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 -
☆ 2012년 8월21일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청주] 버려도 버릴 것이 생깁니다. -
청주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양억 라파엘 신부
† 독서 : 에제 28, 1 - 10
† 복음 : 마태 19, 23 - 30
비오 10세 교황은 1835년 이탈리아 트레비소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858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20년 가까이
본당 신부로 사목하다가 만투아의 주교와 베네치아의
총대주교를 거쳐, 1903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비오 10세
교황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정립하는 것을 교황직의
목표로 삼고 하나하나 실천해 나갔다. 특히 광대한 교회법을
현대화하여 새 법전을 편찬하고, 성무일도서를 개정하였다.
또한 그는 참된 그리스도인 생활을 발전시키고자 교회를
위협하는 오류들에 대항하여 싸웠다. 1914년에 선종한 비오
10세 교황은 1954년에 시성되었다.
★ 티로의 군주는 교만하여 자신을 마치 신처럼 생각한다.
주님께서는 스스로 우상 숭배에 빠진 티로의 군주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제1독서).
★ 재물에 대한 집착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데 걸림돌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은
백배의 상급과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복음).
◈ 오늘의 묵상
알렉산더 대왕은 죽기 직전에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내가 죽게 되면 손을 관 밖으로 꺼내 주시오. 천하를 손에
쥐었던 자도 죽을 때에는 결국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이오.” 사람은 한평생을 살면서 모았던
재물이나 쥐었던 권력을 죽을 때에는 놓고 갑니다. 죽을
때에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평범한
진리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이를 잊은 채 살아갑니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바람입니다.
그런데 풍요로운 삶은 재물의 축적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재물을 많이 가질수록 욕심과 걱정은
늘어 갑니다. 재물에 대한 탐욕과 집착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막습니다. 가진 것이 얼마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진 것으로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요한 사도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 2,17). 가진 것을 아무리
움켜쥐어도 죽을 때에는 빈손으로 가지만, 가진 것을 남에게
주어 사랑의 흔적을 남기면 그 사람은 영원히 다른 이의
가슴속에 남아 있습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부자가
아니라, 가진 것을 나누어 하늘의 곳간에 덕을 많이 쌓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입니다.
- 매일 미사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누가 부자인가?
2012년 나해 연중 제 20주간 화요일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복음 : 마태오 19,23-30
<누가 부자인가?>
신학생 때 2주간 행려자들을 위한 서울에 있는 한
무료급식소에서 봉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사실 무료급식소라고는 하지만 돈을 200원씩 받았습니다.
없는 사람은 안 내도 되지만 아예 받지 않으면 행려자들의
자존심이 상한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거저 주면 고마워 할 것 같지만 사실은 자존심 때문에
거저 받는 것을 기분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끔 식사 후에 그들끼리 밖에 나가 싸웁니다. 저는 싸움을
말리러 밖으로 나갔습니다. 싸움은 신문지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겐 이불 역할을 하는 그런 신문지가 전
재산입니다. 한 노숙자는 신문지를 많이 가지고 있었고 한
사람은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 없는 사람이
많은 사람 것을 하나 슬쩍 한 것입니다. 새 신문을 사도 몇
백 원 안 되는 것이지만 욕심 때문에 몸까지 상해가면서
서로 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과연 그들이 가난한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답은 ‘아니다.’였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을 버리지
못하고 ‘자존심’을 세우고 있었고 재물 같지도 않은 재물에
집착하는 부자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재산을
버리기를 원치 않아서 우울하게 돌아가야 했던
부자청년처럼 그들의 인생이 우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하늘나라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십니다. 즉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부자는 자신 안에 너무 많은 것은 넣어두어서
하느님나라인 그리스도를 넣은 공간이 없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부자는 한 마디로 말하면, ‘나’라는 말을 많이 쓰는
사람입니다. 그 중에서도 ‘내 것’이란 말을 많이 쓰는 사람이
부자입니다. 왜냐하면 내 자신만큼 하느님나라의 공간은
잡아먹는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내 것’이란 말을 많이 쓰는
동시에 ‘자존심’이 강합니다. 자아가 자신을 점령해버리면
그 자아는 자존심이란 이름으로 자신을 보호하려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신학생 때 유학을 나와서 두 달 동안은 한국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외국 학생들과 이태리어를
배웠습니다. 이태리어를 한국에서 하고 나온 것이 아니기에
서로서로 말도 안 통해서 답답했고, 또 무더운 날씨에
아프리카 신학생, 인도 신학생과 함께 작은 한 방을
써야했습니다. 그 더운 여름에 서로 다른 몸 냄새를 내는
사람들이 함께 방을 써야한다는 어려움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것까지는 다 괜찮은데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사유재산
개념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아프리카 친구들은
네 것 내 것 없이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가져다 쓰고는
마치 자기 것인 양 되돌려주지 않았습니다. 내 물건이
없어져서 불편해하고 있을 무렵 아프리카나 인도 친구가
자기 것인 양 당당히 쓰고 있는 모습을 볼 때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돌고 돌다보니 내 것이 분명한데도
빌려서 써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나의
것에 대한 집착이 커졌습니다.
