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17권, 9년(1409 기축 / 명 영락(永樂) 7년) 4월 18일(경인) 2번째기사
시골 사람 손귀생이 창덕궁을 구경하고 광연루까지 들어와 구금되었으나 석방하다
손귀생(孫貴生) 등 두 사람을 석방하도록 명하였다. 손귀생 등은 시골 사람인데, 창덕궁(昌德宮)을 구경하고 들어와서 광연루(廣延樓)의 못 아래에 이르렀었다. 순금사(巡禁司)에서 장(杖) 80 대로 조율(照律)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이들은 무지한 시골 사람이니 방면(放免)하는 것이 옳다. 예전에 조서(趙敍)가 대언(代言)이 되었을 때, 시골 선비 한 사람을 데리고 들어와 숙직하고 이른 아침에 내 보냈었는데, 그 사람이 갈 길을 잃어서 곧바로 침전(寢殿)의 뜰안으로 들어왔었다. 궁인(宮人)들이 놀라서 꾸짖으니, 대답하기를, ‘나가려고 한 것뿐입니다.’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이는 무지한 자이다. 좌우(左右)에서 들으면 반드시 법대로 처치하도록 청할 것이니, 빨리 놓아보내서 가게 하고, 이 말을 드러내지 말도록 하라.’고 하였었는데, 바로 이와 똑같은 일이다.”
이 상황을 보면,
시골에서 올라와서 아무것도 모르는 손귀생이라는 인물이, 밑도 끝도 없이 창덕궁을 보고는
"야, 대단하다!" 해서 들어와서 구경하다가 광연루에서 잡혀서, 장 80대(죽으라는 소리) 처벌을 받자 그냥 풀어주라고 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일에 앞서 비슷한 일이 또 있었는데,
당시 관리 중에 한 사람인 조서(趙敍 1370년 ~ 1429년)가, 자기 친구를 대리고 궁궐에 들어와 궁 안에서 재우고, 다음 날에 내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시골 사람이라 으리으리한 궁궐 내의 길을 잘 몰라서, 헤매다가 급기야 태종이 잠을 자는 건물의 뜰까지 난입을 해버린 겁니다.
궁인들이야 당연히 깜짝 놀라고, 그 사람은 "나가려고 했다." 고 하는데,
태종이 이 모습을 보고
"괜찮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라고 하는데,
"신하들이 들으면 반드시 법대로 처리하라고 할테니까, 이 일 알리지 말아라. 넌 빨리 가고." 이러면서 풀어준 일입니다.
국왕이 자는곳으로 고관대신이 밀고 들어와도 큰 벌을 받을 텐데 촌사람이 임금이 자는곳까지 들어왔는데,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그냥 돌아가게 했던 일입니다.
태종이 여러가지로 유머러스 하고 자잘한 면에선 의외로 인정도 있는 편입니다. 정치권력에서는 철저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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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평민이 한양구경하는게 쉬운건 아니였겠죠
태종하면 "사관이 알게 하지 말라.” 가 떠오르네요.
자신의 권력에 조금이라도 위해를 가할만한 인물에게는 차갑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아량을 베풀줄아는 사람........뭐 그정도 되니까 지지하는 층이 있었던 거겠죠.
의외로 대인배군요. 하지만 정치권력과 여자문제에 있어서는 ......
응? 예전에 제가 본 에피소드중에 한 선비가 관리하는 친구따라 궁에서 밤을 보내다가 산책을 하는데 담이 허물어진 곳이 있어서 거기로 들어갔다가 세종을 만나게 되고 둘이 어쩌다 같이 대화를 했는데 세종이 감명을 받아 관리로 임명했다는 걸 봤는데 그거랑 비슷하려나?
세종은 워낙 성군이여서 그러려니 해도..... 이복동생, 정적을 죽인 태종이 저런면을 보이니 매치가 안되는 거죠 ㅎㅎ
그런데 머릿글이 중국사;;;;
조선이 말기에만 좀 어떻게 좋은 모습으로 끝났으면 지금의 조선까들은 입이 쑥 들어갔을건데 =_=....
당사자들은 모르고 한일인데요 뭐.....태종이 허허거리면서 피식웃는모습이 떠오르네요..ㅋㅋ
들어올땐 자유지만 죽일땐 아니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