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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2학기 2회.mp3
장소: 전북 익산 원광대학교 교학대학 1층 세미나실 일시: 2015년 9월 14일(월,오후 3시~5시) 강사: 곽준(묘원 법사님)
교재 :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도서출판 행복한숲 刊)
서문
이 책은 연기(緣起)의 법칙을 통해 오온(五蘊)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으려는 수행자를 위한 훌륭한 안내서다. 난해한 연기법의 이해를 돕는 탁월한 저작이다. 모곡 사야도의 법문을 영어로 펴낸 우 탄 다잉(U Than Daing)은 수행의 관점에서 연기법을 매우 분명하고 깊이 있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준다. 첫째, 수행자에게 고통에서 벗어나는 바른 길을 제시한다. 둘째, 일반적으로 개아, 남자, 여자로 불리는 다양한 육체적․정신적 현상들은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떤 원인과 조건에 의한 결과이다. 셋째, 태어남과 죽음은 조건에 따른 것이다. 넷째, 이 조건들이 제거되면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 다섯째, 고제(苦諦)와 집제(集諦)를 일반적인 순서로[順觀. anuloma] 그리고 집제(集諦)와 멸제(滅諦)는 순서를 역(逆)으로 하여[逆觀. paṭiloma] 그 철학적인 의미를 밝히고 있다. 이상과 같이 연기법은 붓다의 가르침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 할 핵심적 요소다.
불교에는 다른 종교 및 철학과 구별되는 특성이 있다. 불교는 자비로 시작해서 지혜로 완성된다. 불교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해탈의 방식은 다른 모든 종교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들 종교들은 “신에게로 귀의하라. 신에게 기도하고, 너 자신을 신에게 바쳐라. 신과 하나가 되어라”라고 가르친다.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 조로아스터교, 유대교는 모두 ‘신’이라는 개념에 근거를 둔 가르침을 편다. 이들 종교들은 인간이 신을 믿기 전까지는 진정으로 참되고 유용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고 얘기한다.
우리는 이들 종교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관용과 순수 그리고 성스러움이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붓다께서는 해탈을 향한 첫 발걸음으로서 결코 신을 경배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셨고, 붓다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도 관용과 순수 그리고 성스러움이 가득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불교가 다른 모든 종교들과 구별되는 교리 중 하나는 무아(無我. Anattā) 곧 자아가 없다는 것(non-ego)이다. 유대 철학에 의하면 몸속에 머무르는 한 개체가 있어 인간의 행위를 지배한다고 한다. 그것은 변하지 않고 항상(恒常) 하는 것으로서 죽어서도 어딘가에 변함없이 존재하여 심판의 날이 되면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고 믿는다. 자아(自我. Attā)는 영원하며 육체 안에 거주하는 분리 가능한 존재라는 견해는 인도 사상, 학파들 사이에서 널리 인정되어 왔다.
최근 들어서 현대 유럽의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모든 것은 유동적이고 변화하는 상태일 뿐이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붓다께서는 이미 2,500년 전에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이 법칙이 적용됨을 가르치셨다.
우리가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신과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붓다께서는 소위 인간을 이루고 있는 정신(Nāma)과 물질(Rūpa) 이외에 어디에도 영원불멸의 영혼 또는 자아라고 불릴 만한 것은 없다고 가르치셨다. 물질은 눈에 보이지 않는 특성과 기운들, 즉 빨리어로는 마하부따(Mahā-Bhūtas. 四大)로 알려진 근본 요소들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사대(四大)는 분리될 수 없으며 상호 연관되어 있다. 모든 형태의 물질은 근본적으로 사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물질은 어떠한 비율로 섞여 있든지 간에 이들 사대가 결합한 것이다. 하지만 물질들은 사대가 여러 가지 다른 형태로 결합됨에 따라 각기 다른 외형과 모양, 형태로 마음에 인지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존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정신은 본질적으로 의식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생각’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다. 여기에서 생각은 단순한 생리학적 기능이 아니라 마치 전기와 같은 에너지를 의미한다. 생각과 생각의 흐름은 네 가지 물질적 기본 요소에 상응하여 정신적 요소로 드러난 것들이다. 존재는 근본적으로 유동 상태인 생각의 힘(thought-forces)이 나타난 것이다.
붓다께서는 마음은 네 가지 정신적인 무더기[蘊]로 이루어졌다고 분석하셨다. 즉, 첫째, 모든 종류의 감각 혹은 느낌들[受], 둘째, 감각대상에 대한 인지 혹은 감각에 대한 기억[想], 셋째, 성향과 능력을 포함한 50가지의 정신적 요소[行], 그리고 넷째, 이상 세 가지의 근본 요소인 의식[識]이다.
이렇듯 소위 존재는 오온으로서, 항상 변화하며 연속적인 두 순간에 결코 동일한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 물질적․정신적 에너지의 결합물이다.
이들 오온(五蘊) 중에 자아 또는 영혼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는가? 붓다의 대답은 ‘없다’는 것이다. 무엇을 자아 또는 영혼이라고 할 것인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들 오온과는 별도로 자아라고 불릴 만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이제 여기에서 우리는 모든 존재의 세 가지 근본 특성[三法印] 중의 하나인 무아의 특성, 즉 영구불변하는 자아 혹은 영혼이 없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바로 이 무아의 법칙이야말로 불교의 뛰어남을 보여주고 불교가 기타 종교들과 구별되는 점이다.
만일 수레에서 바퀴와 축, 바닥과 측면, 채와 기타 모든 부분을 빼버린다면 무엇이 남겠는가?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들 각 부분들이 결합하여 수레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오온이 결합하여 하나의 존재가 된다. 이런 존재는 육체적․정신적인 변화의 상태에 따라 구별되며 그 종류와 형태, 모양에 따라 수많은 이름으로 불린다.
