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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멀리서 바라본 외연도. 외딴 곳에 해무에 싸여 있는 섬이란 뜻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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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산과 바다가 그립지요. 산꾼은 그래도 산을 갑니다. 이왕이면 바닷가 산이면 어떨까요. 그래서 저는 산과 바다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섬 산행을 하고 왔습니다. 충남 보령에서 배를 타고 2시간 남짓 가면 나타나는 해무에 싸인 아름다운 섬 외연도엘요. 산죽산악회원 30여 명과 함께 1박2일 둘러본 섬과 봉화산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려드리겠습니다.
중국 제나라 마지막 임금 전횡 수호신으로 받들어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했으나 대천항에서 떠나는 배 시간이 오전 10시와 오후 2시라 오전 편에 맞추기 빠듯해 아예 오후 편을 택했습니다. 그 바람에 시간이 남아 무창포해수욕장과 죽도를 거쳐 대천어시장에서 건어물전들의 맛보기 경쟁 공세도 받고 인근 식당에서 점심까지 해결하고서야 배에 올랐습니다. 주말이라 그런지 선실은 빈자리가 별로 안 보입니다. 낚시 차림이 많은 건 당연하고요, 쌍쌍이 놀러가는 듯한 이들도 몇몇 눈에 띕니다.
- 배는 대천항을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원산도와 삽시도를 뒤로하고 이름 모를 작은 섬 몇 개를 지나더니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효도에 기착을 하곤 곧 이어 옆 섬 녹도에도 사람을 부립니다. 효도는 여우, 녹도는 사슴을 닮았다나요.
1층 선실 맨 앞쪽에 앉았는데 모두들 2층 갑판에 모였대서 올라가 보니 갈매기들이 배를 따라 날며 진기 명기를 보여 줍니다. 승객 몇몇이 새우깡을 던져 주는 걸 쏜살같이 달려들어 공중에서 받아먹습니다. 핸드볼 경기를 하듯 순번제로 선수를 교체하면서요. 우리나라 갈매기들을 대상으로 새우깡 받아먹기 대회를 한 번 열었으면 어떨까 싶네요.
비스듬히 앞쪽을 바라보니 멀리 수평선 위로 허리 아래에 해무 띠를 두른 외연도와 부속섬들이 아스라이 떠 있습니다. 점점 커지며 다가오는 섬. 도착한 건 오후 4시10분경. 오른쪽으로 빨간 등대, 왼쪽으로 흰 등대를 단 방파제를 지나 강한 햇살이 따갑게 내려 쬐는 선창에 발을 내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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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 당산 올라가는 길에서 내려다 본 외연도 내항 풍경입니다.
- 집어등을 단 어선들과 원색의 물감으로 벽화를 그린 마을 집들 그리고 새털구름이 약간 낀 파란 하늘, 그 아래 동그마니 솟은 청록색 봉화산이 우릴 반겨줍니다. 선창에서 한 골목 들어가 있는 민박집에 배낭을 풀고 당산 관광부터 나섭니다.
태양열 집열판을 머리에 인 깔끔한 2층 건물 외연도초등학교를 지나 왼쪽으로 난 비탈길을 오르니 울창한 상록수림 사이로 성황당이 나타납니다. 이 섬 150여 가구 450여 주민들이 신성시 여기는 곳인데, 모신 신은 의외로 중국 제나라의 마지막 임금 전횡이랍니다. 2500년 전 한고조가 중국을 통일하자 휘하의 군사 500명과 함께 이 섬으로 피신 왔다가 돌아가 부하들을 살려줄 것을 청하고 자결했고, 이를 본 부하들도 함께 목숨을 끊었답니다. 이곳 주민들이 그 소식을 듣고 그를 위해 사당을 짓고 명복을 빌며 섬의 수호신으로 받들어 왔다는 겁니다.