어느 날 하도 답답하여 한국에 전화를 걸어 한 후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상대방이, “왜 이렇게 ‘내 것’이란
말을 많이 하세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말하는 중에 계속, “내 것인데 저들이 써서 안
가져다주고,... 이것도 내 것, 저것도 내 것...”이란 말들을
많이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이 멍하였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모든 것, 생명까지도 모두 주님께서 주셨으니 나의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며 살려고 했었는데, 저도 모르게 내
것을 계속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무언가 불만족스러울 때 내 것을 더 많이
찾게 됨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불만족스러운 것은 다른 나라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으로 소통이
되는데 나 혼자만 외톨이가 되어 가진 것으로라도 내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존심이
상하지 못하니 물질로라도 더 긁어모으며 허기진 마음을
채워보려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부자는 자아가 커서 ‘나’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자존심이 세어 자신의 자존심을 재물로라도 지키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주인은 자신의 자아이고 절대
하느님나라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약속’이란 영화에서 박신양이 술이 취하여 노숙자의 가방을
빼앗으려고 하는 장면이 기억납니다. 노숙자는 자신의 전
재산인 가방을 필사적으로 움켜쥐지만 결국 빼앗기고
맙니다. 가방을 털어보니 신문지와 더러운 옷 몇 벌만
들어있습니다. 주인공은 웃으며 가방과 나머지 것들을 그의
앞에서 버리고 대신 행려자에게 수표를 한 장 줍니다. 내가
움켜쥐고 있는 내 자신을 내어 놓읍시다. 하느님의 눈으로는
거지가 들고 있는 쓰레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빼앗고 그 대신 하느님나라의 행복으로 그 자리를
채워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 수원 교구 오산 성당 전 삼용 요셉 신부 -
◈ [청주] 버려도 버릴 것이 생깁니다.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연중 20주간 화요일(마태19,23-30) 성 비오10세 교황기념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버려도 버릴 것이 생깁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19,23)는
말씀을 들은 한 부자가 “하느님, 낙타를 아주아주 작게
만들어 주시든지, 바늘 귀를 아주아주 크게 만들어 주십시오.
그리하면 저의 재산을 당신께 아낌없이 바치겠습니다.”
하고 간절히 기도하였답니다. 그렇다면 그가 재산을
바친다고 해서 하느님나라를 차지할 수가 있을까요? 재물이
아니라 인간적인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각자는 자기가 소유한 것을 포기하되 무엇을 버렸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 버렸느냐가 중요합니다.
자기의 인간적인 유익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버렸을 때 가치가 있습니다. 상을 백배로 받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라는 것 때문에 버린다면 결코 진정한
열매는 맺을 수 없고 가치도 없습니다. 상은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그분의 이름 때문에”(루카18,29. 마태19,29) 바쳤을
때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입니다. 올림픽대회 때 상을 위해
고의적인 져주기 게임을 한 베드맨턴 경기는 실격을
당하였습니다.
