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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파워스의 소설 『오버스토리」
저자 : 리처드 파워스
인간과 비인간적 존재의 관계에 대한 예리한 통찰로 정평이 난 작가로, 1957년 일리노이주 에번스턴에서 태어났다. 일리노이 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나 첫 학기에 영문학과로 전과, 석사학위까지 마쳤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중 사진작가 아우구스트 잔더의 <젊은 농부들>에 영감을 받아 글을 쓰기 시작해, 첫 작품 《무도회에 가는 세 농부들(Three Farmers on Their Way to a Dance)》을 발표한다. 이 소설로 인해 받은 언론의 관심과 주목을 피해 네덜란드로 이주, 이후 본격적으로 작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네 번째 소설 《방황하는 망령 작전(Operation Wandering Soul)》으로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아홉 번째 소설 《에코메이커(The Echo Maker)》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하고 퓰리처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오버스토리(The Overstory)》는 그가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에 마주친 거대한 삼나무에 영감을 받아 쓴 작품으로, 맨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으며 프랑스에서 출간된 미국 문학에 수여되는 미국문학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고 있으며, 그레이트스모키산맥 기슭에 살고 있다.
역자 : 김지원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강사로 재직했으며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 《미생물에 관한 거의 모든 것》 《지구 100》(전 2권) 《비하인드 허 아이즈》 《7번째 내가 죽던 날》 《루미너리스》(전 2권)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등이 있고, 엮은 책으로는 《바다기담》과 《세계사를 움직인 100인》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지금은 밤나무의 시절이다. 사람들이 커다란 나무 몸통에 돌을 던진다. 성스러운 환호 속에서 밤이 그들 주위로 떨어진다. 이번 일요일에 조지아부터 메인까지 수많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위쪽 콩코드에서는 소로가 참여한다. 그는 지각을 가진 존재에게 돌을 던지는 듯한 기분이다. 자신보다는 좀 둔하지만, 어쨌든 친척 같다. 오래된 나무들은 우리의 부모이고, 어쩌면 우리의 부모의 부모일 것이다. 자연의 비밀을 배우려 한다면 더 많은 인류애를 키워야 할 것이다.-15쪽
동물이 다가오자 윈스턴은 일어선다. 그리고 곰에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이 낯선 언어에 미미는 대단히 놀란다. 윈스턴은 주머니에서 피스타치오를 한 줌 꺼내서 화장실 안으로 던진다. 곰은 신경을 돌릴 거리를 찾아서 기뻐하며 피스타치오를 따라 어슬렁어슬렁 걸어간다. 그날 밤, 노리스 근처의 캠프장에서 미미는 존경심에 차서 아버지에게 묻는다. 아버지는 그녀의 눈앞에서 달라졌었다. “곰한테 뭐라고 하셨어요?” 아버지가 미간을 찌푸리고, 어깨를 으쓱였다. 곰에게 달리 뭐라고 말을 할까? “사과했지! 녀석에게 사람들은 아주 멍청하다고 했어. 사람들은 모든 걸 잊지. 자신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도. 난 이렇게 말했단다. 걱정하지 마라, 인간은 곧 이 세계를 떠날 거야, 그러면 곰이 다시 제일 윗자리로 올라갈 수 있을 거란다, 하고.”-60쪽
당신은 내가 당신을 알기 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을 나에게 줬어. 마치 내가 “책”이라는 단어를 갖고 있었는데 당신이 내 손에 책을 것 같아. “게임”이라는 단어가 있었는데 당신이 나한테 게임하는 법을 알려준 것 같아. “삶”이라는 단어가 있었는데 당신이 와서 “아! 당신 이걸 뜻한 거지”라고 말한 것 같아. 매년, 가능한 한 이날에 가까운 날, 묘목장에 가서 정원에 심을 만한 걸 찾아보자. 난 식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 이름도 모르고 어떻게 돌보는지도 몰라. 심지어는 녹색 식물 하나랑 다른 것들을 구분조차 못해. 하지만 나 자신,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내가 사는 곳의 넓이와 높이와 깊이 같은 모든 것을 당신 옆에서 다시 배웠던 것처럼, 이것도 배울 수 있어. -105~106쪽
개개의 나무들의 생화학적 행동은 이들을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볼 때에만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181쪽
그들은 그날 밤에, 삼나무의 부드러운 낙엽 속에서, 솔잎 담요 위에 누워서 서로에게 숲의 이름을 붙여준다. 게임은 처음에는 어린애 장난 같다. 하지만 모든 예술, 모든 이야기, 모든 인간의 희망과 두려움은 어린애 장난이다. 이 새로운 작업을 위해 새로운 이름을 가지면 안 될 이유가 있나? 나무에는 십여 가지 각기 다른 꼬리표가 붙는다. 같은 식물을 텍사스와 스패니시와 가짜 칠엽수나무와 모닐로 같은 이름들로 부른다. 나무 이름은 단풍나무 씨앗처럼 방만하다. 버튼나무, 혹은 버즘나무, 또는 플라타너스라고도 한다. 마치 가짜 여권이 서랍에 가득한 사람처럼 말이다. 어느 곳에서는 라임나무이고, 다른 곳에서는 린덴나무, 대체로는 피나무라고 하지만 목재나 꿀로 바뀌면 참피나무라고 한다. 왕솔나무 하나에 이름이 스물여덟 개다. -304쪽
“난 다른 사람들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강한 마약인지 몰랐어요.”