이곳은 천연기념물 제138호 ‘외연도 상록수림’이기도 한데 동백나무, 후박나무, 돈나무, 식나무, 불가시나무, 먼나무, 개산초나무, 자금우, 보리밥나무, 마삭줄, 송악, 무른나무 등 상록활엽수들이 팽나무, 찰피나무, 자귀나무, 딱총나무, 푸조나무, 산초나무 등 낙엽활엽수들과 어울려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높이도 큰 것은 20m를 넘고 나무 둘레도 2m가 넘는 것들까지 별세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동안 유명했던 사랑나무 연리지는 2010년 태풍 곤파스 때 부러져 쓰러진 채로 찌든 모습이라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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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연도 남서해안의 절경 고래조지(사진 보령시청 관광과 제공).
- 사당 위 가장 높은 지대에선 섬의 사방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동쪽으로 봉화산, 서쪽으로 대·중·소청도 섬, 남쪽으로 외연도항 방파제와 내항, 포구 마을이 조망돼 경치는 좋습니다만 섬에 도착하면서부터 웬 하루살이들이 그렇게도 달려드는지, 잠시라도 손을 내젓지 않으면 눈, 코, 입, 귀 어디든 구멍만 있으면 침투하려고 해대서 한 곳에 눈을 팔 수 없습니다. 해로운 벌레는 아니라지만 이렇게 사람을 성가시게 해서야!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한 감동 느껴져
우리는 동쪽 봉화산으로 이어지는 이 섬의 허리부분, 즉 바람의 언덕으로 내려오며 정면에 펼쳐지는 경치에 탄성을 지릅니다. 봉화산 북쪽 해안 병풍바위와 노랑배 쪽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좀 더 가니 약수터가 나옵니다. 봉화산에 내린 비가 스몄다가 흘러나오는 것 같은데 수량이 꽤 많고 시원하고 맛도 좋습니다. 수통 물을 바꾸어 채우고 여기서 더 가면 노랑배란 전망대가 나온다지만 사람들이 명금이라 부르는 북쪽 해변으로 내려가자고 의견을 모으는 바람에 따라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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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횡 사당에서 바라본 봉화산입니다. 왼쪽 봉우리가 주봉으로 해발 279m입니다.
- 서해안 지방말로 ‘금’은 안으로 쑥 들어간 곳, ‘배’는 밖으로 툭 튀어난 곳을 뜻한답니다. 명금은 큰명금과 작은명금을 합친 것으로 동쪽부터 서쪽으로 움푹하게 펼쳐진 두 해변을 말합니다. 그 너머로 작은 해변이 하나 더 펼쳐져 있는데 아까 올랐던 당산의 북쪽 가장자리 상투바위와 매바위가 있는 기암절벽 매배로 이어지는 돌삭금입니다. 여기서 바라보는 경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소로 사용해도 좋을 만큼 아주 훌륭합니다. 마침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져 역광이라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해변으로 내려서는 돌계단 옆에 보라색 갯완두 꽃이 예쁘게 피어 있습니다. 바람이 없어 잔잔한 바다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입니다. 물속과 밖으로 큰 몽돌들이 반짝이는 맨 살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햇볕을 받아 금처럼 빛난대서 명금이라 부른다더니 맞습니다. 섬 쪽으로는 집채만 한 바위들이 포개져 있는데 신기하게도 이들도 표면이 너무 말개서 해변에 있는 바위가 맞나 싶습니다.
먼저 간 사람들은 돌삭금에서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놀고 있는데, 저는 이 경치 저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이들이 나올 때쯤에야 도착합니다. 어느새 7시 저녁 시간이 다됐군요. 얼른 민박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고 동네 서쪽 망재산에서 일몰 경치를 감상해야지요.
저녁은 꽃게를 넣은 간재미해물탕이 나왔습니다. 우럭과 볼락구이, 고동무침 같은 섬 특유의 반찬들에 혹해 저마다 준비해 온 반주를 다 꺼내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그만 일몰 시간을 놓쳐버리고 맙니다. 육지와 직선거리로 66km나 떨어진 먼 섬이라서 그런지 안주가 좋아서 그런지 술은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참만에야 저녁상을 물리니 약간의 취기가 느껴지고 무엇보다 배가 부릅니다. 잠시 바닷바람이라도 좀 쏘여야겠다 싶어 혼자 살짝 방파제 쪽으로 나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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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연도 내항에서 바라본 봉화산 전경. 뒤쪽 낮아 보이는 봉우리가 주봉입니다.
