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임정자
혼자 두 딸을 키우는 작가가 있다. 인세로만 먹고살기 힘들고, 당연히 아이들도 키우기 힘들어 집에서 글쓰기, 독서 교실 같은 걸 겸업한다. 코로나가 대 창궐하였으니 그 집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터, 걱정이 되던 참에 지난달에 근처 도시에 갈 일이 있어 잠시 들렀다. 역시나 쉬고 있었다. 모처럼 일 안 하고 노니 좋긴 한데 생계가 걱정이란다.
“이번에 큰애가 대학을 못 갔잖아요. 속상한데 요즘 같아서는 등록금 안 들어가서 다행이에요.”
강연이 주 수입원인 작가를 만났다. 이 작가는 늘 강연을 다닌다. 강연을 다녀야만 수입이 생겨 자식 학비를 대고 집세를 내고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봄학기 강연이 취소되어 막막하단다. 우울증까지 생기는 것 같단다.
배우자가 직장인이어서 생활비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 후배 작가랑 통화하다가, “너는 그나마 다행이다. 생활비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 했더니, “그러면 뭐 해요. 글을 못 쓰는데. 아이들이 학교를 안 가니까 종일 좁아터진 집에서 밥만 해요. 아이들이 놀이터에 나가 놀 수가 있나. 24시간 껌이에요, 껌.”
그러고 보면 내 팔자가 상팔자다. 아이들은 다 컸고, 남의 집일망정 시골이라 마당이 있으니 답답하면 마당에 나가 멍 때리거나 풀을 뽑으면 된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서울 나갈 일이 4/5로 줄어들어서 대부분의 날을 집에서 지내니 밀린 잠을 자며 묵은 피로를 풀고, 미뤄 두었던 책을 읽고 글도 쓰고. 심심하면 텔레비전으로 영화를 구매해 본다. <용길이네 곱창집>도 보고, <찬실이는 복도 많지>도 보고. 임정자는 코로나에도 복도 많지 하며.
겉보기는 꽤 괜찮은데 속은 숯이다. 도서관 상주작가도 끝났으니 별다른 수입이 없다. 일찌감치 보일러를 껐으나 지난달까지는 난방을 틀었으니 비싼 심야 전기 난방비도 내야 하고, 해가 바뀌었으니 자동차 보험료도 내야 하고, 하필 타이어도 다 닳아서 갈아야 한다. 아, 적자다. 두 달째.
예술인 긴급지원 없나. 지난 4월 16일 서울시에서는 45억을 투입하여 문화예술계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요강을 살펴보니 연극, 무용, 음악, 전통, 시각, 다원, 문학 행사, 아동 청소년극이 대상이다. 작가 개인은 없다. 그렇다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으로 가 보면 된다. 예술인복지재단에서는 예술인 생활안정자금을 융자해 주고 있으니까. 그런데 겨우 최대 300만 원 융자해 주는 거면서 들러붙어 있는 제한조건이 많다. 게다가 요즘은 1천만 원까지 코로나19 특별융자를 해 주는데 평소에 비해 신청자가 4배 이상 늘어나 심사를 해 선정해야 한단다. 물론 나는 융자를 받을 생각은 없다. 융자는 갚아야 하는 거라 부담스럽고 싫다. 융자를 갚으려면 일정한 수입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니까.
작가. 코로나와 상관없이 경제적으로 기댈 데 없는 직업군이다. 제대로 된 복지 정책도 없다. 최근 몇 년 사이 작가 강연이 늘어나 작가들이 경제적으로 숨통이 트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강연은 대개 일부 작가에게 몰려 있다. 모든 작가가 생계비를 해결할 정도로 강연을 다니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작가가 배우자의 수입에 의존해 살거나 비정기적이고 비정규적인 문학 교육 활동을 하면서 생계를 해결한다.