“가장 강한 마약이죠. 아니면 최소한 가장 널리 남용되는 거든지.”
“얼마나 오래 걸릴까요…… 해독하는 데?”
“아무도 완벽하게 깨끗해본 적이 없을걸요.” -376쪽
그녀는 그에게 말한다. 모든 것은 다른 것들에 의존한다. 오래된 숲을 필요로 하는 들쥐 종이 있다. 이 들쥐들은 썩은 통나무에서 자라는 버섯을 먹고 포자를 다른 곳에 배설한다. 썩은 통나무가 없으면 버섯도 없다. 버섯이 없으면 들쥐도 없다. 들쥐가 없으면 포자도 퍼지지 않는다. 포자가 퍼지지 않으면 새로운 나무도 없다. -397쪽
“개벌한 후에 다시 자라는 건 숲이 아닌가요?”
“숲을 조림지로 대체할 수는 있습니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솔로 피리 연주용으로 편곡할 수도 있겠죠. 나무 농장보다 교회의 뒤뜰이 더 다양성을 갖고 있을 겁니다.”
“훼손되지 않은 숲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많지 않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의 4분의 1도 안 되나요?”
“이런 맙소사! 훨씬 적어요. 아마 2에서 3퍼센트 정도밖에 안 될 겁니다.” -399쪽
닉이 소리치고 이웃 사람들이 따라온다. 그는 그들을 데리고 얕은 비탈을 따라 또 다른 도랑으로 향한다. 그리고 거기서, 파도 같은 산사태가 가느다란 삼나무 열 뒤에서 멈춘다. 진흙과 돌무더기들이 최후의 장벽 사이로 새어 나오지만, 나무들은 버틴다. 어머니가 무너진다. 그녀는 흐느끼며 아이들을 붙잡는다. 아버지와 닉은 벌거벗은 산비탈을, 엄청나게 낮아진 등성이를 바라본다. 남자가 중얼거린다. “하느님 맙소사.” 닉은 그 말에 움찔 고개를 돌린다. 그는 이웃이 가리키는 곳을 본다. 방금 그들의 목숨을 구한 나무 장벽의 몸통 하나하나에 밝은 파란색으로 X자가 칠해져 있다. 다음 주에 자를 나무들이다. -509쪽
여기는 나무가 끼어 사는 우리 세계가 아니다. 나무의 세계에 인간이 막 도착한 것이다. -597쪽 닫기
출판사 서평
2019 퓰리처상 수상작
평단과 언론이 극찬한 인간과 숲에 관한 기념비적 소설
〈워싱턴포스트〉 〈타임〉 〈뉴스위크〉 올해의 책 선정 | 미국문학대상 수상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 맨부커상 최종후보작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에 대한 예리한 통찰로 정평이 난 작가 리처드 파워스의 《오버스토리》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나무와 마찬가지로 가지를 뻗어나가고 잎을 드리우는 독창적인 서사 구조가 인간의 경이와 유기성을 환기시키는 작품”이라는 평으로 2019 퓰리처상 픽션 부문을 수상했다.
