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면담
정의
‘초기면담’은 당사자를 처음 만나 삶의 욕구에 관해 나누는 일입니다.
당사자의 기본적인 정보를 파악하여 기록하는 실무적 절차를 넘어,
그 처지를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전문적 원조 관계의 출발점’입니다.
방법과 맥락
초기면담의 핵심은 당사자가 처한 어려움의 전후 사정, 즉 맥락(Context)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생태계 속에서 생물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생존하듯, 당사자의 삶도 그를 둘러싼 환경과 상호작용 속에 놓여 있습니다.
이 맥락을 살펴야 비로소 ‘이해’와 ‘공감’에 닿을 수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신뢰’가 형성될 때, 향후 지원 방향의 ‘합의’도 순조롭게 이루어집니다.
초기면담은 크게 두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하나는 지원 계획의 근거가 되는 객관적 정보 수집입니다.
다른 하나는 당사자의 고통과 소망을 수용하는 정서적 이해입니다.
시간
초기면담은 사람과 사안에 따라 만남 횟수나 시간이 저마다 다릅니다.
초기면담지 작성을 위해 초기에는 자주 만나거나 대화가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로 신뢰를 쌓는 일입니다.
신뢰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회사업가와 당사자의 관계가 얼마나 깊어졌느냐에 따라 대화의 깊이와 결도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기록
초기면담 서식은 각 기관의 기존 양식이나 이론서에서 제시하는 것을 활용하면 충분합니다.
중요한 건 서식의 구성이 아니라 그 서식을 다루는 사회사업가의 마음가짐입니다.
서식에 사람을 끼워 맞추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정성껏 도우려는 마음을 서식에 담아내는 일이 이 과정의 본질입니다.
현장에서는 관리자가 바뀔 때마다 서식 개편에 힘을 쏟기도 하지만,
실천에서 서식 자체가 결정적 역할을 하지는 않습니다.
서식을 지나치게 세분화하고 복잡하게 만들면 오히려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실천을 가로막을 수도 있습니다.
서식이 당사자와 인격적인 만남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주의 : 조사가 아닌 환대
초기면담은 결코 ‘신체검사’나 ‘취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많은 초기면담지가 양식의 빈칸을 메우기 위해 첫 만남부터 무리한 질문을 던지게끔 설계되어 있습니다.
반찬 정도의 도움을 부탁하러 온 분에게 한 달 수입과 지출을 조목조목 묻거나,
가족 관계의 아픔을 낱낱이 밝히라고 요구하는 건 때로 무례한 일입니다.
질문도 가려서 합니다.
사회사업가가 당장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면 신중히 묻거나 적절한 때를 기다립니다.
빈칸을 채우려는 사회사업가의 조급함은 상황을 오판하게 만들고, 당사자가 입을 닫게 만듭니다.
부족한 정보는 관계가 깊어짐에 따라 천천히 채워가도 늦지 않습니다.
30분 상담 내내 서류만 내려다보느라 당사자와 눈 한 번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사회사업이 아닙니다.
상사의 결재를 위해 빈칸을 채워야 한다면, 일단 아는 범위 내에서 정성을 다해 기록하고,
이후 과정을 통해 내용을 수정하고 보완해 나가는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누군가 나를 분석하고 규정하려 드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 않습니다.
박남준 시인은 그의 시에서 설문 조사를 받는 날을 ‘한 시인의 경제가 싹 벗겨져 들통나는, 조사당하는 날’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사회사업의 시작인 초기면담이 당사자에게 ‘조사당하는 기분’을 주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사회복지사 공무원으로 일하는 한 후배는 주민센터를 처음 찾은 분들을 극진히 환대한다고 합니다.
그곳까지 걸어오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를 냈을지 알기에 고마운 마음까지 든다고 합니다.
이 환대의 마음이 첫 단추를 잘 끼우게 하고, 이후의 모든 과정을 수월하게 만듭니다.