- 칠흑 같은 밤하늘이지만 내항 쪽은 출어를 준비하는 어선들의 집어등 불빛으로 환하기 짝이 없습니다. 방파제엔 밤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제법 보입니다. 작년 태풍으로 파손된 방파제를 조심조심 걸어서 등대까지 나가 봅니다. 운동 삼아 바다 쪽을 보고 맨손체조로 몸을 풀고 있는데 머리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누군가 돌아봤더니 허어! 조금 전까지 함께 식사를 한 사람들 아닌가요. 산죽산악회 회장과 회원 3명입니다.
이들도 나와 같은 이유에서 나왔겠지요. 갑자기 동질감이 팍 느껴집니다. 마침 내항에서 어선 한 척이 통통거리며 방파제를 빠져나갑니다. 다 함께 깜깜한 바다로 멀어지는 배를 바라보다 더 위쪽 밤하늘에 총총한 별들로 눈길이 옮겨집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서 노래가 터져 나옵니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 빛에 물드는 밤 같이 까만 눈동자….”
그러자 목소리 좋기로 유명한 산죽회장이 곧바로 노래를 따라 부릅니다. 그리곤 바로 동행한 두 여자 회원도 소프라노와 알토로 화음을 맞춥니다.
“별이 지면 꿈도 지고 슬픔만 남아요.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아침 이슬 내릴 때까지~.”
끝나자 잠시 침묵이 흐릅니다. 갑자기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한 감동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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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외연도 방문 최고의 경관. 봉화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명금 앞바다와 매바위 전경입니다. 해무가 워낙 심해 이 풍경은 잠시 후 오리무중으로 사라져버렸지요.
- 새벽녘 섬 풍광은 몽환적 분위기 자아내
봉화산은 다음날 새벽 일찍 올랐습니다. 전날 마신 술들로 어떻게나 코를 골던지 새벽 4시가 안 돼 일어나 밖으로 나오는데, 낌새를 채고 여자 대원 한 명이 따라 나서다가 다른 이들을 깨웁니다. 잠시 지체하다가 이러다간 일출을 놓치겠다 싶어 혼자 마을을 빠져 나와 산길로 들어섰지요.
밤새 이슬이 듬뿍 내렸고 저녁 내내 거미들이 얼마나 올가미를 쳐놓았는지 등산로 초입에서 아랫도리가 흥건히 젖어버리고 맙니다. 전날 그렇게 설치던 하루살이들은 어젯밤으로 생을 마감했는지 일단 성가시지 않아서 좋습니다. 잠시 후 해가 떠오르면 오늘 새로 태어난 하루살이들이 설치겠지만요.
표고를 높이니까 확보되는 시계. 베일을 벗듯 어둠을 밝히는 섬들의 풍경은 실제 경치가 아닌 꿈속이나 그림 속 같습니다. 색깔로, 형상으로 나타난 고요함과 거룩함이랄까요. ISO를 높여서 숨죽인 채 꽃잎을 펼치고 있는 샛노란 노란장대랑 이슬을 함초롬히 머금은 조뱅이와 엉겅퀴 꽃들을 먼 바다를 배경으로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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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명금에서 잡아본 위,아래 풍경. 위 은 역광으로 작은명금과 돌삭금, 매배 풍경, 아래쪽은 노랑배 쪽 병풍바위 해변.
- 길이 한참 가파르게 이어지더니 작은 봉우리 위에 올라섰는지 완만해지며 새로운 조망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여유를 부릴 틈이 없습니다. 산 뒤쪽이 벌써 환해지고 있어서요. 그러니까 저는 지금 북북동쪽을 향해 오르고 있는 겁니다.