미 대륙의 얼마 남지 않은 원시림을 구하기 위해 모여든 아홉 명의 삶을 다룬 이야기로, 작가는 ‘아무도 나무를 보지 않는 시대’에 대한 경고와 우려를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환경 서사시로 담아냈다. 2018년 맨부커상 최종후보작이자 프랑스에서 출간된 미국문학에 수여되는 미국문학대상을 수상했으며, 맨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고, 〈워싱턴포스트〉 〈타임〉 〈뉴스위크〉 등 유수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인간의 세계와 나란히 존재해왔으며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야 할 드넓고 유기적이며 놀랍도록 창의적인 세계에 눈을 뜨게 해줄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인간은 나무의 세계에 지금 막 도착했다”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나무에게 부름 받은 아홉 명의 사람들,
숲을 구하기 위해 격렬한 최후의 자리에 모이다
1903년 봄 첫날에 존 호엘은 코닥 넘버 2 브라우니를 삼각대에 설치하고 잎을 틔우기 시작하는 파수꾼 밤나무의 전신사진을 찍는다. 그날부터 한 달 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또 한 장을 찍는다. 매달 21일에 그는 언덕에 올라간다. 첫해의 흑백 사진 열두 장을 모아서 엄지손가락으로 쭉 넘기자 그가 기획한 것이 작지만 귀중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나무는 아무것도 없다가 순식간에 이파리를 틔운다. 그다음에는 밝은 햇살 아래 모든 것을 바친다. 농부는 잔인한 계절들을 견딘 인내심 많은 사람들이고, 그들이 수세대의 꿈에 사로잡히지 않았다면 매년 봄마다 계속해서 밭을 갈 수 없었을 것이다. 존 호엘은 1904년 3월 21일에 다시 언덕에 올라간다._23~24쪽
비극적인 운명의 밤나무 초상 사진 백 년 치를 물려받은 화가가 있고, 이민자 아버지로부터 뜻 모를 아라한의 족자와 나무가 세공된 반지를 물려받은 엔지니어 딸이 있다. 미공군 한 명은 격추당했다가 반얀나무 위로 떨어져서 살아남고, 파티광인 대학생은 감전되어 죽었다가 공기와 빛의 존재들에 의해 되살아난다. 시민 극장에서 <맥베스>를 공연하며 ‘움직이는 숲’의 예언을 재현하기 전까지는 나무에는 관심도 없던 변호사와 속기사가 있고, 나무에서 떨어져 반신불수가 되었을지라도 컴퓨터 속 세계에서 더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학생이 있다. 그리고 청각과 언어 장애를 가진 과학자는 나무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자신은 탄생수 단풍나무와 운명을 같이한다고 믿던 순수한 아이는 인간의 맹점에 눈을 뜨며 영악하게 자라난다.
책은 이처럼 각기 한 그루의 나무로 상징되는 아홉 인물의 개별적인 삶을 극적으로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리고 숲이 그러하듯, 이들의 삶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서로 연결되며 또 다른 거대한 이야기 숲을 이룬다. 벌목 위기에 놓인 원시림을 구하기 위해 최후의 자리에 모여든 사람들, 이들은 과연 어떤 운명과 마주하게 될 것인가.
“이곳은 나무가 끼어 사는 우리의 세계가 아니다,
나무의 세계에 인간이 막 도착한 것이다“
“파워스가 19세기 작가였다면, 《모비 딕》의 허먼 멜빌이었을 것이다. 아주 큰 그림을 그리는 작가다.”_마거릿 애트우드
리처드 파워스는 ‘찰스 퍼시 스노가 말한 ‘두 문화’를 넘나들며 문학과 과학적 감수성의 접점을 탐구해온’(가디언) 작가다. 카그라 증후군을 다룬 아홉 번째 소설 《에코메이커》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하고 퓰리처상 최종후보에 올랐던 그가 이번에는 40억 년 지구 생명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말없는 존재들에게 눈을 돌렸다.
