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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 주제어로 한국사회 읽기
문학평론
문학작품: <표백>
완성된 세계에서 죽어가는 ‘청년의 영혼’을 보여주다.
21512162
이준현
1. 꿈과 이상이 없어진 청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은 꿈과 이상이 없다. 청년 자살률도 높다. 기성세대는 청년의 노력을 탓한다. 과연 노력만 문제일까? 필자는 사회구조의 문제라 생각한다. 소설 『표백』은 청년에 관한 문제의식을 다룬 작품이다. 『표백』은 파괴되어가는 청년의 모습을 다룬다. 필자는 『표백』을 통해 한국사회의 청년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파괴되어가는 청년의 영혼·청년을 구속하는 사회구조·오늘날 청년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청년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 논의할 것이다. 이 글에서 말하는 청년은 10, 20, 30대의 젊은 세대를 말한다.
2. 파괴되어가는 청년의 영혼
현대 사회에서 청년의 영혼은 죽어있다. 청년의 자살이 증가하며 삶의 만족도는 떨어지고 있다. 이런 현대사회를 장강명은 ‘그레이트 빅 화이트월드’로 정의한다. 그것은 완성된 세계이지만 모순을 지니고 있는 사회이다. 청년에게 불행인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는 주인공 ‘나’와 ‘세연’의 관계를 묘사하는 이야기 구조에서 잘 드러난다.
<청년의 자살>
한국사회에서 청년의 자살은 빈번하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10대와 20대, 30대까지 자살이 가장 주된 사망 원인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사망원인통계 결과’에 따르면 고의적 자해(자살)는 10, 20, 30대에서 1위를 차지했다. 청년 10명 중 7명은 불행하다고 느낀다. 오늘날 청년의 내면세계는 파괴되고 있다.
소설 속에서도 청년의 자살이 존재한다. 등장인물 중 세연을 중심으로 관계있는 인물들은 차례로 자살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소설 속 자살한 인물들은 표면적으로 크게 문제가 있지 않았다. 이들은 청년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며 사회 속에서 각자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하지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자살을 예고하고 실행했다. 무엇인가 불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무시당하는 존재이며 불만이 많다. 소설 속 다음 문장은 의미심장하다. “그런 변화가 완만하게 이뤄졌던 다른 서구 국가들과 달리 한국에서는 현세대와 이전 세대가 처한 환경의 격차가 매우 뚜렷하다. 자신들의 힘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던, 그것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드라마틱하게 그 시대적 사명을 이뤄낸 세대가 우리 세대를 우습게 보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거나 ‘분노할 줄 모른다’고 비아냥거리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잘못이 아니다.” 이 문장은 현시대의 청년이 처한 상황을 알려준다. 기성세대가 청년을 바라보는 관점은 좋지 않다.
<꿈과 이상을 펼칠 수 없는 세계>
청년들은 자신만의 꿈과 이상을 펼칠 수 없는 세계에 속한다. 세계 속에서 한국의 입지를 생각해보면 청년의 자살은 매우 의아한 일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한국은 행복지수가 증가해도 모자랄 판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들이 이루어낸 사회구조는 세계적으로 놀라운데 청년은 왜 불행할까? 장강명은 이 세계를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로 정의한다. 이는 ‘완성된 사회’이다.
소설 속 완성된 사회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완성된 사회라는 것은 구성원 또는 계층 간의 갈등이 완전히 사라진 사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완성된 사회는 그런 갈등과 모순이 어느 범위 이내에서 더 커지지 않는 상태로 계속 지속될 수 있는 사회를 의미한다.”부분적인 문제점은 존재하지만 큰 난제들이 해결되고 청년들은 자신만의 꿈과 이상을 펼칠 수 없는 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다음은 소설 속에서 등장한 말이다. “그런데 이제 나는 세상이 아주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미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이 전에 나온 적이 있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이 흰 그림이야.”“나는 그런 세상을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고 불러.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야심 있는 젊은이들은 위대한 좌절에 휩싸이게 되지.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이 품고 있던 질문들을 재빨리 정답으로 대체하는 거야. 누가 빨리 책에서 정답을 읽어서 체화하느냐의 싸움이지. 나는 그 과정을 ‘표백’이라고 불러.” 즉,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말한 『역사의 종언』과 같은 사회를 말한다.
