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5: 7 새 덩어리 -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
묵은 누룩은 옛 죄악들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구약에 예표된 유월절 양이시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희생되심으로 우리의 옛 죄악들이 깨끗이 씻음을 받았다. 유대인들이 유월절 양의 피를 문틀에 바름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었듯이, 우리는 구주 예수님의 보혈 공로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로 옛 죄를 씻음 받은 성도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묵은 누룩을 내어버려야 한다. 우리는 옛 죄악들을 내어버려야 한다.
1]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1)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여기서 "누룩"은 죄악을 비유한다. 기독자는 원칙에 있어서 누룩(죄) 없는 자이다.
* 요일 5: 18 -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 요일 3: 9 -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기독자가 습관적(習慣的)으로 범죄를 계속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Ross,"He can not go on sinning." 1Jn. 3: 9).
신자가 죄를 범하는 것은 하나의 사고(事故)요 원칙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었으니 우리가 어찌 범죄하리요! 누구든지 범죄를 예사로이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를 대신하여 죽지 않았다는 거짓된 고백과 같다.
중국의 왕 목사가 어렸을 때에 한 번은 좋지 못한 장난을 하였다. 그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붙잡아 벌을 세우려 했으나 그는 도망쳐 버렸다.
그 어머니는 기어이 그를 붙잡아 놓고 하는 말이, "내가 낳아서 기른 아이가 잘못한 일 때문에 내가 벌을 세우려 한다고 달아나니 나는 이런 아이를 낳아 기른 것이 부끄럽다.
나는 나를 벌 세울 수밖에 없다"라고 하면서 자기 종아리를 때려 상하게 하였다. 그때에 그는 어머니에게 안기면서, "나를 벌하여 주시고 어머니 자신을 때리지 마십시요"라고 하였다. 그후부터 그는 좋은 아이가 되었다고 한다(Knight's Master Book of new Illustrations, pp.142-144).
이것은, 대신으로 벌 받은 한 가지 실례(實例)이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 때문에 받을 영원한 멸망을 대신 담당한 것 같은, 무궁한 가치 있는 하나님 아들의 속죄와 같은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희생은 우리 밖에 있는 객관적 사실(客觀的事實)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유월절 양을 먹은 것과 같은, 먹고 마심과 같이 우리 신자들의 심령 속에 화합되어지는 것이다. 화합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믿음으로만 성립 된다. (4: 2)
하나님의 백성은 이미 죄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기 전의 타락한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Calvin).
특별히 바울은 '누룩 없는 자이어야 한다'라는 표현하지 않고 '누룩 없는 자'(*, 아주모이 온테스)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의 표현은 그들이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존재 자체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강조한다.
* 고후 5: 17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만 하는 신분임을 상기시킨다. (4: 17).
만약 그들이 아직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었다면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묵은 누룩을 제거하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누룩없는 상태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실제적인 상태로서 그들이 다시 묵은 누룩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신분임을 강조한다.
(2)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새 덩어리"는 새사람의 단체를 이름이니 곧, 거듭난 신자들의 단체이다.
"묵은 누룩"은 죄악을 가리키는 비유이다. 이 비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 양을 먹는 저녁부터 7일 동안 무교병을 먹은 사실에서 나온 것이다. (출 12장).
그것은 기독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받은 이후 원칙상으로 범죄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한다.
2]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예수께서는 구약에 예표 된 유월절 양이시다. 그가 우리 대신 희생되심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얻었다. 유월절 양의 피를 문틀에 바름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었듯이,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묵은 누룩은 옛 죄악들을 가리킨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 받은 성도들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날의 죄악 된 행습을 버려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유월절 양에 비유한 말씀이다. 물론 유월절 양은 예수님 탄생하시기 1500여년 전 모세 때에 그리스도 예수를 예표(豫表)하도록 제정된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양처럼 희생된 때문에, 기독 신자들은 거듭나서 누룩 없는(속죄 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라는 헬라어 원문에서 '가르'(*)로 시작하는데 '왜냐하면'의 뜻을 가진 '가르'는 왜 묵은 누룩을 버려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와 그들이 어떻게 누룩 없는 자가 되었는가 하는 이유를 암시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리스도께서 희생양이 되셔서 그들의 백성의 죄를 다 도말하셨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들을 멸망으로부터 끌어냈으며 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주셨다. 바울은 누룩으로 시작된 비유를 유월절의 무교병과 유월절 어린 양이라는 또 다른 비유의 의미에 연결하면서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성취된 무교병에 참여한 자들은 더 이상 누룩있는 떡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Lens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