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7일 경가회공부방에서는 지난 4월에 이어 가톨릭 신학대학의 영성신학 교수이신 전영준 바오로 신부님의 미사와 강의가 있었습니다. 다음은 강의를 정리한것 입니다.)
<평신도와 관련된 보편교회 문헌에 나타난 신앙생활 >
20C말에서 21C초에 걸쳐 한국가톨릭 신자수는 급증하였읍니다. 그런데 여론조사결과 종교를 갖게된 동기에서 내세 구원이 동기였다는 가톨릭신자의 수는 7% 에 불과하였고 마음의 평화를 구했다는 답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고 하셨고, "나는 평화를 주러 온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왔고 , 분열을 주러 왔다" 고 말씀하신바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상의 평화를 찾으러 왔을수도 있읍니다. 영성(spirituality )이란 말은 요즈음 의과대학에서도 쓰는 개념이 되었읍니다. 의료 행위중, 놀랍게 치유되는 경험을 한다거나, 의지가 있어야 치유가 가능한 경우가 있어서 폭넓게 영성을 거론하게 되어 개념이 혼용될수 있읍니다.
우리의 영성은 하느님이 거룩하신것 처럼 우리도 거룩해져야하고, 하느님이 완전하신것 처럼 우리도 완전해져야 한다는 것 입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하느님을 닮아 가도록 하는것 입니다. 그 과정에서 무미건조하고 고독한 사막체험을 하기도 합니다. 하느님 뜻 실천은 이기적 쾌락을 극복하고 사치와 세속적 명예등을 버려야 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나를 극기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며 성직자 수도자의 모습으로 기울어져 갈수 있읍니다. 다른 방향으로 하느님께 나아가는 방법을 그 동안 교회가 안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평신도 그리스도신자들에게 맞는 길이 있으며 그것을 찾아야 할것입니다. 교회문헌에서 평신도 영성이란 단어가 언급되지 않고 평신도 사도직이 더 언급되고 있읍니다. 이 두가지는 차이가 있으나 통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의무인 사도직은 영적으로 깊어지지 않으면 실천하기 어려우므로 이 두개념은 결국 통하며 보완적 관계입니다.
평신도 신자들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며, 자기집에서 삽니다. 예수님은 육화하여 사람이 되셨고 성가정에서 성장하고 사셨읍니다. 교회는 중세에서 근세 현대에 이르기 까지 성과 속을 나누려는 이분법적 사고를 해 왔읍니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님의 오심과 함께 세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평신도들은 하느님의 진리를 믿고, 고백하고, 교회와 하나되어 하느님 신앙을 고백하는 의무를 가지고 세상끝, 세상 어디서나 실천할것 입니다. 성 바오로는 많은 지역을 두루 걸어다니며, 이방인의 철학과 문화에 젖어있는곳에서도 온힘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설립하였읍니다. 영성생활은 복음을 증거하는 삶이며, 세상은 현실속에서 실천하고 성장시키는 현장이 됩니다. 세속안에서 존재하는것은 세속에서의 그 위치를 포기하는것이 아니라, 그 위치에 머물며 세상속에서 살아가면서 주님을 증거하며 사는것을 사명으로 하는것 입니다. 세속적 인것과 영성적인것은 일견 어울리지 않는것 같으나, 교회헌장과 사목현장에서 평신도들이 그 독특한 세속적 위치를 그들의 사명과 연결하고 있습니다.
중세까지 교회는 하느님만 바라보며, 성 과 속을 분리하는 생각을 해왔으나, 르네상스와 인문주의 에서 인간을 확대시키게 되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높여서 하느님을 바라보라고 하는 영성에 도달하였읍니다. 프란치스코 드 살 성인은 불림받았을때의 자신의 위치를 지켜서 영성생활 하도록 권하였읍니다. 현대에 와서는 세상은 악마의장소가 아니라 하느님이 창조하시고 좋다고 하신 곳이며, 세상은 본인을 성화시키는 장소 라고 합니다. 우리는 영성생활의 방법에 있어서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하되 자신의 방법에 자만하거나, 다른이들의 방법을 비판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신자의 세가지 직무는 1,왕직 2, 예언직, 3 사제직 입니다. 이는 사도들이 먼저 받아 실천하게 되었으나, 세례받은 모든 신자들에게 도 각자의 자리에서 실천해야할 직무입니다. 예언직은 말씀을 받아 전하는것이며, 사제직은 가정에서나 소모임에서 기도전례를 실천하여 봉헌하는것 이며. 왕직은 사람들을 지배하는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보살피고 돌보아주며 작은 관심으로 상처받고 힘들때에 위로를 주는 봉사이며 애덕실천입니다. 집이나 물건이나 집안에서 키우는 관상용식물이나 애완용 식물도 관심과 보살핌의 정도에 따라 상태가 다릅니다.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관심과 친절과 애정을 가지고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ㄴ것이 왕직입니다. 자기의 수준에 맞게 이 직무들을 실천하는것은 영성생활의 기본이며 성덕으로 나아가는 길 입니다.
