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시코드가 있는 나담카페
최 화 웅
부산에 고(古)악기 하프시코드를 갖춘 귀한 클래식 감상실이 있다. 부산에서 유독 클래식만을 고집하는 나담(拏談)카페는 옛 동광동 2가, 새 주소로는 중구 광복로 85번길 17-3 막다른 골목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부산사람들에게마저 미쳐 알려지지 않은 나담카페는 오히려 전국의 여행객과 외국관광객에게 더 자 알려졌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국경 없는 인터넷 때문이리라. 천연데크를 깐 좁은 골목 한편에는 싱그러운 꽃나무가 자라고 다른 한편에는 유럽의 노천 카페테리아처럼 테이블을 내다놓았다. 골목을 들어서면 클래식 선율과 베토벤 석고상이 반긴다. 나는 시를 쓰는 한 선배와 함께 지나던 길에 클래식 선율에 끌려 첫발을 디뎠다.
나담카페는 15평 남짓한 좁은 땅, 용두산 남쪽 기슭 바위 위에 세워진 아담한 3층 집이다. 이 건물은 지난 60년대에 경주할매가 지었단다. 그 할매는 지난 60년대 초에 국제여객터미널, 그러니까 부산공동어시장이 제1부두와 부산세관 옆에 자리 잡고 있던 시절에 새벽 난전에서 시락국을 팔아 모은 돈으로 낡은 집을 사서 헐고 새집을 지었다. 그때가 1968년의 일이다. 그 집을 나담 선생이 6년 전에 사들여 리모델링한 뒤 원두커피를 볶는 집, 나담카페로 문을 열었다. 나담카페가 있는 옛 동광동 일대는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 1876년에 강화도조약으로 일제에 의한 타율적인 개항과 더불어 개항사무소와 왜관의 개시대청(開市大廳)이 있었던 식민역사의 현장이다.
동광동은 우리나라 행정동 중에서 가장 작은 동 중의 하나다. 동광동은 대청동과 중앙동 사이에 길다랗게 자리 잡은 곳으로 백산기념관이 있는 거리를 따라 여관과 음식점, 골동품상과 출판사가 몰려 있는 곳이다. 이곳이 전국에 알려진 것은 지난 4월 발행된 KTX매거진 창간 12주년 기념호에 <바다와 어께동무 부산여행>에 소개되면서부터다. 나담카페는 다양한 원두커피와 케이크, 몽블랑, 토스트 등을 갖춘 한적한 클래식 음악다방이다. 나담카페는 커피원두를 직접 로스팅하고 커피를 내린다. 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코드는 3층의 남쪽 병에 피아노와 책장과 나란히 놓여 있다.
또 하나 나담카페의 특징은 모두 나무회전의자를 두어서 좁은 공간에서도 의자 끄는 소리를 내지 않고 드나들기 수월하다. 나담카페는 빈티지하고 앤틱한 분위기로 옛집에 찾아온 듯 부담이 없고 편안하다. 연인들끼리 찾아들면 부드러운 편안한 대화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음껏 속삭일 수 있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주인 나담 선생은 올해로 환갑을 맞았다. 그는 2011년 암수술을 받은 뒤 사업을 정리하고 이곳에서 투병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1층을 와인바로 꾸미고 피자를 구울 수 있는 시설도 갖추고 1, 2층에 출입문이 있다. 지난 2012년 12월에는 제1회 인문학 강좌로 인도 명상가 <다다 슈바칫타난다시 초청특강>과 <얼굴분석심리 뷰티특강>을 비롯한 특별한 인문학 강좌와 몇 차례 커피특강도 가진 바 있다.
이곳에서는 한 쪽 벽면에 칠판이 걸리고 빔프로젝트를 활용할 수 있어서 매월 교수들의 정례모임도 열린다. 이곳에 드나드는 단골손님 중에는 여섯 쌍의 젊은이가 부부로 연을 맺었다고 한다. 특히 젊은 날 밀라노에서 건축설계를 공부하면서 현악기 제조가인 일본인 요시다씨는 한국인 부인과 사별한 뒤 해마다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되었다. 나담카페가 마음에 들어 손수 만든 바이올린을 선물하고 그 뒤에는 자신이 갖고 있는 하프시코드를 분해해서 갖고 들어와 직접 조립한 뒤 기증했다고 한다. 나담카페에서는 커피잔을 든 베토벤의 모습을 광고캐릭터로 쓴다. 그만큼 베토벤의 정신을 높이 사는 곳이다. 진공관 앰프와 릴녹음기로 다양한 클래식을 들려주는 나담카페에는 클라식 마니아들이 한번 찾아들면 오래도록 머무는 곳이다.
내가 나담카페를 처음 들른 것은 지난 3월말이었다. 에세이집 <강화 제주 그리고 부산>의 출판을 위해 동광동의 출판사, 푸른별을 오가다 알게 되었다. 소박한 분위기에 편안하게 클래식을 들을 수 있는 곳이 마음에 들었다. 학창시절인 지난 60년대 부산에는 클래식 전문다방과 음악감상실이 드문드문 있었다. <에덴 다방>과 <광복다방>, <미화당음악실>에 <클래식>과 <칸타빌레>, <필하모니>와 <오아시스>에 <무아>까지 해설이 있는 클래식 감상실이 하나 둘 사라지면서 명성레코드와 국도레코드도 문을 닫고 광복동에 즐비하던 오디오기기 판매점도 하나 둘 자취를 감추었다. 그 때는 배경모, 백형두, 유문규, 강동진 같은 유명 DJ들이 활동하다 부산MBC-FM으로 자리를 옮기던 시기였다.
어느 날 우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 나담 선생은 얼마 전 옛 집주인 경주할매의 며느리라며 남천동에 사는 70대 할머니가 옛날이 그리워서 찾아왔더라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시를 쓰는 김철 선배와 나는 시내에 나올 때면 부산에서 마지막 남은 클래식 다방, 나담카페에서 클래식 선율과 함께 질 좋은 커피를 마시며 쉬어 가곤 한다. 나는 처음 나담카페를 찾은 날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스프링>과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청해 들으며 약동하는 계절, 봄에 취했다. 이 삭막한 불모지 부산에 나담카페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 일인가.
첫댓글 멋지고 맛있는 글 주심 감사합니다-~♡
온몸으로 다가오는커피향과 하프음율~
그리고 귀하게 들려주는 클래식 선율~
이 아침에 입가의 웃음과 가슴 벅차옴
즐거움입니다.
행복한 날 주신 그리움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저도가고픕니다. 나담카페 가고싶어요
엘사님과 즐겁게 누리며 사시는모습
참 좋아요^^
두분 건강,행복하세요~♡~
"God with us!!"
옛 추억과 향수가 어린 공간이 아직 남아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나담카페에서의 여유로움과 행복해 하시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부산으로의 회귀 충동이 스물스물 살아나는데요~^^
광복동의 클래식 다방 이름을 들으니 가슴이 뭉클합니다.
잊었던 동심을 찾은 것 마냥.
나담카페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담카페 - 저도 한 번 가 보고 싶습니다.^^
나담카페..
그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지네요~
학창시절 광복동 클래식 감상실에서 시간을 보냈던 그때가 그립습니다.이젠 할미가 되었지만,그기분 다시찾아 부산에 꼭 한번 다녀와야 겠군요
그리움님 고맙습니다 7월에 부산가서 나담카페에 꼭 들려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