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지진 역사
"누군가는 아는 깨알상식". 우리나라 지진에 대한 역사적인 부분을 공유해봅니다.
요약해보면 우리나라는 지진이 비교적 적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지만, 역사를 통해 보면 크고 작은 지진 기록이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 조선 시대의 기록에는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 약 2천 건 이상의 지진이 문헌에 남아있습니다. 특히, 1643년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과 1936년 대구 지진은 강도가 상대적으로 컸던 사례로 꼽힙니다. 최근에는 2016년 경주 지진과 2017년 포항 지진이 있었습니다(아래 사진 참조). 경주 지진은 규모 5.8로 국내 관측 역사상 가장 큰 지진으로 기록되었으며, 포항 지진은 규모 5.4로 구조적 피해도 상당했습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지진의 역사에 있었던 관련한 일들을 찾아보았습니다.
◑ 하늘의 노여움으로 여겼던 옛날의 지진
옛날엔 지진을 하늘의 노여움이라 여겼습니다. 신라 혜공왕 때 큰 지진 일어나자 승려들을 모아 백성에게 불경을 전했고 '백좌법회'를 열어 나라의 평안을 빌었으며, 고려·조선시대엔 '해괴제'를 지내며 불길한 재난을 막아달라고 기원했다고 합니다. 지진은 지구 내부의 힘이 표면으로 나와서 땅이 갈라지며 흔들리는 현상으로 알고 있지요?
우리나라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크고 작은 지진이 계속해서 일어나 이런저런 피해를 보기도 했습니다. 삼국시대와 고려·조선시대에는 지진이 일어나면 나라에서는 특별한 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과연 지진이 나면 옛날 사람들은 어떤 행사를 열었을까요? 지진 때문에 벌어진 행사를 알아볼까요?
◑ 779년, 신라의 도읍지 경주에서 지진이 일어나다
"폐하, 지난 새벽에 태백성이 달에 들어가는 현상이 일어났다고 하옵니다."
"그렇소? 아무래도 불길한 조짐 같소."
"도성에 지진이 일어나 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습니다."
"땅에서는 지진이 일어나고 하늘에서는 태백성이 달에 들어가는 현상이 일어나니 아무래도 대책을 마련해야겠소“
779년 3월, 신라 제36대 임금인 혜공왕 때 신라의 도읍지인 금성, 즉 지금의 경주에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오늘날처럼 자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백성이 사는 집들이 무너지고, 100명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달이 태백성 즉, 금성을 가리는 예사롭지 않은 천문 현상이 일어났고요. 임금은 국가에 어떤 좋지 못한 일이 생겨날까 걱정해 조정의 신하들에게 대책을 세우라고 했고 그 대책으로 백좌법회라는 것을 열었습니다.
◑ 국가가 재난을 당했을 때 열리던 불교 행사
백좌법회는 많은 승려를 모아놓고 국가의 평안을 빌며 불경을 설명하는 모임을 말합니다. 불상 100개와 보살상 100개를 절에 모시고, 높은 자리 100개를 마련해 덕이 높은 승려 100명을 그곳에 앉게 한 뒤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절에 모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때 등불 100개를 밝히고, 100가지 향불을 피우며, 100가지 색깔의 꽃을 뿌려 부처님을 향한 공경의 마음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신라에서 이처럼 백좌법회를 시작한 것은 6세기 중엽 진흥왕 때 고구려에서 신라로 귀화한 혜량 스님이라고 삼국사기에 전해지는데, 신라에서는 국가에 위기가 닥쳤거나 왕이 병이 들었을 때 또는 지진이나 홍수, 태풍 따위의 자연현상으로 큰 피해를 봤을 때 국가적인 행사로 백좌법회를 열었습니다. 국가가 재난을 당했을 때 백좌법회를 열었던 풍습은 고려까지 이어졌습니다. 한편 고려 때에도 지진이 일어나면 지내던 또 다른 행사가 있었는데 바로 해괴제라는 것입니다.
◑ 지진 같은 재난이 일어났을 때 지냈던 제사
'고려사'라는 역사책에 기록된 내용으로, 고려 제8대 현종 때인 1023년에 일어난 일로 금주라는 곳은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를 말합니다. 해괴제(解怪祭)는 나라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을 때에 특별히 지내던 제사였습니다. 궁궐에서 부엉이가 운다든지, 절의 불상이 땀을 흘린다든지, 바닷물의 색깔이 붉게 변한다든지 하는 등 나라 안에 괴이한 일이 생기면 제사를 지내 불길한 기운을 없애려 한 것입니다.
해괴제라는 행사는 조선시대로도 이어져 지진이나 해일, 황사 등 자연에서 비롯된 재앙이 일어나면 나라에서는 그곳에 제사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리나 제사에 쓰이는 향과 제사글인 축문을 내려 해괴제를 지내게 했습니다. 주로 조선 초기인 태종·세종·단종·세조 때 자주 지내던 것으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재해를 대하는 임금의 자세
옛날 사람들은 지진이나 홍수, 가뭄이나 황사 같은 자연재해를 하늘의 꾸지람으로 생각했어요. 백성의 원망이 자연재해를 부른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왕과 관리들은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말이나 행동을 조심했고, 가난하고 억울한 백성을 구제하는 데 힘을 썼어요. 억울한 백성의 소리를 귀담아들어야 백성의 원망 소리가 줄어들고, 하늘의 노여움이 풀려 나라가 평안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1478년 4월 초하루, 흙비가 내린 날에 조선 성종 임금은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도 했어요.
"지난번에는 지진이 있었고, 이번 달에는 흙비가 내리니 이런 재앙들이 혹시 나의 잘못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되오. 내가 백성의 사정을 살피지 않고 나랏일을 처리한 것은 없는지, 불공정하게 법을 집행해 억울하게 생긴 사람은 없는지, 어질고 훌륭한 사람 대신에 간사하거나 무능한 사람을 관리로 뽑은 것은 아닌지 말이오."
성종은 신하들은 물론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나라에 재앙이 일어난 이유와 이를 그치게 할 방법을 묻고 토론하게 했습니다.
◑ 마무리 하며 ....
오늘날은 지진이 발생하면 데이터와 영상, 사진 등으로 다양한 분석을 통해 우리가 쉽게 지진에 대해 감지하고 있지만, 오래 전 지진은 재앙이나 하늘의 노여움으로 알고 있었기에 지진의 강도나 사건의 그림 등의 정확한 기록보다는 노여움을 풀고 백성을 안심시키는데 노력을 했던 기록들이 잘 나와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지진의 대부분은 유라시아판과 필리핀해판의 경계가 멀리 떨어져 있어 규모가 크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지질학적으로 판이 맞물리는 경계가 반복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언제든 재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지속적인 관측과 내진 설계 강화는 필수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충분한 대비를 통해 피해를 줄일 수도 있습니다. 최근 기술의 발전으로 지진 조기경보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초기 대응이 더욱 빨라지고 있습니다. 또한 국민 모두가 지진 발생 시 대피 요령을 숙지하고, 정기적인 훈련을 통해 대비 태세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 주변의 자연재해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대비한다면, 앞으로의 지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