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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고 앉아있네'라는 팟캐스트, 현재는 유투브 채널도 있다. 나는 이 팟캐의 주인장인 원종우씨를 뉴스공장에서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이 팟캐에서 지금은 '알쓸신잡'이라는 tv프로그램으로 유명해졌지만 당시는 그다지 샐럽이 아니었던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인 김상욱님과 벌인 대담이자 인터뷰를 기록한 책이다. 주제는 '양자역학'이다.
수학치이고, 그 때문에 당연히 과학치인 나를 반성하면서 과학서적을 손에 잡으려 애쓰고 있던 차... 양자역학은 고사하고 고전역학도 잘 모르고 있고, 이래서는 현대인이랄 수 없다는 어떤 각성 때문에 근처 도서관에서 내 역량에 맞는 책을 찾아보았다. 가벼운 두께와 아는 팟캐, 아는 물리학자의 친숙함에 이끌려 이 책을 뽑아 들었다. 두 권으로 되어 있다.
아니... 뭐가 이렇게 흥미진진하지???
걱정했던 것처럼 양자역학을 두고 벌어지는 논쟁이나 실험의 결과를 전부 따라가지는 못했다. 통째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씽크홀이 많지만 그래도... 너무 재미있었다.
그 결과 어릴적부터 계속되는 원망이 또 스멀스멀... 그러다 큰 파도로 덮쳤다.
우리 중,고등학교 시절 물리선생님들은 대체 뭘 가르친거야?
중학교 물리샘은 할아버지셨다. 한쪽 팔에 장애가 있었는데 그래서였는지 꼬장꼬장하셨고 손에 턱을 괴고 수업을 들었다는 이유로 한 친구는 1년 내내 괴로왔다. 그 샘은 판서를 위해 태어나신 분 같았다. 칠판에 판서하고 계시는 샘의 토시와 칠판 색이 잘 어울리면서 왠지 판서하는 행위에 깃든 질서를 훼방놓아서는 안될 것 같은 불가침한 권위를 발휘했다. 그러니 질문이란 걸 감히 꿈 꿀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 샘 수업에서는 실험실에서 몇 가지 물리 실험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 내 눈에 그 실험이란 게 좀 우스웠다. 실험실이 아니어도 일상에서 매일 보는 경사면을 굴러가는 물체의 가속 현상 같은 걸 굳이 실험실에서 왜 하는 거야? 그러니까 실험의 맥락이란 걸 일도 모르고 실험을 한 거였다.
고등학교 물리샘은... 별명이 '파란해골13호'였다. 내 어린 시절에, 태권소년소녀 이야기인 '마루치 아라치'라는 만화영화가 어린이 프로에서 오래 방영되었다. 그 아이들이 싸우는 상대가 바로 파란해골13호라는 천재지만 악마가 된 과학자와 그 과학자를 수행하는 반은 남자 반은 여자의 모습을 한 아수라백작이다. 나는 왠지 마르치 아라치보다 파란해골13호와 아수라백작이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아수라백작은 목소리도 남,녀 성우들의 더빙이 함께 되서 입체감이 있었고 왠지 합리적이고 지적이었고 어쩐지 슬픔 같은게 배어나는 인물이었다. 범접하기 힘든 신비를 간직한 인물... 지금도 그 인물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암튼 파란해골13호는 천재 과학자가 연구를 거듭한 끝에 자기 뇌만 남기고 몸은 필요 없다고 제거해 버렸다. 일종의 컴퓨터처럼 파란해골의 외양 안에 뇌만 들어가서 날아다니게 된... 그런 캐랙터다. 그러니 감정이랄 것도 없이 오로지 합리적 판단만 하는... 인간미 없는 정확성의 화신... 뭐 그런 상징이었다. 우리 물리샘은 직업 군인이었다가, 교련선생님이 되었다가, 교련 과목이 폐지되자 물리로 전과를 한 케이스였다. 머리는 늘 짧은 스포츠 머리에 눈두덩과 볼이 움푹 파이고 복화술을 하는 것처럼 가는 입술을 앙당 문 채로 말을 했다. 시선은 우리를 보지 않고 늘 먼 곳을 보았다. 결혼 후 사모님의 안목이었는지 깔끔하고 단정한 양복차림이셨고 넥타이는 양복색과 잘 어울려 보기가 좋았다. 패셔니스터 물리샘은 토시를 착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복 소매에 묻은 백묵을 손가락으로 톡톡 튕겨내던 동작이 선명히 기억이 난다.
암튼 두 분 선생님 모두 극도로 움직임이 제한되어 있었다. 판서할 때만 오른팔을 드시는 정도. 그래서인가 물리의 이미지는 두 분 선생님의 움직임과 오버랩 되었다. 딱딱하고 여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과목.
