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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비(Slobbie)족 = 행복 +가정
슬로비족은 천천히 그러나 더 훌륭하게 일하는 사람(Slow But Better Working People)의 약칭으로 이들은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속도를 늦추고 보다 천천히 살기를 원하며 물질과 출세보다는 마음의 행복과 가족을 중시한다. 주식투자보다 저축을 하고 돈보다 행복을 위해 근무시간을 줄이거나 도시 외곽으로 거주지를 옮기기도 한다. 이들은 주5일제 확대시행과 함께 점차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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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가 멈춰서서 돌아보는 슬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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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사회적 기업의 롤모델로 자리 잡기까진 많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 듯 한데요.
CEO의 제1덕목이 ‘사람 관리’라는 걸 절감합니다. 케이터링 서비스의 경우 주문이 들어오면 직원들은 새벽 4~5시부터 나와 음식을 만들어 행사장으로 운반해 세팅하죠. 또 다 마친 후 돌아와 설거지까지 마무리하다 보면 밤12시쯤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직원 상당수가 워킹맘이다 보니 이들을 위해 어린이집도 늘려야 했고, 끊임없이 인력충원이나 배치, 직무교육 등을 신경써야 하지요. 오요리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돈만 버는 회사’는 결코 아닙니다. 이국땅에서 갖은 설움을 받고 사는 외국인 여성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자란 청소년들이라고 이들에게 지나친 온정주의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어요. 이들에게 요리사, 전문 서버, 파티 플래너, 바리스타 등 각자의 전문성을 키워주며 프로페셔널리스트로 독립시키는 것도 매출신장 못지않게 우리 회사의 중요한 미션이라고 생각합니다.
Q.전공은 미술인데 요리 분야 CEO로 변신하게 된 계기라면?
오요리가 운영중인 까페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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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조각을 공부했고 전시기획자로도 활동했죠. 대학원에서 미술관학을 전공하기도 했구요. 어느 순간 내가 ‘공부형 인간’이 아니라 ‘현장형 인간’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지요.(웃음) 우연한 기회에 연세대 조한혜정교수님의 권유로 하자센터에 합류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새로운 이벤트 등을 정신없이 벌이다 보니 회사 공동대표까지 맡게 되었네요.
처음부터 거창한 사업계획서와 로드맵을 갖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그동안의 현장 경험을 밑천으로 여러 사람들과 네트워킹하면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지냈고, 그 결과 회사가 이만큼 성장했네요. |
물론 크고 작은 시행착오도 많았고 앞으로 갈 길도 멀지만 그간의 경험을 통해 ‘한영미’란 그릇이 커가는 걸 느꼈어요. 앞으로 매출을 더 늘려 고생하는 직원들 월급도 올려줘야 하고 오요리 2호점도 본격 추진하면서 요리사업 분야도 보다 다각화할 계획이에요. 우리 회사가 입소문이 나면서 사회적 기업에 관심 있는 분들의 벤치마킹 문의가 많은데 그간 쌓아온 노하우도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아주 개인적인 소망도 있어요. 그동안 요리를 매개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면서 쌓아온 도타운 情을 따뜻하게 풀어낸 ‘시집’을 한권 내고 싶어요.
글, 사진 위민기자 오미정
사람들을 위한 공간 카페 슬로비 입니다. 서울... blog.naver.com/slobbie8
안녕하세요! 저는 '슬로비' 를 처음 소개 받은 것이 '그때 그때 밥상' 으로 알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흥미를 갖고 찾다보니깐 여러 가지로 되게 다양한 공간인 것 같아요. 지금 저 쪽(슬로비 내 세미나실 같은 공간을 가리키며) 에서도 무언가를 하고 계시네요?
