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인간혁명 30권 제6장 서원(107~112)
<서원 107>
야마모토 신이치는 대통령과 회견한 뒤 이어서 파라과이 외무부를 방문했다. 파라과이의 ‘국가공로대십자훈장’ 수여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수여식 인사에서 외무장관은 신이치의 평화행동을 언급해 이렇게 말했다.
“성실한 ‘대화’만이 차별을 없애고 지구규모의 항구평화와 상호이해를 기능케 한다는 신조로 계속해오신 회장님의 평화 투쟁은 인류의 모범입니다.”
또 이날 22일에는 파라과이 국립 아순시온대학교가 신이치에게 철학부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해 그 수여식에도 참석했다.
그리고 23일 저녁, 신이치는 다음 방문지인 칠레로 향했다.
“하늘도 땅도 / 흐르는 강도 / 불국토로구나
지용보살(地涌菩薩)인 / 그대들 잊지 않으리”
신이치가 파라과이 벗에게 보낸 시다.
파라과이를 출발한 탑승기는 안데스 상공을 날았다. 눈 아래 펼쳐진 산등성이의 잔설이 석양빛을 받아 황금처럼 빛나고 있었다.
칠레는 정확히 50번째 방문지다. 돌이켜보면 어느 나라에서나 한번 또 한번 전 혼을 쏟아 역사의 문을 여는 진검승부의 광포여정이었다.
도다 조세이(戶田城聖)는 제2대 회장에 취임하고 이듬해인 1952년 1월 1일, “자 나아가자 / 월지(月氏)의 저 끝까지 / 묘법(妙法)을 / 넓히는 여정에 / 의기양양하게” 하고 읊었다. 또 생을 마감하기 열흘 전쯤에 신이치를 곁으로 불러 멕시코에 간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네.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네. 니치렌(日蓮) 대성인의 불법(佛法)을 구도하면서 말이야. 정말 가고 싶구나. 세계를 향해 광선유포의 여행을…” 그리고 생명을 쥐어짜듯 이렇게 말했다.
“자네의 진정한 무대는 세계다” “끝까지 살아야 한다. 그리고 세계로 나이가야 한다.”
도다의 마음은 전 세계 민중의 행복을 세계광포를 향해 있었다. 그러나 은사는 한 번도 해외에 나간 적이 없었다. 신이치는 도다의 말을 유언으로 삼아 생명에 새기고 스승을 대신해서 세계를 돌며 ‘태양의 불법’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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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치는 은사 도다 조세이가 서거한 지 2년이 지난 1960년 5월 3일, 제3대 회장에 취임하고 5개월 뒤인 10월 2일에는 세계평화의 여정을 출발했다.
제일보를 새긴 하와이에서는 연락에 착오가 생겨 마중 나와야 할 멤버들도 오지 않았다. 여행 중에 건강이 나빠져 고열에 시달리기도 했다. 학회를 오해한 정치 경찰의 감시를 받으며 동지를 계속 격려한 나라도 있었다.
북미와 중남미를 비롯해 아시아, 유럽, 중동,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으로 사람들의 행복을 바라며 달렸다.
사회주의 국가에도 수없이 발걸음을 옮겨 우의와 문화의 다리를 놓았다.
니치렌 대성인의 유명(遺命)인 ‘일염부제 광선유포’를 실현하기 위해 목숨을 걸 각오로 세계를 돌며 묘법이라는 평화와 행복의 씨앗을 심었다. 은사 도다와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누는 사제(師弟)의 여정이었다.
그런 해외 방문도 이 칠레 땅에서 드디어 50번째가 된다.
신이치의 뇌리에 시가 한 수 떠올랐다.
“장엄한 / 금빛에 감싸여 / 백설 덮인
안데스를 넘노라 / 나는 이겼노라”
이윽고 산등성이 위로 초승달이 빛을 내뿜고 대명성천(大明星天, 금성)이 아름답게 빛나고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신이치는 그것이 제천의 축복처럼 느껴졌다.
칠레에 도착한 이튿날인 24일, 신이치는 수도 산티아고시 시청사에서 명예시민칭호에 해당하는 ‘빛나는 빈객장’을 받았다.
그 수여의결서에 신이치의 방문은 “칠레와 일본의 인간상호 이해를 더한층 돈독히 하고 나아가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관을 공유하는 우정의 유대를 확고하게 만드는 특별한 기회다.”라고 씌어 있다.