생명의 궁극적인 근원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주요 견해가 있다. 첫째는 무한한 과거 속에 시원(始原)이 있고, 그 시원 또는 제1원인은 창조주[神]라고 하는 견해이다. 두 번째 견해는 생명은 시원이 없으며 원인이 결과가 되고 결과는 다시 원인이 되는 이러한 원인과 결과의 연결고리 속에서 제1원인인 시원은 알 수 없다는 견해다.
생명은 시원이 있고 그 시원은 창조주라는 첫째 견해를 취한다면 이 창조주 자신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으며 그의 존재는 어떤 법칙에 의해 조건 지어지거나 지배받는 것이라는 의문이 생긴다. 만일 그러한 존재가 어떠한 선행하는 원인 혹은 창조주 없이 저절로 존재할 수 있다면 이 세계나 이 세계의 모든 생명체들이 창조주 혹은 선행하는 원인 없이도 평등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진다.
또 다른 견해가 있다. 즉 생명에는 시원이 없다고 하는 불교적인 관점이다. 붓다께서는 “현상으로 나타난 존재의 근원은 알 수가 없고, 존재의 시작은 무지에 의해 막히고 갈애에 의해 덮어져 발견할 수가 없다”(상윳따니까야 II, 178)고 하셨다. 이와 같이 생명체, 즉 우주는 원인과 결과라는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원인은 결국 결과가 되며 결과는 다시 원인이 되어, 태어남은 죽음으로 이어지고 죽음은 다시 태어남으로 이어진다. 태어남과 죽음은 한 생명 과정의 두 가지 단계다. 이러한 원인과 결과, 즉 불교의 윤회라고 알려진 태어남과 죽음의 고리 속에서 시발점은 알 수가 없다. 윤회(輪廻)를 뜻하는 빨리어 삼사라(Saṁsāra)는 영원히 방황하는 재생(再生)의 순환을 의미한다.
삶과 죽음의 이러한 과정은 연기 안에서만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 연기는 윤회에 대한 설명이고 삶과 죽음의 과정과 원인을 다루고 있다. 연기는 생명의 절대적인 근원을 밝히려 한다거나 세계의 진화에 대한 이론이 아니다. 연기는 각 과정을 연결하는 열두 가지의 결합 및 상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도표 참조)
12연기 중 처음 두 가지인 무명(無明)과 행(行)은 과거의 존재를 의미하며, 무지의 탓으로 형성된 과거의 업(業)을 말한다. 식(識)에서 수(受)까지의 연결고리는 과거의 존재 혹은 과거의 행위[業]가 현재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갈애(渴愛)에서 업의 생성[業有]까지의 연결고리는 현재 매 순간 진행 중인 의도를 가진 행위를 가리킨다.
이는 우리의 성격이나 환경 등 현재 처한 위치가 과거에 행한 업의 결과라고 할지라도 미래는 지금 하고 있는 행위, 즉 현재의 환경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달려 있으며,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업력(業力)의 질을 바꾸거나 수정할 수 있는 힘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 두 가지 연결고리인 생(生)과 노사(老死)는 현재의 행위에 따른 미래의 결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게 존재의 연속적인 흐름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
이제 연기(緣起)는 다음 세 가지의 큰 물음에 대한 해답을 준다.
_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과거로부터 왔다. 과거에 행했던 행위로부터, 끝내지 못한 생의 노고로부터, 과거의 악과 덕으로부터, 우리 자신의 무지의 어둠으로부터, 그리고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왔다. 이렇게 우리는 과거의 악과 덕을 가지고 현재를 살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_우리는 왜 여기에 존재하는가?
우리는 과거로 인해 이곳에 존재한다. 과거는 현재를 낳고, 현재로부터 미래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기쁨과 슬픔에 의해 이곳으로 불려왔으며, 자신의 욕망에 의해 이곳으로 이끌려와 이기적인 욕망이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 이곳에 남는다.
지혜로운 이에게는, 이 생이 과거에 자신이 쌓아놓은 짐을 제거하고, 잘못된 행위, 그릇된 관점, 삶과 죽음에 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으며, 중도(中道)의 길로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기회다.
_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는가?
우리는 우리가 가진 원인에 따른 결과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삶의 수고를 다하지 않은 이는 생의 수레바퀴(윤회)를 끝없이 돌뿐이며 완전한 소멸을 할 때까지 고달픈 삶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중도의 길을 따라가 삶의 수고를 다 마친 이는 모든 고통의 완전한 종말인 닙바나(Nibbāna. 涅槃)의 상태에 도달한다.
삶에 대한 거대한 환상을 벗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일이다. 세속의 한가운데에서 평형을 유지하는 것이 붓다의 길이다. 삶을 숙고하되 세속의 삶 속에 말려들지 않는 것이 붓다의 법이다. 세속의 삶 속에서 보다 높은 영적인 삶으로 나아가라는 것이 붓다의 충고다. 불자에게는 실재하고 변하지 않는 닙바나에 들어가는 것이 삶의 완결이다.
이 책은 연기법을 쉽고 분명하게 설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연기를 이해하여 위빠사나 수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실제 수행할 때 필요한 부분을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간략한 연기법의 해설서가 빨리어 원문을 읽을 여유가 없는 외국의 독자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이 책을 통해 연기법의 실재적이고 철학적인 이해에 보다 근접해 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1967년 9월 30일
미얀마 양곤 우 티띨라(Ven U Thittila)
아가마하빤디따(Aggamahāpandi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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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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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