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기 기자 입력 2022.07.27 03:00 조선일보 비싼 가격에 산 UHD(초고화질) TV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풀HD(고화질) TV보다 화면이 4배 이상 선명한 UHD TV를 장만하는 가정이 점점 늘지만, 정작 시청 가능한 UHD 전용 방송 채널이나 콘텐츠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케이블·IP(인터넷) TV 같은 유료 방송 서비스는 UHD 전용 채널이 전체의 2.6%, UHD용 VOD(주문형 비디오)는 0.1%에 불과한 실정이다. 지상파 3사 역시 지난 2017년 UHD 방송을 시작할 때 내세운 연도별 UHD 콘텐츠 편성 비율 목표를 대폭 하향 조정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런 식이면 비싼 UHD TV를 왜 샀는지 모르겠다” “컬러TV 샀는데 흑백만 나오는 꼴이다” “소비자만 호구 됐다”는 불만이 나온다. ◇ 새로 사는 TV 90%가 UHD인데 유료채널 중 UHD전용은 2.6%…초고화질용 VOD는 0.1%뿐 26일 방송통신위원회가 황보승희(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가구의 UHD TV 보급률은 2019년 6%에서 2020년 10.3%, 지난해 14.7%로 매년 증가세다. 가전 업계에 따르면, 국내 UHD TV 판매 비율은 2017년 약 40%에서 2018년 60%를 거쳐 올해는 90% 이상이다. 새로 사는 TV 10대 중 9대가 UHD TV인 셈이다. 하지만 IPTV·케이블TV·위성방송 등과 같은 유료 방송을 통해 즐길 수 있는 UHD 콘텐츠는 초라하다. 유료 방송에서 UHD 방송을 볼 수 있는 채널은 ‘스카이UHD’ ‘UXN’ ‘U맥스’ 등 6개에 불과하다. 유료 방송 가입자가 가장 많은 IPTV 3사 평균 채널 수(227개)의 2.6%밖에 안 된다. 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김영식(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 5월 현재 유료 방송이 보유한 VOD 콘텐츠 532만개 중 UHD급 영상은 6046개로 0.1%에 불과했다. IPTV가 0.6%, 케이블TV(중소 업체 제외한 ‘빅5′만 집계) 0.03%이고, 위성방송(KT스카이라이프)은 전체 VOD 23만개 중 UHD급 영상이 한 개도 없었다. 지상파 3사도 UHD 콘텐츠 확대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지상파 3사는 지난 2017년 ‘지상파 UHD 시대 개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당시 정부에서 수천억 원대에 달하는 황금 주파수 대역(700MHz)을 무료로 지원받았다. 그 대신 UHD 콘텐츠를 만들어 실제 방송에 편성하기로 했다. 편성 비율을 2018년 10%, 2020년 25%, 2023년까지 50%로 맞춘 뒤 2027년 이후 100%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상파 3사가 경영난을 호소하자 정부는 지난 2020년 기준을 대폭 완화해 2023년 목표를 50%에서 25%로 낮췄고, 2027년 100% UHD 방송 목표를 ‘2023년 상황 보고 결정’으로 바꿨다. ◇ “UHD 한다”며 공짜로 황금 주파수 받은 지상파 3사는 UHD 편성비율 목표 멋대로 낮춰 지상파 3사가 UHD 콘텐츠를 제작하더라도 정작 UHD TV를 가진 대부분 가정에선 이를 볼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지상파 UHD 방송은 IPTV 같은 유료 방송으로 재전송되지 않고, 가정에서 안테나로 직접 전파를 수신해야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방통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가구의 94.3%가 인터넷·케이블 등 유료 방송을 통해 TV를 시청한 반면, 안테나를 통해 지상파 방송만 수신한 가구는 2.2%에 불과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상파 쪽에선 UHD 콘텐츠가 HD급보다 제작 비용이 더 드는 만큼 유료 방송 업체에서 더 많은 재송신 대가를 받으려 하지만 유료 방송 쪽에선 이미 지상파 방송을 HD급으로 제공하는 상황에서 굳이 비용을 더 쓰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SK브로드밴드 같은 IPTV에서 UHD 콘텐츠를 송출하려면 별도 시설 투자까지 해야 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유료 방송 업계에서 지상파 UHD 재전송을 위해 송출 시스템 업그레이드에 수십억~수백억 원을 투자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황근 선문대 교수는 “지상파나 유료 방송 사업자들이 UHD 방송 확산을 위해 스스로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 정책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