이후 신이치는 산티아고에 있는 칠레문화회관을 방문해 제1회 칠레SGI 총회에 참석했다. 모든 참석자의 환희가 폭발했다. 모두 경제적 혼란, 군사정권에 의한 인권침해 등 긴 겨울의 시대가 지나 지금 희망의 봄이 도래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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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군사 쿠데타가 발발했다. 하늘에는 전투기가 날아다니고 시가지에는 탱크와 무장 병사들이 넘쳤다.
멤버인 중심자 부부 집도 전투에 휘말려 기총사격을 받았다. 2층은 총탄으로 벌집을 쑤셔놓은 듯했으나 1층 불단방에 있던 부부는 무사했다.
두 사람은 동지들의 안부가 걱정되어 계엄령이 내려진 시가지로 뛰어나가 날마다 한집, 한집 찾아 다녔다. 집회는 금지되었다. 동지 집을 방문할 때마다 ‘가족좌담회’를 열었다.
이후에도 회합을 개최하려면 국방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개최 장소도 회관 한 곳만 가능했다. 그러나 동지들은 모두 힘에 넘쳤다. 회합 내용을 감시하러 온 경찰관에게도 SGI의 평화운동이 얼마나 위대한지 말했다.
칠레 동지는 상기된 얼굴로 당시 상황을 신이치에게 보고했다.
“마키구치 선생님도, 도다 선생님도 전시 중에 일본에서 특고경찰의 감시를 받았지만 용감하게 광포를 위해 싸우셨습니다. 또 야마모토 선생님은 우리에게 그때그때 따뜻한 격려를 보내주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다 알고 계신다고 생각하니 힘이 솟았습니다.”
동지들은 스승을 가슴에 품고 달렸다. 늘 마음에 스승이 있었다. 그렇기에 지지 않았다. 각 지부나 지구에서 자유롭게 회합을 열게 된 때는 민주정권이 들어선 3년 전쯤부터다.
그러한 상황에서 동지들은 신이치가 칠레를 방문하기를 기원하고 활동에 힘쓰며 일일여삼추의 마음으로 기다렸다.
정치 불안이 계속되는 가운데 남북 약 4200킬로미터나 되는 광대한 국토에서 지혜를 짜내고 거듭 궁리해 스크럼을 짜고 전진해온 동지들의 고투에 신이치는 가슴이 터질 듯했다.
지용보살은 일본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 중 하나인 칠레에도 속속 출현한 것이다.
칠레문화회관에서 신이치는 미래부 아이들에게도 말을 건넸다.
“마중 나와 주어서 고마워요. 일본에서 왔어요. 일본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칠레 옆에 있는 나라랍니다.”
아이들은 꿈의 날개를 활짝 펴고 눈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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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치는 제1회 칠레SGI 총회 스피치 때 칠레 각지에서 활동에 힘쓰는 동지들의 노고를 기려 ‘역경에 지지 않고 열심히 분투해 오신 여러분에게는 분명 안데스산맥과 같은 공덕이 한없이 쌓일 것’이라고 상찬했다.
나아가 이번 칠레 방문으로 해외 방문이 50개국·지역에 달한다고 전했다.
33년 전, 후지산의 높은 봉우리를 우러러보면서 세계평화를 위한 여정을 시작한 뒤 오대양 육대주를 달렸다. 그리고 일본과는 거의 지구반대편에 있는 ‘남미의 후지산(오소르노산)’이 우뚝 솟아 있는 칠레를 방문한 것이다.
신이치는 열렬한 기백으로 외쳤다.
“틀림없이 도다 선생님이 크게 기뻐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드디어 이제부터가 본무대입니다. 늘 여러분을 가슴에 안고 날마다 함께 행동한다는 마음으로 전 세계를 즐겁고 명랑하게 달리겠습니다!”
또한 “현명함을 사람이라고 하며, 어리석음을 축(畜)이라 하느니라.”(어서 1174쪽)는 어서를 배독해 현명한 행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광선유포를 전망해 널리 열린 마음으로 멤버가 아닌 사람들도 잘 배려하고 서로 존경하면서 우정을 소중히 하고 사이좋게 교류를 다져가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라고 말했다.
‘신심즉생활’이자 ‘불법즉사회’다. 이 가르침이 나타내듯 불법은 열린 종교다. 신이치는 학회와 사회 사이에 벽 같은 것을 만들면 절대로 안 된다는 점을 일러두고 싶었다.
