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에 넋을 잃고 사는가
대구아동문학기행(2023년 4월 15일 토요일)을 다녀와서 대구아동문학회 문학기행 http://www.senior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41899
박경선
대구아동문학회의 문학 기행 가기 전날부터 부산에 비가 왔다.
<오늘은 비가 왔지만 내일은 그칠 거에요. 조심히 다녀가세요.>
부산 사는 제자 헌무가 문자로 걱정해주었다.
떠나는 날 아침, 비를 머금은 새초롬한 날씨부터 긴장하게 했다. 가방에 우산을 챙겨 넣었다. 성서 홈플러스와 현대백화점과 법원 앞에서 우리를 부산으로 태워 갈 <뉴뷰림고속관광> 노란버스가 회원들을 거두어들였다. 대구 70 바 2454였다. ‘대구 칠십 할매 잘 봐요. 부산으로 이사오사’며 인사를 건넸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얼굴들은 축복받은 얼굴들이었다. 건강하게 잘 살아왔기에 자기 다리로 걸어와서 보고 싶은 사람들을 보며 악수하고 활짝 웃을 수 있으니 말이다.
“모두 벨트 매세요.”
정남 샘이 정정하고 구수한 목소리로 우리 아가들을 챙겼다. 광안대교를 건너면서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삶을 생각해봤다. 특히 빗소리가 물소리로 겹쳐 들리는 오늘은 매클린이 쓴 『흐르는 강물처럼』 소설 마지막 글귀가 연결되어 떠올랐다.
‘나는 물소리에 넋을 잃는다.’
아동문학을 하는 우리는 무엇에 넋을 빼앗겨 살고 있는가? 내 속에는 어린 날의 내가 살고, 우리가 만나고 사랑했던 어린이가 산다.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오르는 신념처럼 내가 사랑하는 어린이를 품어 작품으로 풀어내며 산다. 그래서 아동문학을 하는 작가들 가슴에는 강물이 흐르듯, 어린이를 향한 절절한 사랑이 항시 흘러내린다. 그것들이 작품의 씨가 되고 향기를 담는다.
이주홍 문학관에 들렀을 때 해설사가 말했다. 이주홍 샘은 죽는 날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고. 비단 그분뿐이랴? 헤밍웨이도 이어령도…. 글 쓰며 평생을 산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글을 쓰며 글에 자기 삶을 모두 쏟아붓는다. 그리고 끌리는 소재도 각기 다르다. 나는 내 둘레, 우리 회원 선생님들 한 분 한 분의 작품과 특성부터 더듬어 보았다.
권영세 샘은 『겨울 풍뎅이』 책의 작가다. 교육청 장학관 일을 많이 한 탓일까? 회무 자문에 늘 원만하고 현명한 자문을 해주신다. 인품과 글이 사람들의 존경을 몰아받는다.
권영욱 샘은 『새 둥지엔 왜 지붕이 없을까』 책의 작가다. 사전 답사 갈 때마다 차를 몰고 앞장서고, 최춘해 회장님을 잘 보좌하고 다니는 회의 기둥 같은 일군이다.
곽명옥 샘은 『신발장의 수다』 책의 작가다. 저번 여행 때는 김밥을 사와 베풀어 인상 깊었다.
김지원 샘은 『나도 씨앗처럼 눈 감고 엎드려 본다』 책의 작가다. 작품성도 좋지만 오랜만에 만나 소곤댈 수 있는 친구라 너무 반가웠다.
노영희 샘은 『아이도로 간다』 책의 작가다. 분홍색을 좋아하는 핑크 공주로 특히 당귀를 좋아해서 우리 집 텃밭의 당귀를 볼 때마다 그녀가 생각난다. 작품을 연구하는 열정도 크다.
박진희 샘은 『구름달과 달달물』 책의 작가다. 회원 된 경력은 짧은데, 총무든 말든, 작년부터 총무처럼 회무를 맡아 살림 사는 원만한 성격이 뛰어난다.
박채현 샘은 『강태풍 실종 사건』 책의 작가다. 작품도 문학성이 높지만 이번 여행에 떡이랑 과일 준비하는 안목과 정성도 상당하였다. 하마터면 대구 시내 최고의 떡 맛을 보여주려고 목숨 걸고 차 몰고 운전하여 떡 찾아온 이야기에 모두 움찔하였다. 우린 맛있는 떡 안 먹어도 되니까 자기 목숨부터 지키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신복순 샘은 『가슴이 쿵쿵쿵』 책의 작가다. 작품성도 높지만 책 그림에 등장인물의 감정 표현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나게 그리는 능력에 놀랐다.
신승원 샘은 『새콤달콤한 우리 방언』 책의 작가다. 방언 이야기로 강의 꼭지를 맡고 있는 분이라 우리말 살려 쓰기와 맥을 같이 하는 분이시다.
이민정 샘은 『그들의 파티』 책의 작가다,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숨어서 회원들의 기운을 돋워주는, 미소 고운 부회장님이다.
이용순 샘은 『내 마음의 내시경』 책의 작가다. 구미에서 특별한 박물관을 운영하며, 회 참석을 위해 구미와 대구를 오가는 열정이 대단한 분이다.
이주영 샘은 『까만콩 노란콩』 책의 작가다. 여유 배터리를 가지고 다니며 사진작가 수준의 사진을 찍어 공유하는 봉사를 즐긴다. 이번에 현수막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는데 사진에 글씨 넣는 방법을 가르쳐주어 현수막이 필요 없도록, 재능을 나눠주었다.