> 슬로비는 커뮤니티 공간이에요. 저 쪽에 계신 분들이요? 캄보디아에서 오신 '고엘 공동체' 분들이세요. 캄보디아에서는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요. 그런데 기후 때문에 정작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달은 3개월 뿐이 안되죠. 한 가정에서 한 달을 살아가는데 200불 정도가 필요한데, 3개월 농사를 짓고는 살아가기가 빠듯빠듯해요. 그래서 나머지 9개월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도와주는 거에요. 우선 그들에게 실을 외상으로 주어서, 염색을 하고 직조를 하면, 그 천을 다시 사오는 거에요.
지금 저희가 기획하고 있는 것은 '고엘의 보따리' 라는 행사에요. 각자가 보따리상이 되어서 전시하고 판매하는 행사죠. 어떤 패션 디자이너 분은 고엘 천으로 만든 의상을 스페셜 에디션으로 전시하실 거구요, 임종진 사진 작가님은 캄보디아 사진전을 개최해 수익금을 고엘 공동체에 기부하실 거에요. 20일날 하루 종일 판매도 하고, 워크샵도 같이 하고.. 아! 캄보디아 특선 요리도 준비할거에요.
슬로비는 하는 일 자체가 즐거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는 거죠. 수익을 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산'하지 않고 기꺼이 하는 마음이랄까요?
그런데 블로그에 보니 매일매일 '그때 그때 밥상' 을 찍어서 올리시던데요, 메뉴를 보니깐 하루하루 겹치지 않고, 되게 다양하던데 메뉴판이 따로 있나요?
> 시즌별로 할 수 있는 메뉴도 있어요. 예로 들어 지난 7월에는 콩국수를 시즌 메뉴로 두기도 했었죠. 기본적으로 매뉴얼이 있기는 하지만, 그대로 하는 경우는 적어요. 식재료 오는 것에 따라 바뀔 수도 있고, 손님들이 많은 날은 손쉽게 하는 음식으로 하기도 해요.(웃음) 그래도 제철 그리고 건강한 음식을 위해 고수해요. 날마다 오는 손님들도 있는데, 어제 먹은걸 오늘 또 드릴 수 없잖아요. 정말 '자신의 끼니'를 찾았으면 해요. 저희가 판매하는 쿠폰도 단순한 행사가 아니에요. 자기 자신을 돌 볼 수 있는 차원에서 다시 찾을 수 없는 끼니를 찾는 일종의 무브먼트(movement)랄까요?
정말 '집 밥' 같은 식단이에요!
> 근데 그래서 주말에는 손님이 오히려 없어요. 주말에 약속 잡으면 대게 근사한 거 먹지, 집 밥은 안먹잖아요. 그게 맹점이에요. 주말이 피크인데.. (웃음)
식재료 조달에 엄청 어려움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 솔직히 100% 조달 받아서는 다 못써요. 실제로 받아오는 것들만 사용하지 그 외에는 다 쓰지 못해요. 유통의 여건도 안되고..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하죠, 전적으로 우리는 '유기농' 까페라고 하지 않아요. 대신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약속을 지켜요.
대표님은 대학생 때는 어떠셨어요?
> 술 많이 먹고.. (웃음) 범생이는 아니었죠. 대학을 상당히 늦게 갔어요. 아 나는 대학을 못가나 보다 했는데.. 그 때는 길이 별로 없었거든요. 고등학교 때는 잘 살지 못해서 아버지께서는 실업계고에 가서 미싱을 배우라고 하셨었죠. 그런데 저는 싫었죠. 그렇게 살기도 싫어고.. 그래서 반대로 인문계고에 갔어요. 학교 축제나 행사가 있을 때는 엄청 적극적으로 했는데, 반면 수업 시간 때는 소극적이었죠. (웃음) 디자인 하신다 하셨죠? 실은 저도 미술을 했어요. 조소를 했었죠. 앉아서 이렇게 있는 것보다 몸을 쓰는 걸 되게 좋아 했어요. 대학교 다닐 때도 과 활동보다도 학생회 활동을 주로 했었죠. 뭔가 기획을 하고 그걸 꾸리는게 더 재밌었던 거죠. 학교 다닐 때 마침 미술관 학과가 생겨서 거기서 한 학기 반 동안 수업을 들어보기도 했는데,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나한테는 앉아서 하는 공부가 어울리지 않구나 생각을 했죠.
