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의 향기] 영주암 회주 정관스님
“마음이 곧 정토니 자신을 제도해야지”
마음을 섬기고 드높이고
예경하는 종교가
정법의 정법이야
온도는 더 높고 햇살은 더 이글거렸지만 바람은 시원했다. 바다 때문이었다. 온통 아스팔트 숲 뿐인 서울에 비해 부산은 덜 더웠다. 아무리 뜨거운 햇볕도 열기를 뿜어대는 콘크리트 구조물도 쉽게 변하지 않는 바닷바람은 이겨내지 못하는 듯 했다. 쉽사리 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됐다.
광안대교가 한눈에 들어오는 부산 망미동 산꼭대기에 영주암이 있다. 회주 정관스님이 혼자 힘으로 일군 신생 사찰이다. 지난 16일 스님이 주석중인 영주암 원통보전에는 광안리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맴돌고 있었다.
-스님께서는 마음 공부를 하는데 두 가지 길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두가지 길이란 무엇입니까.
“간화선의 길과 송화두(誦話頭)의 길 이 있다. 무엇을 화두선이라고 하는가. 상식 밖의, 자기인식 밖의 어떤 의문을 던져놓는 것을 화두라고 한다. 지식과 상식을 뛰어넘게 하는 의문을 던져주는 것이 화두의 숙제이다. 고기가 낚시대에 걸려들듯이 화두공부자는 화두 의문에 걸려들어야만 화두 공부가 되고 화두착이 된다. 화두의심이 깨달아 짐으로써 지식과 상식 인식의 룰을 벗어나게 되고 지식의 구속을 벗어나는 대자유자가 된다. 자유와 자재가 불교의 구경(究竟)이다.
간화선이 잘 안되는 근기자는 우선 송화두로써 발심해야한다. 송화두란 무엇인가. 부처님 명호를 어느 명호든 자기 근기에 맞는 명호를 계속 반복하여 마음속으로 끊이지 않게 정진하는 것을 말한다. 송화두라고 해서 가볍게 여기지 말고 지극한 신심으로 최선을 다하면 송화두 공덕이 결국 간화화두 의정화두로 익어지고 발전된다. 의정 없는 화두 공부보다 오히려 처음부터 송화두로 신심을 다하는 것이 자기 공부에 더 도움이 된다.
간화선의 위력은 벽을 뚫고 들어가는 위력을 발휘한다면 송화두는 벽을 맴도는 위력이다. 결과는 뚫는 것과 같은 위력을 갖는다. 간화선이 안되면 송화두부터 해야한다. 가령 관세음보살을 끊지 않고 명호하면 ‘일행삼매’가 된다. 앉으나 누워나 잠들었을 때나 길을 걸을 때나 언제 어느때라도 송화두가 되면 안식자가 된다. 그 단계에 들어서면 번뇌망상이 사라진다”
-그 어려운 길을 왜 가야합니까.
“내 방에 별사람이 다 찾아온다. 그 중에는 자기 입에 안 맞는 것 먹어본적 없고 원하는 옷 입지 않은적 없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육체적 향락만 좇았지 정신적 내면을 밝히고자 수행은 한적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 세월만 보낸 사람은 얼굴에 흔적이 남는다. 원망 비관 고뇌가 얼굴에 덕지덕지 묻어난다. 그같이 의미없는 세월을 보내지 않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한다.
수행이란 자기가 자신을 제도하는 것이다. 100세를 살면은 뭐하나. 똥 오줌 심부름만 하는 천덕꾸러기 밖에 더 되겠나. 흉물스럽고 가족에게 외면받고 사회에게 짐만 지우는 그런 노년이 되지 않고 복된 삶을 살기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다”
-스님께서는 마음 건강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 선(禪)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 마음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선이다. 안될 것이 없고, 겁날 것이 없다. 마음 건강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마음이 건강하면 꽁보리 밥도 꿀맛이지만 마음이 병들면 천가지 만가지 고급요리도 입에 넣으면 소태다. 마음이 무엇인지 깨닫고 싶은 것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
타종교는 신을 종교로 믿고 모시지만 우리 불교는 마음이 신이기 때문에 마음을 종교로 모시고 신(信)한다. 다른 종교는 마음 따로 신 따로 이원론이지만 우리 불교는 마음을 곧 신이요 종교로 보고 믿기 때문에 일원론이다.
