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
33: 7-11
7.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8.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10. 모든 백성이 회막문에 구름 기둥이 섰음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문에 서서 경배하며
11.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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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피자회사로 피자헛(Pizza Hut), 도미노(Domino), 리틀 시져스(Little Seasers)를 꼽습니다. 이 세 회사는 저마다 독특한 판매 전략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피자헛은 다양한 메뉴를, 도미노는 남보다 빠른 배달을 리틀 시저스는 싼 가격을 판매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런 특징이 그 회사들을 세계 1,2,3위의 피자 회사가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마케팅 전문가들이 파파존스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를 연구했습니다. 그랬더니 파파존스는 “피자의 본질로 승부를 건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피자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두말할 것 없이 맛입니다. 최고의 재료를 사용해서 최고의 맛으로 고객을 끌어들인다는 게 파파존스의 전략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 어떻게든 나의 예배가 살고 우리 교회의 예배가 살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예배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대충 예배 드리면 안됩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기 원하세요? 오늘 모세의 회막에서 있었던 것처럼 성령님의 임재가 있는 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성령님의 임재를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습니까? 뭐 인간의 테크닉으로 기가막히게 준비한 이벤트 같은 예배로 성령님의 임재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바다의 파도를 인간이 일으킬 수 없듯이 성령님의 임재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임재는 오직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언제 성령님이 임하시는지 그때가 언제인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회막을 통해서 알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은...
(1)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주의 (은혜)를 사모할 때입니다.
출애급기 33:8에 보면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여기 말씀에 보면 모세가 회막으로 들어갈 때 백성들이 어떤 행동을 보여 주었습니까?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백성이 다 일어나 회막에서 눈을 떼지 않고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끝까지 회막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행동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주의 은혜를 끝까지 사모했음을 보여주는 바입니다. 그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출33:9 -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라고 했습니다. 곧 주의 임재가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에게 주의 임재를 나타내십니다.
(2) 전심으로 (예배드릴) 때입니다.
출애급기 33:10에 보면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라고 기록합니다. “서서” 예배 드렸다고 합니다. 왜 섰겠습니까? 은혜가 임하니까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배에 감격과 환희가 있으니까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예배가 이런 예배가 되기 원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시쿤둥 예배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마음을 다해서 온 힘을 다해서 드리는 예배 이런 예배가 우리 교회에 있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찬양에 능력이 있습니다. 전심으로 찬양부를 때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저는 예배에 찬송가만이 아니라 복음성가도 넣은 이유는 (1) 찬양 중에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기를 소원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2) 찬양중에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기를 원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3) 주의 임재가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출애급기 33:11에 보면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합니다.
여기 여호수아를 보세요. 여기 여호수아는 모세에 비하면 비교도 안되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홍해도 가른 기적의 사람이죠. 십계명도 받은 언약의 사람이죠. 그를 비난하던 사람이 문둥병자가 되어 버리는 체험을 한 아무도 그를 넘보거나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여호수아는 모세의 젊은 수종자에 불과 했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모세의 어린 비서입니다. 모세와는 견줄래야 견줄 수 없는 볼품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모세도 해내지 못한 가나안을 정복하는 위대한 일을 감당해 내는 인물이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모세는 진으로 돌아와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곧 그는 전적으로 기도와 예배에 생명을 건 사람이었습니다. 젊은 사람이 그렇게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그는 모세가 체험한 하나님의 임재를 자신도 사모하면서 모세는 진으로 돌아가도 여호수아는 끝까지 남아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기를 기도했습니다. “연약한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연약한 저에게 임재해 주옵소서.” 이것이 그가 회막에 남아 드린 기도였을 것입니다. 그때 그는 연약한 존재였지만 주의 영의 임재로 모세도 해 내지 못한 존귀한 존재로 쓰임받는 놀라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쓰임받기 원하세요? 여호수아처럼 성령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기도하세요. 사모함으로 예배에 임하세요. 주의 영이 여러분을 사로잡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주의 임재가 있는 인생에 놀라운 변화와 축복된 삶이 있습니다.
여러 번 결심하고 넘어지고 또 넘어져서 아예 변화될 것을 포기한 분이 계십니까? 몸부림치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없는 것 같아서 주저 않은 분이 계십니까? 은혜의 파도, 응답의 파도는 여러분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정확한 계획과 타이밍으로 축복의 파도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사모하며 전심으로 예배 드리고 기도할 뿐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 모든 성도가 주의 임재를 체험해서 제단에 발을 디디기만 해도 주의 임재가 느껴지는 감동과 눈물과 변화와 기적이 있는 그런 축복의 제단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