화도 나고 슬프기도 한 저 르호보암을 위로하십니다. 남북이 분열된 것, 내가 나누려고 한 것이다. 그쵸? 너가 잘못해서 이 꼴이 된 것이다. 이 일을 어쩔 것이냐. 다 네가 책임져라! 인간의 어리석음을 꼬집고 정죄하시지 않지요. 인간의 실수와 미련함을 당신의 계획이라 덮어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일이라고 저들 앞에서 천명하십니다. 물론 솔로몬 때부터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등지고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둘로 나누신 것이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했기에 그렇게 둘로 나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참 귀한 분이십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가 쫓겨날 짓을 했는데도, 성경은 당신이 내보내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창3:21,23) 장발장이 은촛대를 훔쳤을 때, 사제는 말합니다. 안 그래도 내가 주려고 했던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런 하나님을 온전히 깨닫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으니 르호보암과 군사들은 걸음을 돌려 되돌아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했던 일이 무엇입니까? 네, 문단속입니다. 나머지 것이라도 지켜내기 위해 견고한 성읍들을 쌓았던 것이지요? 방패와 창을 두고 강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르호보암이 그 방비하는 성읍들을 더욱 견고하게 하고 지휘관들을 그 가운데에 두고 양식과 기름과 포도주를 저축하고 모든 성읍에 방패와 창을 두어 매우 강하게 하니라 유다와 베냐민이 르호보암에게 속하였더라”(11:11-12)
어찌보면 참으로 초라한 성적표입니다. 통일 이스라엘을 잘 다스려 나갔어야 할 왕이 확 쪼그라들어버린 것을 보면 참 속상한 것이 사실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르호보암의 영적 어리석음의 결과, 우물안 개구리가 되었고, 그 남은 힘과 생애를 밖으로 힘을 펼쳐가질 못하고 늘 북이스라엘과 주변국들을 두려워하며 안으로 문단속만 하며 살아가야 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것으로 끝이었나요? 아닙니다. 오늘 제목이 시작됩니다. “그것도 순종이라고!”
오늘 저 이스라엘 땅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지요? 르호보암과 남유다가 강성하여지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체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남유다에 모아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마음을 굳게 하여 하나님을 찾는 이들이 예루살렘으로 나아왔던 것이지요? 그 이야기들 한 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먼저 13절, “온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그들의 모든 지방에서부터 르호보암에게 돌아오되” 그쵸? 요단강 동편과 서편에 흩어져 살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다 유다로 옵니다. 그리고 16-17절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 마음을 굳게 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레위 사람들을 따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고자 한지라 그러므로 삼 년 동안 유다 나라를 도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강성하게 하였으니 이는 무리가 삼 년 동안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였음이더라.”
그래요.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하고 내 걸음을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이고 예배가 강력해지면, 모든 것이 강성해집니다. 다 잃어버리고 다 빼앗긴 것 같은 자리에도 하나님께서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역사해 주십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일하심, 그 섭리 속에 내 순종이, 그 보잘 것 없는 순종이, 참 귀한 역할을 한 것처럼,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것이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사용해주시는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그것도 순종이라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책임져 주십니다. 비록 르호보암이 어리석어 큰 실수를 범하고, 백성들마저 등 돌려버리는 길을 걸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셔서, 선지자를 보내 찾아가 주시고 말씀을 주시며, 오히려 남유다와 베냐민을 남기어 더욱 순수하고 강력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내주셨던 것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요. 이 작은 순종 하나를 보시고, 하나님은 유다와 베냐민을 강성하게 하시며, 르호보암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많은 자녀와 후손들을 허락하여 주시죠. 23절에 “르호보암이 지혜롭게 행하여 그의 모든 아들을 유다와 베냐민의 온 땅 모든 견고한 성읍에 흩어 살게 하고 양식을 후히 주고 아내를 많이 구하여 주었더라”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신앙생활이 이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어리석고 미련하여 실수하고 늘 여기 저기 허물 뿐일지라도 당신의 자녀를 감싸주시고, 말씀으로 위로하시며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렇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귀하게 듣고 순종하여 돌이키면 더 큰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시고, 그 자비하시고 은혜로우신 예수님이 우리 신랑입니다. 오늘도 보혜사 성령님의 내주하심과 인도하심 속에, 더욱 성숙하고 아름답게 빚어져 가시는 주의 종들, 시간이 흐를수록 늙는 것이 아니라 영글어가고 익어가는 귀한 분들 우리 모두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잘해보려고 하는데, 그 마음과 다르게 실수할 때도 많고, 옳다고 생각한 길을 벗어나 잘못된 방향을 좇을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버리지 않고 기회를 주시며 다시금 말씀을 주시어 우리를 살게 하시는 은총을 베풀어주심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주신 하나님의 용서와 기회 앞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가지 않도록 힘과 지혜와 용기를 주옵소서. 욕심껏 자기길로 달려가는 이에게도 그러하실진대, 하물며 오늘도 예수님을 생각하며 어렵고 힘들고 억울하고 속상한 중에도 참고 인내하며 견디며 충성하는, 오늘도 저 세상과 원수들을 향해 선대하고 축복하고 사랑하고 기도한 오늘 귀한 주의 자녀들에게 더더욱 크신 은총의 길을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 또 한 번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로우심을 확인했습니다. 상대방의 실수와 잘못에 발끈하며 비난하고 정죄하고 추궁하기 바쁜 우리가 아니라, 넉넉하게 저들의 실수와 잘못을 품고 나도 그리하려 하였다고,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이다 라고 말해줄 수 있는 주님 닮은 종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모든 시간 모든 공간 속에 함께 하심을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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