우남희 샘은 『봄비는 모른다』 책의 작가다. 문화해설사로 현직인데 시간을 바꾸어 참석해서 모처럼 얼굴 보고 마음 나눌 기회를 얻어 좋았다.
유병길 샘은 『할머니와 반짇고리』 책의 작가다. 시니어 매일에 살아가는 글도 자주 올리고 시골 농사도 돌보며 열심히 사는 분이다.
전정남 샘은 『봄비 소곤대다』 책의 작가다. 원로지만 즐겁게 참석해서 홍삼쥬스도 돌리며 함께 하는 모습이 나의 롤모델이지만 자신이 없다. 저 나이에 저렇게 건강하고 총명하고 원만하게 살 수 있기란 쉽지 않을 테니까.
최춘해 샘은 『엄마가 감기 걸렸어』 책의 작가다. 최고 경지의 시인으로 작년에 경북아동문학회에서 구순 잔치를 해드렸는데 늘 정정하게 건강을 지키신다. 회무에는 원만하고 현명한 자문을 주고, 후진들에게는 끝없는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다.
하청호 샘은 『잡초 뽑기』 책의 작가다. 대구문학관 관장이지만 전국구 시인이다. 건강을 지키 는 멋부터 관상에 뚝뚝 떨어지는 분이다.
한은희 샘은 『의병과 풍각쟁이』 책의 작가다. 올곧게 주위를 돌아보며 살고, 일 년에 두 세권의 책을 내는 열정도 귀감이 된다.
홍선희 샘은 『환상의 창 』 책의 작가다. 서울에서 대구를 오가며 여러 회에 참여하며 찬조를 즐겨하는 성품이 존경스럽다.
황팔수 샘은 『하얀 접시꽃』 책의 작가다. 솔직담백한 성품에 모두가 꺼려하는 회장직을 맡아 열심히 꾸려나가는 모습에 응원을 보내고 싶다.
이선영 샘은 『아주 큰 부탁』 책의 작가다. 허리를 삐끗해서 기행에 함께 못함이 아쉬워 계속 회원들과 통화하셨다. 문학회뿐 아니라 여러 모임에 대한 열정과 애정도 대단하시다. 그 연세에 그렇게 부지런히 시간을 쪼개어 사는 모습은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된다. 이선영 회장님의 허리가 빨리 낫기를 빌며, 한 분 한 분, 선생님들을 돌아보니 내 마음속에 한 분 한 분의 고귀한 문학관이 크게 지어져 나갔다. 이분들이 넋 잃고 끌어안고 살았던 이야기가 세상 떠나간 뒤에도 아름다운 향기로 남으리라.
해동 용궁사에 들렀다. 입구에 108 번뇌를 참회하며 오르는 장수계단은 사람들로 붐볐고, 해수관음대불은 신자들의 기도를 들어주려고 큰 귀를 열고 내려다보고 계셨다. 1376년 나옹스님이 토굴을 짓고 수행하던 곳인데 1930년대 통도사 운강스님이 보문사로 중창하였단다. 1974년 정암스님의 기도 중에 백의관세음보살이 용을 타고 승천하는 꿈을 꾸어 해동용궁사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단다. 나는 용궁사라고해서 용궁으로 가는 길이라도 일러주는 글감이 뭐 없을까싶어 둘러봤다. 신통한 발상은 떠오르지 않고 12지상 앞에서 회원들 몇이 서서 기념사진을 한 컷 찍고 돌아 나왔다.
바닷가 멸치횟집에 들러 멸치회랑 물회랑 광어회와 탕으로 점심을 푸짐하게 먹었다. 별미로 즐기는 여행이 주는 만족감에 한수를 덧 올렸다.
마지막 일정으로 유엔 기념 공원으로 갔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유엔군 장병 유해가 안장되어 있었다.
“한국 사람이면 다녀가야 할 곳이야!”
하청호 샘 말씀이 뜻깊게 들렸다. 그런데, 용궁사의 북적임과 이곳의 고요가 대비되었다.
1951년에 묘지가 완공되자 다른 곳에 가매장되었던 전몰장병들의 유해도 모셔왔단다, 영국 885명, 터키 462명, 캐나다 378명. 호주 281명, 네덜란드 117명, 프랑스 44명, 뉴질랜드 34명, 남아공 11명, 노르웨이 1명, 대한민국 36명. 미국 36명, 무명용사 4명. 11명의 비전투 요원들 총 2,300명을 모셨다. 화강석 벽면에는 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우리는 단체로 묵념을 올렸다. 공원에는 벚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바닥에 꽃잎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다. 내가 이번 4월에 <교육과 사색>잡지에 쓴 「하르르 나라 이야기 대회」의 배경과 닮아 있다. 글 쓸 때 떠올린 배경은 국립서울현충원이었는데…. 몽글몽글하게 전지된 초록색 나뭇잎 색들이 곱다. 곧 외출할 것 같은 차림새로 단아하게 서 있다. 신복순 샘과 김지원 샘, 곽명옥 샘과 걷다보니 진혼곡이 울려 퍼졌다. 4시 국기 하강시간인가? 걸음을 멈추고 서서, 젊음을 산화시키고 영면한 전몰 용사들을 위해 다시 한 번 묵념을 올렸다. 숙연해지고 울컥해지는 마음이었다. 남의 나라를 위해서도 목숨을 바친 그들이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엇에 넋을 잃고 사나요?’
부끄러웠다. 작가로 살더라도 그들처럼 치열한 인류애로 살아가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