초기면담은 당사자와 신뢰를 쌓는 첫 번째 환대의 시간입니다.
시인이 제일 먼저 울고 마지막까지 우는 사람이듯,
우리 사회복지사도 당사자의 삶 곁에서 함께 울어줄 수 있는 마음 따뜻한 관찰자이자 조력자입니다.
적용
1) 한번에 모든 것을 기록하지 않기
기록해야 할 항목에 매몰되면 빈칸을 채우느라 당사자의 눈을 맞추지 못하게 됩니다.
이는 인격적인 만남을 방해하고, 당사자의 상황을 오판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기존 서식을 활용하되, 첫 만남에서 ‘반드시 물어야 할 것’과 ‘천천히 알아가도 좋을 것’을 구분합니다.
몇 차례에 나누어 기록해도 좋다고 스스로 여유를 둡니다.
면담 가운데 당사자의 눈을 바라보며 경청하는 자세가 우선입니다.
숫자나 주소처럼 잊기 쉬운 정보는 양해를 구하고 수첩에 핵심어만 가볍게 메모합니다.
면담 직후 사무실로 돌아와 그 핵심어를 바탕으로 상담일지를 정리합니다.
완성된 내용은 반드시 당사자에게 보여드리고 확인을 받는 과정을 거칩니다.
2) 당사자와 함께 기록
서식 항목을 당사자와 함께 읽으며 진행합니다.
필요한 경우 각 항목의 취지를 보충 설명합니다.
특히 답하기 민감하거나 아직 마음이 열리지 않은 질문에는
“지금 당장 말씀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하고 안내하며 당사자의 속도를 존중합니다.
만약 특정 질문에 많은 당사자가 거부감을 느낀다면,
이는 당사자의 문제가 아니라 질문 자체의 적절성을 다시 살펴야 한다는 신호입니다.
3) 당사자가 직접 채워볼 기회 마련
때로는 초기면담지를 당사자에게 전하고, 며칠 뒤에 다시 방문하여 받아오는 방법도 좋습니다.
생태도나 가계도 같은 도구도 충분히 설명하면 어린이도 직접 자기 관계망을 그려낼 수 있습니다.
생태도 그리기와 같은 작업을 사회사업가 혼자 하지 않고 당사자가 직접 그리게 거드는 데는 특별한 유익이 있습니다.
① 삶의 객관화 : 복잡하게 얽혀 있던 관계와 환경을 평면 위에 그려보며,
자기 삶을 한발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이 생깁니다.
② 강점 발견 : 사회사업가는 ‘문제’를 보려 하지만,
당사자는 선을 그리며 자신을 지지해 주었던 의외의 인물이나 잊고 있던 자원을 스스로 찾아내기도 합니다.
③ 자기 결정 경험 : 자기 삶을 설명하는 도구의 주인이 됨으로써, 지원 과정에서 수동적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버젓해집니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가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용어는 쉬운 일상어로 부단히 다듬어 갑니다.
자기 삶의 언어로 서식이 채워질 때 그 기록은 생명력을 얻습니다.
4) 정보 수집도 당사자의 일이게
소득 정보나 증빙 서류가 필요할 때, 사회사업가가 임의로 관련 기관에 요청하여 조회하는 방식을 조심합니다.
되도록 당사자와 의논하여 당사자가 직접 서류를 준비해 오도록 부탁합니다.
사회사업가가 행정망을 통해 조회해야 할 때도 반드시 목적을 상세히 설명하고 동의를 얻습니다.
태도
우리는 당사자의 실태를 조사하는 탐정이나 시시비비를 가리는 재판관이 아닙니다.
당사자를 신뢰하지 않으면 당사자 또한 우리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당사자 몰래 무언가를 적는 행위는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듭니다.
함께 쓰고, 함께 읽고, 함께 확인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와 사회사업가의 신뢰가 만들어집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가는 일이 모두를 편안하게 합니다.
