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기법(2)-맥주 세 병 안주 하나
- 동서는 안전하다 -
권대근
문학박사, 문장가로 가는 길 저자
토마스 만은 “작가란 누구보다도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작가 이만교는 “언어의 발견을 인류사의 가장 놀라운 사건이라 한다면, 언어에 대한 사람들의 무지야말로 인류사의 가장 놀라운 두 번째 사건이라 일컬을 만하다.”고 했다. 오죽하면 이런 말이 나왔겠는가. 힘들어하면서 왜 쓰는가. 자기가 왜 쓰는지 알기 위해서 쓴다는 말도 있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쓴다. 그러나 작가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쓴다.「글쓰기 기법-맥주 세 병 안주 하나」는 끊임없는 동통 속에서 얻은 깨달음과 창작 기술 등을 핵심 정리한 ‘기본’이다. 서양의 시학, 동양의 시법 지침서들과 나의 교육 체험 등을 밑거름으로 삼았다.
먼저 혼란스러운 동사와 서술어 개념부터 알자. 영어 문법 가운데 가장 혼란스러운 부분이 바로 동사에 관련된 규정일 것이다. 국어문법에서는 움직임을 나타내는 단어를 '동사', 문장을 종결하는 기능을 하는 문장 요소를 '서술어'로 구분하지만, 영어에서는 그러한 구분 대신 'verb'라는 용어를 통칭해서 사용한다. 때문에 국어문법과 차이가 나서 학습자들이 혼돈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영문법책은 동사와 서술어를 구분하지 않지만, 나는 이것이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국어문법을 응용해서 영어에 적용할 수 있고 학습자들이 개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에서 문장의 서술어로 쓰이는 품사는 동사와 형용사 두 가지이다. 이를테면, '나는 달린다.' '그녀는 아름답다.' 그리고 명사를 꾸미는 품사를 일컬어 '관형사'라 부른다. '아름다운 그녀.' 하지만 영문법에서는 우리말에서 관형사라 불리는 품사를 '형용사'라 부르고 서술어로 쓰이는 모든 말을 '동사'라 부른다. 여기에서 국어문법과 차이가 생기며, 학습자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다. 영어에서는 우리식으로 형용사라 부르는 품사가 서술어 노릇을 할 수 없고, 그 경우에는 be동사가 서술어 역할을 한다. 'She is beautiful.' 그런데 엄밀하게 말해 be 동사는 동사라 부를 수 없다. 그것이 어떤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이기에 동사라 부를까?
동서는 안전하다. 형용사나 부사보다는 서술어나 동사 위주로 문장을 작성하라. 형용사와 부사를 털어내고 접속사를 제거한 다음, 동사의 역동성과 다양성을 살린 문장은 눈부신 효과를 낸다. 형부한테 가는 것보다 동서에게 가는 게 더 안전하다. 형용사 부사를 멀리하면 보다 안정된 느낌을 줄 수 있다. 무리가 가지 않은 경우에 한해서 부사는 형용사로 바꾸고, 형용사는 가능하면 동사로 바꿔본다. ‘그는 태만하게 근무한다.’보다 그는 일솜씨가 게으르다.‘가 더 힘이 있어 보이고, ’휘청거리며 걷는다.‘보다는 ’휘청거린다‘가 강하다. ’빠르게 말하다‘보다는 ’말이 빠르다.‘가 의미 전달 속도가 빠르고, ’많은 눈이 내렸다.‘보다는 ’눈이 쏟아졌다‘ 또는 ’눈보라가 휘몰아쳤다.‘는 표현이 훨씬 생동한다.
시작하는 글은 구체 동사, 즉 동작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 글에서 발단 기능은 두 가지다. 하나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개 예고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 글을 읽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독자가 읽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좋은 문장은 다이내믹해야 한다는 말을 상기하자. 우리글은 서술어에 생명이 있다. 독자에게 흥미를 주려면 서술어에 생동감을 주어야 한다. 첫 문장이 움직임에서 시작되면 단숨에 독자의 흥미를 끌 수 있다. “베아트리체는 웃었다.”
설명은 피하고, 묘사로, 추상어는 가능하면 쓰지 말고, 구체어로 써라는 의미다. 설명은 글의 맛을 죽인다. 문학은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다. 글쓰기란 글로 절경을 그려내는 것이다. 어떤 글이든 서술 원리 중 가장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것이 “말로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이다. ‘키가 크다’ 대신 ‘키가 184센티미터 정도’로, ‘그 여자는 미인이다’ 대신 ‘콧날이 시원스럽게 길다’ 로, ‘더러운 남자’ 는 ‘목요일쯤에는 항상 몸에서 걸레 썩는 냄새가 나는 남자’ ‘소변을 보면 꼭 바지에 흘린 자국이 남는 남자’ 식으로 구체어를 활용해서 써라.
움직일 때는 짧은 문장, 사색할 때는 긴 문장이 좋다. 문장은 리듬을 타야 한다. 호흡하는 문장이 맛을 낸다. 두 문장을 짧게 했으면, 다음 두서너 문장은 길게 한다. 감각적 암시가 함축된 정서는 더 긴 문장이, 분노는 스타카토 문체가 제격이며, 빛깔이 없거나 머뭇거리는 대화체를 피하고, 별 부담이 없을 때는 항상 능동태를 써라. 그것이 힘이 있는 서술어를 살리는 길이다. 대화체는 수필문의 본질이 아니고 소설문장의 본질이다. 적재적소에 들어가 효과를 내지 못할 대화체라면 과감하게 간접화법으로 전환하라.
동사나 서술어를 잘 활용하는 것은 작가에게 필수적이다. 글쓰기에 있어 가장 기초적인 자기 욕망이나 감수성에서부터 독서하는 방법이나 습관, 언어의식이나 문장력 같은 데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다시금 고민해야 한다. 글쓰기의 기본은 '산문'이다. 산문이란 살면서 겪은 일에 대해 정확하게 풀어서 서술하는 양식이다. 수필은 자기 내면의 목소리 듣기다. 게으른 사람은 게으를 때 명멸하는 여러 느낌과 자의식에 대해서,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 특유의 감수성을 통해서, 못생긴 사람은 못생긴 사람으로 살아갈 때 교차하는 시선과 느낌들에 대해 꼼꼼하게 서술하면, 그 자체로 개성적인 글쓰기가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