《오버스토리》는 남북 전쟁 전 뉴욕부터 20세기 말 태평양 북서부의 목재 전쟁과 그 이후에 이르는 서로 맞물린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을 탐색한다. 작가는 주인공 한 명의 목소리를 빌려 ‘지구가 하루 동안 존재했다면 하루가 끝나기 불과 4초 전에 등장한 인류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666쪽)고 일갈하며 ‘아무도 나무를 보지 않는 시대’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 자연계에 대한 놀라운 환기이자 찬가이며, 행동주의와 저항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제목 ‘오버스토리(overstory)’ 자체가 숲 상층부의 전체적인 생김새를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촘촘하게 쌓아올린 서사와 은유,
비로소 숲이 보이는 장대한 이야기
아무도 나무를 보지 않는다. 우리는 열매를 보고, 견과를 보고, 목재를 보고, 그림자를 본다. 장식품이나 예쁜 가을의 나뭇잎을 본다. 길을 가로막거나 스키장을 훼손하는 장애물을 본다. 깨끗이 밀어야 할 어둡고 위험한 장소들을 본다. 우리 지붕을 무너뜨릴 수 있는 가지들을 본다. 환금성 작물을 본다. 하지만 나무는, 나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_596쪽
이 거대한 담론을 위해 작가는 교묘하고 치밀한 전략을 취한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진짜 세계’(655쪽)를 보는 방법을 배우면서 필연적으로 재앙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아홉 명의 이야기는 잘 짜인 서사와 반전을 선보이는 동시에, 그 자체가 나무가 숲을 이루는 과정에 대한 아름다운 은유다. 인물 한 명 한 명의 이야기 속에서도 마찬가지 구조를 찾아볼 수 있다. 허허벌판에 홀로 남은 밤나무가 담긴 100년의 사진은 실제 곰팡이병으로 거의 전멸되다시피 한 미국 밤나무의 역사를 보여주는 한편, 그 나무를 물려받은 남자가 걸어갈 운명을 상징한다. 심리 실험에 참여했다가 처참한 기분으로 공군이 된 한 남자의 이야기는 스탠퍼드 감옥 실험을 연상시키는데, 그가 죄수번호 571번을 읊조릴 때마다 생태 재앙이라는 당면한 진실을 보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가 뚜렷이 드러난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나무들에 관한 이야기도 독자들을 매혹하기에 충분하다. 한때 사방 400킬로미터 이내에서 유일하게 솟은 나무였으나 술 취한 운전자에게 들이받혀 사라진 ‘테네레의 나무’(638쪽), 가지 끝이 아닌 몸통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자보티카바 나무와 폭발음을 내며 씨앗을 시속 260킬로미터로 쏘아대는 후라 크레피탄스(636쪽) 등이 그 예다.
작가가 이처럼 폭넓은 지적 통찰과 독창성으로 완성해낸 이 소설은 우리가 자진하여 떨어져 나온 나머지 생명들에게 눈을 돌리고 변화의 가능성을 꿈꾸게 만들 것이다.
북리뷰
《오버스토리》 겨우 그것 뿐
때로는 책에서 풍기는 분위기로 인해 책을 읽기도 전에 압도되거나 주눅이 들 때가 있다. 책의 볼륨이나 권수에 상관없이 말이다. 문장이나 주제에서 오는 장중한 느낌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장대한 서사가 인간에게 주는 깊은 울림은 우리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강한 연대감과 함께 유구한 역사에서 개인의 삶은 얼마나 작고 사소한 것인가 깨닫게 한다. 장편소설 <오버스토리>를 썼던 리처드 파워스 역시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샌타크루즈 산에 100년도 더 된 삼나무 군락지 인근에 살던 작가는 산을 오르다 마주하게 된 거대한 삼나무 앞에서 '그동안 나는 이렇게 경이로운 존재를 앞에 두고도 보지 못하는 맹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무도 나무를 보지 않는 시대에 대한 경고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로키 산맥과 그레이트스모키 산맥 등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고, 나무에 관한 책만 120권 넘게 읽었으며, 급기야 아직 원시림이 남아 있는 산기슭으로 집까지 옮겼다고 하니, '문학과 소설이 꿈꾸는 경이로움'을 담기 위한 작가의 열정에 그만 숙연해질 뿐이다. 작가가 바라보는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는 우리 곁에서 언제나 존재하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풍경이 아니라 보면 볼수록 놀라운 기적이자 경이로움이다.
