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창을 보니 청개구리가 붙어 있다. 청개구리는 늘 있는 자리에 있다. 마당 귀퉁이엔 딱새가 누워 있다가 사라졌다. 고양이가 잡았을 것이다. 그리고 개미까지 해체되는 시간이 짧았다. 오늘은 집을 나서는데 문을 열기 전 중간 크기 살모사가 누워 있었다. 발자국 소리를 내니 꼬리를 흔들면서 고개를 든다. 고양이 세 마리가 매일 들락거리는데 살모사들도 대를 잇고 건재하다. 죽일까 하다가 그러지는 못하고 그냥 막대기로 화단 쪽으로 던졌다. 다음엔 더 조심해야겠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나서는데 이번엔 로드킬 된 너구리가 누워있었다. 상처 하나 없다. 괄약근이 열리면서 오줌을 쌌을까 엉덩이 부분 아스팔트가 젖어 있었다. 길옆으로 치웠다. 집 근처 어디 살다가 하필 집 앞 묵밭 우거진 수풀을 누빈 뒤 길을 건너다 봉변을 당한 모양이다. 죽음이 참 가깝다.
청개구리와 딱새와 살모사와 고양이와 너구리라니.
시골집이지만 풀이 우거지니 크기가 다양한 친구들이 동거한다. 매일 삶의 비극과 희극이 교차한다. 어수선하게 이렇게 우거진 속에 산다.
오전에 마침 교육지원청에서 주최한 강진만 관련 연수가 있어 생태공원에 갔다. 올 들어 새섬매자기가 공원의 갯벌지대를 거의 뒤덮어버려 궁금했다. 그런데 강사의 말에 의하면 군청에서 재작년에 복원공사로 새섬매자기를 심었다는 것이 아닌가? 어쩐지 작년과 올해 새섬매자기 번지는 것이 심상치 않다 했더니 군청에서 생태공원 조성사업을 하면서 겨울철새인 큰고니를 많이 모으기 위해 먹이식물인 새섬매자기 군락을 엄청난 규모로 조성한 꼴이 되었다. 덕분에 이맘 때 보여야할 도요새는 앉을 갯벌이 없어 하류쪽으로 내려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뭐가 복원일까 도무지 알 수 없다.
인간의 기준은 못 믿겠다. 생태교란종이니 유해동식물도 나는 별로 호감을 갖고 듣지 못하겠다. 인간 본위의 잣대 하나로 제멋대로 붙인 이름이기 때문이다. 올겨울 강진만 생태공원은 새섬매자기 뿌리를 먹으러 모이는 겨울철새들로 북새통을 이룰 것이다. 나도 그 변화를 주목해 볼 것이다. 군에서는 인파를 좀 더 모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래펄이었던 강진만을 간척과 댐, 보의 하천공사로 갯벌로 둔갑시키고, 갯벌을 다시 새섬매자기 군락으로 둔갑시키는 것을 복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겨울철새 유인이라는 의도와 목적이 너무나 명확한 조성사업이 아닐까? 우리는 무엇인가를 선택함으로써 배제한다. 언제나. 내가 당신을 선택하는 것이 당신 아닌 당신들을 배제하는 것이었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