파란해골13호 샘은 처음부터 문제지를 풀었다. 물리 공식에 수 많은 문제를 대입하면서 문제만 풀었다. 나는 그래서 물리가 수학인 줄 알았다. 만약 내가 물리샘들 복이 있었다면 사는 일이 좀 달라졌을까? 세계를 보는 시선이 조금은 입체적이고 풍성해졌을 거라 생각한다. 재미난 게 좀 더 많았을 것이다. 양자역학을 읽으면서 흥미진진해 하는 고등학생이었다면 사는 일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채울 길이 없다.
... 이제 본론으로... 고전 역학의 핵심 내용을 옮겨보면.
뉴튼의 질문은 간단합니다. 사과를 손에서 놓으면 땅으로 떨어지는데, 달은 왜 안 떨어질까 하는 것이었죠. 그것에 대한 당시의 과학자들의 답은 이겁니다. 사과는 우리가 사는 이 지상의 물건이니까 땅으로 떨어지고, 달은 천상의 물건이기 때문에 안 떨어진다는 거예요. 아주 그럴듯하죠.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입니다. 이것도 관측에 근거한 과학인데요. 뉴턴은 여기서 어마어마한 도약을 합니다. 왜 달은 안 떨어질까?
뉴턴의 답은 이렇습니다. 달도 떨어지고 있다. 낙하를 하는데 수직 방향의 속도가 있어서, 낙하를 하면서 수직 방향으로 움직였으며, 그 진행이 지구의 굽은 정도와 일치하기 때문에 계속 낙하를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거였죠. 영화 <그래비티>를 보고서 왜 우주인들은 지구로 떨어지지 않는가 하고 물으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 대답은 떨어지고 있다가 정답입니다. 그러니까 굉장한 도약이죠.
물리에서는 운동이 중요하다고 했고, 고전역학에서 운동은 주어진 시간에 위치와 속도로 규정된다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알아야 됩니다. 그다음에 운동법칙 'F=ma'에 따라 모든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는 겁니다. 원칙은 이렇지만 실제 미래의 모든 위치와 속도를 아는 건 쉽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가 날씨를 잘 예측하지 못하는 겁니다. 실제로는 어렵지만 원리적으로는 어느 주어진 순간에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의 위치와 속도를 전부 다 알면 미래가 결정되어 있습니다. 지긋지긋한 결정론 이야기입니다. 빅뱅 때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었던 거죠.
양자역학에 가면 지금까지 제가 이야기한 이런 모든 중요한 내용 하나하나가 다 뒤엎어지기 때문에 양자역학이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 거죠.
양자역학으로 들어가서...
본격적인 양자역학 이야기로 들어가기 위해서... 파인만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자연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이 뭘까요?... 풀어 말하면 자, 지구가 망해갑니다. 지구에서 다른 사람들은 다 죽었고요 여기에는 중,고등학생 10명이 살아남아 있어요. 저 혼자 어른이고 과학자입니다. 그러데 저는 죽어가고 있어요. 이 아이들이 인류의 유일한 생존자들이니 이들이 다시 인류의 문명을 일으켜야 해요. 제가 해야 할 일은 이 아이들한테 한마디를 해서, 그들이 이 말을 바탕으로 해서 다시 문명을 일으킬 수 있게 해야 되는 거죠. 만일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죽어가는 과학자라면 당신이 해주어야 할 한마디는 무엇입니까?"
파인만은 1초도 망설임 없이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다."라고 이야기할 거라고 합니다.
원자가 어떤 식으로 운동하는지를 기술하는 분야가 바로 양자역학입니다. 한마디로 양자역학은 원자를 기술하는 학문입니다.
가운데 양전하를 띤 양성자와 전하를 띠지 않는 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이 있고, 그 주위를 음전하를 띤 전자가 뺑뺑 돌고 있는 겁니다. 양자역학은 이것의 운동을 어떻게 이해할 건지에 관한 겁니다.
사실 대개의 물질은 그 내부가 꽉 차 있지 않고 텅 비어 있는 겁니다. 거의 텅 비어 있는데 전자기력 때문에 가시광선의 광자가 그것을 통과하지 못할 뿐입니다. 가시광선이라는 전자기파가 여러분의 몸의 원자구조를 그냥 지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꽉 찬것처럼 착각을 하는 겁니다.
원자의 구성물인 전자를 가지고 실험을 하나 하겠습니다, 두 개의 구멍에 전자를 통과시키는 실험입니다. 왜 이런 실험을 할까요? 전자가 두 개의 구멍을 지나갈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하는 문제에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당구공이나 탁구공을 두 개의 구멍을 향해 던지면 두 개의 구멍을 통과한 공들이 벽에 부딪혀 그리는 그림은 두 개의 줄로 나타날 겁니다. 공은 입자니까...