"고개를 들자 파수꾼 나무의 가지가 외롭게, 거대하게, 사방으로, 바람 속에 헐벗은 채 뻗어서 아래쪽 가지들을 들어 올리고 그 두툼한 몸통을 으쓱인다. 사방으로 자라난 수많은 잔가지들은 너무나도 사소하고 너무나 덧없는 이 순간을 그 나이테에 새기고, 새파란 중서부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수기신호를 보내는 기자들이 가지들이 기도해줄 거라는 듯이 바람 속에서 잘그락거린다." (p.39)
702쪽의 장대한 서사인 <오버스토리>는 주인공이 한 명이 아닌 무려 9명에 이른다. 비극적인 운명의 밤나무 초상사진 백 년치를 호엘가(家)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화가 니컬러스 호엘, 이민자 아버지로부터 뜻 모를 아라한의 족자와 나무가 세공된 반지를 물려받은 엔지니어 미미 마, 네 명의 어피치가(家) 아이들 중 막내로 태어난 애덤 어피치는 유년시절 집 앞에는 각자의 나무가 한 그루씩 심어져 있었고, 린덴나무에 얽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레이 브링크먼과 도러시 카잘리, 개벌(皆伐) 현장에서 작업하면서 나무를 하나씩 심을 때마다 작별 인사를 한다는 더글러스 파블리첵.
"버텨. 100년에서 200년 정도만. 너희들한테는 어린애 장난 같은 거지. 너희는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야 해. 그러면 너희를 건드릴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을 거야." (p.131)
이야기는 닐리 메타를 지나 청각과 언어 장애가 있던 식물학자 패트리샤 웨스터퍼드로 이어진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마치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에 버금갈 정도로 아름답지만 식물학자인 패트리샤 웨스터퍼드의 이야기는 유독 눈길을 끈다. 불편한 몸으로 그녀가 찾아냈던 놀라운 발견들. 이를테면 식물들이 스스로의 몸에서 내뿜는 화학물질을 통하여 의사소통을 하며, 때로는 서로에게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주기도 한다는 놀라운 연구 성과. 그러나 그녀의 이론은 무시되었고 한동안 묻혔지만 그녀를 존경하던 또 다른 식물학자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는데 그 장면은 대단히 극적이고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 수년의 연구에서 그녀가 알아챈 더글러스전나무의 행동은 그녀에게 기쁨을 준다. 더글러스전나무 두 그루의 측면 뿌리들이 지하에서 만나자 서로 달라붙는다. 스스로 접 붙은 이 뿌리를 통해서 두 나무는 관다발계가 합쳐지며 하나의 나무가 된다. 수천 킬로미터의 살아 있는 균사로 지하에서 서로 연결된 그녀의 나무들은 서로에게 양분을 공급하고, 서로 치료해주고, 어린 나무들과 아픈 나무들의 목숨을 유지해주고, 자원과 대사산물들을 공용 보관함에 저장한다……." (p.203)
젖은 손으로 램프를 만지는 바람에 죽다 살아난 올리비아 밴더그리프의 이야기, 파티광의 대학생이었던 그녀는 공기와 빛의 존재들에 의해 되살아나고... 소설은 그렇게 한 그루의 나무로 상징되는 아홉 인물의 개별적인 삶을 보여주며 유려하게 흘러간다. 그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숲의 부름을 받았고, 예기치 못했던 어떤 순간에 서로에게 연결되었으며, 함께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소설은 각기 한 그루의 나무로 상징되는 아홉 인물의 개별적인 삶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나무의 부름을 받는다. 숲이 그러하듯, 이들의 삶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서로 연결되며 또 다른 거대한 이야기 숲을 이룬다.
"그는 다음 프로젝트가 손짓하는 북쪽 숲을 쳐다본다. 햇살을 가르는 가지들이 중력을 향해 웃어대며 여전히 펼쳐지고 있다. 꼼짝하지 않는 나무 몸통 기단에서 무언가가 움직인다.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다. 이것, 목소리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속삭인다. 이것. 우리가 지금까지 받아왔던 것. 우리가 얻어야만 하는 것. 이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예요." (p.702)
나는 오래전에 일본 야쿠시마에 있는 조몬 삼나무를 보러 갔던 적이 있다. 수천 년 동안 생명을 이어온 나무의 자태도 감탄을 자아냈지만 그 숲에서 느꼈던 편안함은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역사의 작은 파편에 불과한 나의 삶 역시 거대한 자연 속에서 교류하고 내게 허락된 시공간을 지키며 묵묵히 유지되고 있다는 생각. 숲의 돌멩이 하나, 물 한 방울, 이름 없는 풀 한 포기까지 어느 것 하나 필요 없는 게 있을 수 없으며 각각의 쓰임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헌신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인해 나는 뭉클한 감동을 느꼈었다. 나는 지금도 매일 아침 산길을 걷는다. 새벽에 만나는 숲의 나무와 온갖 동물들에 감사하면서. 그리고 이따금 등산객들이 버린 쓰레기를 줍기도 한다. 자연에 대한 보답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겨우 그것뿐임을 자각하면서.