<두 개의 이야기>
소설 속 주인공 ‘나’와 ‘세연’의 관계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소설은 두 가지 이야기가 동시에 전개된다. 나가 세연을 관찰한 이야기와 세연이 쓴 ‘잡기모음’이다. 필자는 두 사람이 청년을 대표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마치 청년이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거울 밖의 자아는 ‘외면적 자아’이며 거울 안의 자아는 ‘내면적 자아’이다. 거울 안의 자아가 ‘내면적 자아’인 이유는 청년의 관념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나’는 청년의 ‘외면적 자아’이다. ‘세연’은 청년의 ‘내면적 자아’를 드러낸다. 거울 밖의 ‘외면적 자아’로 존재하는 청년은 기성세대의 가치관과 현실에 타협하며 살아간다. 기성세대의 빛에 둘러싸여 순응하는 존재이며 굳이 자신만의 빛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이는 기성세대와 타협하는 청년의 현실세계를 상징한다. 이에 반해서 거울 안의 ‘내면적 자아’는 기성세대의 밝은 빛을 튕겨내는 존재다. 즉,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거부하며 자신만의 빛을 채우고자 한다. 이는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거부하는 청년의 내면세계를 상징한다.
‘외면적 자아’는 형식적으로 능동적인 것처럼 보인다. 거울 속의 또 다른 자아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의 빛으로 둘러싸여 자아를 잃어버린 존재이다. 따라서 이는 능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수동적인 존재다. 반대로 거울 속 ‘내면적 자아’는 거울 밖의 자신을 따라하는 존재다. 하지만 거울 속에서 ‘내면적 자아’는 기성세대의 빛을 반사하며, 자신의 이상을 찾고자 끊임없이 고뇌하는 존재다. 즉,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청년들의 꿈과 이상이 현실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는 모순을 극대화시킨다.
다시 말해서 주인공 ‘나’는 기성세대의 가치관과 타협했지만, ‘세연’은 메시아적 존재가 되어서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는 청년들이 외적으로는 기성세대에 순응하지만 내적으로는 많은 불만이 있음을 보여준다. 소설 속에서 ‘와이두유리브닷컴’을 통한 세연과 청년들의 자살은 사회구조에 대한 저항과 불만을 상징한다.
<2문단 결론>
청년의 내면은 빈곤하다. 소설 속 청년의 자살은 ‘영혼의 죽음’을 의미한다. 자신의 꿈과 이상을 보여줄 환경이 없기 때문이다.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 속에서 청년들은 항상 고뇌한다. 이는 이야기 구조에서 드러난다. ‘주인공의 이야기’와 세연의 ‘잡기 모음’은 청년들의 고뇌를 잘 드러내고 있다.
3. 기성세대의 자본주의 가치관
청년은 기성세대의 자본주의 구조에 갇혀있다.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청년은 기성세대에게 착취당한다. 명목은 열정과 도전이다. 또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기성세대 자본주의 구조의 재생산을 반복한다. 청년들은 이런 사회구조에 관한 비판도 허용되지 않는다.
<청년은 착취당하는 존재>
청년들은 기성세대들에게 착취당하는 존재다. 이는 소설 속 주인공의 대화에도 드러난다. “도전 정신이 그렇게 좋은 거라면 젊은이고 나이 든 사람이고 할 것 없이 다 가져야지, 왜 청년들한테만 가지라고 하나요?” 우리 사회는 도전과 열정이라는 명분으로 청년을 착취한다.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처럼 도전하지 않는다. 청년들의 도전을 통해 수익성이 나타난 것만 빼앗는다. 대표적인 예시가 공모전이다.
많은 공모전에서 주최 측은 청년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 공모전에 나온 아이디어는 주최하는 단체에서 가져간다. 청년들이 젊음을 바쳐서 만들어온 아이디어를 고작 상금 몇 푼 주고 도둑질한다. 청년은 단지 스펙에 적을 수 있는 문구와 상금 몇 푼만 가져간다.
소설 속 주인공의 대사는 이 시대 청년들의 생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저는요, 젊은이들더러 도전하라는 말이 젊은 세대를 착취하려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뭣 모르고 잘 속는 어린애들한테 이것저것 시켜봐서 되는지 안 되는지 알아보고 되는 분야에는 기성세대들도 뛰어들겠다는 거 아닌가요? 도전이라는 게 그렇게 수지맞는 장사라면 왜 그 일을 청년의 특권이라면서 양보합니까? 척 보기에도 승률이 희박해 보이니까 자기들은 안 하고 청년의 패기 운운 하는 거잖아요.”