지원 정책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응모한 작품에 점수를 매겨 소수에게 몰아주는 창작지원금이나 일자리 창출 개념의 예술인파견사업 같은 게 있긴 하다. 이것들은 선정된 작가에겐 큰 힘이 된다. 그러나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복지는 아니다.
독일은 이번 코로나 사태를 맞아 문화예술인 지원을 위해 500억 유로의 패키지를 마련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예술인 개인과 단체 지원이 포함되어 있는데, 프리랜서 창작인들에게는 6개월간 실업보험 등 사회보장금을 지원하고, 예술인들이 집세를 못 내 쫓겨나는 일을 막기 위해 100억 달러를 지원한다고 한다. 영국은 음악, 연극, 무용, 시각 예술, 문학, 미술, 거리예술 등의 예술가 및 예술 종사자들에게 1인당 최대 2,500파운드(약 380만 원)를 현금으로 지원하고, 미국은 예술가들의 생계유지를 위한 123억 원 기금을 마련하였다고 한다. 돈이 많은 나라여서 그런 것일까? 꼭 그래서는 아닐 것이다. 그 사회가 문화예술의 가치와 존재 의미, 이를 창조적으로 생산해내는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복지의 필요성을 공유하고 있어서이다. 이런 나라들은 저작재산권 보호도 제대로 해 준다.
문득 그들 나라에는 있고, 우리나라에는 없는 게 떠오른다. 작가노동조합. 우리나라에도 문화예술인 노동조합은 많다. 방송작가유니온, 뮤지션유니온,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공연예술인노동조합, 예술인강사노동조합, 방송연기자노동조합, 방송스텝노동조합 등등등. 없는 게 있다면 작가노동조합이다. 문화예술노동조합은 고용보험 등 자신들에게 필요한 정책을 꾸준히 주장하고 있고, 지속적으로 내는 이들의 소리를 문체부, 고용노동부가 그나마 귀 기울여 듣는다. 노동조합이 없는 장르는 문학이다. 작가연대가 그 일을 최대한 담당하려고 하지만 역부족이다. 신생 문학단체이기 때문이다.
최근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저작권위원회는 코로나 관련 피해 상황을 설문조사하고 있다. 현재까지 응답한 작가 중 코로나로 인해 출간이나 창작 일정이 취소되거나 연기된 작가는 절반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강연이나 강의 등이 취소, 연기되어 피해를 입은 작가는 70%를 넘어서고. 이로 인해 생계에 타격을 받은 작가들이 꽤 있다. 그러나 이들을 위한 지원 정책은 없다. 대책을 요구하는 움직임도 없다. 공연예술인들을 걱정하고 지원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기사나 논의는 있어도 작가들을 걱정하는 기사는 전무하다.
와중에 고용노동부에서 특수고용노동자나 프리랜서에게도 코로나로 인해 소득이 급감소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으면 3개월 동안 매달 50만 원씩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프리랜서에는 작가만 있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 해서든 조건에 맞는 서류를 제출할 수 있다면 운 좋은 누군가는 생계비를 지원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말 필요한 것은, 펜데믹 상황에서 절실히 깨닫는 것은 운 좋으면 받을 수도 있는 3개월간의 50만 원이 아니라 작가들에 대한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복지 정책과 저작재산권 보호 정책이다.
그런데 난감한 것은 이런 문제를 나서서 지적하고 요구할 작가 단체가 없다는 점이다. 문학 단체는 여럿 있으나 작가들의 권익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요구하고 교섭할 단체, 작가들의 노동조합이 없다. 이미 다른 장르들은 다 노조를 결성해 자신들의 요구를 외치고 있는데 말이다.
임정자
동화작가. 『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 『당글공주』, 『내 동생 싸게 팔아요』, 『할머니의 마지막 손님』, 『흰산 도로랑』등을 썼다. 기억과 성찰의 도보순례길 '팽목바람길' 길잡이이며,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저작권위원회 위원장이다.
첫댓글 운 좋으면 받을 수 있는 3개월간 50만원의 혜택보다~~~~
절실히 와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