《오버스토리》 이제야 나무가 보인다
나의 해묵은 버킷 리스트 중 하나는 일본 야쿠시마에 있는 '조몬 삼나무(조몬스기)'를 보러 가는 것이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에 나오는 나무로도 유명한 조몬 삼나무는, 높이 25미터, 둘레 16.4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도 놀랍지만, 추정 수령(樹齡)이 최소 2170년에서 최대 7200년이라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7200년 전이면 우리나라는 신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기나긴 날들을 죽지 않고 살아낸 나무. 그 나무의 기운을 받아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는 것이 나의 작은(?) 꿈이다.
그런데 굳이 가고시마에서 배 타고 네 시간은 가야 도착하는 야쿠시마까지 가지 않아도, 익숙지 않은 트레킹과 산행을 불사하면서까지 조몬 삼나무를 보러 가지 않아도, 생명력 강한 나무의 기운을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이미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리처드 파워스의 장편소설 <오버스토리>에 따르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심지어는 나와 내 주변에 심어져 있는 나무는 공통 조상에서 나왔다고 하니,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야쿠시마에 있는 조몬 삼나무는 우리 집 베란다에서 엄마가 키우는 고무나무와 연결되어 있고, 나무와의 관계라고는 사주 일간에 갑목(甲木)이 있는 정도인 나하고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나무와의 관계를 일부러 찾아야 찾을 수 있는 나와 달리, <오버스토리>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태어날 때부터(또는 등장할 때부터) 나무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오버스토리>의 중심인물은 모두 아홉 명이다. 이야기는 이민자 출신의 가난한 농부인 요르겐 호엘이 어느 날 밤[夜]에 구워 먹고 남은 밤[栗]을 마당 한구석에 심으면서 시작된다. 여섯 개의 밤알 중에 다섯 개만이 싹을 틔웠고, 그중 하나만이 커다란 나무로 성장했다. 그 아들이 나무를 돌보고, 그 아들이 나무를 돌보다 마침내 니컬러스 호엘에게까지 책임이 돌아왔다. 조상들을 닮아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니컬러스 호엘은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 있는 나무의 사진을 찍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보낸다.
이어지는 미미, 애덤, 레이와 도러시, 더글러스, 닐리, 올리비아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인물은 패트리샤 웨스터퍼드다. 패트리샤는 중심인물 아홉 명 중에서도 가장 식물 친화적이고 나무와 가까운 인물이다. 어릴 적 아버지의 영향으로 식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패트리샤는, 학창 시절 내내 '식물녀'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대학에서 식물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얼마 후 패트리샤는 명망 있는 저널에 논문을 수록하고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지만, 패트리샤가 젊은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남성 학자들의 조롱과 비난을 견디다 못해 학계를 떠나버리고 만다. 인간에게 상처받은 패트리샤는 숲으로 들어가 나무에게 치유받고, 다시 나무를 위해 살기로 결심한다. 나무의, 나무에 의한, 나무를 위한 삶을 살기로 한 패트리샤의 다짐은 지켜지고, 끝내 보상까지 받게 된다.