<기성세대 구조의 재생산>
자본주의 구조에서 청년들은 기성세대 구조의 재생산을 한다. 즉, 기성세대의 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한 상태로 살아간다. 자신들의 고유한 꿈과 이상을 잃어버린 청년은 다른 선택을 한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따른다. 즉, 돈과 이윤추구가 삶에서 중요한 가치가 된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치·사회를 위한 이상을 실현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이 중요해진다. 학력·돈 등을 기준으로 서열과 계급을 매긴다. 자신이 우월한 존재임을 과시하며 상대방을 열등한 존재로 여긴다. 개인의 다양한 가치관과 이상보다 ‘얼마 버느냐’가 첫 번째로 중요한 사회가 반복되는 것이다. 그 결과 다양한 분야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배치되지 못하고, 고시 등에만 매달리는 사회가 되었다. 예술 등에는 재능을 펼치려는 사람이 없다. 수입이 좋지 않다고 청년의 진출이 차단되기 때문이다. 고시가 블랙홀로 모든 사람을 빨아들이는 세상이 된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새로운 담론을 제기할 수조차 없는 환경은 우리 세대의 가치관에도 예상치 못한 영향을 미친다. 이른바 ‘표백 세대’의 등장이다.” “이들에게 지배 사상은 큰 틀에서 항상 옳으며, 그 사상을 받아들이는 데 개인마다 과정과 깊이가 다를 수는 있으나 결론은 언제나 같다. 이들은 지배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 여기서 말하는 지배 사상은 자본주의 이념일 것이다. 이윤 추구라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다. 개인의 고유한 생각과 가치는 발현될 수 없다.
이런 상황은 청년의 불만을 증가시킨다. 다음은 소설 속에 등장한 문구이다. “따라서 실제 삶에서 온갖 종류의 불편함과 부당함을 겪어야 하는데도,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개인이나 작은 이익집단 단위를 넘어서지 못하게 되며, 세계는 사상적으로 완전무결한 상태가 된다.” “이것이 바로 표백 과정이다. 아무도 더 나은 시스템을 떠올리지 못한다. 거대한 흰색 세계는 모든 빛을 흡수하며 무결점 상태를 유지한다.” 청년의 빛은 없어졌다. 기성세대의 사고에 지배당한 것이다. 청년의 이상과 꿈은 없어졌다.
<비판도 못 하는 삶>
청년에겐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도 허용되지 않는다. 기성세대의 사회구조 틀에서 벗어난 자는 ‘사회 부적응자’라는 취급을 받는다. 기성세대들은 ‘요즘 청년들은 노력이 부족하다’라고 말한다. 한 언론은 “사회 탓 그만...죽을만큼 뛰더니 되더라”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게재했다. 과연 그럴까? 죽을 듯이 노력해도 앞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죽을 듯이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도 있지만 실패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실패한 청년은 사회에 어떤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자살을 택한 경우가 많다. 공시생 자살이 그 예이다. 그렇게 청년들은 나약하고 노력하지 않은 인간이 된다.
또한 항상 돈과 지위로 자신을 입증하도록 강요받는다. 태어난 순간부터 교육을 통해 자신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맹목적으로 특정 직업을 선택하도록 부모와 사회는 강요한다. 판·검사, 변호사, 의사, 대기업 등을 강요한다. 예술가·음악가는 대부분 제외 대상이다. 사회적 여건도 마련되지 않았고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창의성이 나올 수 없다. 청년의 꿈과 이상은 그렇게 짓밟힌다.
기성세대들은 독재를 하고 있다. 그들은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하며 독재 타도를 외쳤다. 그러나 젊은이들에게서 사고를 지배하면서 독재를 하고 있다. 어떤 시대든지 비판할 수 있는 권리는 주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3문단 결론>
청년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둔 사회의 틀에 갇혀있다. 기성세대의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청년은 착취당한다. 열정과 도전이라는 명목으로 착취당한다.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따른다. 기성세대의 자본주의 구조를 재생산한다. 청년들은 사회구조를 비판할 권리도 주어지지 않는다. 사회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탓한다.