그런데 다른 것도 통과시킬 수 있어요. 파동이라는 것을 통과시킬 수 있습니다. 파동과 입자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어요. 파동은 어디에 있는지 말할 수 없어요. 다시 말해 위치를 정확히 이야기하기 힘듭니다. 소리는 여러 사람들의 귀에 동시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소리라는 파동은 동심원을 그리며 나가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동시에 여기저기 다 지나가는 겁니다. 소리의 파동을 두 개의 구멍을 통해 지나가게 해봅시다. 그러면 파동은 두 개의 구멍을 동시에 지나게 되요. 그 다음에는 두 구멍 각각을 중심으로 다시 퍼지기 시작해서, 서로 간섭을 하여 복잡한 무늬를 만듭니다.
두 개의 구멍을 지나는 상황에서 입자와 파동은 완전히 다르게 행동합니다.
여기서 강조할 것은 전자는 분명 입자라는 거예요. 사실 전자를 처음 발견했을 때, 바람개비에다 대고 쏘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바람개비가 돌아가요. 질량도 잴 수 있죠. 그러니까 우리는 수많은 실험을 통해서 전자가 입자임을 알고 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두 개의 구멍을 지난 전자는 마치 소리를 보낸 것처럼 스크린에 여러 개의 무늬로 나타났죠. 이건 말도 안되는 결과입니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전자가 파동이라고 하면 될까요? 만일 전자가 파동이라면 동시에 두 개의 구명을 지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의 입자가 동시에 두 개의 구멍을 지날 수 있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또 전자가 파동이었다면 왜 스크린에 하나의 점으로 나타나는지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이제 과학자들이 할 일은 이 사실을 가지고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잘 연결해서 모순 없이 설명하는 방법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은, 이런 말도 안되는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가 가진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여 끼워 맞춰서 만든 새로운 역학 체계입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전자는 동시에 두 개의 구멍을 지납니다. 이 현상에 대해 물리학자들은 '중첩'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냅니다, 전자는 중첩된 두 개의 궤적을 지나면서 마치 파동처럼 행동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스크린에 도달할 때 다시 입자로 환원됩니다. 왜냐하면 스크린에는 점이 한 개 찍히니까요. 과학자들은 이것을 입자의 상태로 '붕괴한다'라고 표현합니다.
이 해석을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 모인 과학자들이 내린 해석이기 때문에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부르죠.
코펜하겐의 해석을 정리해보면
우선, 이중성. 입자인 전자가 파동성을 갖습니다. 그렇다면 전자는 입자일까요 파동일까요? 이런 두 성질을 다 가진 것을 이중성이라고 부릅니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입자성과 동시에 파동성을 모두 지닙니다.
다음으로 상보성. 입자인지 파동인지 알아보려면 건드려봐야 해요. 즉 관측을 해보는 거지요. 그런데 관측을 해보면 이중성 가운데 한 개의 성질만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두 성질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실험은 절대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닐스 보어라는 물리학자가 이야기한 상보성입니다.
우주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고, 관측할 때 변화가 일어납니다. 마지막 스크린에 부딪히는 순간이 관측이 일어나는 순간, 즉 전자의 위치를 측정하는 순간이죠. 이 관측이 대상을 파동에서 입자로 변화시키죠. 그래서 공간적으로 퍼져 있던 파동의 형태가 측정이 되고 나면 하나의 점, 입자로 갑자기 바뀌는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결국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관측을 당하는 대상과 관측을 하는 주체 두 가지로 우주를 나누어 생각해야 합니다. 누가 관측하는지 누가 관측 당하는지를 먼저 이야기해야 된다는 거죠. 여기서 코펜하겐 해석의 기본 입장은 이렇습니다. 관측을 하는 것은 큰 세상, 즉 우리와 같은 거시세계의 물질입니다. 뉴턴역학과 고전역학을 따르는 세계죠. 양자역학을 따르는 미시세계, 원자 크기의 작은 물체는 관측을 당하는 개체과 되는 겁니다. 그리고 관측은 대상에 영향을 주어 상태를 바꿉니다. 이게 양자역학의 표준 해석이라 할 수 있는 코펜하겐 해석이에요.
이제 이 해석에서 생기는 모순들에 대해서 ...
전자는 파동의 성질을 갖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파동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입니다. 소리의 경우 공기의 밀도나 압력의 파동입니다. 파동은 반드시 무언가의 파동이어야 합니다. 전자의 간섭무늬는 무슨 파동의 귀결일까요?