어쩌다 이 길을 걷게 되셨는지..?
> 사람마다 풀리는 때, 풀리는 방법, 영역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때와 어떤 것을 하느냐를 잘 만나는 것이 중요하죠. 예전에 여성 미술제 기획을 하다가 우연히 하자센터와 연을 맺게 되었어요. 아무래도 다시는 청소년으로 돌아가기 싫은데, 청소년을 위해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런데 고민을 많이 하는 것을 싫어하는 타입이라 하게 됬죠. 하자센터는 되게 활발하고 자유로운 곳이에요. 또 저한테는 인생의 변환점이 된 곳이기도 하고요.
하자센터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 청소년 창업프로젝트도 해보고, 청소년들도 미술관 문턱을 넘을 수 있다는 개념으로 미술관 습격 프로젝트도 진행했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청소년들이 만들어서 판매도 할 수 있는 청소년 아트 상품을 만들어 판매했었어요. 여기 홍대 프리마켓 있죠? 지금은 활성화 되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런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아이들이 좌판을 벌인 거에요. 좌판을 직접 연다는 것은 단순한 판매가 아니라, 손님이 오면 어떻게 어필을 할 것인가, 디스플레이, 가격 등등 세밀하게 신경써야 할 것들이 엄청나게 많아요.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공부고 경험이죠. 토요일마다 나와서 작업을 했어요. 홍대 프리마켓? 그거 우리 이후에 생긴 거에요..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는 못하지만.. (웃음)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셨는데, 어떻게 보면 관련이 적은 ‘외식’ 을 선택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 계속 미술을 할 생각은 없었어요. 오히려 기획을 하고 싶었어요. 그게 문화예술이 되었든, 교육이 되었든.. 하자센터에서 미술관련 기획을 하긴 했었지만요.. 그런데 하자센터에서 그렇게 하다보니깐 뭔가 되게 루즈해지 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토론토에서 1년 반 동안 있다가 여행도 하고 그랬어요. 뭔가 다른 길을 찾고 싶었던 거죠. 더 늦기 전에 패션 디자인을 해보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막상 하려니깐 못하겠더라고요 (웃음) 창작의 스트레스가 엄청나요. 물론, 모든 일에는 스트레스가 있지만 창작의 스트레스는 뭔가 다른 차원이에요.
어떤 주제에 맞춰 해내는 것이, 그래서 뭔가 잘할 수 있는걸 해야 되겠다 싶었죠. 고통스러워서 안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하자 센터로 돌아왔죠. 다시 받아준 것도 고맙죠. 그 때 하자센터에서 사회적기업을 인큐베이팅을 시작했었어요. 노리단 아시죠? 노리단이 안에서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그 가능성을 보았었죠.
그 때 '요리'로 뭘 해보라는 조언을 받았어요. 무식한게 용감하다고, 그 때는 '식'을 너무 쉽게만 봤죠. 진입 장벽도 낮고..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하는게 또 외식업이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요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도 하죠. 물론, 이 두 사업이 공존하는데 장점도 있고 또 단점도 있어요.
아무렴 외식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지만, 또 외식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가치를 교육으로 해결할 수도 있죠. 가치를 파는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닌 교육으로 환원하는 그런 공동체 회사랄까요?