4. 더욱 심화된 청년들의 고통과 타락
오늘날 사회 속 청년의 모습은 더욱 안 좋은 방향으로 진행된다. 청년들은 꿈과 이상을 발휘할 여건의 부재 속에 있다. 기성세대의 이데올로기에 짓눌린 사회구조는 다른 꿈과 이상을 발휘할 환경을 조성하지 않았다. 다른 길을 걷고 싶어도 너무 큰 모험이 따르기 때문에 포기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또 다른 양상으로는 무비판적으로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그대로 흡수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좋은 학벌·직업 등을 가지는데 매우 충실하다. 이런 행위가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길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노력한다. 그리고 기성세대와 똑같이 자신과 같은 연령대의 청년들을 조롱한다.
<상품인 청년>
청년들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존재한다. 개인의 인권은 철저히 무시당한다.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필자는 ‘장자연 사건’을 젊은 세대를 상품화한 맥락에서 본다. 갑과 을의 관계를 이용해서 인간을 로비의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다. 인간으로서 존중을 받지 못했다. 자신의 꿈을 이루어야 할 사람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존중받지 못하고 성접대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인간이 로비의 수단으로 상품처럼 사용된 것이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못하고 상품으로 착취된 극단적인 사례이자 비극’이다.
군대도 마찬가지다. 노동력이라는 상품으로 존재해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군에 가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금전적으로 이익을 보지 않는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사병월급은 병장을 기준으로 40만 5700원이다.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자기발전을 위해서 노력하지 못한다. 청년들의 청춘은 정당한 대가 없이 착취당하고 있다.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
청년들은 무비판적으로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흡수한다. 소설에서 말하듯이 ‘큰 꿈 없는 세대’가 등장했다. 소설 속 문구는 다음과 같다. “과거 세대들은 민주주의라든가 자본주의 정착, 근대 체제로의 편입과 같은 중요한 역사적 과업도 이미 달성했다. 이제 남은 것은 양성 평등이나 환경문제와 같은 거대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소주제에 해당하는 것이다.”80년대는 민주화운동, 90년대는 대중문화를 주도한 세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세대는 소위 말하는 돈 많이 벌기 위한 노력을 한다. 좋은 학벌·직업 등을 가지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자신의 재능과 상관없이 판·검사나 의사가 꿈인 사람들이 예이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대학은 원래 학문연구가 목적이다. 하지만 고시공부와 취업을 위한 단계처럼 되었다. 소위 잘나가는 학벌로 파벌을 형성하여 사회에서 타인보다 위에 있고자 한다. 즉, 과시욕이 지나친 사회가 되었다. 이런 사회 속 청년들은 소비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도 한다. 내가 소비한 비싼 음식을 SNS에 올리며 과시하기도 하고 명품을 들고 다니면서 우월한 존재임을 나타낸다.
<타인을 향한 조롱과 과시욕>
청년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타인에 대한 조롱으로 우월감을 보상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최근 있었던 서울의 S대의 문과 조롱 현수막도 마찬가지다. “인문캠은 치킨집 사업 배운다던데”라는 문구였다. 취업이라는 기준으로 인문학이 열등한 존재라고 조롱했다. 학문의 장(場)인 대학이 편협한 인식과 우월 의식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자영업자를 유머 소재로 사용했기 때문에 이들을 무시하는 발언이다 이런 현상은 타인을 열등한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우월감을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혜화역 시위 사건도 마찬가지로 청년들의 사고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 속에 드러난 연령층이 대부분 젊은 연령층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젠더갈등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민족주의적 특성이 나타난다. 히틀러가 아리안족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유대인을 학살했던 것처럼, 이들은 여성우월주의를 내세우며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낙인찍고 타도할 대상으로 본다. 진정한 성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타인을 멸시하고 열등한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자신의 우월성을 보장받고자 하는 심리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청년에게 성형이 스펙이 되는 사회도 문제다. 자신의 겉으로 드러난 외모로 자신이 우월함을 평가받고 좋은 대우를 받길 원하는 것이다. 기성세대의 자본주의는 사회 곳곳에 병폐를 남기고 있다.