한가지 때문에 전체를 얻을 수도 있지만 한가지 때문에
모두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를 얻을 수
있는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사실 부자가 가진 재물이 나쁜
것이 아니라 재물에 눈이 가려 보아야 할 참 가치를 보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재물은 인간을 노예화 하는 유혹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마음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상만을 생각하면 부정을 해서라도
일등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내용을 생각하면 그 생각을 한
순간 이미 경기에서 진 것입니다.
사실 재물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잘 써야 합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보다 많은 재물을 소유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그 축복을 하느님의 영광을 들어
높이는 일에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재물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무쪼록 많이 벌되
하느님의 영광을 들어 높이는 일들을 하나하나 늘려가시기
바랍니다.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십시오. 버려도 버려도
또 버릴 것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 은
누구이겠습니까? “돈이 많다고 우쭐대다가는 쓰러지지만
착하게 살면 나뭇잎처럼 피어난다”(잠언11,28)고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고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일 지라도
하느님을 피신처로 삼지 않으면 결국은 하느님 나라를
놓치고 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은 모든 것을 얻게 되고, 모든 것을
누리려 한 사람은 그것을 잃게 됩니다. 부디 모든 것을 얻는
기쁨을 차지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배부른 뒤에 불신자가 되어
‘주님이 누구냐?’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가난하게
되어 도둑질하고 저의 하느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것입니다.”(잠언30,8-9)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신부 -
◈ [수도회]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8월 21일 화요일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 마태 19,23-30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대변혁의 세월이었던 20세기 초반
(1903년 8월 4일) 교황에 선출되신 비오 10세 교황님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못지않게 신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한
몸에 받으셨던 특별한 교황님이셨습니다.
비오 10세 교황님의 정식 이름은 요셉 멜키올 사르토입니다.
그는 1835년 6월 2일,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령 롬바르디아-
베네치아 왕국(오늘날 이탈리아 영토)이 트레비소 교구 내
리에세라는 작은 지방에서 출생했습니다.
그의 부모는 슬하에 10남매를 두었는데, 사르토는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안 그래도 어려웠던 시절 10명이나 되는
자녀들을 부양하느라 부모의 등골이 휠 정도였습니다.
아버지는 직업이 원래 구두수선공이었는데,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우체국 일까지 해서 ‘투잡’을 뛰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나니 사르토의
가정은 그야말로 찢어질 듯이 가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 대신 어머니는 삯바느질이며 남의 집 농사며 닥치는
대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가난했던지 사르토는
매일 아침 6km나 되는 통학 길을 맨발로 걸어 다녔습니다.
극도의 가난을 딛고 교황좌까지 오른 비오 10세
교황님이었기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참으로
컸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난의 영성을 끝까지 온몸으로
살아내려고 노력하셨습니다.
만토바 주교로 사목하던 시절 자신에게 당장 필요한
생필품마저 가난한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곤
했습니다. 교황에 선출되고 나서도 한때 자신이 가난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떳떳이 사람들에게 밝히셨습니다. “나는
가난하게 태어났으며, 가난하게 살았고, 가난하게 죽을
것입니다.” 교황직에 선출되고 나셔서도 청빈을 사랑하던
그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거창하고 화려하던
교황착좌식 미사와 행사를 ‘완전’ 대폭 간소화시켰습니다.
1858년 9월 8일 사제로 서품된 사르토는 9년간 톰볼로
본당의 보좌신부로, 그 후 8년간 살차노 본당 주임신부로
사목활동을 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트레비소 대신학교의
영성지도 신부로 봉사했습니다. 가난하고 겸손했으며
누구보다도 극진히 교회를 사랑했고 사목적 열정으로
충만했던 사르토 신부는 1884년 11월 10일 만토바의 주교로,
1893년 6월 12일 베네치아 대교구 교구장 겸 추기경으로,
그리고 마침내 1903년 8월 4일 제257대 교황으로
선출됩니다.
교황에 선출되면서 그가 내세운 모토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에페소 1장 10절)였습니다. 그는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십시오!”라고 외치며 교회
쇄신과 재건을 위한 찬란한 무대를 열었습니다.
