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요.
윤희경
“ 어릴 때 제가 사랑을 너무 못 받고 자라서 내 아이들만은 필요할 때 놓치지 말고 그때그때 다 해주려고 하는데 어디까지 해주어야 하는지 가끔은 판단이 안 서요. 다른 엄마들은 아이폰이다. 뭐가 다 해주는데 우리 아이들만 처지는 거 아닌가? 신경이 쓰이고 만일 내가 엄마로서 잘 못 해주기라도 해서 아이들이 잘못 자라며 저처럼 커서 원망이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요. ”
15여 년 전부터 좋은 엄마 좋은 아빠, 부모교육이 붐을 불었던 적이 있다. 초기에는 집단교육을 많이 했으나 최근에는 아이들의 개별적인 접근을 하거나 소집단으로 아이 양육에 대한 부모교육이 유지되고 있다. 이유는 엄마, 아빠를 처음 해보는 초보 부모들이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은 양육법인지를 배워, 질 좋고 바른 양육을 통해 건강한 자녀로 자라게 하고싶은 마음이다. 인간이 성숙하는 방식은 두가지 견해가 있다. 태어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 터득하는 생득적인 습득과 태어난 이후의 양육환경에 의해 자녀의 성향이나 성장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는 후천적 습득. 최근 모 프로그램에서 부모가 아이의 마음을 읽어 주지 못하거나 부부갈등, 부모의 실수들로 힘들어하는 아이들과 충돌사례, 상처사례들을 보면서 어떤 것이 좋은 선택인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방송은 방송이라는 의견이 있다. 이는 방송에서 보여주는 사례와 실제 간의 틈이 크다는 것이다. 이전의 우리 아이가 달라졌다는 프로에서처럼 실제 상황이나 현실에서는 그렇게 아이들이 쉽게 변화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모든 아이를 시간이 걸려서라도 좋은 방향으로 바꾸어 가면 되기에 특히 상담하고 치료를 하는 현장에서는 누워서 떡 먹기라는 말을 할 수도 있겠다.
인간은 생존에 필요한 능력 즉 생득적 습득은 보편적인 능력을 갖추고 태어난다. 탄생과정에서 어려움만 없다면 대체로 비슷한 능력을 보인다. 예로 보고 (생후 약 7~8개월) 듣고( 생후 약 3~4개월), 태어나자마자 갖는 미각, 후각은 생존 본능에 따른 습득 시기를 보인다. 탯줄을 끊고 나와 바로 젖을 먹어야 하는 영아는 뜨거운지 차가운지 상한 건지를 구분하여야만 하기에 미각과 후각이 출생 후 즉시 발현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생물학적으로 기본 기능은 비슷한 능력을 보이지만 출생 후의 양육환경은 후천적 학습을 통하여 습득되는데 이 역시 결정적 시기가 있어 아무 때나 자극을 준다고 학습으로 입력되지는 않는다. 예로 엄마 뱃속에서 6~7주는 성 기능 발달에 결정적인 시기 ( critical-periods)로 염색체들의 배열이 끝난 XX/ XY 염색체와 관계없이 남성 호르몬에 의해서 결정된다. 즉 남성 호르몬이 분비가 있으면 남성성 기관으로 발달하고 나오지 않으면 여성 성기가 발달한다. 또한 심리적 발달의 결정적 시기가 있다. 영유아기는 혼자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지 못함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가 점차 스스로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데( 4~6세) 최근 이러한 자기표현과 부모들의 의견과의 마찰이 빈번해지면서 아이들이 오히려 우위에 있다고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부모님들에게 누누이 부모는 부모이지 친구가 아니라고 교육함에도 소용이 없는 듯하다. 이유는 아이들의 의사를 무시하면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기가 죽어서 자기표현을 못 하고 뒤처지는 아이가 될까 염려하는 마음이 방해한다. 아이들을 존중하는 부모로 대화하는 부모로서 아이양육을 함으로 권위적인 부모가 아닌 민주적인 부모이려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에 놓친 것이 있다. 민주적이라는 뜻의 해석이 다른 것이다. 아이가 자기고집을 하고 부모는 참고 누르면서 기다려주는 것이 민주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 언제까지 참아줘야 하는거예요. 마음 같아서는 소리 지르고 다 그만두라고 하고싶어요. 속에서 부글부글 하는데 참는 거예요. 좋게 말로 해서 설득하고 이해 시키려구니 속이 터지지요.” 이러한 마음은 오히려 역기능을 만든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아이들을 달래서 하는 것이 교육이 아니다.
바른양육은 올바른 것을 선택 할수 있도록 가르치는것과 안되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 진정한 부모의 양육법이라고 생각된다. 부모는 안됨이 필요할 땐 언제나 안된다고 가르쳐야 하는 사람이다. 조건 없는 달램은 사회에서의 법도 지키지 못하는 아이로 자랄 수 있기에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을 알고 조절하고 기다릴 줄 아이로 키워야 한다. 이는 곧 아이들의 살아갈 사회의 질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