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이든 핵무기든, 핵과 평화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 지난 2013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이라는 책자를 통해 “핵발전이 인류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고, 미래 세대에 재앙을 물려준다”고 확인하고, 생명권과 환경권을 침해하는 핵기술은 “인간과 자연,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분야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사태’”라며 교회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4년. 한국사회에서 탈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한국 가톨릭 교회도 2011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주교회의를 중심으로 각 교구, 수도회, 평신도들이 탈핵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4년간 가톨릭교회의 탈핵운동은 어떤 과정과 결실을 맺고 있을까. 탈핵에 대한 교회의 공식 입장과 사회적 요청에 따라 각 지역 교회와 수도회, 교회 내 환경운동 단체 등은 핵발전소 지역과 관련 문제가 발생한 지역을 중심으로 꾸준히 연대 활동에 나서고 있다. | | | ▲ 탈핵 시민문화제에 참석한 수도자들. ⓒ지금여기 자료사진 |
우선 주교회의는 2015년 1월,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원회 차원에서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 금지 입법 청원을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1월 1일부터 2월 15일까지 진행된 서명운동에는 10만여 명이 참여했으며, 서명 결과는 3월 중 국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환경소위는 지난해 8월 교회 차원의 ‘탈핵학교’를 시작하기도 했다. 지역 교회도 꾸준히 핵발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 신고리 핵발전소와 관련된 밀양 송전탑 문제가 지역 문제를 넘어 탈핵 운동으로 전환되면서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결합하고 있으며, 핵발전소가 밀집된 동해안 지역 인근 교구인 원주, 안동, 부산, 대구대교구를 중심으로 2012년 1월 ‘동해안 탈핵 천주교연대’가 출범해 활동 하고 있다. 또 2012년 핵발전소 부지로 결정된 삼척에서는 원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부지 선정 철회와 핵발전소 반대를 위한 활동에 참여하며, 탈핵생명평화미사를 하고 있다. 이밖에 각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서울대교구와 인천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수원교구 환경위원회, 부산교구 환경농촌사목위원회 등 지역 교구는 물론,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 예수회인권연구센터, 천주교 창조보전연대 등도 탈핵을 위한 교육와 홍보, 지원과 현장 연대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특히 천주교 창조보전연대는 올해 사업의 하나로 교회 내 탈핵 관련 활동 단체들을 포괄하는 전국 단위 ‘천주교 탈핵연대’(가칭) 구성을 추진할 예정이다. 교회는 핵발전 반대를 넘어 대안에너지 확대를 위한 사업에도 동참한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는 ‘서울시 원전 1기 줄이기 정책연대’에 참여하면서, 친환경 교회 건축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가칭 ‘초록 에너지 본당’ 선정 등을 통한 대안 에너지 생산 및 효율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대교구는 이에 발맞춰 태양광 활용 본당을 점차 확대하기로 했으며, 현재 목3동, 우면동, 신정동 성당이 태양광을 활용하고 있다. 지난 연말부터는 폐식용유를 이용한 바이오디젤 연료 사업도 9지구에서 시범적으로 시작했다. 수원교구 공동선사제연대도 대안에너지 확대 일환으로 ‘햇빛 발전소’를 추진하고 있다. “모든 종류의 에너지는 평화에 도움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주교회의 환경소위원회 총무 양기석 신부(수원교구)는 한국교회의 탈핵운동은 앞으로 지역교회와 본당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기석 신부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2013년 주교회의가 낸 ‘핵 기술과 교회의 가르침 – 핵발전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의 성찰’은 전세계 교회 최초의 탈핵 관련 문헌으로, 실천이나 운동이 아직 부족하고 부침을 겪고 있지만 탈핵이라는 큰 방향은 이미 잡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교회가 탈핵에 대한 공식 입장과 의지를 드러낸 만큼, 각 지역과 개별 교회에서 핵발전에 대한 신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노력을 함께 한다면, 탈핵사회로 가는데 가톨릭 교회가 큰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맹주형 실장은 서울대교구는 탈핵운동의 일환으로 본당 차원에서 대안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실천하도록 추진하고 있으며, 서울시와 에너지 관련 정책 연계를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맹 실장은 가톨릭 교회의 탈핵운동에 대해서는 교회가 체르노빌 사고 이후부터 핵발전에 대한 입장을 밝혀 왔으며, 에너지에 대해서도 인간과 자연의 요구를 거스르면 안된다고 가르쳐 왔다면서, “생태위기 시대에 탈핵은 가장 시급한 문제며, 생명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신앙인으로서 시대의 징표에 응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 | | ▲ 원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삼척 핵발전소 부지 선정에 반대하며, 탈핵 생명평화미사’를 이어 오고 있다. 사진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3주년 미사. (사진 제공=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 |
이러한 가톨릭 교회의 탈핵운동 참여에 대해 시민사회단체 측에서는 매우 고무적이고 중요한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승수 변호사(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는 종교계 참여 자체가 탈핵운동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특히 가톨릭 교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일반 시민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하 변호사는 탈핵운동 마저도 정치적 색깔론으로 폄하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생명과 창조질서 보전이라는 가치를 지닌 종교인들이 참여함으로써, 더 많은 공감을 불러오는 것은 물론, “탈핵이 소수의 정치적 요구가 아니라 생명을 위한 보편적 요구임을 확인시켜 주고, 탈핵운동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분명하게 해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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