비오10세 교황은 그 어떤 선대 교황보다도 일을 사랑했던
교황이었습니다. 그는 새벽 4시에 기상해서 기도를
바쳤으며, 6시 미사, 그리고 8시에 하루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하루 일과는 톱클래스 연예인 저리
가라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접견, 계속되는 회의와
연구, 틈새 시간을 이용한 독서와 집필, 그리고 기도로 하루
일과를 채웠습니다. 밤 9시 저녁식사를 마친 비오 10세
교황님은 결코 곧바로 침실로 향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그는 또 다시 산적한 업무를 마무리하기 위해
습관처럼 집무실로 발길을 돌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한 가지는 그 바쁜 와중에도 어린이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바티칸 내
성 다마소 정원에서는 삥 둘러앉은 어린이들 틈에서 문답식
교리를 지도하시는 비오 10세 교황님의 모습을 자주 뵐 수
있었습니다.
비오 10세 교황님께서 남긴 업적을 낱낱이 열거하자면 2박
3일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만큼 그는 교회를 위해 많은 일을
하신 분입니다.
그는 교회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일선 사목자인 사제들의
삶이 쇄신되어야 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사제 양성의 못자리인 신학교의 쇄신이
필요하였기에 대대적인 신학교 통폐합 작업과 신학교
수준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는 틈날 때 마다 잦은 고백성사와 잦은
영성체가 영성생활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신자들에게
강조했습니다. 그때 당시 얀세니즘의 영향으로 ‘그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죄인인 우리들이 어떻게 자주 모실 수
있는가?’ 더불어 ‘그 거룩한 성체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함부로 나눠줄 있겠느냐?’는 분위기가
농후했습니다.
그러나 비오 10세 교황의 생각을 달랐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보다 자주
성체를 영하십시오. 그리고 이를 위해 보다 자주
고백성사를 보십시오. 성체는 천국으로 가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랑하는 어린 자녀들에게 이 최고의 음식을
어떻게 나누어주지 못한다 말입니까”라고 외치며 당시
12세가 되어야 첫영성체를 하던 관습을 바꾸어 7세로 연령을
낮추었습니다.
교회 전반에 걸친 쇄신이 그의 주관심사였습니다. 주교 임명
절차를 개선했습니다. 교회법 개정 작업을 통해 새로운
교회법전을 편찬했습니다. 성경위원회를 구성하여 기존의
성경을 개정했습니다. 성경 교육 센터를 설립했습니다.
성무일도를 시대에 맞게 개정 보완했습니다. 어린이 교리
교육서를 마련했습니다.
11년간 교황직에 머무시는 동안 교회의 쇄신과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셨던 비오 10세 교황은 1914년 8월 21일
얼마 전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을 슬픈 얼굴로 바라보며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신부 -
◈ [수도회] 당연하지! 정말?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힘들다는 예수님 말씀에
제자들은 매우 놀랐다. 그런데 이 말씀이 오늘 우리를
놀라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재물을 하느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표징으로 여겼기에 부자를 구원에 다가선 이로 받아들였다.
제자들 또한 이와 같은 생각으로 당연히 어제 복음 말씀에
등장한 부자 청년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예수님의
언급은 제자들한테 놀라움과 절망감을 가져다주었다.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부자도 들어가기 어려운
하늘나라라면 가난한 자신들이 들어가는 일은 얼마나
어려울까! 작은 바늘구멍마저 막혀버린 듯한 아득한
절망감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한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하시며 절망감에 빠진 제자들한테 새 희망을
전하신다. 곧 구원의 징표를 재물로 보는 그들의 믿음을
온전한 믿음으로 거듭나게 하시며 희망을 전하시는 것이다.
이 새로운 희망에 힘입어 우리의 용감한 베드로는 현재
예수님으로 인해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우리는 무엇을
받을 수 있겠느냐며 질문할 수 있었다.
옛사람들은 신분제도와 노예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럼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오늘
하루는, 하느님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것임에도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 김준모 수사(성바오로수도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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