이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있습니다. 전자의 파동성은 여러 개의 전자를 보냈을 때에만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전자를 두 개의 구멍에 보내면 스크린에 하나의 점만 보입니다. 전자의 파동성이 보여주는 여러 개의 줄무늬는 수많은 전자를 보내서 만든 패턴이라는 겁니다. 여기에 파동의 본질이 들어 있습니다.
6/1이라는 확률은 주사위를 아주 여러번 던질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전자가 만드는 패턴도 정확히 그런 겁니다. 하나의 입자에 대해서는 점이 한 개 찍힐 뿐이지만 여러 개가 모였을 때 이렇게 행동한다는 사실, 즉 하나의 입자에 대해서 이 패턴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그건 바로 입자가 어딘가 가게 될 확률을 뜻하는 겁니다. 그래서 막스 보른이라는 과학자는 이 파동을 확률의 파동이라고 해석하게 됩니다.
즉, 우리는 여기서 불가지론의 영역에 들어가게 됩니다. 양자역학은 근본적으로 개별 사건에 대해서는 예측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즉, 뉴턴역학의 결정론을 포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확률론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죠.
두번째 모순... 전자가 두 개의 구멍을 동시에 지나면서 서로 파동처럼 간섭을 한거죠. 사실 여기서 사용된 '서로'가 웃기는 말입니다. 하나의 전자가 서로 간섭을 한 거니까요. 이건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 폴 뒤렉이 한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겁니다. 전자는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과 서로 간섭한 겁니다. 마음이 아프죠.
-모태 솔로? 스스로 자신과 결혼한다고요?
-사실 인간사로 보면 혼자서 자신과 결혼을 하는 것처럼 아주 비참한 거죠.
-이게 우주의 본질이래요.
더 이상 옮기기는 힘겹다.
이 정도면 양자역학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될 만하고 양자역학이 제기한 과제가 뉴튼 결정론을 어떻게 흔들었는지.. 그리고 왜 아수라백작이 그렇게 매력적이었는지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될만하다.
살다보면 '동시성'의 원리가 작동할 때가 있다. 내가 무언가를 원하고 있으면 그에 응답하는 사건이 다가온다. 살면서 이런 경험은 비일비재하다. 오늘도 이 독후감을 쓰면서 그 원리를 또 경험한다. 나는 우연히 고등학교 시절 물리선생님을 회상하면서 파란해골13호가 등장한 만화 영화 '마루치 아라치'를 떠올렸고 거기에 등장한 자웅동체와 같은 기이한 몸을 한 아수라 백작을 떠올렸다. 그리고 내가 그 캐랙터에 몹시 끌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양자역학 이야기에서 전자의 운동방식이, 우주의 본질이 아수라백작처럼 모태 솔로로 자기자신이 자기 자신과 서로 간섭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다니...
이것 참... 하긴 내가 하나인가? 나는 중첩되어 있고 다층적이다. 나는 실체가 아니라 상태일뿐이다. 상태는 변화무쌍하다. 그리하여 내 속의 변화무쌍함 속에 거하며 나아갈 수 있다는 우리는 모두 자족적 존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상의 바램이다.
그러고 보면 '마루치 아라치'의 작가의 의도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파란해골 13호는 과학적 이성을 통해 도출한 결정론적 법칙으로 모든 걸 알 수 있으며 세계에 대한 이해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근대 고전역학의 세계관을, 아수라백작은 포스트모던의 카오스 혹은 양자역학의 세계를 상징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왜 둘이 같이 다니지? 파란해골13호가 왜 대빵이지? 명령은 파란해골13호가 하고 실행은 아수라백작이 한다. 실체와 상태... 그 상징일 수도 있다. 물질은, 우주는 실체가 아니라 상태라는 말이 이 책에 나온다. 결국 현실을 변화시키는 이는 상태에 대응하는 실천하는 이가 아닐까? 그래서 법칙대로 되지 않는다. 그건 오류가 아니라 확률이다. 결정된 바는 없다. 파란해골13호의 명령대로만 실행이 되었다면 마루치, 아라치에게 옆차기 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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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튼역학이나 고전역학의 세계는 개체론적이다. 양자역학의 세계는 관계론적이다. 왠지 서양과 동양의 세계관의 비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불확정한 세계에서 서로 보고 보이면서, 관계 맺으면서 변화되는 세계. 자신과 서로 간섭하며 맘껏 뻗아가다 보이는 시선에 의해 멈칫하는...
이어지는 논쟁을 다 따라잡기 어렵고 옮기기도 힘겹다.
이 정도 공부한 나를 대견해 하면서... 아수라 백작으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