얼굴과 카메라에 거미줄이 엉기고 상의까지 이슬과 땀으로 뒤범벅될 때쯤 하늘이 열리며 정상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아뿔싸! 어쩌지요. 해가 벌써 바다 위로 떠올라버렸습니다. 작은 돌들로 단을 만들어 놓은 봉화산 정상은 해발 279m로 이 섬에서 가장 높은 곳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봉수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조선 초기까지는 왜구와 중국인들의 침범을, 조선 후기 때는 이양선들의 출현을 알리는 봉화를 올리던 곳이지요. 더 남서쪽인 전북 어청도에서 먼저 올려지는 봉화는 이곳을 거쳐 녹도, 원산도로 이어지며 충청수영으로까지 전해졌답니다.
근데 해가 떠오르자마자 문제가 발생합니다. 안개요. 해가 떠오른 방향에서 무시로 해무가 막 몰려옵니다. 정상 주변에 잡목들이 자라 섬 쪽으로 시계가 트인 곳은 남쪽 등산로와 서쪽뿐입니다. 다행히 서쪽 경치는 이 섬의 제일경이라 할 수 있는 두 명금과 돌삭금 앞바다를 가로막는 기암절벽 매배의 매바위와 상투바위가 내려다보이는 곳이라 이 경치가 해무에 가려졌다 벗겨졌다 천지창조를 해댑니다. 이제 막 떠오른 햇살을 받은 모습은 어제 오후에 본 것과는 사뭇 다른 신비함이랄까 어떤 상서로움까지 느껴지는 거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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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당배에서 허벅지만 한 숭어 떼들의 유영을 감상하는 탐방객들.
- 혼자서 잠시잠시 해무가 벗겨지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는데 저 아래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대원들이 한 명 두 명 정상에 발을 올려놓습니다. 모두들 감동에 젖어 환호성을 내지릅니다. 그 모습들은 물론 정상 정복(?) 기념사진까지 찍어 줍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해무가 짙어져 늦게 올라온 사람들은 그 경치를 보지 못하고 하산하게 됩니다. 원점회귀가 아니라 반대쪽으로 내려가네요. 계속 북쪽으로 내려가면 노랑배가 나오고 거기서 두 명금과 매바위를 조망하자는 겁니다. 근데 길은 뚜렷하지만 어쩌면 이렇게도 된비알인가요. 밟히는 돌들도 구들장으로 썼으면 딱 좋다 싶게 평판석들이라 잘못 밟으면 시소처럼 반대쪽이 치솟아 살얼음판 디디듯 조심조심 내려갑니다.
노랑배전망대에서 보는 경치는 명불허전
이 산에는 온갖 약초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더덕과 산달래들이 어떻게나 많은지요. 또 산딸기도 지천에 열려 있어 입이 심심할 틈이 없습니다. 떼죽나무 꽃들이 무리 지어 떨어져 있는가 하면 노랑장대들이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기도 합니다.
어제 상록수림에서 본 나무들 외에도 누리장, 고로쇠, 구지뽕, 산뽕, 꾸지, 싸리, 찔레, 참빗살, 두릅, 초피, 상수리, 에덕, 황칠, 광대싸리, 화살, 새내, 털갈, 까마귀밥, 어름, 털갈매, 쥐똥, 고욤, 개오동 나무들이 전시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대원들 중 나무를 잘 아는 분이 몇 분 계셔서 나무공부 참 많이들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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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라금과 누적금으로 가는 길목 해안. 외연도의 서쪽 해안은 더 완벽한 조형미를 자랑하며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것이 사진보다 실물이 엄청 큰 누적금입니다.
- 노랑배전망대에서 보는 경치는 과연 명불허전입니다. 명금해변과 매배를 이 쪽에서 바라보니 맛이 또 다릅니다. 북쪽 수평선 위에 두 섬이 떠 있는데 여기 말로는 고래바위, 실명은 관장도입니다. 바다를 건너가는 새들의 중간 쉼터라고 합니다. 바로 서쪽으로 이어지는 깎아지른 절벽에는 노랑장대가 군락을 이루었고 부근에는 또 참두릅나무, 갯기름나물, 큰천남성, 참나리들이 날 보란 듯 자라고 있어 외연도가 생태계적으로도 얼마나 소중한 섬인지 절감합니다.