같은 오가니제이션 요리에서 출발한 '오요리' 와 '슬로비' 가 추구하는 가치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 음, 일단 오요리는 외식업체로 경쟁력을 가지려고 했어요. 하자센터 안에서는 오시는 분들만을 상대로 하다 보니.. (경쟁력이) 아무렴 떨어지죠. 솔직히 오요리가 가진 가치 중 '이주여성들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 은 제대로 못했어요. 그들의 제한된 환경으로 일자리를 늘려주는게 힘들더라고요. 요리라는 것이 단번에 익혀지는 기술도 아니고,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꾸준히 해야 익혀지는 건데 이주여성들 여건 상 풀 타임으로 오래 근무를 할 시간이 안되요. 육아 문제도 그렇고.. 이런게 쉽지 않네요. 그래도 오요리는 '다문화' 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시장에 진입한 레스토랑으로 어느 정도 명성을 얻었다는 것으로 일단 성공했다고 봐요. 이에 비해 슬로비는 어떤 컨셉도 어떤 목표도 다 담을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에요. 오요리와는 다르죠.
매월 첫째주 월요일에는 농사를 지으러 가시잖아요. :)
> 하자센터 영셰프에서 한 두 번 농부체험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요리사가 된다면 식재료를 어떻게 수확되는지 농부의 마음도 알아야 하죠. 솔직히 농사일이라는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아이들은 그걸 좋아하더라고요. 아마 아이들한테 가장 가슴에 남았던 프로그램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이게 또 그 이상의 의미가 생기더라고요. 요즘 아이들은 시골이 없어요. 그런데 한 두 번 시골로 농사일을 하러 가면서 그 곳에 또 다른 가족애를 가질 수 있는 가족 공동체가 생기는 거에요. 뭐랄까? 그 곳에 가면 할머니네가 있는 그런 가족애?
그러다 생각을 했죠. '애들만 보낼 건가?' 확장된 진짜 공동체를 만들면 좋겠다 싶어 스텝들과 같이 가게 됬어요. 가서 밥먹고 일도하고 수다도 떨고.. 아이들 뿐만 아니라 이주여성들한테도 가족 고향을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더라고요. 요즘 도농연계 도농연계 하는데 뭐가 도농연계일까요? 향후 비즈니스를 위한 관계? 우리가 가는 이천의 권순호 아저씨는 늘 말씀하세요, 만나야지 할 수 있다고.. 뭔가 만나서 지속적으로 하는거지 어느날 갑자기 같이 협업하는건 아니라는 거죠. 만나서 작지만 식재료도 가져다 써보고, 모종도 심어보고 하면서 말이죠.
그러고 보니 여기 슬로비에도 외국인 분과 일하시는 것 같은데, 일 하면서 마찰은 없었는지?
> 물론 있죠. 여러 번 말해서 이해시켜야 할 때도 있고.. 그래도 같이 오래 일하다 보면 언어가 안통해도 통하는게 있어요. 그러다보면 내가 이렇게 말하면 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겠구나.. 라는걸 딱 알게되죠. 말 그대로 죽이 맞게 되는거죠.
홍대 주변에 ‘제네럴 닥터’ 라든가 ‘에이에이 뮤지엄’ 분들하고도 교류가 활발하신 것 같은데요, 그런 분들은 직접 찾아가시는 편인가요?
> 제게 필요한 사람이라면 두들겨 찾아가야한다고 생각해요. 이게 정말 신기한게, 혼자서는 절대 해답이 안나오는데 남한테 물어보면 너무나도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아요. 또 한 사람과 연결되면 그 사람이 또 다른 연결을 만들어 주기도 하죠. 그게 또 굉장히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요. 영셰프를 할 때, 중식에 관심이 많은 아이가 있었어요. 중식이 큰 불 앞에서 볶고 하는게 여간 힘든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 아이에게 가르쳐 줄려해도, 소위 말하는 대가들은 자신이 그렇게 피땀 흘려 쌓은 재능을 쉽게 알려주지는 않잖아요? 물론 기꺼이 재능을 알려줄 분도 계시지만.. 고민하다 사장님께 물어보니, 알고 계시던 호텔 대상 음식점에 계시는 분을 소개시켜 주셨어요. 물론 저희가 어떤 일, 그러니까 상업적으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연결 시켜 주신거죠. 그 분께서 몇 년 동안 계속 수업을 지도해 주셨어요. 주위를 돌아보면 없는 것 같지만, 두드려보고 찾아보면 있어요. 또,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을 소개시켜주기도 하고요. 꼭 돈 있고 빽 있다고 해서 네트워크가 형성되는건 아니에요. 내가 생각하기에 진짜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직접 찾아가야 연결이 되는거에요.
