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17.
“미국! 당신들은 파리를 위해 뉴욕을 포기할 수 있는가?”
1961년 3월, 프랑스 드골 대통령이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을 향해 한 말이다. 소련이 미국을 향해 핵무기를 겨눔과 동시에 파리를 공격한다면, 미국은 프랑스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또한 이 질문에는 프랑스의 핵 개발 의지가 담겨 있다.
드골의 발언을 떠올리는 이유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러시아 움직임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8월 초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전세는 러시아로 기우는 듯했다. 그런데 8월 말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전세가 우크라이나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런 전세 역전은 서구의 무기 공급과 관련 깊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루한스크, 도네츠크, 자포리자, 헤르손 등 4개 주를 합병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병합된 4개 주를 탈환하기 시작했다. 푸틴의 입지는 점점 위축되기 시작했다. 이후 러시아에서 전술 핵무기 사용에 관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30일 푸틴은 핵무기 사용과 관련, 2차대전 당시 미국이 일본의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일을 지칭한 듯, 미국이 “선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자신들이 핵무기를 사용하더라도, 선례를 만든 미국 책임이 더 크다는 뜻이다. 푸틴이 체첸공화국 수장으로 임명한 람잔 카디로프는 저위력 핵무기 사용을 주장하기도 했다. 크림대교 폭파는 러시아의 이런 입장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진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전술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이게 북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북한은 9월 25일부터 보름 동안 무려 7차례나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이런 무력시위는 북한의 도발 패턴에서 벗어나 있다. 과거 북한은 한미 연합 훈련 기간 동안은 도발을 감행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미일 연합 훈련 기간 동안 다양한 미사일을 다양한 시간에 발사했다.
북한의 도발 패턴이 변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쏠린 미국의 시선을 북한으로 돌리려는 시도일 수 있다.
두 번째, 러시아에 집중돼 있는 시선을 분산시켜 러시아를 도우려 한다는 해석이다. 북한은 푸틴의 70세 생일에 축전을 보내는 등 러시아와의 돈독함을 유지, 과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북한의 노력은 ‘신(新) 블록화’에 대한 철저한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과거와 같이 한반도를 둘러싼 북방 3각 동맹과 남방 3각 동맹 수준이 아닌, 세계적 차원의 새로운 블록화가 발생하고 있음을 북한은 철저히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러시아에 확실한 신호를 보내려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북한은 핵보유국임을 내세워 더 이상 한미, 혹은 한미일 연합 훈련 정도는 두려워하지 않음을 과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여러 이유가 혼합돼 도발 패턴을 변화시켰을 수 있고, 세 가지 이유 중 하나가 패턴 변화를 유도했을 수도 있다. 중요한 사실은 북한의 핵 위협은 점점 가시화되고 있고, 러시아가 전술 핵무기를 사용하는 순간, 북한은 이를 빌미로 우리에 대한 핵 위협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북한은 10월 10일, 7차례의 탄도미사일 발사가 ‘전술핵운용부대’의 훈련이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와 미국 그리고 일본은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막으며, 동시에 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실제 러시아가 핵을 사용했을 때, 서방 국가들이 핵으로 맞대응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데 있다.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하면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 보복 조치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경제 보복 조치는 그동안 별 효과가 없었다.
미국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가 지난 100년간 있었던 경제 제재 100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제재 효과가 있었던 경우는 3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인종차별 철폐나 정치범 석방과 관련된 경제 제재는 51%가 효과가 있었던 반면, 군사적 행위를 중단시키기 위한 경제 제재의 성공률은 21%에 불과했다. 이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그리고 북한 핵 포기를 위한 제재가 바로 이런 유형에 속한다. 경제 제재가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낮추는 데 그다지 유용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결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핵을 사용했을 때,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이 이에 대항해 러시아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다. 러시아가 핵을 사용했음에도 별반 타격을 받지 않는다면, 이는 북한에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최근 부쩍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핵무장론은, 이런 고민의 표현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지난 9월 22일 공개한 ‘2022 통일의식조사(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 7월 1일부터 25일까지 전국 17개 시 도의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200명을 전화 면접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8%)’를 보면, 응답자의 55%가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는, 우리 국민 절대다수가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자체적인 핵무장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에 대해서도 그다지 신뢰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자체 핵무장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자체적 핵무장은 결국 핵확산방지조약(NPT)과 한미 원자력 협정을 깨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토식 핵무기 공유 협정이 부상하고 있다. 미국의 전술핵을 특정 국가 내에 배치하고 해당 국가가 참여하는 기구를 통해 핵 운용을 결정하는 방식이 바로 나토식 핵무기 공유 협정이다.
나토식 핵무기 협정을 추진하려 할 때도 걸림돌은 있다. 미국이 우리나라에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자체의 핵무장 여론을 이용해 핵무기 공유 협정을 체결하도록 미국에 압력을 가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가 아니라 인근 국가에 미국의 전술 핵무기를 배치하고, 핵무기 운용에 우리가 참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유화 정책을 펴서 북한을 달래면 핵 협박이 해결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할 수 있는 시점은 지났다. 햇볕 정책은 김대중정부 시절에는 분명 의미 있는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20년도 훨씬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도 유효하다고는 할 수 없다. 상황이 변하면, 대응 방식도 달라짐은 당연하다. 이제는 현실을 제대로 인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냉철하게 북한 핵 위협에 접근해야 한다.
신율 /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0호 (2022.10.19~2022.10.25일자) 기사입니다]