나아가 초기면담의 ‘때’와 ‘곳’도 당사자와 상의합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대화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깊이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당사자에게 가장 적절한 시간과 장소를 묻고 의논하는 배려가 환대의 시작입니다.
초기면담에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이유
당사자가 편안하게 말하게 하고, 그 이야기에 온 마음으로 경청하며,
시종일관 나와 같은 인격적 존재로 존중하는 과정.
어쩌면 번거롭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 과정을 정성껏 거친 뒤에야 비로소 사회사업가는 당사자와 진실하게 ‘연결’됩니다.
연결이 깊어지면 당사자의 고통과 소망이 내 일처럼 와닿습니다.
이 ‘이해와 공감’이야말로 사례관리 사회사업의 실체이자 준비의 전부입니다.
눈물로 눈을 닦고 세상을 바라볼 때, 이전과는 전혀 다른 당사자의 존엄한 삶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지난 달, 어느 공부에 한 선생님이 최근 들었던 교육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강사는, 초기면담 때 반드시 냉장고를 열어보아야 한다고 했답니다. 당사자가 거짓말을 할 수 있으니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올바른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그 강사의 공부와 경험이 그런 말을 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사회사업은 아닙니다.
1.
사회사업은, 당사자의 거짓말 하는 상황조차 '맥락'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어떤 절박함이, 어떤 경험이 그를 거짓을 말하게 하는지 이해하려 합니다.
'환경 속 인간'으로 당사자를 바라보니, 특정 상황에 놓여있음으로써, 거짓말을 하게 만들었다고 해석합니다.
2.
냉장고를 열어보는 건 무례입니다.
허락을 얻고 열어보았더라고, 거절할 수 없는 당사자의 상황을 살핍니다.
냉장고를 열어 확인하려고 한 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냉장고에 들어있는 것들은 식료품일텐데, 생존의 필수품 정도도 넉넉히 지원하지 못하여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사회사업가의 상황이 애처롭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6.02.12 23:12
초기면담을 '당사자와 인연의 시작'으로 여긴다면, 다르게 진행했을 겁니다.
사회복지사를 만나야만 하는 그 마음을 살핀다면, 조사가 아닌 환대로서 맞이했을 겁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6.02.13 21:26
지금까지 구슬꿰는실에서는 서식을 따로 만들어 제안하지 않습니다.
서식이란 게, 상황에 따라 다르게 다가옵니다.
어느 복지관은 당사자의 희망 열망 역량 가능성 경험에 주목하여 이를 생동하자는 의도로 서식을 만들었습니다.
놀라운 사례이고, 여러 강의나 글에서 적극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긴급히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유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때는 그런 초기면담지가 중요한 상황을 놓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복지관이 이상을 분명히 하고, 그 이상을 향하는 구체적 방법을 잘 갖추고 있다면,
그때는 어떤 서식을 사용하든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겁니다.
'이상을 향한 구체적 방법' 가운데 하나로 서식을 붙잡을 수도 있고,
사람을 사람답게 돕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면, 어떤 서식을 사용하여도 크게 벗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상과 방법이 선명한 복지관이라면, 서식도 잘 만들어 사용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따로 '서식'처럼 일일이 다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초기면담지를 설명하고 나면 욕구 사정지, 진행 계획서, ..., 평가서까지 다 셜멍해야 할지도 몰라요.
@김세진 반면, 이상과 방법이 선명한 복지관이기에, 이를 서식에서도 잘 녹여내려 애쓴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선생님과 내가 '서식'에 대한 개념이 다를 수도 있지요.
@김세진 네 선생님. 답글 알람을 안해두어 이제봤어요.
어떤 의도가 담긴 글인지 조금 더 명확히 이해했어요. 감사합니다.
요즘, 어떤 질문을 가지고 당사자를 만나야할지 알면알수록 단순해지지가 않아 고민이었거든요. ‘사람답게’ 그것 하나 붙잡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대단하고, 귀한 일인지도 실감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6.03.06 1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