에구, 시간이 꽤 흘렀네요. 마지막으로 대표님의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싶어요!
> (노트북에서 ppt를 보여주시면서) 대안적이며서 서로 연대하는 외식업 생태계를 만들고 싶어요. 이 현장을 이용하는 고객들로 하여금 사회적으로 뭔가 ‘좋은 일’ 을 하고 있는 업체를 이용한다는 느낌을 주고 싶죠. 더 발전해 나가면 이 생태계 안에서 통합 마일리지를 적용해보고 싶어요. 이를 소셜 네트워크 커머스로 이끌어내는 거죠. 개개별 소형 업체에서는 힘든 점이죠. 이용을 하더라도 그 가게에 대한 철학이나 충성도가 발생하지는 않아요. 물론, 순간적인 유입은 증가하겠지만요.
유통에서도.. 솔직히 농가와 농가가 연결되는 가장 어려운게 바로 이 유통이에요. 생산자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설사 농약을 쳤다하더라도 이 농부가 친 농약이라는 것 쯤은 알 수 있게.. 그만큼 믿고 먹을 수 있어야 되잖아요. 지금이야 이천에 한 달에 한 번 가서 농사짓고 그냥 우리끼리 좋은 일 했다고 자기 만족하는 수준이지만, 전국적인 생산자 네트워크가 형성되게 되면 영쉐프 아이들, 이주여성들도 이 네트워크를 통해서 전국으로 퍼질 수 퍼져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안녕하세요?
여러분밥 드셨습니까? 식사하셨어요?
아직못 드신 분들도 계실텐데요.
한번거른 끼니는 영원히 찾지 못합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요기는안되겠지만 지금 스텝 분들이 나눠 드리는 음식으로 간단히 기분 전환 하시길 바랍니다.
지금드시는 건 우리로 치자면 밥은 못되지만요. 이 건 러시아 디저트에요. 러시아사람들도 이걸 밥으로 먹진 않지만 이런 베이킹 종류들을 홈밀로 많이 먹습니다. 이 것은 담스키에발츠키라는 이름의쿠키인데, 반지낀 여인의 손가락과 비슷하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여인의 손가락을 드시고 계신 겁니다.ㅋㅋ 어떠세요? 맛이 있으신가요? 뭔가 드시니까 기분도 좋아지시죠?
저는밥집을 하고 있습니다.
밥집에서는밥 하는 게 일이고, 밥 먹는 게 일이죠. 다시그 밥 힘으로 일하고요.
그리고돈도 벌죠.
그런데돈을 버는 일 외에 먹는 것으로 할 수 있는 일, 즉밥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또 뭐가 있을까요? 먹는 일로 시작하여 확장될 수 있는 일의 범위, 그상상을 오늘 여러분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음식은사람을 모이게 합니다.
대가족사회에서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이면 반드시 음식이 등장합니다. 먹기 위해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립니다. 가족이 다 모일 때나 반가운 손님이 오실 때나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리는 풍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넉넉하고 들뜨게 했습니다. 요즘은 그렇게 차려본 일이 정말 언제적인가 싶을 정도로 아득한 일이 되어버렸는데요.
음식은사람의 기분 좋게 하고, 배부르게 하고, 행복하게 합니다. 또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죠. 그런데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돌아가고, 가족의 수는 줄어들었고, 그 가족들 조차도 각자의 일로 바쁘기만 합니다. 가족이 다 함께 모일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어쩌면 새로운 가족의 형태가 필요한 시대인지도 모릅니다.
