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심줄
김상영
촌구석에서 배달 우유라니 분에 넘치는 일이다. 그래도 받아먹게 된 건 아내 건강 때문이다. 삼겹살 석 점을 마지못해 집을 정도로 육식을 싫어하는 체질 탓에 풍요 속 영양실조인 사람이다. 그 부족분을 채우려 팩 우유라도 사 나르자니 대중없고, 무엇보다 속이 불편하였다. 먹었다 하면 화장실로 직행하기 예사니 딱한 노릇이다. 따뜻이 데워 넘겨도 위장이 너그럽지 않았다. 갱죽이나 속 편히 먹을까, 영양가 있는 음식들을 두루 먹질 못하니 낭패였다. 굳이 털어놓자면 대개 하나는 되게 좋아한다. 그렇다고 소고기보다 비싼 걸 자주 대령할 순 없다. 콩과 더불어 완전식품이자 고기 대용으로 믿고 있는 우유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대구 처제가 권한 ○○우유가 가뭄 끝에 단비처럼 맞아떨어진 모양이었다.
주문 전화를 넣자마자 읍내 ○○우유 대리점 주인이 시오리 재를 넘어왔다. 몇 달 전에 판촉차 동네를 훑어나갈 때 시식 우유조차 되 밀며 문전 박대했던 그 영감님이었다. 맛보기 우유를 널름 받아 마시면 내치기가 힘겨울 것 같아서다. 하도 깍쟁이 같은 세상이라 일단 밀어내고 보는 습관이 몸에 밴 까닭이기도 하다. 적군 대하듯 단호한 내 태도가 찬 바람처럼 냉랭했을 것이다. 우유 받을 형편 되는 집이라며 추천했었다는 옆집 지원네 할머니가 무색하게끔 말이다.
아내가 자청했으니 이번엔 주객이 바뀐 꼴이었다. 영감님과 나는 야외 탁자의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아 겸연쩍게 삐딱 인사를 나눴다. 골격이 장대하고 훤칠한 모습이 엿보이는 것이, 왕년엔 한가락 하던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남자다움에 호감이 일자 미안한 마음이 뭉클하였다.
영감님이 주섬주섬 크고 작은 프라이팬 두어 개를 계약 선물이라며 탁자에 올렸다. 웬 횡재, 마주 앉은 아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보나 마나 차이나일 텐데 저리 좋을까. 싱크대 속 묵은내 나는 프라이팬들은 어쩌려고 저러실까. 새 걸 들이려면 헌것부터 버려야지 싶은 생각에 골치가 아팠다.
“꽁치 고등어 들고 일어나는 거 안 봤나?”
떨떠름한 내 표정에, 살림은 내가 살지 당신이 사냐는 듯 주제넘은 내게 면박을 준다. 토닥대는 우리 부부를 흥미롭게 지켜보던 영감님이 돌하르방처럼 점잖은 미소를 지었다.
어르고 엿 먹인다는 말이 들어맞는 장면이었다. “하이고 말도 마소.”하며 아내가 짐짓 늘어놓는 내 흉이 걸판지다. 영감님의 맞장구에 더하여 세상사가 버무려지는 분위기에 취하여 내 우유까지 계약하고 말았다. 싸모님 혼자 오래 살면 뭐 하냐는 부추김이 주효한 거였다. 어쩌다 내가 동네북이 된 듯싶은데도 실실 웃음이 나오니 희한한 날이었다.
2년 약정에 월요일과 목요일 각각 여섯 병씩, 아쉬운 대로 ‘아침의 우유’다. 일주일에 하루 빠끔, 보약 챙기듯 엿새 내리 숨 가쁘게 먹어야 한다. 그래 인생 뭐 있나,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곱다지 않는가.
그런데 열두 병이 현관에 놓인 적이 가끔 있다. 한꺼번에 왜 이리 많이 왔을까, 그때마다 달력을 봤더니 다음 차수 날이 빨간 날이었다. 방학 기다리듯 공휴일을 고대하겠단 느낌이 들었다. 주 2회 배달까지야 양해할만해도 너무하다 싶었다. 무늬만 아침 우유지 마트 것보다 신선할 리 없었다. 더구나 다음 달부터 가격을 올리겠단 예고문이 지로용지와 함께 들어있다. 밉다니 업자는 꼴이다.