‘나’라는 주인공은 역시 마음이지 다른 법이 아니다. 중중무진 사물이 있다해도 그 사물은 역시 마음안에 있지 밖에 있지 않다. 마음은 둘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음이 곧 종교의 대상이다. 마음을 섬기고 드높이고 예경하는 종교가 정법의 정법이다”
-마음에도 종류가 있습니까.
“우리들 마음은 네부류가 있다. 본래지 마음, 습성지 마음, 지식지 마음, 지혜지마음이 그것이다. 마음은 본래지에서 출발해서 본래지 로 돌아오는 것이다. 본래지 마음은 태어나기 전부터 본래 있었던 대자연의 법이다. 그것은 연(緣)을 만나기 이전의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언어가 끊어진 절대자의 높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공(空)이다. 이 공이 연을 만나면 반응한다. 그래서 사실은 공이 아니고 공지(空知)이다.
가령 물을 따뜻하게 하는 특성이 있다. ‘연’을 만나기 전에는 반응이 없다. 그 때는 없는 것으로 알지만 연을 만나면 즉각 반응한다. 왜냐하면 본래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고 본래부터 있는 법이다. 내가 있으므로 혹은 중생들이 있으므로 있는 법이 아니고 ‘나’라는 존재나 중생이라는 무리가 있든 없든 관계없이 본래부터 있는 법이다. 이 본래지 마음은 한결같다. 이 마음을 돌아가야 안식지를 얻을 수있다.
습성지 마음은 중생심을 말한다. 연을 만나 식(識)이 쌓여 형성된, 이리저리 흔들리고 분별하는 그 마음이다.
지식지 마음은 배워서 아는 마음이며 지혜지는 정확한 판단심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아는 것을 전부인양 착각하는데 우리가 아는 것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그래서 아는 것이 병이라하여 ‘알음앓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가. 지혜지는 남을 괴롭히는 마음이 아니고 많은 공부 끝에 얻어 상당한 경지라고 할 수있다. 하지만 지혜지에 그치면 철학이 된다. 마음은 본래지에서 출발해서 본래지로 돌아와야 한다”
-그러한 본래지 마음을 획득하면 가장 달라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남을 괴롭히지 않게 되지.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사람이나 국가나 고통의 원인이 치열한 경쟁 때문이다. 다들 습성지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까닭이다. 본래지 마음을 갖게되면 어떠한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의 마음과 평안한 상태를 유지하게되니 나는 번뇌가 사라지고 남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는다”
스님은 마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다 의혹불이상주고(疑惑不離常住苦) 일념불이즉정토(一念不離卽淨土)라는 글을 써주었다.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념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곧 정토라는 뜻이니 줄여서 ‘일념정토’라는 가르침이다. 스님이 말하는 일념이란 곧 흔들리지 않는 본래 그 마음을 가르키는 것이다. 본래 그 마음은 어디 있으며 어떻게 찾을 수있을 까. 뒤돌아서는데 스님이 거듭 소리쳤다. “자기 자신을 제도해야지”
■ 정관스님은
공부 끝에 얻은 진리
‘간화선의 길’서 쉽게
‘자유’의 중요성 강조
英.國文혼용 시집 내
지난 5월 ‘간화선의 길’을 통해 그동안 공부 끝에 얻는 진리를 알기 쉽게 제시한 정관스님은 1954년 동산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이래 범어사 불교전문강원을 수료하고 범어사에서 14안거를 성만했다. 종회의원, 범어사 주지, 금정학원 이사장, 부산불교연합회장 등을 역임한 부산을 대표하는 원로스님이다. 또 대중포교에도 진력해 대한불교어린이지도자연합회장, 대한불교신문이사장, 사단법인불국토이사장, 사회복지법인불국토이사장 등을 지냈다.
원로스님으로서는 드물게 시집, 수필 여행기 수행이론서 등 여러 책을 펴낸 학구파이기도 하다. 스님은 특히 ‘간화선의 길’에서 수행체계를 나름의 방식대로 재해석, 좋은 평가를 받았다. 국영 혼용으로 쓰인 시집 ‘하늘같은 자유’에서는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과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주의의 문제점을 간결하면서도 쉽게 비교해 수행자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스님은 요즘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은사스님으로부터 받은 시심마 화두를 놓지 않고 있다. 새벽 3시 15분 전에 기상하여 하루 9시간 30분을 정진한다.
[출처: 불교신문 2255호/ 8월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