혈연으로맺어진 가족뿐만 아니라 새로운 관계로 맺어진 가족 같은 인연이 필요한 시대인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관계를 만들어주는 가장 좋은 매개는 역시 음식입니다. 밥이죠.
밖에서뭔가 서러운 일을 당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누군가 ‘밥은 먹었니?’라고 물어봐주면 괜시리 설움이 복받치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거 같은데 뭔가 가슴 속 저 밑바닥 뜻뜻하게치유되는 것이 바로 밥의 힘입니다. 밥을 못 먹던 시절에 밥 인사는 생존의 문제였지만, 지금의 밥 인사는 돌봄입니다. 누군가의 밥을 챙겨주는 일은 바로 그런 것이죠. 그래서 밥은 치유고 위로고, 돌봄이고 배려입니다. 밥을 함께 나눈다는 것, 바로 식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저희는매달All-Right Table을엽니다.
사람들을음식으로 둘러앉게 하는 크고 둥근 테이블,
누구나요리할 수 있고,
자기삶의 여정에 등장하는 ‘음식’과 ‘이야기’를 꺼내어 다른 이와 나누는 테이블입니다.
이오-라잇 테이블은 저희가 운영하는 밥, 술, 차, 밭이 있는 커뮤니티 카페 슬로비 안에 있는 키친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다른 이의 음식과 이야기를 함께 공유하며 그 시간만큼은 식구가 되어봅니다.
이장면은 지난 7월, 우리의 오랜 친구인 일본의 나까야마 하루나라는 푸드디자이너가 일본식 여름밥상을 함께 차렸던 장면입니다. 슬로비의 오픈을 축하해 주기 위해 기꺼이 찾아주었죠. 슬로비는 한국의 가정식을 매일같이 차린다면, 이날 하루나 상은 일본식 여름밥상을 차려주어 같은 계절, 비슷한 식재료, 조금은 다른 조리법, 그리고 일본의 여름 밥상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이분은 도쿄 카페 슬로 요시오카 아츠시 대표신데요.10년째 카페 슬로를 운영하시면서 슬로우무브먼트 운동을 하고 계십니다. 슬로비의 오-라잇 테이블에서 10년 전 마음으로 돌아가그때 직접 끓이셨던 커리를 재현해 주셨습니다. 우리 삶을 위협하는 식재료 문제, 구제역, 기후변화, 원전 문제 등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지속가능하게 사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대화모임도 열었습니다.
이장면은, 우리의홍콩 친구 베로니카 유가 <내 가족 사진 속의 홍콩요리>라는 주제로 지난 주에 열어준 오-라잇 테이블입니다. 대가족 안에서 자란 베로니카는 어릴 적 벤쿠버로 이민을 가게 되었고, 홍콩에서의 유년시절, 가족 사진 속에 늘 푸짐하게 등장하는 음식들을할머니로부터 배우고 자신의 정체성을 음식으로부터 알게 되는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우리의식탁은 화려하거나 대단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의 삶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작고 소박한 음식이면 됩니다. 그것을 함께할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만든 공간이 바로 커뮤니티 카페 슬로비입니다.
슬로비는요리,사람, 문화가있는 커뮤니티 카페입니다. 정직한 식재료로 요리하고 사람이 성장하는 공간이면서 문화가 생산되는 공간입니다.
저희는요리로 인생을 바꾸려는 청소년 요리사를 교육하고 있습니다. 바로 영셰프인데요. 어려서부터 해체가정에서 부모 돌봄 없이 자란, 문화자본, 학력자본, 경제적 자본이 취약한 청소년들이 주 대상입니다. 또한 자기주도적으로 인생을 선택하려는 탈학교생들도 함께 합니다. 슬로비는 이들의 인턴십과 자립의 현장이 되어 줄 것입니다.