아내는 입이 짧다. 맛있네, 한두 번 끝에 심드렁해지는 미각이다. 우유도 예외가 아니었다. 반쯤 먹다가 이 탁자 저 베란다에 방치하는 날이 더러 있다.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뜨뜻미지근한 자투리 우유를 마셔 뒤처리하는 건 나다. 그뿐이랴, 뚜껑만 딴 우유가 식탁에 얹혀 있길래 대신 마셔 없앤 날도 있었다.
“식혀놓은 우유 못 봤나?”
“무신 말이고?”
숭늉인가 식히게, 아내의 생뚱맞은 질문에 딸내미가 즐겨하던 유행어를 흉내 냈다. 딴엔 냉장 우유를 꺼내 실온으로 미지근해질 때 마실 요량이었나 보다. 멀쩡한 전자레인지가 지척에 있건만 미적댄 게다. 짧은 입 아니랄까 봐, 처제 집 그 삼빡하였던 우유조차 심드렁해진 심산 줄 다 안다.
“여보, 우유 끊었뿌자.”
아침밥 상머리에서 짐짓 아내 속을 떠봤다.
“지금 무슨 소리 하노?”
못 이긴 채 동조할 줄 알았던 아내가 되려 나를 나무란다. 작심삼일에다 우유부단까지 갖다 붙이며 어퍼컷을 먹인다.
‘평생을 같이 살아도 저 사람의 속을 아나 맹세를 한다고 다 지키려나~♬’
어느 가수의 ‘반’이란 노래 가사가 맴돌던 날이었다.
하긴 프라이팬 큰 건 파전 부칠 때, 작은 건 고등어 구울 적에 이미 써먹어 버렸다. 수월찮은 위약금 생돈 물 일도 현실이었다. 그러나 발끈한 정황을 볼 때 그깟 위약금이 아까워서 쩨쩨할 아내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내 건강을 염두에 두고 우유 끊기를 저어하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나도 우유가 싫지 않다. 초등학교 시절 읽은 플랜더스의 개가 마음에 자리하고 있어서다. 불쌍한 파트라슈(Patrasche)가 끄는 우유 수레엔 ○○우유를 닮은 유리병 몇 개가 달랑댔다.
젊은 배달 친구는 다마스를 몰고 나타난다. 우리 모닝보다 더 경차인 데다 낡았다. 배달용이라 개의치 않는진 몰라도 털털한 성격인 듯 보인다. 모범 된 젊은이인 줄 짐작하겠지만, 나이는 가늠하기 어렵다. 모자를 폭 눌러쓴 바람에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바깥마당을 서성이는 나를 볼 때마다 우유 배달 봉지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꾸뻑 인사를 빠뜨리지 않는다. 인사성 밝으니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았음이다. 짐작건대 그 영감님 아들이 아닐까, 싶다.
장가들어 식솔을 건사하는지 모를 일이다. 아기까지 딸렸다면 우유 배달로는 어림없을 가장 노릇이다. 몇 잡(job) 뛰는진 물어보지 않았다. 잰걸음에 호리호리한 모습이 마치 해병대 복무 중인 우리 손자 보는 듯 애처롭다.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우유를 끊는다는 건 그 젊은이 밥숟가락을 채는 행위와 진배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꺼번에 배달하든 값을 올리든 말든 끊을 수 없는 우유다. 이른 아침 후다닥 우리 집 들러 장터 쪽으로 내달리는 젊은이를 보면 짠하다. 참 열심히도 사는구나 싶다. 내 새끼들도 대처에서 날마다 깨지고 또 일어서며 요령 소리 나게 살아가지 않겠는가. 자식 여의고 나잇살이나 먹어가니 이웃들이 한층 더 정겨워진다. 어쩌다 맺은 인연이 고래 심줄처럼 질기게 생겼다.
(2023년 춘삼월 / 16.8매)
첫댓글 우유 좋죠. 하지만 나도 두어 번 먹으면 한 며칠은 비린내 나는 듯하여 먹지 않아요. 그래도 청소용 우유는 내가 다 먹는 답니다. 데게 날짜 지난 거죠. 그래도 탈나진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