전반부가 인물 각각의 이야기가 하나씩 차례대로 펼쳐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후반부는 인물 각각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하고 통과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모든 인물들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꼼꼼하게 읽어야 하는 이유다). 밤나무를 지키던 니컬러스는 한때 파티광이었으나 감전된 후 기적적으로 살아난 여대생 올리비아와 우연히 만나 농장을 떠난다. 대학 졸업 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엔지니어로 일해온 미미는 더글러스와 함께 벌목 반대 집회에 참가한다. 집회에서 미미와 더글러스는 애덤을 만나고, 레이와 도러시는 결혼 생활이 위기에 빠졌을 때 패트리샤의 책을 읽는다. 닐리는 패트리샤의 강연에 참석했다가 삶의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린다. 패트리샤는 강연 도중에 미미와 눈이 마주친다.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각자의 삶을 영위하던 인물들의 관심을 하나로 집중시킨 건, 곳곳에서 끊임없이 무분별하게 벌어지는 벌목이다. 거대 기업의 이윤을 위해 시행되는 대규모 벌목부터 마을 환경 정비를 위한 나무 제거 활동까지, 온갖 목적으로 나무가 파헤쳐지고, 베어지고, 시야에서 사라질 때마다, 인물들은 시위를 벌이고, 공권력과 맞서고, (문자 그대로) 피 흘리며 투쟁한다. 환경 운동의 효과는 물론 당위성마저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인물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무 한 그루를 자를 때 그걸로 만드는 건 최소한 당신이 잘라낸 것만큼 기적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이는 나무가 단순히 있는 그대로 대대손손 보전해야 할 자원이어서가 아니다. 나무도 인간과 같은 생명체이고, 나무와 인간은 같은 지구상에서 공생하며, 나무가 없으면 인간도 없기 때문이다.
진실이 뻔히 보이는데도 행동하지 않는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는 애덤, 결혼이 인간이 인간을 소유하는 제도라고 생각해서 갈등하는 레이와 도로시의 이야기는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에 비해 나무와 덜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들의 이야기 또한 나무와 인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다. 심장마비로 사람이 쓰러져도 구하러 가지 않는 사람들이 나무 한 그루가 눈앞에서 쓰러진다고 눈 하나 깜짝할 리 없다. 인간이 인간을 - 정확히는 남자가 여자를 - 소유하고 그것이 결혼 제도로 정당화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인간이 나무를 소유하고 마음대로 사용하는 일에 죄의식을 느낄 리 없다.
아무도 나무를 보지 않는다. 우리는 열매를 보고, 견과를 보고, 목재를 보고, 그림자를 본다. 장식품이나 예쁜 가을의 나뭇잎을 본다. 길을 가로막거나 스키장을 훼손하는 장애물을 본다. 깨끗이 밀어야 할 어둡고 위험한 장소들을 본다. 우리 지붕을 무너뜨릴 수 있는 가지들을 본다. 환금성 작물을 본다. 하지만 나무는, 나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596쪽)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묻는다. 인간은 무슨 권리로 나무를 함부로 베고, 자르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가. 만약 나무가 인간을 함부로 베고, 자르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한다면 인간은 어떤 감정이 들겠는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게 '아낌없이 받기만 하는 인간'은 과연 타당한가. 남보다 더 많은 땅을 차지하고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면 승리하는 게임을 만들던 닐리가 패트리샤의 강연을 계기로 전혀 다른 게임을 개발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 질문들의 답을 찾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남보다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가지는 것을 목표로 살고 있는 우리도 실은 이 질문들의 답을 알고 있다. 다만 보지 않을 뿐이다. 보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나무는 집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도 있고 집 안에도 있는데, 그것들은 생명이 아니라 배경이나 장식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눈 앞에 있는 나무는 보지 않고, 진짜 나무는 저 먼 야쿠시마 산속 깊숙한 곳에나 있다고 생각한다(반성한다).
버킷 리스트를 수정해야겠다. 지구 환경에 해로운 온실가스를 배출해가며 야쿠시마까지 가는 대신, 당장 내 눈앞에 있는 나무, 내 손 뻗으면 닿는 나무들부터 신경 써야겠다. 나무로 된 가구를 사든, 수첩을 사든, 그것을 사용한 가치가 최소한 그것을 만드는 데 들어간 나무 이상의 것이 되도록 해야겠다. 문제는 내가 한 달에 열 권 이상씩 읽어치우는 책들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줄이기가 힘들 것 같다. 전자책으로 읽자니 그 또한 전기를 사용하니 지구 환경에 좋다고만 볼 수도 없을 것 같고. 그래도 <오버스토리>처럼, 나무의, 나무에 의한, 나무를 위한 책을 읽기 위한 독서라면 나무에 해롭다고만 볼 수도 없지 않을까. 독서도 나무에 해로운 행위라면, 대체 나는 그동안 저지르고, 앞으로 저지를 죗값을 언제 어떻게 다 갚을까. 갚을 순 있을까. 이제야 나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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