또한저희는 이주여성들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배우게 된 단어 중에 ‘선주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한 곳에 오래 살게 되면 주인 행세라는 걸 하게 됩니다. 소위 말하는 텃세죠. 그러나 실은 우리는 먼저 와서 살고 있는 주민, 바로 ‘선주민’일 뿐이고, 이주여성들은 나중 온 주민 ‘후주민’인 것이지요. 선주민은 당연히 나중 온 주민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환대하고 돌봐주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슬로비는 이주여성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이러한 관계가 과연 무엇으로 시작되고 연결 될 수 있을까요?
밥입니다. 이주여성들도, 영셰프들도밥을 함께 짓고 나누며 사는 얘기를 나눕니다. 저희에게 밥을 짓는 일은 일상적으로는 우리의 일터에서 벌어집니다. 그리고 한 달에 한번씩 가게 문을 닫고 영셰프들, 이주여성들을 포함한 스텝들이 다함께 이천 유기농마을 권순호 아저씨 댁으로 농사를 지으러 갑니다. 여기서 농사도 짓고, 한 솥밥도 해먹고, 웃고 땀흘리며 돌아옵니다. 바로 이 분이 권순호 아저씬데요. 저희에게이천에 가면 의지할 곳, 의지할 사람이 되어 주시는 시인 같은 농부세요.
어쩌면우리에게는 밥으로 맺어진 가족과 같은 새로운 공동체, 일터가 곧 삶의 현장이고 휴식 공간이 되고, 자기 삶을 지탱하게 하고, 돌봄이 되는 유기적인 공동체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언제부턴가우리 사회는 ‘인생은 어차피 혼자야’, ‘네 인생은 네가 책임지는 거야’라고 종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명한 사실은 인생은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세상에는 혼자 해결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혼자 살라고 하다니요….그렇게 아등바등 혼자 해결하려다 결국 벼랑 끝에 서게 됩니다. 그러면 선택은 한가지, 자살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나라가 자살률 세계 1위가 된 거죠.
더이상 인생을 혼자 책임지라고 않아도 되고,
내가지금 힘들면 남에게 의지해도 되고,
조금힘이 생겼을 때 다른 이에게 어깨를 빌려줄 수 있는 관계,
그런커뮤니티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래서커뮤니티 카페 슬로비를 열게 되었습니다.
Slower but better working people의 줄임말인데요.
천천히일하지만 자기 일을 아주 훌륭하게 해내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입니다.
슬로비의로고에는, 디자이너의깊은 뜻이 있습니다.
인디안들은말을 타고 빠르게 달리다가도 한번씩 멈추어 뒤를 돌아본다고 합니다. 내가 너무 빨리 달려서 혹시라도 내 영혼이 못 쫓아 오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죠. 도시인들은 너무나 바쁘게 앞만 보고 달리지만 인디안들처럼 가끔 한번씩 멈추어 뒤를 돌아보고, 내 영혼이, 내 가족이, 내 친구와 동료가 함께 가고 있는지를 돌아보자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고개를 약간 돌린 것 같은 사람의 모습을 담고 있지요.
그런데밥을 파는 일은 외식업입니다. 아마 외식업의 원투쓰리로 보자면, 슬로비는 망하기 딱 좋은 컨셉이죠. 돈 벌기 위해서는 이렇게 컨셉이 많으면 안되고, 음식으로 전략이 명료해야 하는 것이 외식업의 정설입니다.