그리고 끝으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대만족, 대승리, 대복운의 인생을!’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총회에 이어 개최한 ‘창가가족 모임’에서는 아이들이 커다란 석상 유물인 모아이로 유명한 이스터섬의 전통무용 ‘사우사우’를 선보이고 고적대가 일본 동요 ‘봄이 왔다’를 연주했다. 또 남녀청년부는 민족무용 ‘쿠에카’를 힘껏 춤췄다.
칠레에서도 광포 개척자인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을 이어받아 젊은 세대가 늠름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희망이 있고 빛나는 미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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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가족 모임’에서는 ‘만약 칠레에 간다면’을 힘껏 합창했다. 신이치도 함께 손뼉을 쳤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 나그네여 당신을 맞이합니다.
칠레에서는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을 / 얼마나 반기는지 / 당신은 알 거에요.
멤버들은 환희 가득한 얼굴로 ‘세계광포의 모범’이 되는 전진을 다짐하듯 열창했다.
이날 칠레는 새로운 원점을 새겼다.
25일 정오, 신이치는 대통령관저(모네다궁전)에서 파트리시오 아일윈 대통령을 예방했다. 대통령과는 한해 전 11월에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회견했다.
그때 민중에게 봉사하는 리더상, 극적인 칠레의 민주화, 환태평양시대를 여는 양국의 문화교류 등을 주제로 활발한 대화를 나눴다. 예정된 회견시간인 15분을 훌쩍 넘겨 약 45분간 회담했다.
헤어질 때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결코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음에는 꼭 칠레의 대통령관저에서 뵙고 싶습니다.”
그때 약속을 실현한 것이다.
대통령은 도쿄에서 회견한 뒤 신이치와 토인비 박사의 대담집 ‘21세기를 여는 대화’를 완독했다며 재회를 기뻐했다.
대화에서는 문화의 힘, 환경문제 등이 화제에 올랐다. 또한 신이치는 계관시인으로서 대통령에게 장편시 ‘안데스의 민주의 위용’을 선사했다.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무력보다 뛰어난 ‘도리’라는 힘 / 칼의 힘보다 뛰어난 ‘정신’이라는 힘!
매정한 악(惡)의 힘이 / 설령 맹위를 떨친다 해도
결국 그것은 한때 환상과 같은 승리에 불과하다. / ‘도리’의 힘 ‘정신’의 힘이야말로
이윽고 이해와 환희 속에 / 민중의 대지를 널리 윤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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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윈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고 4개월 뒤인 1994년 7월, 부부 함께 일본을 방문해 소카대학교에서 기념강연을 했다.
신이치와 총 세 번에 걸쳐 회담해 이 대화를 토대로 1997년 10월, 대담집 ‘태평양의 욱일’을 발간했다. 이해는 ‘일본·칠레 수호통상항해조약’을 체결한 지 100주년을 맞이하는 가절에 해당했다.
2월 25일 저녁, 신이치는 칠레를 출발해 브라질 상파울루로 갔다.
체재 중 브라질SGI 자연문화센터에서 세계 32개국·지역 대표가 모여 개최하는 제16회 SGI총회에 참석했다.
총회에서는 학회원이 바로 ‘이제껏 없던 일염부제 광선유포의 개척자다’ ‘대성인 직결이라는 긍지를 영원히 가슴속에 불태워 전진하기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한 사람 한사람이 인간으로서 최대의 빛을 발하면서 그 인간의 빛으로 가정을, 지역을, 사회를 비추고 인간과 인간의 우정을 겹겹이 넓히는 SGI의 인간주의 대도를 활기차게 유쾌하게 나아가자고 외쳤다.
또한 3월 8일에는 미국 마이애미로 이동해 연수회 등에 참석했다. 이후 샌프란시스코에서 과학자인 라이너스 폴링 박사와 네 번째 회담을 비롯해 멤버들과 간담, 지도한 뒤 3월 21일에 귀국했다.
이해 5월, 신이치는 필리핀과 홍콩을 방문했다. 또 9월부터 10월에 걸쳐 미국과 캐나다를 돌았다. 미국에서는 하버드대학교의 초청을 받아 ‘21세기 문명과 대승불교’를 주제로 하버드대학교에서 두 번째 강연을 했다.
이듬해인 1994년은 1월부터 2월에 걸쳐 홍콩을 비롯해 중국의 선전, 타이를 방문했다. 또 5월 중순부터는 30여일에 걸쳐 러시아와 유럽을 순방했다. 하루하루가, 순간순간이 세계광포의 기반을 다지는 건설작업이었다.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이지 않고, 해야 할 때 하지 않으면 미래영겁까지 후회를 남긴다. 신이치에게는 ‘지금’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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