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담 괴담 (奇譚怪談)2
동명이인(同名異人)
김광한
보카치오의 데카메론과 요코미조 신조의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기담(奇譚)
몇년전까지 이름이 잘알려진 동명이인(同名異人)이 있었다.팝송해설자이자 디제이 김광한이 주인공이었다.테레비나 방송에 거의 매일 출연해서 젊은이들에게 최근의 팝송을 알려주는 분이었다. 나이도 같고 한자로된 이름도 같다.예전에 휴대폰이 없을때 집으로 이분을 찾는 전화가 종종왔다.나는 그분이 아니라고 하면 목소리가 맞다면서 귀찮지만 만나달라고 하는 전화들이었다.그래서 이번에는 나는 이름만 같지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만일 내가 엉뚱한 생각을 갖고 유명이름을 차용해서 응큼하게 따로 조용히 만나 별난짓을 해도 될 것같다는 생각도 안해본 것은 아니다.그런 그분이 몇년전에 돌아가셨다.아바타 한분이 사라지신 것이다.
또 한분이 있었다. 이분 역시 지금은 과거완료형이 됐지만 이분은 만화가였다.여러군데 지방지에 만화를 연재를했는데 만화계통에선 잘 알려진 분이었다.그분이 돌아가시자 그분의 만화도 지상에서 사라졌다. 만화는 그분의 아바타였던 것이다.내 이름은 성(姓)은 흔한데 이름은 흔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빛광(光)자가 좀 세서 잘 쓰질 않는다, 그러나 나의 경우 김해김씨 삼현군파 몇대손의 방계 붙이이기 때문에 가운데 항렬(行列)이 광(光)이기 때문에 차용한 것이다.이제 세월이 많이 지나서인지 광자의 항렬도 많이 줄어들었다.
이 이름, 즉 동명이인(同名異人)으로 인해 있었던 조금 기이한 이야기를 해본다.
지난날 통행금지 시간이란 것이 있었다.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가 통행금지시간이엇다. 12시 정각에 사이렌이 울리면 거리에 나다니는 사람들은 무조건 통금위반으로 파출소로 연행이 된다.그리고 거기서 간단한 조서를 받고 경찰서로 넘어가면 경찰서에서 한데 모아 즉결 재판소에 회부되어 벌금이나 구류를 살다 나온다.1981년도 통금이 없어지기 까지 술좋아하던 사람들 두어번 벌금물지 않은 사람 아마 드물 것이다.바로 이 당시의 이야기이다.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하고 전두환이 나타나서 사회정의를 확립한다고 웬만한 신문과 잡지를 폐간 시켰다.내가 편집장으로 있던 잡지는 그렇게 난잡하지도 않았는데 제목이 요란해서인지(사랑의 묘약) 덩달아 폐간이 되어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다.이렇게 해서 실업자가 된 사람들이 당시엔 많았다.
나와 함께 근무했던 기자 미술담당, 사진 등 몇명과 가끔씩 어울려 신당동 중앙시장의 돼지 곱창볶이집에서 술을 마셨는데 늦어도 10시에는 일어나야했다.그러나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지 미적거리다가 시간을 놓쳤다.그래서 집가까운 곳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는데 이미 통금 시간이 훨씬 지났다.아마도 구로동 벌판(당시)쪽 같았다. 눈발이 휘날려 앞가름을 할수도 없어 두리번 거리는데 호루라기 소리가 나고 이어 어디선가 나타났는지 방망이를 허리에 찬 방범대원이 씩씩하게 댓자곳자 파출소로 끌고갔다. 파출소는 벌판에 오똑하니 마치 시골 원두막처럼 서있었다.
그곳의 밤 시간 담당은 경장계급장(이파리 세개)의 차석이었다. 계급장에 비해 나이가 꽤 들어보였다.먼저 잡혀온 만취한 통금 위반자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있는 한편에 어떤 60대 노인이 수갑을 차고 장의자에 앉아있었다. 말을 들으니 행상을 하다가 잡혀왔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자 너무 화가나서 그 나이든 경장에게 당신은 부모도 없소 먹고 살려고 저 나이에 행상 좀하고 늦다보니 통금을 넘긴게 무슨 잘못이있다고 수갑까지 채우는 거야! 이 못되 처먹은 개같은 놈아!
술기(酒氣)에 겹쳐서 객기가 발동했던 것이다.그러자 그 경장이 빙긋이 의미있게 웃으면서
"선생님 직업이 뭣인지요?"
하고 묻길래 실업자라고 한다면 금방이라도 험한 욕이 나올것같아 신문사 기자라고 했다.
"아, 그러시군요. 어느 신문이신지요?"
그래서 얼마전까지 같이 근무하다가 신문사로 옮겨간 동료의 신문사를 대줬다.차마 그 밤중에 신문사에 확인을 할 것같지 않았기 때문인데 어랍쇼,내 주민등록증을 확인하고 그 신문사에 경비전화로 확인 전화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이거 낭패, 야단났네.만일 허위사실이 밝혀진다면 자베르(레미제라불의 경감)같은 경장에게 어떤 험한 꼴을 당할지 몰라 술이 한꺼번에 확 깼다.단순 통금위반이 아니라 형사처벌 대상이 되고 잘못하다가는 공무집행방해 신문기자 사칭 통금위반 등등 여러가지 죄목을 달아 기소할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기소의견서에 분명히 이렇게 적을 것이다
<주거부정에 공갈 사기성이 농후한 매우 불량한 자이니 엄한 처벌을 요함>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그 신문사에 나와 같은이름이 있다는 것이다.그 사람은 기자는 아니고 경비실의 직원이라고 했다.다행히도 오늘은 비번이라 집에서 쉬고 있다는 것이다.세상에 이런일이 있을수가 있는가?
전화를 끊고 자베르 경장이 내게
"사회부가 아니고 경비과시로군요."
하면서 태도가 부드러워졌다.그 시각이 새벽 3시, 4시면 통금해제이고 한시간만 잘 버티면 그 아슬아슬한 현장에서 탈출할 것이란 생각에 벽시계만 초조하게 쳐다보았다.그때 신문사의 지국에서사람이 나와 우유를 갖다줬다.동료직원이 고생한다고 본사에서 시킨 것같다.그래서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위로를 했다.그리고 마침내 새벽 4시,다른 술주정뱅이들은 모두 맹꽁이차를 타고 경찰서로 실려가고 행상 영감과 나는 시말서 한장을 형식적으로 쓰고 나왔다.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바깥에 여전히 눈보라가 날리고 있었다.참으로 한심한 인생같아 발걸음이 떼어지지를 않았다.파출소 앞에서 자베라 경장이 여전히 뭔가 의혹에 찬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일주일 후 나는 신문사의 친구에게 내 이름과 같은 직원이 있냐고 물었더니 경비과장이 이름이 같다는 것이고 며칠전에 정년퇴직했다는 말을 들었다.40여년전 일이니 그 때 사람들 모두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이 이야기가 진실인지 확인을 할수가 없을 것이다.다만 이런 것도 하나의 기담(奇譚)이 될 것같아 소개를 한다.
이런거 또있어요 하나 더할까요?
첫댓글 ㅎㅎ~~
동명이인 잼있는 일화 군요
팝DJ 김광한씨 음성이 생생하네요
엄청 오래도록 오후시간대를
생동감있게 활력있는 프로 팝송 시간대 즐거웠지요
ㅋㅋㅋ 이런 지나간 얘기도 재미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