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기척에 잠자던 꽃들이 화들짝 놀랬나 보다. 온 사방이 꽃 천지로 변한다. 온난화 기온 탓인지 꽃들이 순서 없이 꽃잎 피우기에 치열하다. 시샘하는 봄소식에 덤덤했던 마음에도 ‘봄의 교향곡’이 울려 퍼진다. 때마침 친구 모임이 창원에서 있는 날이다.
점심을 먹고 진해 ‘안민고개’ 꽃구경을 나섰다. 창원 가까이에 위치하는 진해는 벚꽃 축제 중이다. 창원에서 진해로 가는 고갯길인 ‘안민고개’에는 일제 강점기에 심었다는 아름드리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길 양쪽에서 마주 뻗은 가지마다 만개한 벚꽃으로 화사한 꽃 터널을 이루고 있다.
진해 ‘안민고개’는 옛날 ‘만날재’라는 이름이 있다. 진해 가난한 집 이 생원의 예쁜 외동딸이 창원 김 참봉 집으로 시집을 왔다. 혹독했던 시어머니 구박으로 이 년 동안 친정 한번 가지 못했다. 친정 가족을 그리워하는 며느리를 애처롭게 여겼던 시아버지다. 추석 이틀 뒤 시아버지는 며느리와 친정어머니를 창원과 진해의 중간지점인 만날재에서 ‘반보기’로 애틋한 상봉을 시켜주었다. 그날, 며느리는 친정어머니가 챙겨온 음식을 먹으며 가족 혈육의 회포를 풀었다는 것이 만날재의 전설이다. 우리 민족의 정서인 만남과 그리움이 유래하는 곳이 지금의 안민고개다.
나에게도 ‘만날재’같은 의미가 있는 곳이 있다. 친구와 약속이 있는 개금역이다. 개금역 개찰구를 빠져나와 약속한 장소에 도착한 나는 초록색 긴 의자에 앉는다. 조금 후 마주하는 2번 출구 계단을 내려오는 친구의 환한 미소가 먼저 다가온다. 언제나 그랬듯이 양손에는 무거운 보따리가 들려 있다. 오늘도 친구는 힘든 것도 마다하지 않고 친정엄마가 딸에게 챙겨주듯 이것저것 무겁게 챙겨 왔다. 주례에 사는 나와 지하철이 없는 신개금에 살고 있는 친구와 만나는 개금 지하철역이 우리의 만날재 이다.
의상실을 경영할 때나, 이후 직장 생활을 할 때도 그랬다. 시간 여유가 없으니 언제나 음식은 빠른 시간에 조리되는 것이어야 했다. 반찬의 종류도 간편했다. 그런 사정을 잘 아는 친구는 여러 가지 반찬을 푸짐하게 만들어 번번이 챙겨주었다.
요리 솜씨가 특별한 친구는 음식 만드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 친구가 만들어준 음식들은 까다로웠던 남편 입과 애들의 입까지 즐겁게 해 주었다. 그저 그녀는 친구의 가족이 맛나게 먹어주는 것만으로 뿌듯해한다. 이제는 몸의 움직임이 귀찮기만 할 즈음에 음식 배달은 아직까지도 변함이 없다. 둘은 못 본 동안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좋은 일에는 내 일처럼 기뻐하고 안타까운 일에는 함께 아파한다. 우리들의 만날재 수다는 끝이 없다. 그래도 못다 한 아쉬움이 남은 채로 친구는 다시 출구 계단을 올라간다. 건네준 반찬이 든 터질 듯한 무거운 보따리를 양손에 받아든 나는 지하철 승강장으로 내려간다. 저녁 식탁 위에 오를 맛깔나는 반찬 생각에 미리 식욕이 당겨온다.
꽃길에서 해말개진 친구들도 얼굴에서 웃음이 연방 꽃이 되어 번진다. 안민고개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찻집에 들렸다. 찻집에서 내려다보이는 진해시는 꽃구름이 뭉실뭉실 피어 있는 듯 환상적이다. 도시가 온통 꽃 속에 묻혀 버렸다.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의 입가에도 환한 웃음꽃이 활짝 핀다. 찻집에서 여인네들의 수다도 끝이 없다.
‘열흘 가는 꽃 없다.’ 했던가. 흐드러진 저 꽃도 잠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꽃을 바라보던 창원 친구 C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시어머니가 창원 아들 집에 다니러 오신 다음 날, 시어머니를 모시고 안민고개 벚꽃 구경을 시켜드렸다. 꽃구경에 시어머니는 아기처럼 좋아하며 행복해하셨다. 그 모습에 꽃을 좋아하는 친정어머니가 생각이 났다. 며느리의 조급한 마음을 알 리 없는 시어머니는 아들 집에서 느긋하게 지내시다 예정했던 날보다 한참을 더 머물다 가신 다음 날이었다.
급히 서둘러 진주에 계시는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안민고개에 갔지만 흐드러졌던 벗꽃은 이미 다 져버렸다. 늦게 모신 탓으로, 만개한 벚꽃 시기를 놓쳐버렸다. C시인은 친정어머니를 먼저 챙길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슬펐다. 참을 수 없는 서러운 눈물이 쏟아졌다.
“야야, 고마 울거라! 저기 개나리, 진달래도 피어 있네, 꽃구경했으니 그만 울어라.”
시인의 어머니가 울고 있는 딸을 달래었다.
그때 며느리 마음을 알지 못하고 벚꽃에 행복해하시던 시어머니는 더 이상 벚꽃을 볼 수 없는 머나먼 길을 떠나셨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하는 연인으로, 또는 혈육, 다정한 친구, 이런저런 인연들도 먼 훗날 그들만의 만날재의 전설을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세상 모든 만남이 안민고개의 만개한 벚꽃처럼, 소중한 인연으로 오래오래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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