5. 청년에 대한 인식전환 및 사회구조 개선 필요
우리 사회는 청년에 대한 인식전환 및 사회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다. 청년들의 영혼은 죽어있고 꿈과 이상이 없다. 이는 기성세대의 자본주의 구조가 청년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틀 속에서 청년은 병들고 있었다. 타인에 대한 조롱으로 자신의 존재를 보상받고자 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모든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 기성세대를 타도하자는 것이 아니다. 청년과 기성세대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청년은 타인을 조롱하는 것을 중지해야 한다. 자신의 꿈과 이상을 위해 끊임없이 나아가야 하며, 기성세대는 사회기반을 만들기 위해 같이 노력해주어야 발전이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장강명, 『표백』, 한겨레출판, 2011-07-22.
이윤희, 『[사망통계]韓, 청년이 불행한 나라…10~39세 사망원인 1위 자살』, 뉴시스, 2018-09-19, (http://a.msn.com/00/ko-kr/BBNx7Kb?ocid=st 검색일: 2019-05-26).
디지털뉴스국, 『국민 10명 중 7명 "청년들 불행하다…미래 위해 집값 내려야"』, 매일경제, 2018-07-05,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18/07/422740/ 검색일: 2019-05-26).
최선재, 『‘공모전 쓴맛’ 해도 너무하네』, 주간동아, 2014-01-27, (http://weekly.donga.com/List/3/all/11/97026/1 검색일: 2019-05-26).
이호승, 『"사회탓 그만…죽을만큼 뛰니 되더라"』, 매일경제, 2017-02-07,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17/02/88062/ 검색일: 2019-05-26).
김주환, 『대학가에 `문과 조롱` 현수막까지.."취업난 속 차별·배제"』, 매일경제, 2019-05-23, (https://www.mk.co.kr/news/home/view/2019/05/341216/ 검색일: 2019-05-26).
1) 이윤희, 『[사망통계]韓, 청년이 불행한 나라…10~39세 사망원인 1위 자살』, 뉴시스, 2018-09-19, (http://a.msn.com/00/ko-kr/BBNx7Kb?ocid=st 검색일: 2019-05-26).
2) 디지털뉴스국, 『국민 10명 중 7명 "청년들 불행하다…미래 위해 집값 내려야"』, 매일경제, 2018-07-05,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18/07/422740/ 검색일: 2019-05-26).
3) 장강명, 『표백』, 한겨레출판, 2011-07-22, p.195.
4) 장강명, 『표백』, 한겨레출판, 2011-07-22, p.192.
5) 장강명, 『표백』, 한겨레출판, 2011-07-22, p.75.
6) 장강명, 『표백』, 한겨레출판, 2011-07-22, p.20.
7) 최선재, 『‘공모전 쓴맛’ 해도 너무하네』, 주간동아, 2014-01-27, (http://weekly.donga.com/List/3/all/11/97026/1 검색일: 2019-05-26).
8) 장강명, 『표백』, 한겨레출판, 2011-07-22, p.21.
9) 장강명, 『표백』, 한겨레출판, 2011-07-22, p.196.
10) 장강명, 『표백』, 한겨레출판, 2011-07-22, p.197.
11) 이호승, 『"사회탓 그만…죽을만큼 뛰니 되더라"』, 매일경제, 2017-02-07,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17/02/88062/ 검색일: 2019-05-26).
12) 장강명, 『표백』, 한겨레출판, 2011-07-22, p.24.
13) 김주환, 『대학가에 `문과 조롱` 현수막까지.."취업난 속 차별·배제"』, 매일경제, 2019-05-23, (https://www.mk.co.kr/news/home/view/2019/05/341216/ 검색일: 2019-05-26).
*페이지 표시는 전자책이라 종이책 페이지와 다릅니다.
*각주가 잘 표시되지 않아서 파일참고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첫댓글 준현씨, 글이 아주 아주 많이 좋아졌어요~~~ 의식적으로 단문으로 끊어서 쓰려는 노력이 느껴졌어요. 당장은 어감이 불편할지 몰라도 계속 그런 노력을 하기 바랍니다. 준현씨 글을 보고 내 기분이 좋아졌어요^^
글 속에서 내면적 자아와 외면적 자아 구별한 거는 (거울을 기준으로) 준현씨 얘기인가요 아니면 표백에 나와는 얘기인가요, 궁금하네요...
거울은 제가 생각한 소재입니다. 소설의 구조를 나름대로 생각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