그래도슬로비를 좋아해 주시는 손님들이 많이 늘고 있는데, 때때로 슬로비에 손님이 너무 없으면 저희보다도 도리어 이 손님들이 더 걱정해 주십니다. 진심어리게 ‘어떡해요…ㅜㅜ’ 그러면 제가 얘기하죠. ‘괜찮아요^^’
재밌는일은 돈이 안됩니다. 그런데 가슴이 뛰는 일이 아니면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더군요. 돈을 목표로 돈을 많이 벌면 가슴이 뛸까요? 실제로 장사하는 사람들 말씀을 들어보면 현금이 착착 쌓이는 재미가 엄청나다고 하더군요. 사실 그런 많은 돈을 본 경험이 없어서 돈을 보면 가슴이 벌렁벌렁 뛸지 어떨지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하는 일이 좋은 일이고, 좋은 일로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여기까지오다보니까 결국 우리도 외식업을 하고 있는데, 영셰프들과 이주여성들, 우리가 함께 성장하는 사람들이 어디로 어떻게 가게 될 건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적인 대우 받으면서 건강하고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는 일터, 그런 일터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되고, 그 일터가 연결되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대안적 외식업의 생태계입니다.
사람을성장시키고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는 외식업장들이 연대한 연합체가 외식업의 새로운 생태계로 만들어지는 꿈입니다. 이 외식업장들은 각각 다른 컨셉을 가지고 다른 요리를 하지만 방향을 함께하는 곳이 되는 겁니다. 영셰프들, 이주여성들, 또는 외식업계에 새롭게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이 대기업 프랜차이즈나 호텔 등의 길만이 길이 아니라 대안적 외식업의 새로운 생태계에서 건강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은 이 안에서 다른 업장으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로테이션의기회를 줄 수도 있고, 고객들에게는 진짜‘소셜’한커머스, 즉소셜 네트워크 커머스의 가치를 이 외식업장들을 이용함으로서 얻게 됩니다. 다른업장에서 쌓은 마일리지를 슬로비에서 사용할 수 있다든가, 이 생태계가 지향하는 사회적가치에 간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베네핏을 드리게되는 것이지요.
이러한대안적 외식업의 생태계는 전국의 생산자들과의 네트워크를, 직거래, 로컬푸드, 얼굴아는 거래, 착한 유통의 방식으로 확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하나의 작은 밥집에서 꾸는 꿈입니다.
밥짓는 일부터, 농사를 짓고, 학교도 만들고, 새로운 가족, 커뮤니티, 좋은 회사, 그리고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일, 이 작은 밥집에서부터 시작할수 있지 않을까요? 작은 일에서부터, 적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 지금부터 함께 시작한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마지막으로한가지,
도쿄카페 슬로 요시오카 상이 제게 해 주신 조언입니다.
‘약자가 모여 더 큰 강함을 이루는 것을 당신이 증명해라’ 였습니다.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지만, 과연 그 말이 논리적으로 가능한말인가 거듭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너무나 지지부진하고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이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어느날 어깨가 축 쳐진 채 있다가 저의 동료들을 보면서 번득 든 생각이 있었습니다. 매일 같이 아웅다웅, 지지부진하다가도 희한하게도 서로 맞추어 굴러가고 있더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와 중에 작은 행복도 있구요. 거기서 깨달았습니다. 약자가 모여 더 큰 강함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요. 취약계층이어서 약자라고생각하진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결핍을 가진 약자입니다. 약자들은 자신의 결핍을 알고 누군가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비록 아웅다웅, 지지부진 하더라도 말이지요. 그렇게 만나서 무언가 작은 일이라도 함께 해내는 사람들이 약자이고, 그렇게 해내는 일이 모여 결국 더 큰 강함을 이루는 것입니다. 반면 강자는 정말 강해서가 아니라, 부와 권력, 사회적 지위가 있어서 이미 모두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이의 결핍을 채워줄 동기가 없고, 그래서 다른 사람과 만날 일이 없는 것이고, 결국 나 홀로 강함으로 존재하게되는 것입니다.
밥을짓는 일부터,
함께나누는 일부터,
그리고약자가 모여 더 큰 강함을 이루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길 바랍니다.
내일부터어디서, 누구와함께 밥을 드실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