가정은 가장 작은 단위의 교회로서 공동체를 체험하는곳이며, 사회적 덕행을 가르치는 학교가 될수 있읍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배려하는것을 배우고 실천하며 덕행을 키워나갈수 있읍니다. 물리적 나이와 내면적 성숙도는 다르므로 결혼은 했어도 부모가될 준비가 되어있어야 제대로된 가정을 이룰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평신도 사도직 을 연마할수 있는, 영성을 발전시키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영성생활을 이유로 가정돌봄 이나 세속적 의무를 소홀히 한다면 올바른 영성생활이 아닙니다. 각자의 직업상 업무에 관한일들은 그 일을 하도록 하느님께 불리움을 받았다고 생각하여 최선을 다하는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공동체를 위한 봉사를 할때에 우아한 모습으로 앞에 나서는 일을 하거나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거나 하느님 보시기에는 같습니다. 나의 어떠한 적성이나 재능때문에 부르셨나를 잘 찾아서 그에 최선을 다하는것이 나의 성덕을 발전시키는 방법이며 나의 적성에 맞추어 봉사하는것이 영적여정의 방법중 하나입니다.
<성령의 은사들>
성령의 은사는 소유자를 위한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봉사하기 위한것이므로 은사를 받았으면 봉사해야 합니다. 성 바오로는 더큰 은사를 청하라고 하셨는데 사랑이야 말로 가장큰 성령의 은사입니다. 사랑은 그자체로 타인을 향하게 되어있고, 상대방을 위한것 입니다. 봉사하다가 보면 사랑, 기쁨, 평화 ,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 (갈라 5,22-23) 등의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데 이열매를 잘 간직하여야 합니다. 작은 은사라도 성령께서는 그것으로 개인을 성화시키고 공동체에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영성은 하느님이 거룩하심 같이 우리도 거룩하도록 불림받아서 거룩함으로의 발전을 하는것 입니다.
<평신도에게 필요한 영성은 >
1, 창조적 영성
각자의 소명에 따라서 자신의 조건 환경을 선용하여 일하므로서 하느님께 영광드리며 영적 발전의기회가 되고 하느님 창조사업에 동참하는것이 됩니다.
2,지혜로운 영성
부귀영화를 청하는 대신 현명한 덕을 하느님께 청한 솔로몬 왕처럼, 하느님께 지혜를 청해야 할것 입니다. 지식은 단순히 아는것 인데 지혜는 하느님께 가는
데 필요한것을 아는 지식 입니다.
3,공동체적 영성
공동체적 영성이어야 함을 기억할것 입니다. 혼자 기도하더라도 공동체 안에서 상호 연관성이 있게 됩니다.
평신도 신자들은 너무 수도자 영성을 따라하려 하지 말고 세상안에서의 자신의 직분에 정성스럽게 임해야 하지만 , 그러나 너무 안심하여 세속적 흐름과 유혹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생활이 중요합니다. 세상이 주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규칙적 기도생활을 실천하며 잠심으로 침착하게 머무르며, 자신을 반성합니다. 기도를 잘하기 위하여 성경말씀으로 출발하여 성경의 message를 묵상할것 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을 증언하고, 실천함으로서 형제자매들에게 모범을 보여줄것입니다.
첫댓글 새로운 감각으로 평신도로서의 영성생활을 할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전영준 바오로 신부님께 큰 감사를 드리며 영육간에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다시한번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유병숙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해요^^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씀드리면 더 놀라실 것예요. 유 선배님께서 강의 노트한 것을 소성당에다 놓고 가셨는데 다시 찾으러 오니 벌써 제가 챙겨서 평택으로 가져오지 않았겠습니까.
금요일 아침, 서정리역으로 저를 만나러 오셨어요(정확히 말씀드리면 제가 아니라 기록을 가지러). 아~ 그 책임감과 정성은 제가 두고두고 잊지 않을 것입니다.
6월 경가회 참석을 못하여 여기 들어와서 방금 유선배님의 강의 요약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회장님과 유선배님의 숨은 노력도... 우리 경가회는 모든 선후배님들의 이런 노력으로 나날이 발전해가고 있음을 더욱 깨닫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선배님 오셨으면 제 하소연을 실컷 들으셨을텐데요. 회원님들께 무더운 여름 잘 나시고 9월에 뵙자는 인사도 못드린 접니다. 그만큼 허둥지둥입니다.
핑게(제가 부족하다는 말씀은 듣기에 식상하시겠지만)없는 무덤이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