바다 위엔 멋진 낚싯배 한 척이 떠있는데 무는 물고기들이 없는지 부릉부릉 엔진 소리 요란하게 이쪽 저쪽으로 옮겨 다니며 부산을 떨어댑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면 오히려 약이 오를까 봐 참기로 합니다.
다시 약수터를 거쳐 민박집으로 돌아와 아침을 먹고 이번에는 봉화산 둘레길을 걷기로 합니다. 동쪽 방파제에서 봉화산 허리를 따라 도는 약 4km의 산길입니다. 옛날 섬 주민들이 나무하러 다니던 절벽 위 길인데요, 아무나 다니긴 좀 험하지만 우리 같은 산악인들은 충분히 다닐 수 있습니다.
이 길 중간에 마당배란 해안을 거치는데 아주 경치가 좋은 곳입니다. 정말 큰 마당처럼 생긴 바위들이 해안을 이루고 있는데 경치는 물론 홍합, 고동, 물고기 등 해산물들이 많이 나고 낚시터로도 유명하지요.
마당처럼 생긴 큰 바위뿐만 아니라 정육면체, 직육면체로 생긴 바위들, 이상한 물체를 닮은 바위들은 부산 영도 태종대와 분위기가 비슷합니다. 이런 바위들이 서로 기대고 서 있어 틈새로 생긴 공간도 볼거리로 훌륭하네요. 또 고기들은요. 허벅지만 한 숭어떼가 비릉(‘바위’라는 뜻의 경상도 남해 사투리) 사이로 헤엄쳐 다니고 물 위로 솟구치는 모습들까지 바로 곁에서 관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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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연도 안내도
- 이렇게 바다까지 내려왔던 길은 다시 산 중턱까지 가파르게 올라갑니다. 그리고는 임도를 따라 노랑배로 이어지네요. 중간에 다시 만난 약수터에서 수통에 물을 새로 채우고 어제 걸었던 큰명금, 작은명금, 돌삭금을 지나 해안을 따라 매배의 매바위로 접근해 보는데 전문가 아니면 가기 힘든 길 없는 해벽이 가로막아 되돌아 나오고 맙니다. 대신 이 섬의 서쪽 해안인 누적금으로 가 경치도 보고 바닷물에 발도 담그고 놀다 오기로 합니다.
목덜미를 때리는 듯 뜨거운 햇볕이 내려 쬐는 들판을 지나 누적금에 이르니 북쪽 해안과는 또 다른 멋진 풍경이 반겨줍니다. 전형적인 우리나라 해안 경치랄까요. 아주 멋들어진, 비릉으로 이루어진 해변 끝에는 마치 맞춤이라도 해놓은 듯 발 담그기 좋은 암반들이 많습니다. 물도 훨씬 더 맑은 것 같고요. 북쪽으로는 큰 암봉이 하나 솟아 있는데 꼭대기에 풀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걸 보고 누적금이라 부르게 된 것 같습니다. 노적봉을 뜻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노적가리를 많이 닮았습니다.
신선이 바로 이 사람이 아닐까요!
아래가 깊게 패여 반쯤 동굴 형태를 한 큰 바위 그늘에 앉아 아래로 찰랑거리는 바닷물 속에 발을 담가 봅니다. 썰물만 아니라면 작은 물고기들이 발가락 사이로 헤엄쳐 다닐 것 같은데요. 물 빠진 바위틈에 잔 고동들이 많이 붙어 있습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작은 소라고동만으로 패트병 두 개를 채웠던데 ‘나도 한번 그래 봐’ 하다가 ‘나마저?’ 싶어 참기로 합니다. 바닷물 온도도 적당히 시원해서 한참을 담가도 싫증이 안 납니다. 얼핏 졸음 기운을 느낍니다. 몸을 바위에 기댄 채 잠시 눈을 감아봅니다. ‘아! 행복하다.’
한여름 서해상 멀리 떨어진 섬 외연도 누적금에서 세상 근심도 내려놓고 몸도 풀어놓고 시간마저 던져놓고 잠시 나를 해체해 버립니다. 신선이 따로 있나요? 이럴 때 여기 바로 이 사람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